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 - 망망대해를 헤매는 고독한 작가를 위한, 르 귄의 글쓰기 워크숍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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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은데 굳이 외국 작가가 쓴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글쓰기가 한국어를 잘 활용한 글쓰기고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에도 어울리기 때문에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따라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 점을 찾아내지 않으면 이 책은 우리에게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다른 글쓰기 책처럼 글쓰기에 관한 이론을 설명하고, 예시문을 실어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로 글을 써보라고 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대부분의 글쓰기 책에서도 보인다. 비슷한 글쓰기 책들이 넘쳐나는 시대 왜 르 귄의 글쓰기 책을 읽어야 할까?


우선 르 귄은 꼭 이렇게 쓰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반드시(이 반드시라는 말은 시험에나 통용되는 그런 말이 아닐까 싶다. 다양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정답만을 찾아야 하는 우리나라 시험 제도에서는 '반드시'가 잘 먹혀든다. 글쓰기 책들도 그래서 '~해야 한다와 ~하지 말아라'를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자신에게 맞는 글쓰기가 있다는 점이 르 귄의 책을 관통한다. 그래서 르 귄은 이렇게 쓰면 좋다고 하지만 그것이 꼭 정답은 아니라고 한다. 다양한 예문을 보여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여럿이다. 그 여럿 중에 고를 수도 있고, 자신이 정답을 만들 수도 있다.


책 제목이 왜 항해하는 글쓰기겠는가! 항해는 바다에서 가는 일이다. 망망대해(茫茫大海). 엄청난 바다에서 길을 찾아 항해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좌초하고 만다.


바다에서 좌초하지 않고 항해를 잘하려면 길을 잘 찾아야 한다. 해도를 보고 항로를 따라가야 한다. 바로 이 해도가 '글쓰기 책'이다. 항로를 따라가는 일, 이것이 글쓰기다. 작품이다.


그런데 해도가 단 하나뿐인가? 아니다. 해도는 많다. 또 같은 바다라도 길은 여럿이다. 항로가 여럿이란 말이다. 그렇다고 이미 밝혀진 항로로만 갈 것인가? 그것은 안전한 길이다. 무난한 길이다. 그렇지만 자기만의 길은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도 없다.


마젤란, 바스코 다 가마, 콜럼버스 등이 왜 지금도 이름을 남겼는가? 망망한 바다에 자신의 항로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왜 승리를 했겠는가? 바닷길을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바로 글쓰기다. 르 귄이 말하는 글쓰기도 이렇다. 기존의 해도와 항로를 참조해야 한다. 그렇다고 꼭 그것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지도에 없는 길도 가야 한다. 그런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르 귄의 글쓰기는 글쓰기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이 점이 좋다. 글에서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말로 글쓰기 책을 시작하고 있다.


'자기 글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의식할 줄 아는 기술은 작가에게 필수적이다. ... 좋은 작가는 좋은 독자와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귀가 있다. 우리는 대개 글을 눈으로만 읽지만 많은 독자가 예민한 내면의 귀로 글의 소리를 듣는다. ... 서사 작가는 내면의 귀로 자신의 글을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쓰면서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21쪽)


음성과 문자는 다르다고 하지만 문자에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좋은 독자가 갖추고 있는 자세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작가 역시 자신의 글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카프카가 생각났다.


시인이 아닌 카프카 역시 자신의 작품을 친구들 앞에서 낭독하지 않았는가. 이 낭독을 듣고 감탄한 친구들. 만약 낭독이 실패로 끝났다면 그 작품에는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고치려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카프카는 낭독하기 전에 고치고 또 고치고 했겠지만.


이렇게 소리와 문자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것은 곧 글을 쓸 때 문법이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문법! 이건 시험 볼 때나 필요한 것 아니었나 하지만, 아니다. 우리가 말하기를 잘한다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는 상황에 맞춰 어법에 맞는 말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기에도 어법이 중요한데, 글쓰기에서랴. 르 귄은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간과하기 쉬운 점을 잘 지적해주고 있다.


