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나라 지혜의 시대
노회찬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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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다.


이제 우리나라 정치에서 볼 수 없는 사람.


자기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했던 사람.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자신에게는 큰일이라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 


더 우리 곁에 있어야 했는데, 할 일이 아직도 많았는데, 자신이 지닌 엄격한 잣대를 굽힐 수 없었던 사람.


그 사람이 생전에 한 강연과 류시민, 이정미의 추도사, 그리고 안재성의 노회찬 약전이 묶여서 책으로 나왔다. 오래 전에. 그러고보니 그가 세상을 떠난 해가 2018년이다. 


노회찬이 세상을 뜬 그 해에 책이 나왔는데, 그때는 노회찬을 잃었다는 생각에 책이 나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 망설이지 않았다. 집에 노회찬이 한 말을 모아놓은 책이 한 권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 생각에.


'촛불 대, 정치는 우리 손으로'라는 주제로(19쪽) 그가 강연한 내용이다. 이 말을 '우리가 꿈꾸는 나라'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꿈을 꾼다. 단지 꿈만 꾸지 않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움직인다.


직접민주주의를 하기 힘들다고 다들 말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집단 생활을 하는 사람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직접민주주의가 안 된다면  대의민주주의를 통해서라도 꿈을 실현시키려 한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대의'에 있다. 내 의사를 대변해줄 사람. 


내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의사를 대변해서 의회에서 주장할 수 있고, 그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금 의회에 있는가? 수많은 비리에도 끄떡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 눈에 있는 티끌에만 집중하는 사람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의원들. 그런 의원들이 자꾸 언론에 언급이 되는 이 현실.


그런 의원들을 보면서 과연 이 의회가 우리의 꿈을 대신 실현시켜 주기는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의구심을 갖는다. 


국민 숫자에 비해 의원수가 적다고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들이 왜 의원 숫자를 늘리는데 반대하겠는가? 이들이 지금까지 해온 행태들을 보면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해서 국회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국회에서 활동을 한다. 그러니 누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안에 대해서 찬성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노회찬을 다시 떠올린다. 그와 같은 국회의원들이 많았다면, 아마도 국민들은 국민 수에 비해 국회의원이 적다고, 숫자를 늘리자고 먼저 나섰을 것이다.


그가 한 말을 몇 가지 인용해 본다. 지금도 유효한, 아직까지도 우리가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과제들이 아닌가 싶다.


'저는 촛불시대의 과제를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불평등을 평등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의 정착으로. 이 세가지가 우리에게 떨어진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40쪽)


'촛불이 우리에게 부여한 역사적 과제인 불공정의 해소, 그 첫걸음은 법원과 검찰을 개혁하여 권력층에 대한 봐주기 수사와 처벌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55쪽)


'불평등의 해소란 바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것, 일자리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한 만큼 제대로 받는 것 그래서 모두가 스스로 노동해서 먹고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66쪽)


'전쟁도 불사하자는 주장은 나라를 망가뜨리자는 것일 뿐 보수하는 이름으로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합니다. 평화란 의견이 갈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85쪽)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국민과 지방에 나눠주는 일, 이것은 정치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민의 권한이 커질수록 정치인들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02-103쪽)


이 말들, 지금도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말들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일들이니까. 그가 갔지만, 그가 간 이후로 과연 그의 주장을 얼마나 받아들였는지.


아니,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우리가 못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국민의 권한이 커질수록'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국민의 권한이 쪼그라들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인다.


그가 한 강연집, 그리고 그를 추모하는 글들을 읽으니, 우리나라 현실에서 노회찬 같은 정치인이 있어야 함을, 그가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안재성이 쓴 노회찬의 약전에서 그가 죽음을 선택한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노회찬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동안 그가 해왔던 활동들을 생각하며 안재성이 한 이 말에 동의한다.


'나는 그를 이중 잣대를 허용하지 않았던 원칙주의자이자 가장 높은 자존심을 가졌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다. ...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일조차도 극도의 수치감을 느끼는, 수치스럽게 사느니 죽음을 택한 자존심 강한 사람으로 말이다.' (166쪽)


덧글


빅이슈 300호를 읽다가, 빅이슈에 실린 글을 보면서 노회찬 그를 만났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 을 기념하여 열린 제 1회 프라이드 갈라에서 첫번째 수상자로 그가 선정되었다는 사실. 올해 3회가 열렸다고 하는데, 그가 살아있었다면 그 자리에 그가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1회 수상자였음에도 그때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던 그. 그가 남긴 발자취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이번 빅이슈를 통해서 다시 느끼게 되었다.


