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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내란 그리고 민주주의 - 전쟁과 폭력, 극우와 혐오의 시대를 넘어
강성현 외 지음 / 역사비평사 / 2025년 8월
평점 :
민주주의는 계엄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많은 글들 중에서 오동석이 쓴 '계엄제도가 국가범죄 수단으로 전락한 까닭'이라는 글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12.3 내란을 비롯하여 한국 헌정사에서 계엄제도는 헌법을 보전하는 수단이 아니라 헌법을 파괴하는 수단임이 드러났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헌법이 아니라 계엄선포권을 포함해 대통령을 촘촘히 통제할 수 있는 법률이 부재하거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헌법을 고침은 물론 의회민주주의에 터 잡은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입법 역량의 강화가 필요하다.' (205쪽)
왜 그런가?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계엄을 발효한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여순 사건' 때 제5여단장이었던 김백일 대령이라고 한다. 군 지휘관이 그것도 참모총장도 아닌 일선 부대의 지휘관이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계엄법도 없던 시절이라고 한다.
세상에 법에 없는 명령을 내렸던 일. 그 뒤 계엄법이 만들어지고 몇 차례 계엄이 선포되었는데, 그것은 모두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계엄이었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났을 때, 민주주의가 성숙해가고 있다고 믿고 있어 계엄이란 생각도 하지 못하던 때에 다시 선포된 계엄. 민주주의와 가장 거리가 먼 계엄이 2024년에 선포되었으니...
이미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난 세대들이 그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없다. 그래서 광장으로 사람들이 나왔던 것이다. 포고문을 보자.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336쪽에서 재인용)
헌법에 무어라 되어 있는지 계엄을 선포하고 집행한 이들이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포고문 1호다. 헌법에 따르면 계엄을 선포하면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고,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다. 국회의 승인이 없으면 그때부터 계엄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그런데 국회활동을 금한다고? 말이 되나? 이는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 아닌가?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면서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를 하는 것. 모순 아닌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지 않음을, 그래서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막았던 것 아닌가.
여기에 시위,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것을 금지한다면, 모든 언론과 출판이 계엄사의 통제를 받게 한다면 이는 계엄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막겠다는 말이 아닌가. 이것이 어찌 민주주의이겠는가? 이것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겠다는 몸부림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계엄의 역사, 과정,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등을 여러 저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정리해서 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나라 계엄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역사 속 계엄들이 어떻게 정권 유지에 이용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1부와 계엄의 제도적 본질과 반복 메커니즘, 그리고 이에 대한 철학적.문학적 응답을 고찰(16쪽)한 2부, 12.3계엄 이후 민주주의를 되묻는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실천의 기록을 담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계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고찰하게 해주고 있는데... 미래 세대라 할 수 있는 학교에서 이루어진 대화, 수업에 대한 내용도 있어서 지금에서 다음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생각할 수도 있다.
'스스로 보수적 입장에 서 있다고 밝힌 학생은 진보적인 관점은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반면 자신과 같은 입장은 교실에서 조롱받거나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자주 보는 유튜브나 커뮤니티의 극단적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교실이나 친구 관계에서 자신의 신념을 편하게 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390쪽)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말하지 못하게 되면 뒤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말을 들으며 더욱더 자신의 생각을 공고하게 만들어간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드러내게 해야 한다. 드러내어 공개적으로 토론이 되어야 한다. 보수에서 더 나아가 극우가 되어도 그들이 숨어들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 역시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극우의 문제점을 논의할 수 있게 되고, 폭력이 아닌 토론을 통해서 생각을 정리해가게 된다. (종북좌파 빨갱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 말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 학교 학생이 토로한 것과 비슷한 일을 겪는다)
이렇게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겪은 경험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가 성숙해지고, 다시는 침해받지 않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그러한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 아니겠는가.
특정 이념을 지녔다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귀를 닫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용인하면서 다양한 의견들이 조율되는 과정을 만들어나가는 것, 이것이 12.3 계엄 이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민주주의 사회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말, 광장의 집회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했던 약속, 지켰던 말들을 다시 상기하고 싶다.
'집회 발언 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298쪽에서 재인용)
그런데 서울시의회에서 청소년 인권조례를 폐지하겠다는 안을 통과시켰다는 보도를 보니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이 말을 잊어버렸나? 아니면 무시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말을 잊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이 말을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계엄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차별이 일어날 수 없는 사회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계엄법을 철폐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 당연히 계엄법 철폐 뿐만이 아니라 차별금지법 제정 등 다양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게 하는 법들을 제정해야 하고. 차별금지법에 제정되어야 하는 이 때에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다니... 참.
무엇보다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고, 그 의견들이 상호 존중의 토론을 통해 정립되어 가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 표현은 좋지만 시대를 거스르는 정책이나 조례, 법 등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론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은 계엄의 역사, 과정,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생각해 보게 해주니 읽어보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