소리와 어법으로 글쓰기 책을 시작해서 마지막은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이 퇴고로 끝난다. 그런데 이 퇴고를 '메우기와 건너뛰기'라고 한다. 벌어진 틈은 메우고,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띄어야 한다고. 이 과정에서 르 귄은 말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글을 줄이려면 단어들의 무게를 잴 수밖에 없고 그러면 그중에 어떤 것이 스티로폼이고 어떤 것이 묵직한 금인지 찾아낼 수 있다. 글을 가혹하게 줄이다 보면 문체가 강화되고 메우기와 건너뛰기를 둘 다 소화할 수 있게 된다.' (200쪽)


말에도 무게가 있고, 당연히 단어에도 무게가 있다. 그 상황에 맞는 말은 무게가 있는 말이고, 그런 말은 '금'이 된다. 하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은 일회용인 '스티로폼'이 된다.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르 귄의 글쓰기 항해술은 글쓰기라는 바다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르 귄은 이 책을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닌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썼다고 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글쓰기 워크숍(합평회)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혼자 연습할 수도 있게 구성되어 있다. 물론 르 귄이 책 뒤에서 알려주고 있듯이 여러 사람이 모여 합평회를 하면 더 좋겠다.


글쓰기 방법뿐이 아니라 다양한 작품의 예문들을 만날 수도 있어서 좋은 글쓰기에 관한 책. 그렇다고 이 책을 무슨 법전 섬기듯이 모시면 안 된다. 그건 르 귄이 바라는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을 해도로 삼아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하길 바라면서 쓴 책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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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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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술술 읽힌다. 글들이 긴박하고 빠르게 사건을 이끌고 간다. 잠시 망설임 틈도 없이 내용이 전개된다. 짧은 호흡으로 글을 읽어가다 보면 어느 새, 끝에 이른다. 이런 결말이 나버렸네. 이렇게 결말이 나는군 하고 소설 읽기를 끝낸다.


두 편의 소설이 길지는 않다. 중편 소설 두 편이라고 봐도 좋다. 하나는 책 제목이 된 '감상적 킬러의 고백'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악어'다.


둘 다 살인 사건이 등장한다. 제목에 킬러란 말이 들어갔으니 당연히 살인이 나온다. 킬러다. 의뢰받은 사람(소설에서 이 킬러는 표적이라고 한다)을 죽이는 일. 그는 깔끔하게 처리한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 이것은 자신의 킬러 생활이 끝나는 것으로 나아간다.


킬러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끊는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없앤다는 말이다. 그런 킬러가 다른 사람과 비슷한 생활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킬러로서 지녀야 할 차가움을 잃는다는 말이니.


하여 그는 마지막 의뢰를 끝으로 실업자가 된다. 마지막 의뢰, 멕시코 사람을 표적으로 받았을 때 든 느낌. 그리고 그가 한 말. 마약을 공급하던 사람인데, 그는 주로 미국에 싼 값으로 마약을 공급한다. 이유는? 미국을 타락으로 이끌려고. 미국에 당한 멕시코 사람들을 위해서.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을 지나치듯이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세풀베다가 사회적 현실을 눈 감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킬러가 등장하는 이 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킬러는 무감각해야 하지만, 왠지 라틴아메리카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 일에는 망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소설에서 자신의 생활을 파탄내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 결론이 나기까지 소설은 빠르게 진행이 된다. 킬러의 입장에서 서술이 되면서. 


이 소설에는 라틴아메리카가 처한 현실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감출 수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반면 '악어'란 소설은 자본이 환경을 파괴하고, 원주민들의 삶을 파탄내고 있음을 살인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보호해야 할 동물을 죽여 밀수입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의 횡포. 그런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원주민들. 그런 갈등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살인 사건을 쫓아가는 형사(보험사 직원)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하나하나 밝혀질 뿐이다.


빠른 속도로 사건은 결말에 이르지만, 이 과정에서 환경보호를 위한다는 자본가의 딸이 지닌 이중성을 만나게 된다. 원주민들을 도와주지만 결코 원주민이 될 수 없는 사람. 그러기에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삶터를 지키기 위해 이국 땅까지 와서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을 죽이지만, 자신들도 돌아가지 못하고 죽게 된다.