관련기사를 링크한다.

서로 달라 행복한 세상, 제1회 프라이드 갈라 개최 - 뉴스프리존 (newsfreezone.co.kr)

(빅이슈 300호. 80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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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6-14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운 죽음이었죠!ㅠㅠ

kinye91 2023-06-14 16:16   좋아요 2 | URL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요즘 정치판을 보니, 그가 더욱 생각나네요.
 

  300호다.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잡지가 300호까지 냈다.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잘하리라 믿지만, 빅이슈가 다른 역할을 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노숙인들이 모두 자활에 성공해서, 빅이슈가 이제는 그들이 판매해서 수익으로 살아가는 잡지가 아니라, 노숙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읽으면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잡지가 되기를...


  편집자의 말에서 이 잡지에 실린 내용들이 어떨까 고민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노숙인을 돕는다는 취지가 사라져도 잡지 자체만으로 읽힐 수 있는 그런 잡지라는 생각을 한다.


내용이 알차다는,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분야에 대해서, 또 모르고 있던 분야, 그냥 지나쳤던 분야에 대해서 이 잡지를 통해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쪽에 고정되어 있던 내 삶의 경험을 이 잡지를 통해서 다양한 방면으로 넓힐 수 있어서 좋다고나 할까.


300호 표지를 둘리가 장식했다. 둘리도 우리에게 온 지 벌써 40년이라고 한다. 장년의 나이가 된 둘리. 그렇다면 고길동은? 할아버지가 되어 있어야 한다.


둘리 영화가 다시 상영이 된다고 하는데, 영화는 1996년에 개봉되었다고 하니 26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때 아이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중장년이 되어 둘리를 만나게 된다.


그때 가졌던 감정들을 되살리면서 새로운 감정을 지니게 될 수 있는 기회가 될텐데...이는 과거의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과거가 어느 순간 내 눈 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음을, 그렇게 우리의 삶은 과거를 완전히 떠나지 못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번 호에서 다룬 내용 중에 이렇게 과거를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 있었다. 사라진 것, 사라질 것들에 대한 생각들.


하지만 사라졌다고 우리 기억 속에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남아서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현재에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삶이므로.


빅이슈 300호 발간을 축하한다. 앞으로도 빅이슈가 굳건하게 살아남아 과거의 잡지가 되지 않고 미래를 현재에 가져오는 현재의 잡지로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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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6-13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녹색평로에 이어, 또 이렇게 묵직하게 중요한 잡지를 소개해주시네요.
챙겨 읽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못하겠지만,
지나치진 않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그런데 둘리는 의외입니다.
저는 둘리 나이가 한 50살은 된 줄 알았어요.

우리나라 문화 컨텐츠 별로 없던 시절, 그리고 어린이 만화가 귀하던 저 옛날 옛적부터 있었던 거라고 착각할 뻔 했네요^^;;; 젊네요. 둘리 ㅎ

kinye91 2023-06-13 10:54   좋아요 1 | URL
정기 구독을 하지 않더라도 가끔 빅이슈 판매원을 보면 한 권씩 사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자활을 돕는 잡지니까요.

저도 둘리 생각하면 꽤 나이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둘리가 1983년에 연재되기 시작했다니까, 그렇게 나이가 많지는 않아요. 물론 아이들에게는 아주 오래 된 캐릭터겠지만 말이에요.,
 
녹색평론 2023년 여름호 - 통권 182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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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이 재발간 되었다.  


오랫동안 구독을 하면서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녹색평론을 내 정신을 깨우는 죽비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한 해 남짓 휴간한 기간 동안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좀 무뎌진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재발간하고, 다시 받아서 읽어보니 역시 녹색평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해의 공백을 이번 호가 메워주고 있다고 해도 좋겠단 생각. 기후재앙과 전쟁과 평화와 민주주의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키면서, 기후재앙을 막는 여러 정책들을 실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삶에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게 하는 이번 호이기도 했다.


보통 잡지가 휴간을 하면 그 휴간이 종간이 되는 수가 많다고 하는데, 격월간지에서 계간지로 바뀌기는 했지만, 녹색평론이 계속 발행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녹색평론을 통해서나마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행동을 변화시키고, 실천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거기까지 가지 못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노력을 한다고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오랜만에 나온 녹색평론, 이번 호에서는 기후재앙과 전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전쟁이 이리도 많은 탄소배출을 하는지 몰랐다. 단지 인명 살상만이 아니라 지구에게도 전쟁은 재앙임을, 그래서 전쟁은 기후재앙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번 호를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고.


