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삶과 죽음의 이야기 - 모든 존재의 유의미함, 무해함 그리고 삶에 관하여
데이비드 스즈키.웨인 그레이디 지음, 이한중 옮김 / 더와이즈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나무로부터 시작한다. 아니 모두 불에 타버린 공간에서 시작한다. 대화재가 난다. 숲이 모두 타버린다. 이제 잿더미가 된 그곳은 폐허다. 그렇게 말해야 하지만 폐허가 아니라 생명이 시작하는 곳이라고 해야 한다.


무에서 유가 나온다고 할 수 있겠지만, 불타버린 폐허는 무가 아니다.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 존재다. 마치 빅뱅 이전처럼 불타버린 숲은 존재한다. 이제 빅뱅이 시작된다. 빅뱅처럼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강력하게 일어나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일어난다.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게.


이런 폐허에서 '더글러스퍼' 나무의 씨앗이 자라난다. 불에 탄 자리. 아무런 생명도 없을 것 같은 그 자리에 더글러스퍼 씨앗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자신 주변의 모든 것들과 함께하기 시작한다. 땅에서 공기에서 또다른 생명체와 함께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이제 탄생이 된 더글러스퍼는 뿌리내리기 시작하고, 뿌리가 내린 다음에는 위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성장하여 성숙한 단계에 이르면 온갖 생명체들과 함께 하기 시작한다. 한 개체가 아니라 군락의 일부가 된다. 전체의 일부로 살아간다. 서로 주고받으면서.


나무는 나무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들끼리도 함꼐하지만, 숲 속에는 온갖 생명체들이 깃들어 있다. 그들이 모두 숲을 이루는 요소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결코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홀로 존재할 수가 없다.


이렇게 더글러스퍼의 성장, 성숙으로 이룬 숲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있는지를 이 책에서 저자는 잘 보여주고 있다. 생명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그러나 생명은 한계가 있다. 모든 생명이 죽지 않는다면 지구는 존재할 수가 없다.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어야 한다. 별들도 그러하지 않은가.


거대하게 자란 더글러스퍼는 이제 수백 년이 지나서 더이상 자랄 수가 없다. 더이상 다른 생명체를 받아들일 힘이 없다. 면역체계가 붕괴된다. 내부에서부터 비어간다. 고사목이 된다.


고사목이 되어서도 몇 년 혹은 몇 십년은 꼿꼿하게 서 있다. 우리가 주목이라는 나무를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고 하듯이, 더글러스퍼 역시 죽어서도 다른 생명체가 깃들어 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자신은 죽었지만 다른 생명들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생태계다. 그러다 고사목이 모진 바람에 쓰러진다. 쓰러짐,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다. 쓰러져서도 다시 새로운 생명들을 받는다. 그들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어준다. 또한 더글러스퍼가 있던 숲은 다른 숲으로 대체가 된다.


다시 대화재가 나고 더글러스퍼가 생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이 되면, 그곳에서 더글러스퍼는 뿌리내기고, 성장, 성숙, 죽음의 과정을 거치리라. 


이렇게 한 나무의 삶을 통해서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는 책이 이 책이다. 한 나무에 국한되지 않고, 나무와 관련하여 다양한 생명체들과 무생물들이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결코 홀로는 존재하지 않음을,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그래서 어느 하나를 제거하면 생태계 자체가 무너짐을 한 나무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길고 긴 역사였지만, 이것이 바로 자연 아니던가. 100년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좀더 긴 시간을 두고 생명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나무라는 생각. 그런 나무를 통해서 인간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벌목해서 없앤 많은 삼림들을 인공조림을 통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또한 그렇게 하면 안 됨을 말하고 있다.


'자연적인 극상림은 나무 묘목에서 고사목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의 나무들을 다 포용하며 숲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무와 낙엽을 포함에 연어의 개체군과 그들의 모든 포식자를 다 먹여살린다. 인공적인 재조림(reforestation)은 단일경작을 하는 농경과도 같다. 생명다양성과는 정반대의 방법인 것이다.'(277쪽)


이 주장을 하기 위해 더글러스퍼 나무의 생애를 책 한 권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지금 개발이냐 보존이냐 하는 문제로 갈등 중인 많은 열대우림, 또 삼림지역에서 우리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도 고려해야 할 점이다.


