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명의 시집을 읽으며, 치매 환자를 죽게 하고 자신도 자살한 사람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신문이란 새소식을 전해주는 고마운 매체이기도 하지만, 이렇듯 슬프고도 안타까운 사연을 보여주기도 한다.

 

좋은 소식만 가득한 신문이었으면 좋겠는데... 정초부터 사실, 신문에서는 좋은 소식을 기대하기 힘들다.

 

오로지 사건 사고, 정치 싸움, 제가 서로 잘났다고 하는 그런 싸움들. 한국사 교과서를 놓고 벌이는 논쟁(논쟁거리도 되지 않는데... 이게 왜 논쟁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철도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구속 및 불이익. 아직도 끝나지 않은 밀양 송전탑. 제주도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그리고 회사를 이전했다는, 노조원들만 빼고... 기륭전자...또 기타 만드는 노동들의 끝나지 않은 투쟁 등등.

 

여기에 또하나 불거지고 있는 문제는 의료 민영화. 민영화라는 말을 쓰지 않고, 영리 보장 병원 정도라고 해야 하나... 결국 병원이 이익을 내도록 무언가를 허용해준다는 얘기인데... 이를 사람들은 의료 민영화라고 부른다. 나는 오히려 민영화라는 고상한 냄새를 풍기는 말보다는, 사영화(私營化)라는 명확한 의미가 떠오르는 말을 써야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병원을 통해 이익을 남기려는 사람들... 정말로 의사가 무엇인지, 간호사가 무엇인지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 텔레비전에서도 몇 번 방영한 "허준"의 일대기처럼, 도대체 의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병원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텐데...

 

병원을 전부 공영화하자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의사들을 공무원으로 만들자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병원이 이익을 남길 수 있게 해준다고... 사실 병원이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병원을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경영을 해서 회사처럼 이익을 남길 수 있게 한다는 말로 들리기는 하지만...이런 말들이 나오는 자본주의 사회... 돈이 지배하는 사회...

 

정말 의사들이 그립다. 돈이 아닌 사람을 생각하는.

 

의사가 공무원이 되면 정말로 돈이 아닌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사가 되지 않을까? 의료는 공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

 

일본인 의학자. 닥터 노구치. 만화로, 정말 감동깊게 보았던 책이다. 9권이라는 길이가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그가 생체실험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있지만, 그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그가 의사로서 어떤 자세를 지녔는지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여전히 감동적인 만화다.

 

이런 의사,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성산 장기려 박사.

 

돈을 마다하고 무료 진료를 했던 사람. 돈이 없는 사람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의료조합을 운영했던 사람. 권정생 선생의 "몽실언니"에 나오는 무료로 치료해주는 의사의 모델이 된 사람. 자신이 받은 상금을 모두 의료기기를 사는데 썼던 사람.

 

조금이라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사람. 자신의 부와 명예가 아니라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했던 사람. 성산 장기려. 그가 바로 우리나라 의사의 표본이 아닐까.

 

신문에서 읽은 기사가 참 멀리도 나아갔다. 이진명이 시집을 읽으며 의료 문제가 떠올랐기 때문인데...

 

그의 이번 시집에는 어려운 사람들 이야기가 꽤 나온다. 물론 자신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런 어려운 사람들 이야기 중에서도 마음에 너무도 아프게 다가왔던 시. 이것은 지금 우리가 아직도 겪고 있는 문제다. 그리고 의료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을에 의사가 배치되어 있어, 순회 진료를 하고,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곳에, 가까운 곳에, 돈을 걱정하지 않고 찾을 수 있는, 스스로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모두 알고 있는 그런 의사가 마을 곳곳에 있다면, 의료의 공공화가 현실이 된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일어나지 않을텐데... 하는 시.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는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아침신문이 턱하니 식탁에 뱉어버리고 싶은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차렸다

나는 꼼짝없이 앉아 꾸역꾸역 그걸 씹어야 했다

씹다가 군소리도 싫어

썩어문드러질 숟가락 던지고 대단스러울 내일의

천국 내일의 어느날인가로 알아서 끌려갔다

알아서 끌려가

병자의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들어 추슬러놓고

늦은 밥술을 떴다 밥술을 뜨다 기도가 막히고

밥숟가락이 입에 물린 채 죽어가는데

그런 나를 눈물 머금고 바라만 보는 그 누가

거동 못하는 그 누가

 

아, 눈물 머금은 신(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신다

 

이진명, 세워진 사람, 창비. 2008년 초판 2쇄. 32쪽-33쪽.

 

마음 한 켠이 짠하다. 이런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의료나 복지 제도를 운영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령화 사회로 간다고, 점점 노인들이 많아진다고 따라서 의료의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데... '영리'가 아니라 '건강'에 중심을 두는 그런 의료정책이 이루어져야 할텐데...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의사가 되기로, 간호사가 되기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텐데... 누구 말대로 '농부에게 월급'을 주듯이, 의사들도 공무원이 되게 하여, 생계와 생활을 보장해 주어, 정말로 돈을 보지 않고,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서 일할 사람이 의사가 되게 하여 진정한 마을의사들이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게 했으면 좋겠다.

 

이진명의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연작시 "바위"처럼 언제든지 찾아가서 쉬고,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들이 의사로 함께 존재했으면 좋겠다.

 

이진명의 시집을 읽으며, 이 시집의 중간에 있는 슬픈 현실을 담은 시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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