추정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 통계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로만 따지면 '그 양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5%를 차지하는데, 하나의 국가라고 치면 중국, 미국, 인도 다음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에 위치하게 된다'(94쪽)고 하니, 기후재앙에 전쟁도 큰 몫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후재앙으로 인해서 세계는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번 호에는 정부의 대책이 너무도 미흡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도 이번 정부 내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다음 정부에 해결을 미루고 있다고 하니, 다른 나라들에게 우리나라는 기후악당으로 비춰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기후재앙은 단순히 남의 일이 아니다. 올해 꽃들이 피는 시기를 보라. 평년보다도 한두 주 더 빨라지지 않았던가. 또한 기후가 어떻게 될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데, 그럼에도 기후재앙이 다른 나라 이야기인 듯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평화가 필수적이고 (전쟁이 온실가스를 그렇게 많이 배출하니), 또한 농업에 대한 (기계식 농업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농업)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대한 정책이 적절하게 마련되어야 하는데, 아직 기후재앙을 극복할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기후재앙과 전쟁, 평화, 농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이번 호를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하승수와의 대담에서 이런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 대담에서는 지방자치의 단위를 읍,면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 시골이라고 하는 데서는 읍이나 면이 지방자치의 기본 단위가 되어야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그래야 그 장소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는 하승수의 주장을 곱씹어보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웬델 베리의 삶을 소개하면서 농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글. 농업이 우리 생명을 살리는 기본임에도 우리는 농업을 천시하고 있다는 사실. 특히 학교에서는 농업을 도외시하고 있으니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산업주의와 농본주의를 대조하면서 농본주의가 미래를 이끌어갈 사상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농업은 너무도 적게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게가 아니라 아예 안 다뤄지고 있다고 봐도 좋다. 특성화고등학교라고 하면 상업계와 공업계를 생각하지 농업계를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현실을 봐도 그렇다.


생명이 직결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에 대해서 과연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도시뿐만이 아니라 시골에서도 농업은 교육과정에 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웬델 베리의 말을 이에 적용하면 우리는 미래를 위한 교육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IT교육, 코딩교육, 전자교과서 등등을 말하기 전에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농본주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기후재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생기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게 될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녹색평론, 다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한다. 앞으로 한 해에 네 번은 만날 수 있을테니, 녹색평론이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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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2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성 시인들이 쓴 시를 모은 책이다.


  여성 시인들로 한정하지 않고 젠더에 관한 시들을 모았으면 더 좋았으련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아직도 여성 시인이라는 말을 쓰나? 하는 생각. 그럼에도 이런 시집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여성'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남성 시인이라는 말은 없는데, 젠더라는 성 중립적인 말(?)을 달고 여성 시인들의 시들을 엮은 것은, 여전히 남성 시인은 없고 여성 시인만 있는 세상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여기기로 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이런 시집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으니...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대립해서는 안 되고, 또 성을 남성과 여성으로만 나누지 않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을 바로 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여전히 필요하다. 아직은 우리가 젠더를 생각하려면 여성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의 삶에 대해서,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고서는 젠더에 대해 더 깊이 나아갈 수 없으므로.


시 한 편을 읽자.


  Ghost

             - 강성은


그 여자는

살아 있을 땐 죽은 여자 같더니

죽고 나선 산 여자처럼


밤의 정원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는 작은 새처럼

밤하늘을 떠다니는 검은 연처럼


장갑을 끼면 손가락이 생겨나고

양말을 신으면 발가락이 생겨나고

모자를 쓰면 머리가 생겨난다


책을 읽으면 눈이 생겨나고

음악을 들을 땐 귀가 생겨나고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입술이 생겨나는데


그 여자는 

살아 있을 때도

죽어서도 입이 있어도

말은 못한다


김지은 이광호 엮음, #젠더 시, 문학과지성사. 2021년. 164-165쪽.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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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그럴 나이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나윤아 외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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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보통 중2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하고 사춘기라고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중2병이라고도 한다. 중2병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는 움직임이 많아서, 가급적 그 말은 쓰지 않으려 하지만 여전히 그 말을 쓰는 사람도 있다. 사실 중2가 병은 아니지 않은가. 


