노랑무늬영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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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집을 읽다. 읽으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렇게 관계가 미끄러질 수도 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소설 인물들은 서로 어긋나 있다. 가족이든 아니든, 그들은 단단하게 엮여있지 않고 살짝 어긋나 있다. 그래서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밀어내고 있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런 관계를 맺고 있으니, 현대인들의 삶이 이렇게 서로 관계를 맺고 있되, 최소한의 관계이고, 언제든지 어긋나고 틀어질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읽다 보니 '파란 돌'이란 소설은 [바람이 분다, 가라]에 나오는 인물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름은 다르고 설정도 약간 다를지 모르지만, 분명히 그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 가라]에 나오는 상황에서 한 장면을 이 소설에서 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왼손'이란 소설을 읽으면 분열된 자아를 지닌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밖으로 보이는 나와 내면의 나, 일치하기 힘들겠지만, 우리는 그런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하나로 정리해서 표출하고 있다.


그것이 사회생활을 하게 하고,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 하는 요소가 된다. 적당한 가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기. 그러나 언제까지나 자신을 그렇게 억눌러 놓을 수는 없다. 자신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내면에 감춰져 있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것이 관계를 파탄낼 수도 있고, 또 더 돈독한 관계를 맺게 할 수도 있다. 적어도 이 소설집에 실린 '왼손'이라는 소설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지냈던 사람에게서, 더이상 그 감정을 제어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일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관계를 파탄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살더라도 이미 관계는 파탄나 있음을 부부관계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사회에서 용인되는 모습으로 지낼 수 있었던 요인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 않다는 데 있었는데, 왼손을 통해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사회적 관계마저도 파탄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융합해야 하나. 나란 인간이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존재인데, 그 복잡성을 조화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음을 이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제목이 된 노랑무늬영원은 상처받은 사람이야기다. 상처를 받았지만, 어떻게 그 상처를 딛고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살면서 이런저런 상처를 받고 지내게 되는데, 그때마다 좌절할 수는 없지 않나.


물론 소설 속 주인공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손을 쓸 수 없다? 이는 참 어려운 상황이다. 손을 쓰지 못하니, 가정 생활에서도 사회 생활에서도 문제가 많고, 특히 자신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그림 그리는 일에는 더더욱 전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거기서 끝나야 하나?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아니다. 그 상처를 딛고 나아가야 한다. 제목이 노랑무늬영원인데, 무슨 뜻인가 했더니 도마뱀 이름이다. 도감에는 독을 품고 있는 도마뱀이라는데, 소설 속 또다른 인물인 아이는 독이 없는 도마뱀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발이 짤렸지만 어느 순간 다시 발이 돋아나는 도마뱀. 노랑무늬영원. 이 노랑무의에서 햇살을 생각하게 되고, 또다른 화가의 그림,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비춰나오는 빛들을 통해서 주인공은 다시 살아갈 것이다.


상처가 깊고 회복 불능이 되나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읽으면서 젊은 시절 일화가 삽입이 되고, 그 다음에 도마뱀 이야기와 늙은 화가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록 나뭇잎에 가려져 있지만 햇살은 그 사이를 뚫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설은 그래서 절망에서 희망을, 상처에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게 된다.


나는 입술을 물고, 선잠에 새겨졌던 낯선 꿈을 되짚어본다. 내 두 손목에서 돋아난 투명하고 작은 새 손, 열 개의 투명한 손가락들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내 팔뚝에 새겨진 선명한 노랑무늬가 신비해 팔을 들어 올렸다. 해를 등진 잎사귀들처럼, 내 팔뚝이 투명한 레몬빛이 되었다. (295쪽)


이렇게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 상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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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삶을 크기로 재고, 비교할 수 있을까? 네 삶은 위대한 삶이고, 내 삶은 그렇지 않은 삶이라고 이야기하거나 그 반대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삶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삶에 '작다'는 말이 적용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의 삶이든 그 삶은 자신에게는 가장 큰 삶이고, 가장 위대한 삶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폄훼되거나 무시당할 수 없는 존귀한 삶.


  하지만 사람들은 위대한 삶이라는 말을 쓰고, 또 그렇게 겉으로 드러나보이는 삶을 훌륭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남 눈에 드러나 보이는 삶들. 또 그렇게 드러내려고 하는 삶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은 남 눈에 잘 띠게 된다. 또 이런 사람들 삶에 눈을 주게 되면 자기 삶에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 삶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삶들이 지금까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어왔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삶이 없다면 과연 큰삶이라고 하는 삶들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위대한 삶은 보이지 않는 삶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자 노동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수치나 돈으로 환산이 되지 않는 노동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 삶에서도 이런 그림자 노동과 같은 삶이 있다. 그런 삶이 있음으로 해서 다른 삶들이 돋보이거나 존재할 수 있는데도, 잘 보이지 않는 삶.


