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없는 미래 -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온다
팀 던럽 지음, 엄성수 옮김 / 비즈니스맵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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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공지능, 제4차산업혁명 등 과학기술의 시대에 인간의 일자리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책들은 비관적이거나 낙관적인 관점을 택하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어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비관적인 주장에 반대해 그만큼 다른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낙관적인 주장도 있다.

 

어떤 것이 맞을까? 그것은 모른다. 미래의 일을 추측, 예측할 수는 있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그대로 맞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예견과 달리, 우리들의 행동으로 인해 미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나비의 날개짓으로도 태풍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의 발달로 노동에 대한 위협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아르바이트 자리로 청소년들이나 노인들이 취업했던 주유소가 셀프 주유소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도 하이패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것뿐인가? 자동화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그만큼 다른 일자리가 생기면 좋겠지만, 없어지는 일자리에 비해 생기는 일자리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렇게 사람들 일자리는 기계에 의해 또 인터넷을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에 의해 사라져 가고 있다. 도대체 이 일은 거스를 수 있는 것인가.

 

없다. 지금까지 이룩해 온 발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우리는 로봇,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시대에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적일까를 고민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다른 관점에서 시작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경제, 기술, 과학의 문제로 다루려 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저자의 시각이 독특하고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를 정치적인 문제라고 한다. 노동, 일자리 문제인데 정치적인 문제라고? 그렇다.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다.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순간 다른 답을 찾을 수 있다. 왜 우리가 꼭 노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고,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과거의 일, 현재의 일을 이 책에서 먼저 살펴보고 있다. 일이 인간의 삶에 본질적인 것인가?  과거 일은 노예들이 하는 것이었다. 인간으로 대접받는 시민들은 노예들이 하는 일을 바탕으로 생긴 여가를 통해 다른 활동을 했다. 그것이 바로 인간적이라고 여겨졌다. 현재 자본주의의 발흥으로 노동은 인간 삶을 유지하는 기본 수단으로 인식되었지만, 자동화가 되면 이제 과거의 양상과 비슷해질 수 있다.

 

우리 생계나 생활에 필요한 많은 일들을 기계가 할 수 있다. 아니 지금도 기계가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동화로 사라진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할 것인가? 아니라고 한다.

 

다른 활동을 하면 되는 것이다. 창조적인 일,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지내는 일 등, 여러가지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 없는 미래는 경제, 과학,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를 만들 조건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저자가 노동 없는 미래와 기본소득을 연결지은 것이 새롭다. 그리고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최근에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자동화와 연결지은 것이 좋다. 이렇게 기본소득과 연결이 되면 노동 없는 미래는 자연스레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기본소득은 정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

 

일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불리한 조건에서도 어쩔 수 없이 노동을 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에 노동을 하더라도 주체의 자리에 설 수 있다.

 

사용자들도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시간 노동을 할 필요도 없다. 이미 생계는 확보되었기 때문에 생활의 윤택함을 추구하게 된다. 이때 노동을 기계에 맡겨도 된다. 기계화 시대가 되었는데 굳이 그것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활동을 하면 된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시대일지도 모른다. 기반 시설부터 다른 조건들도 충분하다. 다만, 한가지가 마련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적인 문제다.

 

생산량도 물품도 넘쳐나지만 누구는 없어서 못 쓰고, 누구는 남아돌아서 버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활동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미래로 가기 위해 근무 시간 단축과 기본소득이라는 디딤돌을 놓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현재 대부분 선진국의 통치 방식과는 다른 통치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 더는 로봇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놓고 쓸모없는 논쟁을 벌이지 알고, 함께 상상력을 발휘해 우리 모두를 해방시켜줄 일이 없는 미래 속으로 뛰어들어 보자. (257쪽)

 

그래서 우리 미래는 정치에 달려 있다. 문제는 경제야가 아니라 문제는 정치다. 우리들 삶이 로봇이,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사회에서 더욱 비참해지느냐 아니면 여러 사상가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가 되느냐는 정치에 달려 있다.

 

이렇게 정치를 강조한 것, 과학기술의 발전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정치적인 문제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더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분명 예전보다는 일을 덜 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계속 일을 더 하려고 하는가? 일을 더해도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로봇이나 인공지능, 자동화로 인해 일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에 대한 부담이 더 늘었다. 일자리를 가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 충분히 바꿀 수 있는 환경임에도 바꾸지 않는 것, 그것은 바로 정치에 달려 있다.

 

노동 없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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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시대, 인간의 일 -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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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계와 기술이 인간의 삶을 대체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지가 오래다. 몇 년 전에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이후로 사람들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인공지능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 책은 2015년에 나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나와 있지 않다. 초판 23쇄인데, 개정판이라면 아마도 이 사실이 들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에 의해 인간의 삶이 위협을 받는다고 걱정을 한다.

