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한다. 사실 아직도 리얼리즘시가 좋으니... 무의미시라든지, 날이미지시보다는 그래도 무언가 의미를 전달해주는 시가 좋다.  나를 바라보고, 나를 다시 세울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시가 아직도 내게는 좋은시로 다가온다.

 

그래서 좋아하는 많은 시인들은 명징한 시를 쓴 시인들이다. 윤동주. 얼마나 명징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얼마나 삶을 경건하게 만드는가. 이육사, 얼마나 치열한가. 사회에 자신을 내던져 그 가열참으로 버텨내는 모습을 시 속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으니...

 

이런 시인들말고도 예전에는 박노해, 김남주의 시를 좋아했다. 치열한 삶에 대한 노래들. 리얼리즘이었다. 아직도 내게는 리얼리즘시들이 맘에 와닿는다.

 

어쩌면 맘을 울리는 시들도 좋아하지만 이성이 작동하는 시를 더 좋아할지도, 그것은 복잡한 것보다는 설명이 가능한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태도를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시는 사실 단순할 수도 있지만 세상일을 하나로만 볼 수 없음을 깨우쳐주고 있기도 한데, 구태여 단순한 시만을 왜 좋아하는지... 세상이 분석되고 설명되면 변화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그럼에도 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고 느낄 나이가 되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 다양하고 더 복잡하고 더 여유로와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습이니...

 

제목을 보고 샀으리라. "결혼식과 장례식"

 

인생에서 중요한 두 번의 행사. 하나는 자신이 기억하고 그 행사를 모두 지켜볼 수 있지만, 하나는 자신이 전혀 기억할 수 없고, 지켜볼 수도 없는, 주체가 되는 행사와 객체가 되는 행사. 그럼에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번의 행사.

 

새로운 삶의 시작과 또다른 새로운 삶을 위한 죽음. 그것을 생각하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나 하고 샀으리라. 그러나 시집에는 그러한 내용을 찾기보다는 시인이 바라본 세상, 사물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

 

결혼식과 장례식도 같은 제목을 한 극을 보고 나서 느낌을 시로 쓴 것이니... 이렇듯 세상은 복잡하고, 시도 복잡하고...

 

예상과는 달랐지만, 시는 읽을 만했다. 그렇게 느꼈으리라. 처음에 샀을 때도. 리얼리즘시를 좋아해 기를 쓰고 사회현실을 담은 시를 찾으려고 노력했겠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찾을 수 없었던 시집.

 

김종삼이라는 시인, 황지우라는 시인(그는 이 시집에 제목으로 두 번 나온다), 이성복이라는 시인이 나와 반갑기도 하지만...

 

"나의 시는 여행 가방 안의 온갖 잡동사니이고 다음 기착지의 필수품들이다. 그것을 가방에서 꺼내고, 다시 담고 하는 사이 늙고 턱수염이 껄끄러워지겠지만."(김영태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 문학과지성사. 1988 2쇄. 뒷표지에서)

 

그래, 공연히 리얼리즘을 찾지 말자고. 그가 말하듯이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인 이 시집은 시인이 보고 느낀 것을 언어로 조합해낸 결과물 아니던가.

 

시인은 이 시들디 다음 기착지의 필수품들이라고 했는데.. 나에게는 다음 시들을 위한 경유지 아니겠는가.

 

시의 다양성이 바로 현실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한다. 시를 통해서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을 변혁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실천을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성을, 복잡성을, 개인성을 느끼는 것도 바로 현실 아니겠는가.

 

현실이라는 복잡계를 애써 단순화하려고 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봐라. 그리고 있는 그대로 느껴라. 그것도 가끔은 필요하다. 이 시집은 이 점을 내게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읽으면서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시, 그 자체를 즐길 수도 있지 않은가.

 

두 시를 인용한다. 그냥 읽고 즐기면 된다. 이 시집에 있는 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한 편의 그림이기도 하고, 한 편의 음악이기도 하다. 이거면 됐다.

 

가구음악

 

꾸며지기 전

저렇게 헐렁하다

꾸며진 뒤에

분홍 쉼표

그저 거기에 놓여 있는 음악

 

김영태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 문학과지성사. 1988 2쇄. 56쪽

 

능금

 

제 몸에 묻어둔 팔

다리인 제 몸에서 나는 향기

비집고 나오는 가슴이

저절로 솟는 제 몸의 부끄러움

 

김영태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 문학과지성사. 1988 2쇄.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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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의 시집을 읽으며, 치매 환자를 죽게 하고 자신도 자살한 사람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신문이란 새소식을 전해주는 고마운 매체이기도 하지만, 이렇듯 슬프고도 안타까운 사연을 보여주기도 한다.