시를 읽다보면 이렇게 놓치고 있던 삶을 만나게 된다. 그 삶을 우리 눈에 보이게 만들어주는 시들이 있다. 이번에 읽은 윤일현의 시집 [낙동강이고 세월이고 나입니다]에는 그런 시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비'란 시를 읽으며 그림자 노동과 같은 삶을 보게 되었다.


    나비


나비의 삶은 곡선이다


장독대 옆에 앉아 있던 참새가

길 건너 전깃줄까지

직선으로 몇 번 왕복할 동안

나비는 갈짓자 날갯짓으로

샐비어와 분꽃 사이를 맴돈다


아버지는 바람같이 대처를 돌아다녔고

엄마는 뒷산 손바닥만 한 콩밭과

앞들 한 마지기 논 사이를

나비처럼 오가며 살았다

나비의 궤적을 곧게 펴

새가 오간 길 위에 펼쳐본다

놀라워라 그 여린 날개로

새보다 더 먼 거리를 날았구나


엄마가 오갔던 그 길

굴곡의 멀고 긴 아픔이었구나


윤일현, 낙동강이고 세월이고 나입니다. 시와 반시. 2019년. 14-15쪽.


사람들 삶에만 해당하는 시가 아니다. 내 삶에서도 크다고 여겨지는 일들, 작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많은데,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풍부한 내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내 삶의 어느 한 부분도 소중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사실. 그렇게 눈에 확 들어오는 삶들과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나를 만들어왔던 삶들이 지금 나를 있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시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 크고 웅장함을 추구하는 삶도 좋지만, 그 삶이 있기 위해서는 나비처럼 작고 여린 존재가 수없이 많이 작은 거리를 왕복하면서 이루어낸 삶이 있음을... 그런 삶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기를...


시를 읽으며 이렇게 보이지 않던, 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준 시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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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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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없는 사회라는 말과 꼰대들이 판치는 세상이라는 말이 거의 동의어로 들리는 세상인데, 그만큼 세대 간 소통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하는 말, 나 때는 안 그랬다고, 나는 그랬다고 하는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는 세상.


나이듦이 지혜로와지고 인정받음이 되지 않고 꼰대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만큼 기성세대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때 나이듦과 여유, 지혜로움이 같아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 그렇다.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다. 우리가 살아갈 인생은 어차피 기한이 정해져 있다. 그 정해진 기한을 잘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인생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라서, 어떻게 살아야 잘살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때 잘사는 법을 가르쳐준다기보다는 보여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멘토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특정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지니고 산다면 누구나 처음 사는 인생을 그래도 좀 잘살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마찬가지로 멋지게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그렇다. 그렇게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어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단 한번 뿐인 인생, 멋지게 살고,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쓴 장명숙은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멋지게 늙어가는 사람. 인생을 멋지게 산 사람. 물론 그도 고민을 많이 하고 시행착오도 겪었겠지. 그런 과정을 가감없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런 삶을 책을 통해 만나면서 꼰대가 아닌 어른을 만나게 된다. 나이 들어서 유튜브를 하는데, 구독자가 많다고 한다. 유튜브 운영과 구독자와 나이를 연결시킬 필요는 없지만, 살아온 인생을 담담하게 전해주고, 그 과정에서 삶의 지혜를 얻게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구독해서 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어른이 없는 사회, 꼰대들만 있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렇게 삶의 지혜를 보여주는 사람이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


무겁지 않게, 또 훈계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게 그렇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해서 단 한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는 후대들이 잘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책 곳곳에 담겨 있으니... 찬찬히 이 책을 읽어보며 느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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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이 지나고, 우수도 지나고, 이제는 봄이 다가와야 하건만, 계절은 어김없이 봄을 향해 가고 있단 믿음이 있는데, 그럼에도 순간 순간 닥쳐오는 추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아직 완연한 봄은 아니구나. 봄이 이처럼 쉽게 오지는 않는구나. 순환하는 계절도 이렇게 한차례씩 또는 몇차례씩 고통을 동반하면서 오는구나.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도 편하게 오는 계절은 우리에게 감흥을 주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자연은 그래도 조금 늦거나 빠르거나 또는 혹독하거나 부드럽거나 제 철을 보내주고, 우린 제 철을 맞이하게 되는데, 정치는 아니다.


