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31 | 63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네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님의 말이던가? 아니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라면 그 사회성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회 속에서 제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웃을 좀더 확장하면 다른 마을 사람들, 다른 나라 사람들, 다른 대륙 사람들이 된다. 그들을 사랑하라. 그것이 인류가 살아남을 길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에는 그래서 인류의 생존이 달려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이 말이 당연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증오의 세기"라고도 하고 "극단의 세기"라고도 하는 그런 세기를 우리는 거쳐오지 않았던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증오와 공포와 탄압과 전쟁이 있었던가?

 

그런 파국을 맞지 말자고 유엔이라는 국제기구까지 설립했지만, 인류의 평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여기에 한 나라로 지내다 각 민족들로 분열되어 온갖 갈등을 겪는 나라가 있다. 옛날 유고슬라비아.

 

한 때 이웃으로서 얼굴을 맞대고 미소를 짓던 그들이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던 나날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이 책에는 온갖 학살들이, 온갖 증오들이 나온다. 바로 이웃들에게서.

 

어쩌면 이런 증오는 이웃이기에 더 잘 드러나는지도 모르지만, 이웃이기에 사랑으로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이 책의 도처에서 나온다. 그리고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도 그렇게 살래?"

 

아니,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건 과거에 그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회적인 일일 뿐이라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심상치 않다. 언론에서는 연일 전쟁 위험을 언급하고 있다. 전면전이 일어나지는 않더라도 국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북한에서는 매일 전쟁을 언급하고 있다고...

 

이게 무언가? 남북 정상이 만나 합의를 하기도 했고, 그 무엇보다도 우린 엄청난 비극을 겪었는데, 그것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다른 민족도 아니고 같은 민족인데, 같은 언어를 쓰고, 갈라져 있는 기간보다는 함께 했던 기간이 더 많았던 민족인데, 왜 서로를 돕지 못하고 서로 잡아먹으려 으르렁거리는지...

 

그걸 현명하게 해결할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니, 지도자가 나서지 않으면 국민이 지도자로 하여금 움직이게 해야 한다.

 

우린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우린 이런 극한으로 치닫는 갈등상황을 원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라고. 평화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그러한 평화를 바탕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 보스코처럼 교육합시다
카를로 데 암브로지오 지음, 살레시오 여자 수도회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젊은이들이 그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스스로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충분히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왜 우리의 사랑을 알지 못할까 하고 답답해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우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사랑을 간섭으로 대치시키며 오히려 부담스러워하고 벗어나려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것은 그들이 스스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돈 보스코가 강조하는 말이다. 아이들은 그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어떻게 해야 아나?

 

답은 간단한데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어른의 잣대로 단호하게 자르거나 금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물론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무조건 좋아하라는 말은 아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해야 한다고 돈 보스코는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좋아한다는 개념에는 이미 옳고 그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야 하겠다.

 

꼭 옳고 그름을 떠나서도 그런 판단을 할 필요가 없는 일에서도 어른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신의 일에 간섭한다고 생각을 하고, 어른들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교육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면서 그 속에서 아이들에게 무언가 방향을 알려주고 아이들이 그 쪽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훌륭한 교사락 할 수 있다.

 

돈 보스코는 나이들어서도 아이들과 놀이를 했으며, 늘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대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귀찮아하지 않음.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행동은 그를 아이들로부터 사랑받게 했다.

 

아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되라고 그는 말했다. 이 사랑받음, 이것은 곧 자신이 사랑을 주고 있음을, 아이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안다는 말이 되고, 이렇게 사랑받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신뢰를 받기 때문에 그의 말,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교육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지금 우리 교육의 모습을 보면, 이런 사랑의 관계가 교육에서 발현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대답은 부정적인 쪽으로 가게 된다. 이는 학교의 교사나 집안의 부모나 마찬가지이다.

 

부모나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간섭한다고, 부당하게 자시들을 구속한다고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이는 우리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단지 두려운 존재, 또는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존재로만 있게 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자신이 사랑하고, 또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사람의 말은 아이들에게 커다랗게 다가온다. 그런 상태에서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사랑이 충만한 교육.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행복이 넘치는 사회이리라. 아이들의 영혼이 건강한 사회이리라.

 

이 책은 이러한 돈 보스코의 교육관을 예를 들어서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작은 제목만 읽어보아도 꼭 필요한 교육지침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이 제목들만 실천하여도 이미 교육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몇 개 제목만 보자.

 

청소년들에게 이상을 줍시다.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위기 때 도와줍시다. 친절은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들을 줄 알도록 가르칩시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도록 교육합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줍시다. 용서할 줄 알도록 교육합시다. 감사할 줄 알도록 교육합시다.