 

좋은 소식만 가득한 신문이었으면 좋겠는데... 정초부터 사실, 신문에서는 좋은 소식을 기대하기 힘들다.

 

오로지 사건 사고, 정치 싸움, 제가 서로 잘났다고 하는 그런 싸움들. 한국사 교과서를 놓고 벌이는 논쟁(논쟁거리도 되지 않는데... 이게 왜 논쟁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철도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구속 및 불이익. 아직도 끝나지 않은 밀양 송전탑. 제주도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그리고 회사를 이전했다는, 노조원들만 빼고... 기륭전자...또 기타 만드는 노동들의 끝나지 않은 투쟁 등등.

 

여기에 또하나 불거지고 있는 문제는 의료 민영화. 민영화라는 말을 쓰지 않고, 영리 보장 병원 정도라고 해야 하나... 결국 병원이 이익을 내도록 무언가를 허용해준다는 얘기인데... 이를 사람들은 의료 민영화라고 부른다. 나는 오히려 민영화라는 고상한 냄새를 풍기는 말보다는, 사영화(私營化)라는 명확한 의미가 떠오르는 말을 써야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병원을 통해 이익을 남기려는 사람들... 정말로 의사가 무엇인지, 간호사가 무엇인지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 텔레비전에서도 몇 번 방영한 "허준"의 일대기처럼, 도대체 의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병원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텐데...

 

병원을 전부 공영화하자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의사들을 공무원으로 만들자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병원이 이익을 남길 수 있게 해준다고... 사실 병원이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병원을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경영을 해서 회사처럼 이익을 남길 수 있게 한다는 말로 들리기는 하지만...이런 말들이 나오는 자본주의 사회... 돈이 지배하는 사회...

 

정말 의사들이 그립다. 돈이 아닌 사람을 생각하는.

 

의사가 공무원이 되면 정말로 돈이 아닌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사가 되지 않을까? 의료는 공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

 

일본인 의학자. 닥터 노구치. 만화로, 정말 감동깊게 보았던 책이다. 9권이라는 길이가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그가 생체실험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있지만, 그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그가 의사로서 어떤 자세를 지녔는지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여전히 감동적인 만화다.

 

이런 의사,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성산 장기려 박사.

 

돈을 마다하고 무료 진료를 했던 사람. 돈이 없는 사람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의료조합을 운영했던 사람. 권정생 선생의 "몽실언니"에 나오는 무료로 치료해주는 의사의 모델이 된 사람. 자신이 받은 상금을 모두 의료기기를 사는데 썼던 사람.

 

조금이라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사람. 자신의 부와 명예가 아니라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했던 사람. 성산 장기려. 그가 바로 우리나라 의사의 표본이 아닐까.

 

신문에서 읽은 기사가 참 멀리도 나아갔다. 이진명이 시집을 읽으며 의료 문제가 떠올랐기 때문인데...

 

그의 이번 시집에는 어려운 사람들 이야기가 꽤 나온다. 물론 자신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런 어려운 사람들 이야기 중에서도 마음에 너무도 아프게 다가왔던 시. 이것은 지금 우리가 아직도 겪고 있는 문제다. 그리고 의료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을에 의사가 배치되어 있어, 순회 진료를 하고,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곳에, 가까운 곳에, 돈을 걱정하지 않고 찾을 수 있는, 스스로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모두 알고 있는 그런 의사가 마을 곳곳에 있다면, 의료의 공공화가 현실이 된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일어나지 않을텐데... 하는 시.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는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아침신문이 턱하니 식탁에 뱉어버리고 싶은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차렸다

나는 꼼짝없이 앉아 꾸역꾸역 그걸 씹어야 했다

씹다가 군소리도 싫어

썩어문드러질 숟가락 던지고 대단스러울 내일의

천국 내일의 어느날인가로 알아서 끌려갔다

알아서 끌려가

병자의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들어 추슬러놓고

늦은 밥술을 떴다 밥술을 뜨다 기도가 막히고

밥숟가락이 입에 물린 채 죽어가는데

그런 나를 눈물 머금고 바라만 보는 그 누가

거동 못하는 그 누가

 

아, 눈물 머금은 신(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신다

 

이진명, 세워진 사람, 창비. 2008년 초판 2쇄. 32쪽-33쪽.