인간 역시 자연과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 역시 자연의 순환고리 중 하나이기 때문에. 고리 중 어느 하나가 끊어진다면, 그 영향은 인간에도 크게 미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더글러스퍼 나무의 일생으로 자연 순환의 이치를 보여주고 있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생각하기에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야 베들레헴의 길고양이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38
데보라 엘리스 지음, 김배경 옮김 / 책속물고기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아직도 끝나지 않는 전쟁. 여전히 전쟁 중이다. 전쟁이라는 말보다는 일방적인 공격이라고 해야 하는 편이 맞겠지만.


팔레스타인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들에게는 변변한 무기가 없고, 비록 무장투쟁을 한다고 하지만, 국가 대 국가로 전쟁을 할 여건은 안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지역까지도 공격한다고 하니, 팔레스타인에서 평화는 요원하다.


이 소설은 그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다루고 있다. 동화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에서 살고 있던 아이가 죽어서 고양이가 되어 이름이 같은 베들레헴에서 지내게 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에서 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지내던 초등학생이 겪는 일들과 고양이가 되어 베들레헴에서 겪는 일들이 교차하고 있다. 고양이로서 겪는 일들을 통해서 자신이 초등학교 때 했던 행동들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


클레어는 초등학교에서 집안 좋고, 공부도 잘하는, 그러나 교사들의 눈에 띠지 않게 말썽을 부리는, 요즘 말로 하면 상당히 영악한, 문제적인 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행동을 눈감아 주는 선생이 떠나고, 깐깐한 선생을 맞이하여 그 선생과 갈등을 일으킨다. 그러다 뜻하지 않는 교통사고로 죽음에 이른다.


죽음, 끝이 아니라 고양이로 태어난다. 그것도 베들레헴에서. 갈등 상황에 처해 있는 그곳에서 클레어 고양이는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아이를 만난다. 이스라엘 군인이 정찰 목적으로 들어간 집에 부모를 잃고 홀로 있던 아이 오마르. 이들과 지내면서 클레어는 한 면만 볼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 군인이라고 해서 모두 팔레스타인인들을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그들도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도 모두가 같지는 않다는 사실. 


적대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도 딱 두 편으로 나눌 수가 없으며, 그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편차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클레어라는 고양이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아이를 끝까지 보호하려는 이스라엘 군인들과 어떻게든 이스라엘 군인들을 죽이고 싶어하는 팔레스타인 사람, 그리고 이스라엘 군인에 무조건 적대적으로 대하면 안 된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있고.


클레어는 인간이었을 때 선생님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행동이 결코 잘한 짓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고양이 몸으로 겪으면서. 


이렇게 소설은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는 양비론 또는 양시론을 주장하고 있지 않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갈등이 있지만, 그것을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음을.


전쟁에서도 인간이 있음을, 그 인간성을 지키는 사람들도 인해 세상이 조금씩 평화로운 쪽으로 가고 있음을.


개인이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개인이라도 할 일을 해야 한다는 모습을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대치하고 있는 장면에서 고양이 클레어가 춤을 추어 양쪽이 더 심한 갈등으로 번지지 않게 한다. 이렇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음을, 아니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함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여전히 대치 중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이 소설이 나온 지 꽤 됐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음에 암담한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고양이 눈으로 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결코 단순화할 수 없는 그 갈등 상황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평화로 가는 길이 쉽지는 않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됨을, 평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호 특집은 '로맨스'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내로남불'할 때 말하는 로맨스 하고는 다른 쪽으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랑이 필요없는 때는 없다.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에 따라 로맨스도 되고, 불륜도 되겠지만, 그것은 판단하는 기준이 있을 때 이야기고. 어떻든 사랑은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세상 많은 문학작품이나 영화, 연극 등이 사랑을 주제로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을 로맨스라고 하면 달달한 느낌을 주는데, 이런 로맨스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또한 전개가 뻔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로맨스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다.