 

더 많은 제목들이 있지만 이것만 보아도 이미 우리의 교육에 필요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은가. 이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지 않게 실천이 되고 있지 않으니...

 

청소년들이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게 하고, 청소년들에게 교사나 부모도 스스로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한다면 이런 교육은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교육에 대한 좋은 말들이 넘치도록 많은, 그러나 돈 보스코 자신이 실천했던 그런 교육적 실천이기에 이 책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음을, 현실이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나중에 몇몇 장은 종교적인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런 종교적인 이야기는 이 책의 중심 인물인 돈 보스코가 사제이고(나중에 성인으로 시성이 되었다), 또 출판사가 가톨릭재단이기 때문이지만, 굳이 한 종교로 국한시켜서 읽을 필요는 없다. 이런 종교적인 얘기를 자신의 종교로 번안을 한다든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영성으로 번역을 해서 읽어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인훈의 자기 반영적 글쓰기 이화연구총서 17
연남경 지음 / 혜안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광장"이란 소설 하나로 이미 최인훈의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그의 광장은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남아 있는데... 단지 "광장"만이 아니라, 그의 단편들, 그리고 다른 장편들도 하나같이 문제작들이다.

 

어떨 때는 사실주의 소설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환상적인 소설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이게 소설이야, 수필이야 할 때도 있고...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소설을 써 왔는데, 소설에서 희곡으로 나아가기도 했으니, 그의 문학세계를 한 마디로 정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이 책은 이러한 최인훈의 문학세계를 자기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살폈다. 문학이란 개인과 사회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문학을 통해서 사회를 알 수 있고, 또한 작가 자신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런 작업을 저자는 "화두"를 통해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소설 "화두"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하나하나 검증해 나가고 있다.

 

결국 "화두"는 최인훈 소설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최인훈 연구의 최종판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긴데, 그 이유는 "화두"에 자신이 이미 출간했던 소설들이나 또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 그리고 작품들이 날것 그대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최인훈의 지금을 이루게 된 작품들, 사건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을 이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되고,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를 산 한 지식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박사논문을 조금 다듬어서 책으로 내었기 때문에 전문적인 책이라고 생각하고 멀리 하기 쉽지만, 최인훈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의 소설세계를 정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책을 읽는 것도 좋겠지만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읽어가는 일이 더 좋을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광장"을 읽고, "회색인", "서유기", "태풍" 등을 읽고 단편집인 "우상의 눈물"에 실린 단편들을 읽으면 좋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작품들, 그리고 어느 하나도 쉽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 작품들...

 

마지막에 읽어야 할 작품이 바로 "화두"다. 시기적으로 늦게 발표했다는 점도 있지만, 이 소설들을 전부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이 책을 읽으면 이 소설들을 한 축으로 꿸 수 있는 방법론을 마련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서정오 지음 / 현암사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호민의 "신과 함께"란 만화를 웹툰으로 다 봤다. 운이 좋았지.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에 다 보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유료로 돈을 내야 하는데...

 

그런데 그 만화 보면서 작가가 공부 많이 했구나 했는데, 우리나라 신화에 이런 내용들을 어디서 찾았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신화라고 하면 단군신화, 고주몽 신화, 박혁거세 신화 등 문자로 기록된 것들만 알고 있는, 어쩌면 외국의 신화는 많이 알면서도 우리 신화에는 까막눈인 상태였는데...

 

서점에서 서가의 이곳저곳을 기웃기웃거리다가 신화를 모아놓은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살까, 말까, 망설이게 되는데.. 이미 "신과 함께"에서 나온 내용과 많이 겹치는데 굳이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과 아냐, 그래도 분명 많은 부분에서는 다를 거야, 또 안 나오는 부분도 많고, 만화라는 갈래와 글로 수록된 갈래는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팽팽히 맞섰다.

 

책을 뺐다 넣었다 반복하다가 에라, 조금 비싸지만, 우리나라 신화 모음집이 이 정도도 안되면 어떡하냐 하는 마음으로 계산을 해버렸는데...

 

첫부분 대별왕소별왕 부분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재미있어? 어, 이런 내용도 있어. 이걸 왜 모르고 있었지. 아 "신과 함께"에서는 이 부분이 이렇게 표현되었는데, 여기서는 이렇네, 조금 다르구나...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지내는 온갖 신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이런 신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데, 그것을 많은 학자들이 노력하여 채록해 놓은 책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술된 상태를 그대로 기록했기에 읽기에 상당히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었다.