 

마음 한 켠이 짠하다. 이런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의료나 복지 제도를 운영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령화 사회로 간다고, 점점 노인들이 많아진다고 따라서 의료의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데... '영리'가 아니라 '건강'에 중심을 두는 그런 의료정책이 이루어져야 할텐데...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의사가 되기로, 간호사가 되기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텐데... 누구 말대로 '농부에게 월급'을 주듯이, 의사들도 공무원이 되게 하여, 생계와 생활을 보장해 주어, 정말로 돈을 보지 않고,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서 일할 사람이 의사가 되게 하여 진정한 마을의사들이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게 했으면 좋겠다.

 

이진명의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연작시 "바위"처럼 언제든지 찾아가서 쉬고,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들이 의사로 함께 존재했으면 좋겠다.

 

이진명의 시집을 읽으며, 이 시집의 중간에 있는 슬픈 현실을 담은 시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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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 전체의 이미지는 시각이다. 제목인 "춤"부터 보아도 이미 시각적 이미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에서도 빛과 색깔이 등장한다. 색깔이 빛의 형상이라면 그는 빛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시집을 여는 시의 제목도 '빛의 소묘'이다. 그만큼 시인은 빛에 관심이 많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빛 가운데서도 그는 이상하게 스러져 가는 빛이거나 갓 나타난 빛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런 시들이 많다. 전체적으로 외워야지 하는 시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도 이런 데서 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빛에는 온기가 없다. 온기라는 말이 이상하면 '열'이 없다. 즉, 그의 시집에 나오는 빛들은 빛으로 끝난다. 빛이 '볕'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빛'이 '볕'으로 나아가지 않는 상태. 그것은 그냥 보기에만 좋을 뿐이다. 우리의 삶에서 오히려 보기에 좋아서 고통일 수밖에 없는 순간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삶에는 '빛'이 '볕'으로 전환되어야 살만하다고 느낄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으며 보기에만 좋음이 얼마나 우리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깔끔한 모습, 단정한 모습, 단아한 목소리. 언제 보아도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지만, 그 모습에 사람다움이 없다면, 따스함이 없다면 거리만 느낄 뿐이다.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없는 사람. 지향을 하지만, 결코 함께는 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것이 바로 '볕'이 되지 못한 '빛'의 한계다.

 

훌륭한 지도자는 그래서 '빛'이 되기보다는 '볕'이 되어야 한다. 사람에게 다가와 눈부시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따스하게 덥혀줄 줄 알아야 한다. 덥혀주어야 한다.

 

밝음에 따스함이 없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더 힘들게 할 뿐이다. 그런 지도자는 멀리서 바라볼 때만 좋다. 가까이에 있으면 주변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만 한다.

 

왜 이 시집을 읽으면서 '볕'이 되지 못한 '빛'의 이야기를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이상하게도 이 시집을 읽으면서 밝기는 있되, 온기는 없는 그런 '빛'만을 생각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볕'이 그리웠을 뿐이다.

 

정치는 '빛'이 아니라 '볕'임을 생각하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화려하고 밝은 '빛'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따스하게 만들어줄 '볕'을 그리워하고 있을 뿐임을 이 시집을 통해서 느꼈을 뿐이다. 왜 그런지는 모른 채...

 

어쩌면 지금의 정치가 '빛'에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말은 화려하다. 참으로 화려하다. 정치인들의 말을 들으면 세상이 이만큼 좋을 수가 없다.

 

화려한 말들. 국민을 걱정하는 말들. 그리고 너무도 깔끔하게 보이는 외모들. 그 수사들 속에는 이상하게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빛'으로만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볕'을 바라는데 말이다.

 

사실, 이 시집에는 따스한 시선을 담은 시들도 많다. 그럼에도 이렇게 느낀 것은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고 느끼고 싶은 대로 느낀 시집을 제멋대로 해석한 '오독'의 대표적인 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모든 글은 오독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이 시집을 통해 '볕'을 그리워하는 나를 발견한 것에 위안을 삼는다.

 

마음에 드는 시는 '얼음 계곡'(83-85쪽)이라는 시인데, 프로스트의 '두 갈래 길'을 연상시키는 시다. 하지만 이 시보다도 더 마음에 남아 있는 시... '지평(地平)'

 

地平

 

석유를 먹고 온몸에 수포가 잡혔다. / 옴팍집에 살 때였다.