 

그동안 인간이 하던 일을 로봇이 하고 있는 현실. 그래서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기술 발전으로 인간이 모든 일을 잃지는 않았다는 것을 예로 들어, 로봇,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의 일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책은 로봇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의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인간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외국어 분야에서, 자동번역기로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이 없어질 것인가라는 항목에서 우리는 로봇 시대에 인간의 일을 생각해 보게 된다.

 

로봇으로 인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알고리즘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한 번역까지는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별로 사용하지 않는 어휘를 외우느라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그런 어휘에 대한 것은 컴퓨터에 맡기고, 외국의 문화를 익히는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로봇 시대를 잘 활용하는 길이다.

 

마찬가지로 여가 시간도 그렇다. 인간의 일을 로봇이 많이 하기 때문에 여가 시간이 넘쳐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히려 더 바빠진 것이 현대인이라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

 

로봇이나 다른 스마트 기기들의 도움으로 단순 노동은 하지 않게 되었으나, 그에 따르는 다른 일들을 더 하게 된 것 아닌가. 그것이 바로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설을 없애기 위해서는 여가 시간을 활요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기계가 할 수 없는 것, 바로 망각이다.

 

인간은 망각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로봇 시대 또는 인터넷 시대에는 망각의 자유조차도 잃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시대, 이때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망각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할까? 무턱대고 로봇이나 컴퓨터, 인터넷을 거부할 수는 없다. 거부하기에는 이미 너무 앞서 나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 지금은 공존이 필요한 시기다. 공존. 기계와 인간의 공존.

 

인간이 지닌 유연성과 창조성으로 그것은 가능할 것이다. 모든 것을 기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몫을 남겨 놓는 것.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바로 실수와 질문.

 

기계는 한 번 인간에게 이기면 절대로 다시 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기계에 의해 패배한 인간의 영역에서 다시 기계와 대결하려는 노력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인간을 이기는 기계를 만든 것도 바로 인간이 한 실수라면, 그 실수를 통해서 인간은 이제 인간보다 우월한 기계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영역이다.

 

기계는 설계하는 대로 작동하고 우리는 사람의 결점과 단점을 벗어나기 위한 의도로 기계를 설계한다. 부정확한 인식과 판단, 감정에 의한 변덕스럽고 비합리적인 행동, 망각과 고통 같은 사람의 속성을 기계에 부여하지 않는다. 인간은 우리가 기계에 부여하지 않을, 이러한 부족함과 결핍의 존재다. 하지만 거기에 로봇 시대 우리가 가야 할 사람의 길이 있다. (327쪽)

 

이 책에서 인간에게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힘이 있다고 하니, 그런 것들을 살려나가는 일이 무엇일지, 그런 삶이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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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
문재인.김인회 지음 / 오월의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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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먹먹해졌다. 도대체 이 책이 몇 년에 나온 거지? 벌써 10년이 되어가지 않나? 2011년 11월에 나온 책인데, 지금은 2019년이니, 꽥 채운 8년, 그리고 정권이 두 번 바뀌고...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그대로고.

 

참여정부 때 검찰개혁을 했는데, 그 공과를 살피면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검찰이 문제가 많다는 데야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겠지만, 어떻게 개혁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들이 있을 수 있다.

 

다양한 생각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그 다양한 생각들의 접점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데, 지금 과연 검찰개혁을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면,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권이 바뀐 지금에도, 참여정부 때 이미 검찰 개혁을 경험했고 이 책의 저자가 대통령이 되어 있는 지금에도 검찰개혁은 여전히 구호로 남겨져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실패가 지속적인 실패로 남아 있게 하지 않으려면 실패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 분석을 바탕으로 계승해야 할 것은 계승하고, 미진했던 점은 보완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실패가 성공으로 전환한다.

 

이 책은 그런 실패의 경험, 아니 이들은 실패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고 그것이 지속되지 못했을 뿐이라고 한다.

 

'실패라고 보이는 현상의 원인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정부의 것이다. 만일 새로운 정부가 참여정부의 기조를 이어받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개혁을 더욱 추진했다면 검찰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새로운 정부는 오히려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성과를 무시하고 파괴하는 데 주력했다.' (410쪽) 

 

이런 당연한 말을 하니, 실패가 성공으로 돌아설 수가 없다. 제도 개혁은 짧은 시간이 이룰 수 있지만 문화개혁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파악한 저자들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든 개혁은 시간이 소요되는 문화의 개혁을 포함한다. 모든 제도의 뿌리에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모든 개혁은 '계속 개혁'이어야 한다.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은 원래 정치 편향적이고 인권을 침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권력기관이다. 따라서 개혁을 중단하는 순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후퇴한다.' (411쪽)

 

이것을 인식했다면 정권이 유지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의 정책을 계승하기보다는 그것을 지우려는 모습을 더 많이 보인다. 게다가 정권이 바뀌면 개혁이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견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정치 아니던가. 그런데도 이런 순진한 소리, 다음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이런 소리는, 실패를 실패로 유지하는 길밖에 안 된다.

