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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마인 ㅣ 워프 시리즈 8
배리 B. 롱이어 지음, 박상준 옮김 / 허블 / 2024년 12월
평점 :
한 번 읽기 시작하자 손에서 놓기 싫어졌다. 그냥 한번에 쭉 다 읽고 만 소설. 중간에 남겨 놓기에는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드는 소설. 그만큼 전개가 빠르고, 다음이 궁금해진다. 여기에 우주의 다른 종족이 적대 관계에서 공존의 관계로 가는 내용도 그렇고.
우주 팽창을 시도하는 지구와 드랙 행성이 전쟁을 한다. 이때 두 행성의 조종사들이 파이린 행성 4호에 불시착한다. 추락이라고 해도 좋고. 두 조종사는 처음엔 적대하지만 그 행성에 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파도의 위험 앞에서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좀더 넓은 땅으로 이동한 뒤에 동굴에 살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하는 두 존재.
하지만 드랙인인 쉬간은 아이를 낳다가 죽는다. 아이의 이름은 자미스. 이 자미스를 키우는 지구인 데이비지. 손가락이 셋인 드랙인과 손가락이 다섯인 지구인이 함께 지낸다. 그러면서 서로의 유대를 키워가는데... 우주선을 발견하고, 그 행성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우주선을 찾아가는데... 우주선이 지구나 드랙의 것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부상을 당한 데이비지는 자미스를 홀로 보낸다. 그리고 지구에서 살아가는 데이비지는 적응을 하지 못한다. 두 행성은 휴전을 했지만 서로에게 적대적인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 데이비지는 여기서 드랙에 봉사한 인물로 취급받는다. 그러다 결국 자미스를 찾아 떠나는 데이비지. 드랙 행성에 갔지만 자미스는 없다. 지구인을 사랑한다는 죄로 갇혀 지낸다. 자미스 집안의 도움으로 자미스를 데려오고, 데이비지는 다시 파이린 행성 4호 동굴에서 살면서 자미스의 후손들을 돌본다.
내용은 참 단순하다. 그런데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한 두 행성의 조종사들이 갈등을 겪다가 화해하는 장면에서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휴먼드라마가 되나? 작가는 낯선 행성에서 적대하는 둘은 쉽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공동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목표 속에서 둘이 협력하지 않으면 둘 다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이것이 '오월동주'라는 사자성어로도 남아 있지 않은가. 목표를 이룰 때까지는 협력할 수밖에 없는 관계.
그런데 이 관계가 길어지면서 변화가 생긴다. 적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함께한 위험에서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언어를 배운다. 물론 지구인인 데이비지는 드랙 행성의 경전인 '탈만'을 읽을 수 있게 되고.
상대의 종교를 상대의 언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함께하는 사이가 양성공유인 드랙인인 쉬간이 아이를 낳다가 죽는다. 다른 행성인을 키우게 된 데이비지.
이제 이야기는 아이와 데이비지의 이야기가 된다. 여기는 처음부터 우호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 데이비지가 양육자가 되니까. 호기심 많은 자미스는 이것저것 물어본다. 아는 만큼 대답해주는 데이비지. 이때 자미스의 질문이 왜 자신은 손가락이 셋인데 데이비지는 다섯인가이다.
행성의 차이. 다윈의 말로 하면 진화의 결과이리라. 단지 진화의 결과일 뿐, 손가락의 숫자로 우열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서로의 행성에 맞게 적응했을 뿐, 그러므로 데이비지는 자미스에게 자미스는 자신과는 다른 존재임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서로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장면.
전쟁 중이지만 이 행성은 전쟁과는 상관없다. 자연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면서 유대감을 형성한 자미스와 데이비지. 이들이 우주선을 발견하고 찾아간 다음은 다시 전쟁 상황과 유사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적대감은 여전하다. 전쟁의 상흔은 각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증오와 분노를 남기게 된다. 여기에 상대를 인정하는 존재들은 배신자 낙인이 찍힌다.
평화로울 것 같은 세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꾸만 자신을 밀어내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지구는 데이비지를, 드랙 행성은 자미스를 밀어낸다. 적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적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이제 평화의 시대가 되었는데, 서로 교류를 하는데... 그런 교류를 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적대감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소설의 후반부가 보여주고 있다.
다시 적대적인 환경에 놓인 두 사람은 자미스가 어린시절을 보낸 동굴로 가기로 한다. 물론 자미스의 집안도 재산을 모두 처분해 그 행성으로 오고. 여기서 평화롭게 지내는 데이비지.
그렇게 소설은 모두 행복한 생활을 하는 듯이 보인다. 그렇게 끝난 듯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데이비지나 자미스가 지내는 장소가 지구도, 드랙 행성도 아닌 파이린 4호 행성이라는 점이다.
표면적인 적대 행위는 끝났지만 내면에서 지속되는 적대감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행성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즉, 전쟁으로 인한 상흔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쉬간과 데이비지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하는 장면, 자미스가 전적으로 데이비지를 신뢰하는 장면은 큰 감동을 준다. 이렇게 적대하는 종족 또는 존재들 사이에서도 평화와 공존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생각하면, 아직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평화와 공존의 길을 가아함을 알 수 있다.
그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그 쉽지 않은 길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뒷부분이다. 두 행성의 전쟁이 휴전을 한 다음에 데이비지가 겪는 일들. 이것은 평화와 공존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단 생각이 든다.
드랙 행성의 경전인 '탈만'을 인용하는 많은 구절들이 나오는데, 이는 우리가 다른 경전들에서 만날 수 있는 구절들이다. 그만큼 모든 종교는 통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평화와 공존으로 가는 길이 꼭 하나만은 아니라는 점, 그 무수한 길들을 인정하고 자신도 자신이 찾은 평화와 공존의 길을 가야함을 '탈만'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재미와 생각을 둘 다 잡을 수 있는 소설. 왜 이 소설이 발표되자 많은 상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