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삶을 크기로 재고, 비교할 수 있을까? 네 삶은 위대한 삶이고, 내 삶은 그렇지 않은 삶이라고 이야기하거나 그 반대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삶을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


  삶에 '작다'는 말이 적용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의 삶이든 그 삶은 자신에게는 가장 큰 삶이고, 가장 위대한 삶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폄훼되거나 무시당할 수 없는 존귀한 삶.


  하지만 사람들은 위대한 삶이라는 말을 쓰고, 또 그렇게 겉으로 드러나보이는 삶을 훌륭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남 눈에 드러나 보이는 삶들. 또 그렇게 드러내려고 하는 삶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은 남 눈에 잘 띠게 된다. 또 이런 사람들 삶에 눈을 주게 되면 자기 삶에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 삶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삶들이 지금까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어왔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삶이 없다면 과연 큰삶이라고 하는 삶들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위대한 삶은 보이지 않는 삶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자 노동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수치나 돈으로 환산이 되지 않는 노동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 삶에서도 이런 그림자 노동과 같은 삶이 있다. 그런 삶이 있음으로 해서 다른 삶들이 돋보이거나 존재할 수 있는데도, 잘 보이지 않는 삶.


시를 읽다보면 이렇게 놓치고 있던 삶을 만나게 된다. 그 삶을 우리 눈에 보이게 만들어주는 시들이 있다. 이번에 읽은 윤일현의 시집 [낙동강이고 세월이고 나입니다]에는 그런 시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비'란 시를 읽으며 그림자 노동과 같은 삶을 보게 되었다.


    나비


나비의 삶은 곡선이다


장독대 옆에 앉아 있던 참새가

길 건너 전깃줄까지

직선으로 몇 번 왕복할 동안

나비는 갈짓자 날갯짓으로

샐비어와 분꽃 사이를 맴돈다


아버지는 바람같이 대처를 돌아다녔고

엄마는 뒷산 손바닥만 한 콩밭과

앞들 한 마지기 논 사이를

나비처럼 오가며 살았다

나비의 궤적을 곧게 펴

새가 오간 길 위에 펼쳐본다

놀라워라 그 여린 날개로

새보다 더 먼 거리를 날았구나


엄마가 오갔던 그 길

굴곡의 멀고 긴 아픔이었구나


윤일현, 낙동강이고 세월이고 나입니다. 시와 반시. 2019년. 14-15쪽.


사람들 삶에만 해당하는 시가 아니다. 내 삶에서도 크다고 여겨지는 일들, 작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많은데,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풍부한 내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내 삶의 어느 한 부분도 소중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사실. 그렇게 눈에 확 들어오는 삶들과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나를 만들어왔던 삶들이 지금 나를 있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시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 크고 웅장함을 추구하는 삶도 좋지만, 그 삶이 있기 위해서는 나비처럼 작고 여린 존재가 수없이 많이 작은 거리를 왕복하면서 이루어낸 삶이 있음을... 그런 삶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기를...


시를 읽으며 이렇게 보이지 않던, 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준 시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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