 

또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신화는 대부분이 무당이 굿을 할 때 쓰기 때문에 가락이 있으며, 또 내용과는 불필요한 굿에 필요한 부분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이런 부분들이 읽기를 방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런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했다고 한다. 우선 읽기 편하게, 내용이 한 눈에 들어올 수 있게 정리를 했다. 또 내용이 조금씩 다른 신화들은 이 글을 쓴 지은이가 전체적인 내용이 더 잘 이해될 수 있게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어 새롭게 정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신화를 자기 멋대로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신화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때와 장소에 맞게 변용이 되어 온 것이 신화의 역사이고, 신화의 장점이기에 자신이 수정한 것도 신화의 특성에 맞는 일이겠지 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은이의 변용을 거쳐서 이 신화들은 더욱 생명력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읽기에도 상당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화에서 항상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성, 우리는 같은 기억을 갖고 있을 거라는 동질성 등을 느낄 수도 있고.

 

그리스-로마 신화만 재미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신화도 재미있다. 아주. 그걸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대별왕 소별왕, 처승차사 강림, 바리데기, 손님네, 칠성신, 저승 고지기 우마장자, 성주신과 지신, 조왕신과 문왕신과 측신 등등...

 

하나하나 읽어가면 우리나라 신화의 다양성을 맛볼 수 있다.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로마 신화만 생각하기도 하는데, 아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다양한, 이렇게 역동적인 신화가 있다는 걸 이 책이 보여주고 있다.

 

좋다. 더 많은 신화들이 정리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이 책은 끝까지 읽으면 많은 부분이 서로 연결이 됨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성의 힘 - 불확실한 미래의 결정인자
마르쿠스 헹스트슐레거 지음, 권세훈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미래의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은 '개성'이다. 이런 주장이다. 개성은 독특함이라고 할 수도 있고, 다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그 무엇, 이것을 우리는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개성은 좋은 의미로 사용이 되지만, 독특함과 다름은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인데, 이 독특함이나 다름이 부족함으로 사용되면, 개성은 존중받아야 할 무엇이 아니라 교정되어야 할 무엇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개성과 반대되는 의미로 이 책에서는 '평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평균은 튀지 않음, 남과 함께 함 정도의 뜻으로 쓰인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무언가 다르다는 것은 현재에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니, 결국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즉, 평균을 추구한다는 것은 현재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우리가 영원히 현재를 살 것도 아니고, 미래는 예측가능하지 않고,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런데도 평균을 추구한다면 이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미래가 다가온다면 모두가 살아남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단일성은 그만큼 현재에는 완벽한 적응이지만, 미래에는 부적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다른 존재, 개성을 지닌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적응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미래를, 가능성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깎고, 갈아서 평균으로 만들어야 하겠는가. 이 책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다 다르다. 같을 수가 없다. 하다못해 일란성 쌍동이조차도 다르다. 그들이 한 부모 밑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교육을 받으며, 또 함께 자라서 외양으로는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아도 그들은 다 다르다. 달라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행복하게 산다. 만약 그들이 똑같다면 그들은 행복할까? 아니다.

 

하물며 일란성 쌍동이조차도 그런데,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가? 그것도 교육을 통해서... 그건 아니다. 아니라고 한다.

 

하여 한 존재가 지닌 개성을 어떻게 하면 발현하게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고민을 하고 환경을 조성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교육자이어야 하고, 그러므로 교육자들은 다름에 대한 바른 인식, 즉 개성이 미래를 살리는 것이라는 인식을 해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평균을 지향하는 교육은 지양되어야 한다. 잘하는 과목을 더 잘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는 못하는 과목에 치중하게 함으로써 결국 모든 과목이 평균에 불과하게 만드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야 한다.

 

지금의 초,중,고,대학교의 교육을 돌아봐야 한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이 실패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는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연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자신은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충분히 실험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고 있는가?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고 있는가?

 

그래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다 다른 사람들인 우리들은 다 다른 재능을 펼칠 수 있고, 이것이 사회를 더욱 윤택하게 만들고, 또한 미래가 어떻게 다가올지라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한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이 책에서는 세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유전자, 그 다음은 밈(이를 우리는 환경이라고 하자), 다른 하나는 후성유전인자다.

 

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유전자의 비밀이 밝혀지면 인간 존재의 본질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유전자도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질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다 질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특정한 환경이 거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여기에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유전인자까지.

 

그러므로 우리는 유전자 맹신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 또한 환경 절대주의에도 빠져서는 안된다.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에게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복합적인 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게 내적, 외적 동기를 제공해주고, 또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평균은 사라지고 개성이 발현될 것이다. 예전에 윤구병 선생이 썼던 책 제목처럼, 우리는 이런 말을 해야 한다.

 

"꼭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31 | 63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