아버지 등에 업혀 캄캄한 / 빈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읍내의 병원은 멀어, / 겨울바람이 수수깡 속처럼 울었다.

들판의 어디쯤에서였을까, / 아버지는 나를 둥근 돌 위에 얹어놓고

목의 땀을 씻어내리고 있었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그 풍경을 / 실제라고 믿고 살았다.

삶이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 들판에 솟아 있는 흰 돌을

빈 터처럼 간직하며 견뎠다. / 마흔을 앞에 두고 나는 이제 그것이,

내 환각이 만들어낸 도피처라는 것을 안다.

 

달빛에 바쳐진 아이라고, / 끝없는 들판에서 나는

아버지를 이야기 속에 가둬 / 내 설화를 창조하였다.

호롱불에 위험하게 흔들리던 / 옴팍집 흙벽에는 석유처럼 가계(家系)가

속절없이 타올랐다. / 지평을 향한 생(生)이 만든

겨울밤의 환각.

 

박형준, 춤. 창비. 2005년 초판. 26-27쪽

 

지평, 늘 가까이에 있는 것 같지만, 다가가고 다가가도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늘 보인다. 이것이 바로 삶이다. 볕이 없는 삶. 그런 삶은 환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

 

내 삶의 지평은 어디인가. 나는 그 지평의 어디쯤에선가 하나의 바위를 만들어놓고, 가끔은 쉬고 있지 않은가. 그 바위는 내 스스로도 만들지만, 누군가가 만들어줄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내 삶을 '빛'에서 '볕'으로 비춰주고 있는 사람 아니겠는가.

 

내 삶이 유지되는 일이 내 곁에 있는 그런 '볕'같은 사람 덕분이듯이,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볕'같은 정치가는 어디에 있을지... 우리는 저 지평의 끝에 그런 정치가를 우리가 쉴 수 있는 바위처럼 창조해야 하지 않을까...

 

이 시집을 읽으며 한 공상...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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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시집이라. 참 뜬금없는 제목이다. 그런데 이 시집을 읽다가 정치인이 떠올랐으니, 그리 뜬금없는 제목도 아니다.

 

시집과 정치인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시집과 정치인은 처음에 잘 모른다. 이들과 친숙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시집을 사기 위해서는 제목을 먼저 본다. 제목이 마음에 들면 시집을 산다. 마찬가지로 정치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공약을 먼저 본다. 그 공약이 마음에 들면 정치인은 뽑는다.

 

정치인의 공약과 시집의 제목은 이렇듯 비슷한데...

 

가끔 공약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정치인이 있다. 제목이 시의 제목으로 나와 있지 않아 시집을 모두 읽게 만드는 시집처럼, 공약이 선명하지 않은 정치인은 그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정치 인생 전반을 살펴야 한다. 참 힘든 일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인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된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 역시 시의 제목이 아니다. 시의 한 구절이 제목이 되었다. 이 구절은 이 시집의  '마장동 참새'(96-97쪽)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처음이 '나는 조국으로 가기 위하여'로 시작하여 끝이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이다.

 

그래서 제목을 찾기 위해서는 시집을 모두 읽어야 한다. 찾아야 한다.

 

두 번째는 그 사람을 잘 모를 때는 추천하는 사람을 본다. 추천하는 사람이 평소에 괜찮다고 여겨졌던 사람이면 그 사람이 추천한 정치인도 선택을 하게 된다. 이게 사람의 심리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시집도 마찬가지다. 뒤에 해설을 한 사람을 본다. 시 해설을 한 사람이 평소에도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이면 그 시집을 망설이지 않고 산다. 왜냐 이미 검증되었다고 믿으니까. 적어도 이 시집에 해설을 쓴 정과리라면 문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다고 믿을 만한 사람이니, 이 시집은 시로써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다고 믿을 만하다.

 

이도저도 아니면 정치인은 당을 본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정치인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하겠지 하는 믿음이 있으니까. 시집도 그렇다. 출판사를 본다. 평소에 좋아하던 출판사에서 낸 시집이면 어느 정도는 믿음이 간다. 최소한 실패는 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집을 골라들게 된다.

 

'문학과지성사'. 한 때 '창작과비평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문학계를 양분했던 문학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출판사 아니던가. 출판사의 명예를 걸고 시집을 편찬할테니... 믿을 조건은 갖춘 셈이다. '창비시선'이나 '문지시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갖고 있다. 믿음을 주고 있으니.