이번 호에서는 로맨스에 관한 글들이 실렸는데, 그런 로맨스를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글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로맨스와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유튜브 소개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삶을 보게 되는 유튜브에서,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유튜브도 있고, 또 연인을 주제로 하는 유튜브도 있다. 이들 역시 사랑이 기반이 된 일종의 로맨스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삶에서 연인의 삶으로, 연인의 삶에서 가족의 삶으로 가는 과정에서 로맨스는 함께 한다.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든지 말이다. 그러니 그러한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로맨스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냥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의 생활로 끌어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빅이슈]를 읽으면서 험한 세상에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로맨스에 대한 글들은 팍팍한 세상을 조금씩 부드럽게 바꿔주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부드럽게, 홀로에서 함께로 나아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으면서 빨리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 책이다. 이런 책은 드문데, 구절구절이 마음에 와 닿고, 그 구절을 좀더 마음 속에서 음미하고 싶기 때문이다. 도처에 인용하고픈 문장들이 있지만, 굳이 인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


솔닛의 말을 인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더 이 책의 내용에 맞는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마지막 부분은 꼭 인용하고 싶다. 이것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가진다는 것은 그저 발성할 수 있다는 동물적 능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자신과 타인들의 관계에,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화들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렇게 목소리를 가진다는 것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세가지 있다.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이다.

가청성이란, 그의 말이 청취된다는 것을 뜻한다. ... 신뢰성이란, 그가 말할 수 있는 영역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그를 기꺼이 믿어준다는 것을 뜻한다.  ...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중요한 존재라면, 그에게는 권리가 있다. 그의 말은 그 권리를 위해서 일한다.' (286~288쪽)


그렇다면 나에게 솔닛의 책은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을 모두 갖춘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솔닛이란 이름 자체에 신뢰감을 느끼고, 책을 찾아 읽으니 말이다. 읽으면서 내 삶을 돌아보고,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 또는 보지 못하고 있던 부분을 찾게 되니.


솔닛은 이 책의 끝부분에서 손금을 봐줬던 사람이 한 말을 인용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당신은 결국 운명대로 살고 있네요." (296쪽)


이 책은 바로 솔닛이 겪은 이 우여곡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자신이 목소리를 지니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말해주고 있다.


자신 역시 목소리를 지니지 않은 세상에 없는 존재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자신을 직면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과정.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책을 발간하고, 또 행동으로 나서기도 하고.


그동안 읽었던 솔닛의 책이 어떤 과정 속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고, 그 책들의 내용을 다시 반추하면서, 아 이렇게 솔닛이 우여곡절을 겪고서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알게 해주는 책이다.


운명대로 산다는 말은 곧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삶을 산다는 말이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문제에 맞닥뜨려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나아가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세상에 없던 자신을 찾아내고 세상에 있는 존재로 드러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손금을 봐주는 사람의 말을 빌려 한 말은 곧 솔닛의 삶을 정리하는 말이 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단단해진 솔닛.


또한 보이지 않는 또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삶들이 결코 쓸모없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솔닛. 그런 솔닛의 문장을 읽으면서 정호승의 시 '산산조각'이 생각나기도 했다. 온전한 불상도 소중하지만 깨어진 불상도 그 자체로 소중함을.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우여곡절이고, 그런 우여곡절을 겪지만 우리 역시 운명대로 살아가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또 솔닛의 삶을 보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그 과정에서 웹툰 '화산귀환'의 장면이 생각났다. 상처를 통해서 더 강해진다는 119화의 장면. 