 

적어도 이런 검찰개혁에 대한 백서와 비슷한 책을 내려면 철저히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그것을 파헤쳐야 한다. 그래야 다음을 대비할 수 있다.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또다시 검찰이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이런 작태를 막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어쩌면 반성보다는 철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검찰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 폐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검찰이 사회의 안정을 이루어 국민들이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는 역할보다는 국민 위에 군림하고, 검찰에게 걸리면 죽는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또 검찰의 정치중립성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검찰이 매우 정치지향적이라는 것을 안다. 또한 검찰 집단 이익을 위해서는 똘똘 뭉쳐있다는 것도 안다. 이것을 고쳐야 한다. 저자들은 검찰개혁을 이렇게 도표로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 이루어진 것이 얼마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 또다시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 때. 과거에 한 실패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그 많은 실패의 경험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왜 불안한 마음이 들지? 자꾸 먹먹해지지... 정부나 여당이나 이 책에서 언급한 실패한 모습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통제력이 살아나려 하고 있다는 것. 검찰에 대한 국민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적어도 지금처럼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검찰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검찰을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되었단 얘기고, 민주와 권력의 집중은 함께 갈 수 없기 때문에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들 목소리가 나오는 이때 참여정부 때 검찰개혁을 경험했던 지금 정권의 사람들이 그때의 실패를 발판으로 삼아 검찰개혁을 이루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 90쪽에서 95쪽에 걸쳐 말하고 있는 권력기관 정상화 방법을 언급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이것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첫째 정권의 권력기관 사유화를 막아야 한다.

둘째, 정치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 시스템을 마련하고 정착시켜야 한다.

넷째, 권력기관의 민주적 구성과 인권친화적인 문화조성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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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09: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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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폭염 사회 - 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홍경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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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사회'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마치 우리 사회가 열로 들끓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제목인데, 책 내용은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던 폭염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재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그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의미를 지닌 책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는데,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실행이 되지 않았을 때 탄식하면서 하는 말로 주로 쓰이는데...

 

그런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더 문제가 된다. 재난이 계속 반복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지하철에서, 배에서, 그리고 도로에서, 또 하늘에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재난도 계속되고 있고, 태풍이나 지진, 홍수, 가뭄과 같은 자연 재해도 계속되고 있다.

 

소를 계속 잃으면서도 외양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작년부터 미세먼지에 대해서 경고를 하고, 심각성을 이야기하지만 대책은 여전히 없는 상태. 올해는 석탄발전을 많이 멈추겠다는 말을 하는데... 올해만이 아니라 석탄발전을 지속적으로 줄여가야 하는데, 에너지 사용량이 줄지 않고 계속 늘고 있으니, 기후변화나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시카고 폭염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을 다른 재난에도 적용할 수 있다. 폭염으로 사망한 시카고를 분석해서, 그것을 사회적 부검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몇 가지 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는 혼자 사는 도시 주민 중 나이 든 인구가 증가한 것(386쪽)이라고 하고, 둘째는 부유층과 빈곤층의 공간적인 집중과 사회적 분리의 증가(387쪽), 셋째는 이러한 불평등을 바로잡고 도시 취역계층을 보호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정부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389쪽)이라고 한다.

 

폭염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사람들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인데, 이들을 인종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도, 또 가난의 문제로, 개인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도 안된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충분히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번째 정부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프게 다가온다. 정부의 기본적은 목적은 국민들이 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 시카고는 1995년 폭염 이후로 나름 대책을 세운다. 그 결과 1995년 이후에도 폭염이 발생했지만, 사망자 수는 현저하게 줄었다고 한다. 그만큼 '소 잃고 외양간은 고친' 격이 된 것이다.

 

미리 막을 수 있었던 폭염으로 인한 재난 상황은 주요 보건 및 지원 서비스를 소방서와 경찰 등 준군사 조직에 위임해 생긴 구조적인 불균형. 노인과 약자를 포함한 도시 주민들이 공공 재화의 능동적 소비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시의 행정관과 이들의 봉사 대상인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짐, 정부가 점차 홍보활동과 마케팅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리는 경우가 많아짐 (389-390쪽)으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고 하는데, 이것들은 다른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많이 적용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언론까지 다루는 이 책을 읽으면 우리나라 재난 상황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오로지 책임을 회피하려는 관료들, 특정 개인에게 책임을 미루는 책임자들, 그리고 심층보도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받아쓰기만 하는 언론들... 이들이 중첩되어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특정한 시대의 재난을 다룬 책으로 읽어도 되지만, 그것을 앞으로도 지속될 재난 상황을 미리 막을 수 있는, 이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가 아니라 '유비무환'이 되는 그런 계기로 삼는 책으로 읽으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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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2019-10-0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갑습니다

