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한다. 사실 아직도 리얼리즘시가 좋으니... 무의미시라든지, 날이미지시보다는 그래도 무언가 의미를 전달해주는 시가 좋다.  나를 바라보고, 나를 다시 세울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시가 아직도 내게는 좋은시로 다가온다.

 

그래서 좋아하는 많은 시인들은 명징한 시를 쓴 시인들이다. 윤동주. 얼마나 명징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얼마나 삶을 경건하게 만드는가. 이육사, 얼마나 치열한가. 사회에 자신을 내던져 그 가열참으로 버텨내는 모습을 시 속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으니...

 

이런 시인들말고도 예전에는 박노해, 김남주의 시를 좋아했다. 치열한 삶에 대한 노래들. 리얼리즘이었다. 아직도 내게는 리얼리즘시들이 맘에 와닿는다.

 

어쩌면 맘을 울리는 시들도 좋아하지만 이성이 작동하는 시를 더 좋아할지도, 그것은 복잡한 것보다는 설명이 가능한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태도를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시는 사실 단순할 수도 있지만 세상일을 하나로만 볼 수 없음을 깨우쳐주고 있기도 한데, 구태여 단순한 시만을 왜 좋아하는지... 세상이 분석되고 설명되면 변화시킬 수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그럼에도 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고 느낄 나이가 되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 다양하고 더 복잡하고 더 여유로와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습이니...

 

제목을 보고 샀으리라. "결혼식과 장례식"

 

인생에서 중요한 두 번의 행사. 하나는 자신이 기억하고 그 행사를 모두 지켜볼 수 있지만, 하나는 자신이 전혀 기억할 수 없고, 지켜볼 수도 없는, 주체가 되는 행사와 객체가 되는 행사. 그럼에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번의 행사.

 

새로운 삶의 시작과 또다른 새로운 삶을 위한 죽음. 그것을 생각하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나 하고 샀으리라. 그러나 시집에는 그러한 내용을 찾기보다는 시인이 바라본 세상, 사물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

 

결혼식과 장례식도 같은 제목을 한 극을 보고 나서 느낌을 시로 쓴 것이니... 이렇듯 세상은 복잡하고, 시도 복잡하고...

 

예상과는 달랐지만, 시는 읽을 만했다. 그렇게 느꼈으리라. 처음에 샀을 때도. 리얼리즘시를 좋아해 기를 쓰고 사회현실을 담은 시를 찾으려고 노력했겠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찾을 수 없었던 시집.

 

김종삼이라는 시인, 황지우라는 시인(그는 이 시집에 제목으로 두 번 나온다), 이성복이라는 시인이 나와 반갑기도 하지만...

 

"나의 시는 여행 가방 안의 온갖 잡동사니이고 다음 기착지의 필수품들이다. 그것을 가방에서 꺼내고, 다시 담고 하는 사이 늙고 턱수염이 껄끄러워지겠지만."(김영태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 문학과지성사. 1988 2쇄. 뒷표지에서)

 

그래, 공연히 리얼리즘을 찾지 말자고. 그가 말하듯이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인 이 시집은 시인이 보고 느낀 것을 언어로 조합해낸 결과물 아니던가.

 

시인은 이 시들디 다음 기착지의 필수품들이라고 했는데.. 나에게는 다음 시들을 위한 경유지 아니겠는가.

 

시의 다양성이 바로 현실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한다. 시를 통해서 현실을 인식하고, 현실을 변혁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실천을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성을, 복잡성을, 개인성을 느끼는 것도 바로 현실 아니겠는가.

 

현실이라는 복잡계를 애써 단순화하려고 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봐라. 그리고 있는 그대로 느껴라. 그것도 가끔은 필요하다. 이 시집은 이 점을 내게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읽으면서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시, 그 자체를 즐길 수도 있지 않은가.

 

두 시를 인용한다. 그냥 읽고 즐기면 된다. 이 시집에 있는 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한 편의 그림이기도 하고, 한 편의 음악이기도 하다. 이거면 됐다.

 

가구음악

 

꾸며지기 전

저렇게 헐렁하다

꾸며진 뒤에

분홍 쉼표

그저 거기에 놓여 있는 음악

 

김영태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 문학과지성사. 1988 2쇄. 56쪽

 

능금

 

제 몸에 묻어둔 팔

다리인 제 몸에서 나는 향기

비집고 나오는 가슴이

저절로 솟는 제 몸의 부끄러움

 

김영태 시집, 결혼식과 장례식. 문학과지성사. 1988 2쇄.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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