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이야기 2 - 소포클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정치가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서 좋다. 어쩌면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해 그리스인들의 전형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권 시작은 안티고네와 크레온으로부터 시작한다. 두 극단의 부딪힘. 그러나 안티고네로 대표되는 극단은 본성과 자연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고, 크레온으로 대변되는 극단은 인위와 개인의 욕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극단과 극단이 부딪히면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안티고네의 죽음, 크레온의 파멸. 그러나 둘 다 파멸에 처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안티고네는 칭송을 받는다. 크레온은 비난을 받고, 어떤 동정도 얻지 못한다.

 

이 극단적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우리 삶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나'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아무리 법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용납되지 않음을 처음 부분부터 보여주고 있다.

 

이런 법만을 따지는 개인의 욕망이 그리스를 쇠퇴로 이끌어갔다는 논지가 뒷부분에 나온다. 소송천국 그리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소송이 필요한 사회, 넘쳐나는 소송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생산적이 아닌 남들을 파멸시키는데 쓰게 된다.(소송 망국 아테나이. 416쪽)

 

결국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지고 마는데, 이 법의 맹신에 대해서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작은 제목에 나오는 마지막 인물, 소크라테스다. 그는 공정한 재판을 통해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에 이른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으며 신을 믿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법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이 얼마나 잘못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너무도 많지 않은가. 또 아테네에서도 벌금으로 처벌을 면하는 제도가 있었듯이, 재판 따로 처벌 따로인 경우가 쇠퇴기에 넘쳐났는데, 우리나라 역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고 하여 온갖 보석들이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한 사회의 쇠퇴기에는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통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보다는 문자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온갖 해석가들이 나타나게 되고, 당시에는 이들이 소피스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했고, 요즘은 변호사 또는 브로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소포클레스에서 가장 중심에 두는 인물은 오이디푸스다. 이 책을 읽으며 왜 쿤데라가 '농담'이라는 소설에서 오이디푸스를 언급했는지 알겠다.

 

자신의 잘못이 없음에도 그것을 비껴가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인간. 인간으로서 가장 고결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 오이디푸스. 왜 신들이 그에게 고난을 주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당당하게 맞이하는, 그래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겨나가는 인간, 영원한 안식을 얻은 인간, 오이디푸스.

 

우리가 언제 자신이 한 행동에 걸맞는 대접만 받았던가. 내 호의가 악의를 유발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때마다 억울해 하지 않았던가.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 하면서 변명만 하지 않았던가. 특히 정치인들, 오이디푸스처럼 왕이라는 자리에 있어 테베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들이라면 자신에게 파국이 닥쳐오더라도 정면으로 맞서야 하지 않을까.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당당하게 나아가기. 책임지기. 다른 존재 탓하지 않기. 오로지 내게 주어진 일일 뿐. 오이디푸스는 그렇게 나아간다. 그런 그를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제시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뛰어난 인간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는 인간. 그 인간이 바로 오이디푸스이기 때문이다.

 

명심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인물들 말고도 이 책에서는 힙포크라테스를 다루고 있다. 의학을 발전시킨, 그의 의학 앞에서는 어떤 인간 차별도 없었음을 보여주는, 현대에도 의대를 나오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고 하는데, 돈이 아니라 병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의사의 모습. 그렇게 중요한 의사가 이 권에서 나오고,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나오기도 한다.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웃음으로 사회를 치유하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 아리스토파네스는 희극을 통해 당시 그리스 모습을 꼬집는다. 그는 웃음으로 흘려보내려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사회를 개조하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성공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비극에서 희극으로 나아가고, 아테네는 점점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그 쇠퇴의 정점에서 내리막길로 치닫게 되는 것,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아닐까 한다.

 

이제 3권으로 가야 한다. 가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2-31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31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참 많은 문학상이 있다. 기릴 수 있는 문인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그것이 더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 이름을 걸 문인이 제법 된다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노작'이라고 하면 누군가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히 요즘 학교에서는 국어시간 시를 가르칠 때도 시인이 쓴 호는 잘 가르치지 않는다. 호가 무엇인지 모르기도 하고.