[열다섯, 그럴 나이]라는 제목으로 다섯 편의 소설이 묶였다. 열다섯에 겪음직한 일들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이 나이 대의 사람들이 읽으면서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열다섯들이 그런 일들을 겪고, 또 고민하면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열다섯에 무엇을 고민하는가?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꿈꾸고(영웅-히어로),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소통을 하며(스마트폰을 이용한 SNS-톡방), 자신의 현재 모습에 실망해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하고(이번 생은 망했어-이.생.망), 사이버 세계에서 뜻하지 않게 피해를 입게 되기도 하며(몸캠피싱), 친구관계로 고민을 하기도(인싸) 한다.


아마도 청소년기에 영웅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웅이란 세상과 동떨어진 특출난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영웅을 발견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공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넘어올 수 있음을 첫번째 소설, 탁경은이 쓴 '캡틴 아메리카도 외로워'에서 만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 그럼에도 무언가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영웅이 아닐까 하는, 그럼에도 그런 영웅은 외로울 수밖에 없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 외로움을 견뎌내고, 자신이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사람을 만나는 나이, 그 나이가 열다섯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수시로 울리는 까톡, 까똑 소리. 아마 하루에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그 소리를 들을 테다. 요즘 열다섯 살 사람들은. 하지만 과연 그 카톡으로만 소통이 잘 될까?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카톡으로 대화하는 세상이 과연 좋기만 할까?


이 카톡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선주가 쓴 '앱을 설치하시겠습니까'에 나오고 있다. 누구나 편하게 쓰는 카톡 앱을 깔지 않은 사람이 있을 때 소통방법? 편한 앱인데 굳이 안 깔겠다고 하는 아이를 이해 못하는 아이들. 또 그때만 깔고 지우면 되는데도 깔지 않는 아이. 과연 어떤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까? 


소설은 끝부분에 반전이 있다. 단지 앱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임을, 남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나 한다. 꼭 열다섯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지금 사회관계서비스망(SNS)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열다섯의 고민을 넘어 우리 모두의 고민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당연하다. 청소년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불만이 많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저런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한 때.


자신이 한껏 초라해 보이고 다른 사람은 다 멋있어 보이는 그런 때, 그런 때 보이는 모습을 환상을 동원해 범유진이 '악마를 주웠는데 말이야'란 소설로 썼다.


악마가 소원을 들어준다. 고전에서 많이 나오는 설정을 활용했다. 그리고 그 소원이 결국은 자신의 본 모습을 사랑하게 한다는 결말로 나아간다.


그렇게 부러워하는 다른 사람의 삶도 알고 보면 저마다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라고, 자신에게서 출발하라고,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악마를 동원해서라도 다른 존재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은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해도, 그 생이 바로 자신의 생이니, 여기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했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을 속이고 괴롭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피싱'이라고 하는 일들. 보이스 피싱은 잘 알려져 있는데 몸캠피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에 많이 붉어져서 아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이 몸캠피싱이 청소년들에게 행해진다는 사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더 고통받는 현실, 그런 현실을 나윤아가 '악의와 악의'라는 소설로 썼다.


현실적이다.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 의미가 있다. 청소년들에게 경각심을 준다기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있다.


악의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선의를 지닌 사람은 있는데, 청소년기에 세상에 대해서 지녀야 할 마음은 악의로 가득찬 세상이 아니라, 선의가 넘치는 세상이어야 한다.


어려울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악의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다.


무엇보다 소설은 행복한 결말을 내지 않는다. 몸캠피싱이 쉽게 해결되지 않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바로 그런 일이 터졌을 때 대처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함을, 세상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음이 중요함을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소설은 청소년기에 가장 중시하는 친구 관계다. 서로 웃고 떠들고 함께 하는 친구 사이지만, 과연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을까?


늘 아이들 중심에 있는 아이가 어느날 사라져 버리고, 그 아이를 중심으로 모여 있던 아이들이 정작 그 아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음을 우다영이 '그 애'라는 소설로 펼쳐보인다.


또 소설을 읽다보면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된다. 내 주장보다는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친구 관계가 좋음을.


즉 친구를 잘 사귄다는 말은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는 말이고, 소설은 사라진 그 애를 통해서 그런 자세를 가르쳐준다.


이렇게 다섯 편의 소설들이 열다섯에 겪을 만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청소년들이 읽으면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청소년들이 읽으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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