결국 파괴된 환경에서는 원주민들 역시 삶을 영위하기 힘든 것이다. 그들이 몇몇 자본가들을 처치한다고 해도 삶터가 회복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자본은 깊숙이, 치명적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악어'란 소설을 통해 세풀베다는 그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국가가, 자본이 자행하는 환경 파괴, 또는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일은 몇몇의 복수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풀베다의 이 두 소설을 읽으면서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넘어서 집단이(또는 사회가) 함께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킬러가 표적을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또 개인적으로 한 사회를 타락시킨다는 복수를 행한다고 해서 원주민들의 삶 또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 펼쳐지지는 않는다. 개인보다는 좀더 넓고 깊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함을 두 소설에 나오는 살인들을 통해서 세풀베다는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 파괴, 전쟁 등을 보라.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개인을 없애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제도와 구조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개인들이 모여 더 큰 힘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래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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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주제로 편집되어 있지 않다. 여러 주제가 동시에 실려 있다. 그런 다양성의 동시성이 누구나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징글징글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세상의 그 삭막함에 치를 떠는 사람에게는 '귀여움'이라는 주제가 마음을 다독거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귀여움이 얼마나 많은지, 어느 순간 귀여움을 만나게 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무장해제되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귀여움이 도처에 있음을, 귀여움을 우리가 눈에 담을 수 있음을 이번 호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세상이 너무 거칠다고 여긴다면 이번 호에서 귀여움 부분을 읽어보시길!


케이팝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번 호는 좋다. 케이팝을 즐기는 사람들이 전세계로 뻗어가는 케이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어떤 노력을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단지 케이팝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케이팝이 우리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으니, 이 글도 좋고.


반려동물의 사회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반려동물이 많아졌는데... 그럼에도 늘어나는 반려동물에 비해 버려지는 반려동물도 많다는 사실.


그러한 버려진 반려동물들이 다시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소개도 이번 호에 있다.


굳이 해러웨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제는 여러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친족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니, 혹 반려동물에 관심이 있다면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좋다.


여기에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노숙인들에 대한 이야기, 빅판에 대한 이야기 등등.


2월을 맞이하여 합본호로 나온 이번 호에는 다양한 주제를 다룬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자신이 관심 갖고 있는 분야의 글을 찾아 읽으면 좋을 이번 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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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 문학동네 시인선
최승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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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발간한 시집이 199권이 넘었다.  50권, 100권, 200권째는 그동안 시집을 냈던 시인들의 시를 모아놓은 시집을 (50권은 기념 자선, 100권, 200권은 티저 시집이다) 냈고, 또 두 번 이상 시집을 낸 시인들이 있으니, 총 시인은 200명이 채 안 된다.


그럼에도 시집에는 시인의 말들이 실렸으니, 시인의 말이 그들의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도 해줄 수 있고, 때로는 시의 이해를 방해할 수도 있다.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시인의 말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때로는 시인의 말이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런 시인의 말을 만나면 반갑다. 그리고 기쁘다.


하지만 가끔 시인의 말이 시를 이해하기 힘들게 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시인의 말은 '사족'에 가깝다. 물론 대부분 시인의 말은 화룡점정이라고 해야겠지만, 가끔은 도대체 시도 난해한데, 시인의 말은 그런 난해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차라리 아무 말 하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그런 시인의 말은 사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공연히 뱀발을 그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예전에 문학의 갈래를 정리하는 글에서 시는 '세계의 자아화'라고 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즉 시는 자아의 외적 대상을 자아로 끌어들여 자아로 말하는 문학이라고 해석해도 된다. 그렇다면 시는 세계를 자신에게로 끌어온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아로 들어온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 즉 존 버거의 말을 빌리면 세계와 자아의 거리를 없애는 것.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계, 사람과 동물, 사람과 식물, 동물과 식물 등등 존재하는 것들의 거리를 없애는 것이 바로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의 말을 읽으면서 시와 다른 존재와의 거리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런 시인의 말이 바로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학동네에서 펴낸 이 책, 시인의 말 모음집은 또 한편의 시집을 읽는 것처럼 읽어도 좋다. 대부분의 시인의 말이 '사족'보다는 '화룡점정'에 가까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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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숲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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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소설이 묶여 있다. 등장인물들이 겹친다는 점에서 '연작소설'이라고 한다. 각 소설마다 주인공은 다르지만, 이들은 한 공간에서 함께하고 있다.