 

  예전 사람들이 대부분 호를 사용했는데,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명한 사람들의 호는 자연스레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다. 사실 '춘원'이라고 해도 '춘원'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춘원'이 이럴진대 '횡보'는 말할 것도 없고 (춘원은 이광수, 횡보는 염상섭) '노작'은 더 먼 이름이다. 홍사용. 내겐 중학교 때 다가온 시인. 친구 중 누군가 참 구슬픈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외우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왕이라고 하는데, 그놈의 왕이 왜그리 서글프던지... 그래서 홍사용을 기억했는데, 그의 이름을 단 문학상, 그것도 1회 수상시집이다. 안도현이 받았다.

 

안도현이 받은 문학상도 많을텐데... 그가 노작문학상 1회 수상자니, 1회 수상자를 선정할 때 선정위원들이 얼마나 고민을 했겠는가.

 

그런 안도현의 시들을 싣고, 여기에 다른 시인들의 시가 함께 실려 있다. 2002년에 나온 시집이니 꽤 오래 전 시집이긴 하지만, 좋은 시들이 많다. 그 많은 시들 중에서 안도현의 '겨울 강가에서'

 

지금처럼 찬바람이 쌩쌩부는 날엔... 그것이 물리적인 날씨와 경제 날씨와 정치 날씨와 교육 날씨 등 전반적인 날씨가 겨울에 해당하는 지금에... 얼음을 차가움이 아니라 따스함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을....

 

  겨울 강가에서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동학사. 2002년.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34쪽. 

 

철없는 젊은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들을 받아줄 살얼음 하나 깔지 못하는 배부른 자들이 국회라는 곳에 가 있어서, 법안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강도 눈을 받기 위해 얼려고 하는데, 자신을 더 차갑게 해서 그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변해 눈을 안아주려고 하는데, 도대체 그들은 국민을 대표한다는 그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이래서 비례대표가 필요한데... 젊은이들을 대표할 사람이 국회에도 있어야 하는데, 선거법 개정도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국회는 불통 국회, 철의 장막보다도 더 두껍고 견고하고, 캄캄한 암흑 장막. 추운 겨울. 더 추워지게 만드는 그들. 그들이 하는 그 차가움은 얼음도 되지 못하고, 그냥 비수가 되어 사람들 가슴을 찌르고 만다.

 

에라, 이... 이 시를 보라. 차가움이 어떻게 따뜻함이 될 수 있는지... 작고 여린 것들을 받아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히 기억해야 하리라. 눈발과 같이 여린 존재들을 받아주기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그래서 그들이 우리를 대표하게 해야 하리라. 시간이 지난다고 잊어버리지 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놋그릇을 닦으며


풍물시장 놋그릇

무관심에 멍이 들어

푸르고 검은 딱지들로

제 몸을 덕지덕지 감싸고 있었다

수세미로 

박박 쓱쓱

닦고 닦으니

황금빛이 난다

관심 갖고 사랑 주면

이렇게 빛날 수 있는 것이

한 번 쓰고 또다시 방치하면

푸른 멍이

놋그릇 곳곳에 생기고

또 닦으면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한번만으로

황금빛이 유지되지 않고

계속 닦아야만

관심을 주어야만

황금빛을 띤다고

조금 힘들다고

귀찮다고 내버려두면

금세 빛이 바래는

놋그릇


우리네 삶이 바로

이 놋그릇과 같지 않을까

힘들게 놋그릇을 닦는데

문득 든 생각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12-28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8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해는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던 해다. 문재인 정부에게 가장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항목은 바로 남북관계다.

 

  전쟁의 위협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 남북 단일팀부터 시작하여 철도, 도로, 강에 대한 공동조사가 이루어지고, 또 비무장지대에서 초소(소위 지피-GP-라고 하는)들을 철거하기도 했다.