 

그 다음에 이러한 믿음들이 별로였을 때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정치인의 다음 공약을 기대하고 그가 새롭게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시집은 신작시집을 기대한다. 그런데... 신작시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정치인이 기대에 또 어긋났을 때 이 때는 영영 이별이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보고 싶지 않다. 정치인은 믿음 속에서 사라져 표를 얻을 수가 없고, 시인은 더이상 시집을 팔 수 없게 된다.  

 

백학기의 신작시집은 사지 못했다. 그동안 시에서 멀어져 온 삶도 있겠고, 그의 시집을 억지로 다시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딱히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마음을 그리 움직이지도 않으니...

 

공통점이라는 것이 이렇듯 많이도 있는데... 이 시집을 읽으며 마음이 별로 편하지는 않았다. 우선 제목이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는 것에서부터...

 

조국으로 간다는 말은 내가 조국을 떠나 있단 말인데... 이 시집의 내용은 모두 조국에서 살고 있는 화자들이 전개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조국으로 가야겠다는 다짐은 내가 원하는 조국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내가 원하는 조국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러므로 이 시에 나오는 조국은 상처받은 조국, 아직도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조국이다. 이미 30년 전 시집인데... 그 때는 그래도 되었겠지... 해방이 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고(해방이 된 지 30-40년 뒤를 이렇게 얘기해도 된다면), 조국은 막 건설되기 시작했을 때일테니...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이유는 이 시가 쓰여지고 난 시점에서 또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엄청난 공약(空約-공수표들)들에 휩싸여 살았음을 이 시집을 읽으며 계속 깨달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하고 당하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집을 바꾸는 것보다도 더 힘들게 정치인을 바꾸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에고...하여 시인은 '시란 언제나 가난한 아버지 곁에 함께 하며/고스란히 물려받은 귀한 아버지의 무명옷처럼/질기고 확실한 유산이어야 함을/... /아버지의 눈꺼풀 위에 내려앉는 잠만큼이나/달콤해야 함을/(백학기 '불꺼진 용서의 간이역에서 떨고 있는 나의 시는'의 부분: 101쪽)'이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이 시를 읽으며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런 세상이 와야하겠는데... 그것이 바로 시인이 바라는 조국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조국으로 나도 가고 싶다.

 

짧은시... 오늘 한겨레 신문에서 본 어느 주장이 떠오르는 시.

 

밥을 위하여

 

내 밥에 눈물꽃 피네

목에 걸려 또한 타흐르는 밥알들이여

정든 산하 정든 이들이 기운 밥덩어리

 

백학기,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 문학과지성사. 1989년 초판 2쇄. 108쪽

 

그 주장은 "농민들에게 월급을 주자"였다. 밥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들. 그 밥을 위하여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 그러나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빚만 늘어나는 사람들. 그들에게 우리는 생계를 빚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생계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기본소득과 연계하여, 우리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 "월급"을 주는 방안. 이 시를 보자. 그들이 생산한 밥에는 이러한 것들이 들어있는데... 그 밥이 그냥 편하게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시집. 정치인. 그리고 아직도 진행형인 "조국". 그러한 조국으로 가야겠다는 시인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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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다. 겨울에 맞는 시, 뭐가 있을까 하다가 오래 전에 읽었던 정대구의 이 시집을 꺼내들었다.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어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참으로 가물가물한 시집이다. 분명히 읽었을텐데... 시란 이렇게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쉬워하지 않는다. 분명 내 마음 속 어딘가에, 또는 내 몸 어딘가에 살아있을테니.

 

이 시집을 꺼낸 이유는 제목 때문이다. "겨울기도" 지금은 겨울.

 

계절만이 아니라 우리네 삶 역시 겨울.

 

겨울임에도 황사가, 미세먼지가... 우리를 습격하고... 경제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난리고... 노동자들은 힘든 삶을 보내고... 시민단체들은 제 역할을 못하고... 남과 북은 여전히 경색국면이고...

 

이럴 때 경건하게 기도를 하지 않겠는가. 겨울에는 이 겨울을 잘 보내게 해달라고. 이 겨울을 이겨내고 움트는 봄을 맞이하게 해달라고. 이 시집의 제목이 된 '겨울 기도'처럼 힘듦은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힘듦이 비켜가기를...