어쩌면 선거는 우리에게 또다른 봄을 맞이하게 해줄 기회이기도 하지만, 겨울로 되돌아가게 할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겨울철 칼바람만큼이나 살벌한 말들이 난무하고, 그 말들로 인해 몸과 마음은 더 추워지고 있는 상황.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 말로는 우리들에게 봄을 선사하겠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는 겨울로 우릴 끌고 가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춥다. 정치판에서 나오는 찬바람들에... 이럴 때 따스한 바람, 부드러운 바람, 우리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줄 바람을 쐬고 싶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 [빅이슈] 269호가 왔다. 표지가 초록바탕에 반려견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탠져린즈'들이 있다.


반려견들, 요즘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지만, 반려견이 되지 못한 개들 역시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반려견들은 귀엽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등등의 말들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함께 지내지만 어느 순간 반려견의 지위를 잃은 개들은 무섭다, 더럽다, 위험하다 등등의 부정적인 말들과 함께 사람들에게서 멀어져야 할, 또는 안락사를 시켜야할 존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반려견과 비반려견의 차이가 무엇일까? 단순히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이유로 나누고 차별을 한다면, 과연 그것이 타당할까? 이번호에서 제주 탠져린즈를 다룬 글에서는 그러한 반려견/비반려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우리 생명이 소중하듯이, 우리 존재가 모두 하나하나 온전한 존재이듯이, 이들 역시 온전한 존재라는 사실,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여기에 더불어 무거운(?) 주제를 다룬 글들이 있다. (성현석-조용한 궁리: 한니발은 왜 승리를 활용할 줄 몰랐을까?와 녹색빛: 기후 대선을 위한 선택)


무겁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우리에게 봄이 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에 대한 글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오늘만 살지 않고,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현재에 불러오면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함께 있는 삶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눈 앞의 이익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눈 앞의 이익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갖추고 또 지금 당장은 필요없게 여겨질지라도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해야 할 일들은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고, 인류가 오랫동안 생존해 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니발은 왜 승리를 활용할 줄 몰랐을까?'란 글에서 지금 우리에게 다가올 선거를 생각하게 된다. 한니발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미래를 책임질 정치에 대해서, 우리에게 봄을 가져올 정치가 어떤 정치여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기후위기, 또는 기후재앙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기후 면에서는 혹독한 겨울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겨울에서 봄이 오게 하려면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 행동하기 위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후위기 역시 정치와 떨어져 있지 않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도록 나설 정치가 되도록 하는 일, 역시 시민의 몫이다. 그러니 이번 호는 봄을 앞두고 마냥 기다리지만 말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적어도 우리들이 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그래야 봄이 올 수 있다고 하는 듯하다.


뭇생명들에 봄을, 우리 정치에도 봄을, 그래서 우리들 삶에도 봄이 깃들기를... [빅이슈] 269호를 읽으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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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김태연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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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시집이 있을 뿐이다. [입 속의 검은 잎] 


그 밖에 산문집도 나왔고, 전집도 나왔지만, 기형도를 우리에게 다가오게 한 작품은 바로 이 시집이다. 시들이다. 그래서 기형도는 시인이다. 그의 시들이 주는 암울한 분위기, 읽으면서 자꾸만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 듯한 느낌을 받는 그런 시들. 하지만, 그 시들을 통해서 기형도를 잊지 않게 된다.



이 책은 기형도에 관한 소설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일들은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소설이라기보다는 기형도에 관해 친구가 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시절과 그 이후의 이야기에 국한되어 전개된다. 당연하다. 연세문학회에서 만난 기형도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형도의 과거가 조금씩 나오기는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만난 기형도 이야기를 한다.


문학회에서 만나 기형도가 죽기 전까지 만나왔고, 함께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그래서 기형도를 실감나게 만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 기형도, 참 멋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좋은 시인'이 되고자 했다고 한다. 좋은 시인. 유명한도 아니고 훌륭한도 아닌 좋은, 그렇다.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이 얼마나 좋은가. 그는 말 그대로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남들을 배려하는 마음씨를 지닌. 그리고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공부도 너무 잘하는.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에 지니고 있던 깊은 상처. 그 검은 어둠을 몰아내지 못하고, 몸에서는 병을 간직하고 지냈던 사람. 불의의 죽음으로 전설이 된 시인. 그 시인과의 만남과 이별을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전설이 된 기형도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회를 살아갔던 살아 있는 인물이었던 기형도를 만나게 해주고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기형도의 시에 대한 열정도 열정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것이 결국 기형도를 좋은 시인이 되고자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소설이라 그렇겠지만, 그래도 (양력과 음력을 모두 떠나서) 기형도가 좋아했던 시인인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날이 2월 16일인데, 기형도가 태어난 날이 2월 16일이라니... 윤동주의 죽음도 20대, 기형도도 20대에 세상을 떴으니, 이런 우연의 일치가... 이 소설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소설적 장치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일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중 인물인 허승구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기형도.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 기형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으면 좋겠다. 기형도라는 사람, 시인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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