 

  말만 비무장지대지, 사실 철저한 무장지대였던 비무장지대. 여기에서 가끔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고, 충돌이 아니더라도 엄청나게 깔려 있는 지뢰때문에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자연이 살아났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이시우는 비무장지대를 사진으로 찍고 간단한 글을 덧붙였다. 간단한 글이라고 하지 말고 시라고 하자. 책에도 사진시집이라는 표현이 나오니.

 

비무장지대를 찍은 이유는 통일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허리를 동강낸 비무장지대를 훑어가면서 이시우는 사진을 찍고 자신이 느낀 점을 시로 적어 놓았다.

 

단지 그곳을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사진을 통해, 시를 통해 분단 현실을 상기시킨다. 통일에 대한 열망을, 희망을 보여준다. 녹슨 철마 위에서도 생명을 유지해가는 들꽃들을 통해 이시우는 통일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분단 비극을 여전히 간과하지 않는다.

 

특히 도처에 있는 지뢰들... 그 지뢰들에 대해서 이시우는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총은 적과 아군을 구별합니다.                             총은 선과 악을 구별합니다.

지뢰는 적과 아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지뢰는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총은 전시와 평시를 구별합니다.

지뢰는 전시와 평시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진과 시들이 많다. 우리나라 도처에 있는 지뢰... 지뢰가 어디 비무장지대에만 있겠는가. 후방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에도 지뢰가 깔려 있으니... 지뢰는 적과 아군, 전시와 평시,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 맞다.

 

이제 그 지뢰를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지뢰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지뢰들도. 그것이 평화로 가는, 통일로 가는 길이다.

 

이시우의 사진시집을 읽으며 비무장지대에 평화가 오는 지금 현실을 생각하고, 또 앞으로 통일로 가는 길이 성큼 가까워졌음을, 이런 작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생각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목대로 매혹적이다. 눈에도 잘 들어오고, 마음으로도 깊게 들어온다. 사진과 시의 융합. 말 그대로 융합이다.

 

  사실 디카시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시집을 보면서 디카시 이해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시도하지는 않는 디카시라는 생각이 들고. 또 이제 시에도 새로운 형식이 생겨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단순히 사진과 시가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디카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를 떠올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림만으로 유명해졌냐 하면 그것이 아니다. 세한도라는 아주 작은 그림에 수많은 글들이 붙어서 명작 '세한도'를 이룬다.

 

글과 그림이 완전히 융합한 상태. 그것이 바로 '세한도'다. 디카시를 이렇게 이해했다. '세한도'와 같은 형식의 시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하고.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예전 그림이 글과 문자가 조화를 이룬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똑같지는 않겠지만. 머리말에서 이들은 디카시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디카시는 기존 시의 언어를 영상과 문자의 멀티언어로 지평을 넓힌 멀티언어 예술이다. 형태시처럼 문자에 사진을 보조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아니고, 포토포엠처럼 완성된 시에 사진을 덧붙이는 방식도 아니다. 디카시는 시인이 직접 자연이나 사물에서 감흥한 시적 형상을 찍고 쓰는 새로운 방식의 시이다. 

 

그렇다. 디카시는 그냥 사진과 시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화학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사진은 시에 더 구체성을 부여해주고, 시는 사진의 마음을 글로 드러내 보인다. 그렇게 시와 사진이 하나로 합쳐진다. 이것이 디카시다.

 

많은 시들 중에서 아마도 디카시가 무엇인지, 디카시가 어떤 울림을 주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엄선한 작품들을 실은 시집이다. 그러니 디카시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은 이 시집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디카시집을 읽으며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시들이 길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형상을 나타내는 사진이 있기 때문에, 이 사진에 들어 있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길어질 수가 없다. 또한 시상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전개할 수 있다. 그 점이 좋았다.

 

날로 무슨 말인지 모르는 시로 흘로가는 요즘 경향에서 디카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과 비교할 수 있다.

 

또한 나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고,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도 하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2-26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6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