kinye91 2019-10-03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386 세대유감 - 386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고의를 묻다
김정훈.심나리.김항기 지음, 우석훈 해제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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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맨 앞에 니체의 말이 실려 있다. 아마도 이 책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386세대를 겨냥한 말이리라.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유명한 말을 내가 갖고 있는 책 [선악을 넘어서](청하. 1994년 8쇄)에서 찾아보았더니, 100쪽에 이 번역과 다르지 않게 번역되어 있다. (제4장 잠언과 간주곡 146)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가 오랜 동안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 본다.  

 

너무도 자명한 이 말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네 칼로 너를 치리라'는 말이 결국 그 칼을 휘두르는 사람만이 바뀌었을 뿐 행위는 같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민주화 운동을 했던 386이 독재정권이 한 일과 같은 방식으로 운동을 했다는 것, 어쩌면 그 과정이 지금의 결과를 이끌어 냈을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대의는 있었지만 대의를 위해 희생한다는 명목으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무시하지 않았던가.

 

어느날 눈 앞의 거대한 적이 없어졌을 때 그리고 자신들이 그 적의 자리를 차지했을 때 그들이 한 행위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말하는 대의를 실현시키려 했을까? 그랬다면 지금 헬조선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N포세대라는 말 역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실상은 독재 타도였고, 즉 독재 타도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전망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 그러나 운은 지독하게도 좋아 취업 걱정 없었고, 또 민주화를 이뤘다는 성취감이 있었고, 사회에서 인정도 받았던 세대.

 

과거를 먹고 사는 세대가 되면 이미 그 세대는 물러나야 할 세대인데, 지금의 386은 자신들이 이룩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생각하기는 할까 하는 질문을 이 책을 통해서 한다.

 

유신세대도 아닌 386 밑세대에서 386세대를 비판하는 것은 - 물론 386이라고 모든 사람들을 세대에 묶어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 좀 문제이긴 하지만, 대세를 이루고 그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집단으로 기능하기에 개개인은 특성은, 자질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 좀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딛고 넘어서야 하는 존재가 386세대이기 때문이다.

 

1987년부터 2019년까지 이들은 초장기집권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군림한 지가 벌써 30년이 넘는다는 것.

 

이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선 것이 꽤 오래되었음에도 어째서 세상은 좋아지지 않고 더 나빠졌을까? 다음 세대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을까?

 

정치권에서 주력이 되고, 경제권에서도, 언론에서도, 교육계에서도, 하다못해 부동산에서도 주도권을 쥔 세대가 386세대라면 이들이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행동할 수 있다. 우리 잘못이 아니야, 우리 책임이 아니야 하고 팔짱만 끼고 있는 세대가 386세대이면 안 된다. 싫든 좋든 그들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주된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

 

50대 주축을 이루는 386세대들이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다음 세대들이 헬조선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의 관점을 벗어던져야 한다. 새로운 세대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눈이 없다면 적어도 새로운 세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그리고 그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그들은 충분히 앞서 왔다. 지킬 것만이 남은 세대로 남아서는 안 된다. 지킬 것은 지키되 - 민주주의 신념, 공동체 의식 등 - 버릴 것 - 괴물과 싸우는 동안 괴물이 되어버린,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 협잡에 능한 정치, 사교육 몰입, 부동산 투자(?투기) 등등 - 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책임을 느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유신 세대를 비롯한 윗세대에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또 다음 세대에게 노력 안 한다고 비난하지 말고, 자신들이 지금 사회의 주역이고 중심이기에 이 사회의 잘못은 바로 자신들의 잘못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 인정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그러니 이 책은 소위 386세대 중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한다. 이미 괴물이 되어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줄 거울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괴물인지도 모르면서 괴물을 비난하는 386세대의 주류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들이 이 책을 읽어야만 사회의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반성하고 괴물이 아니도록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이 책을 읽고 그래 우리 잘못이야, 우리가 고쳐야지 한다면, 386세대라는 거대한 권력층이 움켜쥐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학습에 능한 것이 386세대라는 것에 기대를 걸고,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무언가를 생각하길 바라며...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에 있는 또다른 경구를 인용한다. 386세대들이 다음 세대들에게 경멸을 받지 않도록...

 

173 인간은 경멸을 하는 한 증오하지는 않는다. 증오는 오직 자신과 대등하거나 우월하다고 인정되는 상대에 한한다. (니체, 선악을 넘어서. 청하. 1994년 8쇄.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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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 1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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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 14: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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