 

힘든 계절, 힘든 시대...기도를 통해... 행동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게 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추위가 봄을 더욱 즐겁게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런 기분으로 시집을 꺼내들었는데...

 

오래된 시집이다. 오래된 시들이다. 어렵지 않게 읽히는 시들이다. 그럼에도 생각할 수 있는 시들이 여러 편 있다. 시란, 시대가 흘러가도 언제나 시대와 함께 하는, 그 시대에 맞게 재해석 될 수 있는 그런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여기서 발견한 시. '워키토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이제는 사라진 물건이라고 해야 하나. 한 때 이것을 지니고 멀리 있는 사람과 무전기 놀이를 할 수 있었던 그런 물건.

 

이 워키토키에서 소통을 생각하게 된다. 소통은 서로 믿음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소통이 그리운 시대...

 

이렇게 소통이 되는 상황이 우리에게 온다면 그야말로 봄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예로부터 시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많이들 꿈꾸어 왔으니... 

 

워키토키

 

이쪽은 자유의 마을, 그쪽 나와라 - 오버

이쪽은 평화의 마을, 왜 그러냐 - 오버

 

지금 말잠자리 한 마리 철조망을 넘어 그쪽으로 날아간다 - 오버

지금 고추잠자리 한 마리 역시 철조망을 넘어 그쪽으로 날아간다 - 오버

이쪽 하늘엔 구름이 한가롭다 - 오버

이쪽 하늘에도 구름이 한가롭다 - 오버

 

휴전선 일대의 하늘엔

우리말 워키토키의 전파가 무성하고

땅 속의 풀뿌리들도

저희끼리 왕성하게 뒤엉키는구나.

 

남남북녀 이쪽에 미끈한 총각 있다 - 오버

남남북녀 이쪽엔 어여쁜 처녀 있다 - 오버

 

새 소리 바람 소리 이쪽저쪽 넘나들며 짝을 맺고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 똑같은 우리 말

우리들의 자유만, 우리들의 평화만

철조망에 얽혀서 찢어지는가.

 

이쪽을 겨눈 그쪽의 총부리

그쪽을 겨눈 이쪽의 총부리.

 

정대구, 겨울기도. 문학과지성사. 1987년 초판 4쇄. 14-15쪽.

 

이렇게 봄이 왔으면 좋겠다.

 

이 시를 보는 순간 신동엽의 시가 생각이 났다. 신동엽은 꿈을 꾸었다고 했지. 또 그는 "봄은"이라는 시에서 봄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닌, 우리들의 내부에서 우리들이 맞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가 꾼 꿈은 이렇다.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밤은

                                       - 신동엽

 

술을 믾이 마시고 잔

어제밤은

자다가 재미난 꿈을 꾸었지.

 

나비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다가

발 아래 아시아의 반도

삼면에 흰 물거품 철썩이는

아름다운 반도를 보았지.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리의

완충지대, 이른바 북쪽 권력도

남쪽 권력도 아니 미친다는

평화로운 논밭.

 

술을 많이 마시고 난 어제밤은

자다가 참

재미난 꿈을 꾸었어.

 

그 중립지대가

요술을 부리데.

 

너구리새끼 사람새끼 곰새끼 노루새끼들

발가벗고 뛰어노는 폭 십리의 중립지대가

점점 팽창되는데,

그 평화지대 양쪽에서

총부리 마주 겨누고 있던

탱크들이 일백팔십도 뒤로 돌데.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

물방게처럼

한 떼는 서귀포 밖

한 떼는 두만강 밖

거기서 제각기 바깥 하늘 향해

총칼을 내던져 버리데.

 

꽃피는 반도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완충지대,

그 모오든 쇠붙이는 말끔이 씻겨가고

사랑 뜨는 반도,

황금이삭 타작하는 순이네 마을 돌이네 마을마다

높이높이 중립의 분수는

나부끼데.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밤은 자면서 허망하게 우스운 꿈만 꾸었지.

 

신동엽,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1985년 3판. 76쪽.

 

이런 꿈을 꾸고 싶다. 아니 꿈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평화가 바로 우리들의 봄일텐데...

남과 북에서만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에서 이렇게 껍데기들이 사라진 세상, 서로가 서로 소통이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곧 봄이다.

 

지금은 겨울. 이런 봄을 꿈꾸는 기도를 해본다.

 

봄은 온다. 겨울은 간다. 그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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