'바다눈, 우주늪, 이끼숲'이렇게 세 편이 실려 있는데 공통된 공간은 지하세계다. 인류가 지상에서 살기 힘들어져 건설한 지하 세계.


이 지하세계는 철저하게 통제되는 사회다. 세 편을 읽다보면 연결되는 점이, 이들의 머리에는 칩이 심어져 있어서 이들이 어딜 가나 확인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지하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는 특정 약물을 섭취해야 한다.


이 약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정신개조를 받으러 끌려간다. 이는 인간의 의식까지도 통제가 되는 사회라는 말이다. 이동의 자유는 있을지라도 모든 것이 감시받는 사회, 하다못해 통신까지도 감청이 되는 사회고, 허락되지 않은 아이는 낳아서는 안 되는 사회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도 다른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저항이라고 해도 좋은데, 이런 저항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발견과 모험'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바다눈'에서 은희와 마르코의 대화에 이 말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 말들은 다른 두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존 세계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며, 그곳으로 나아가려는 모험을 한다. 물론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한다.


"모험과 도망."

하나는 대범했고 하나는 조급했다.

"발견과 추방."

하나는 위대했고 하나는 초라했다.

"미지의 세계와 타락한 세계."

하나는 신비로웠고 하나는 두려웠다.

"우린 산 채로 묻힌 거야."

우리의 세계는 조급하고, 초라하고, 두려웠다. (83쪽. '바다눈'에서)


하지만 은희는 사라진다. 목소리를 잃었다고(팔았다고) 하지만 사라질 필요가 없을텐데, 사라짐은 타락한 세계로부터의 추방과 도망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은희는 엄마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파는 모험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타락한 세계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발견을 통해 모험으로 나아갔다고 믿고 싶어진다. 그래서 남아 있는 마르코가 친구인 소마를 위해서 모험을 하는 '이끼눈'으로 연결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의조. 의주의 쌍둥이인 의조는 둘 중 하나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 그러나 있는 존재가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약물로, 통제로 없는 존재로 만들어도 있는 존재는 나름대로 있음을 증명하게 된다.


환풍구로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는 의조. 그런 의조가 나중에는 이 지하 세계를 폭발시키겠다고 결심한다. 그렇다. 타락한 세계는 더이상 존재하면 안 된다. 그러나 아직 타락한 세계는 굳건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은 실패하고,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은 물거품이 되며, 노동 근무 조건도 열악해서 언제든지 사망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끼숲'에서 유오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죽는다. 그런 유오의 클론을 데리고 유오가 가고 싶어하던 지하 1층 돔으로 가려고 하는 친구들.


그 친구들은 모두 조급하고, 초라하며, 두려운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친구들은 소마를 돕는다. 유오의 클론과 함께 식물들이 있다는 돔으로 소마를 가게 하려고.


한명 한명 자신이 맡은 일을 통해 소마를 지하 1층의 돔으로 보낸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식물들은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이 닫힌 세계를 나와 지상으로 가는 것. 


지상에 나온 소마는 온몸이 이끼로 덮이지만 비로소 자신이 닫힌 세계에서 나왔음을 인식한다. 그렇다. 그들은 지하 세계라는 곳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모험에 성공한 것이다. 비록 밖으로 나온 사람은 소마 하나지만, 모두가 함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소설은 암울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자신들의 삶을 찾아가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유오의 죽음으로 자신을 유폐시켰던 소마가 친구들과 함께 유오의 클론을 데리고 지상으로 가는 장면은, 닫힌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그를 벗어나려는 존재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마르코가 파업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들에게 동조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안락은 홀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해야 한다.


닫힌 세계를 열린 세계로 만드는 일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닫힌 세계에 갇혀 사는 삶이 바람직하지 않음은 이 세 편의 소설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다른 곳을 꿈꿀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그런 존재들로 인해 세상은 열린 세상이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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