(화산귀환 - 119화 : 네이버 웹툰 (naver.com),  하지만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이 웹툰과 솔닛의 말은 차이가 있다. 물론 웹툰에서 주인공인 청명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지만, 이는 주인공인 청명이 바로 이야기를 하는 주체라는 말이 된다, 아직 다른 인물들은 청명의 이야기를 따라갈 뿐이다. 그들은 솔닛처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제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그 웹툰은 청명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가 될 테다. 우리 역시 솔닛의 말을 솔닛의 말로만 따라가면 우리의 말,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우리도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솔닛의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솔닛은 글에서 자신의 운명은 '어떤 이야기를 깨뜨리는 사람이자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302쪽)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깨뜨리기 위해서도 많은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솔닛은 그 운명을 거부하지 않았다. 받아들였다. 바로 자신의 운명, 자신이 해야할 일을 직면했다. 


운명에 직면해서 회피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솔닛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찾아내어 밖으로 드러낸다. 이것은 기존 이야기를 깨뜨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그 운명대로 살고 있는 솔닛이라고 할 수 있고.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그 과정, 이 책에 잘 나와 있으니,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자. 읽으면 읽을수록 솔닛의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 외부자들 - 학교 내부자들은 시작에 불과했다
박순걸 지음 / 교육과실천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 교육.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되어 있는 나라. 그 나이 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야 하는 나라. 그렇다고 모두가 가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두가 학교에 가는 나라. 그럼에도 학교 교육에 대해서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 나라.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학교를 다니지만,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학교에서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으로는 원하는 학교로 진학하지 못한다고 다시 학원을 보내는 사람이 많은 나라.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보다는 적지만, 너무도 많은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나라. 학교와 학원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고민도 없이 오로지 성적, 성적을 향해 아이들을 달리게 하는 나라.


그래서 학교나 학원은 아이들 성적을 올리는 것이 최우선이 되게 하는 나라.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닌 나라. 교육의 본질이 성적이라는 지엽말단에 잠식당해 본말이 전도된 나라.


이것이 지금 한국 교육의 현실 아닌가. 이런 교육 현실의 제일 앞에 있는 교사들의 상황은 어떤가? 많은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지 않나. 많은 교사들이 민원이 두려워 책임을 지지 않는 교육활동만 하려고 하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이 될 수 있을까? 이는 학교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 않을까?


교사들도 이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교사들보다도 더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 책의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이대로 가면 미래의 교육은 더욱 암담해질 것임도.


학교 외부자들이라고 했지만, 꼭 외부자들은 아니다. 이 책은 교사들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외부자들이라는 표현보다는, 제대로 된 교육을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교육이 단지 성적을 올리는 일이 아님을, 학생들과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이 바로 교육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소통이 우선이 되어야 함을, 서로가 서로를 믿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함을. 무엇보다도 이런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사를 옥죄고 있는 수많은 공문들을 줄여야 함을.


교사가 교육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지금보다 더 나은 학교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그래서 교육지원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교육청이 자리를 잡고, 일을 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물론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교육활동에 전념한다는 말은 수업에만 집중한다는 뜻이 아니다. 교육활동에는 수업을 포함해서 학생, 학부모와의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상담 및 다양한 활동이 여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가 공문서 처리할 시간에 수업 준비를 하고, 수업을 열심히 하고 이에 못지 않게 학생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가며, 학부모와 소통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교육이 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교육부와 교육청은 환경을,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그래야만 학교 외부자들이라고 바깥에서 보면서 공연히 훈수나 두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지치고 힘들게 하지 않고, 함께 좋은 교육을 해나가는 존재들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주장으로만 그치지 않는 데에 이 책의 장점이 있다. 저자가 부임했던 학교를 예로 들어 어떻게 해야 학교 교육이 살아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바로 '법'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학교를 열어두는 것이다.


어쩌면 학교는 치외법권 지역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법의 적용은 가능하면 가장 나중에 하는, 먼저 교육으로 접근하고, 오랜 시간 동안 교육으로 소통하면서 지금보다 나은 상태로 나아가도록 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래야 교육의 주체는 학생-학부모-교사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 대해, 교사에 대해 너무도 안 좋은 말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교사들도 당연히 읽어야겠지만, 학부모를 비롯해, 교육청-교육부에 있는 관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