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시집이라. 참 뜬금없는 제목이다. 그런데 이 시집을 읽다가 정치인이 떠올랐으니, 그리 뜬금없는 제목도 아니다.

 

시집과 정치인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시집과 정치인은 처음에 잘 모른다. 이들과 친숙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시집을 사기 위해서는 제목을 먼저 본다. 제목이 마음에 들면 시집을 산다. 마찬가지로 정치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공약을 먼저 본다. 그 공약이 마음에 들면 정치인은 뽑는다.

 

정치인의 공약과 시집의 제목은 이렇듯 비슷한데...

 

가끔 공약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정치인이 있다. 제목이 시의 제목으로 나와 있지 않아 시집을 모두 읽게 만드는 시집처럼, 공약이 선명하지 않은 정치인은 그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정치 인생 전반을 살펴야 한다. 참 힘든 일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인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된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 역시 시의 제목이 아니다. 시의 한 구절이 제목이 되었다. 이 구절은 이 시집의  '마장동 참새'(96-97쪽)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처음이 '나는 조국으로 가기 위하여'로 시작하여 끝이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이다.

 

그래서 제목을 찾기 위해서는 시집을 모두 읽어야 한다. 찾아야 한다.

 

두 번째는 그 사람을 잘 모를 때는 추천하는 사람을 본다. 추천하는 사람이 평소에 괜찮다고 여겨졌던 사람이면 그 사람이 추천한 정치인도 선택을 하게 된다. 이게 사람의 심리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시집도 마찬가지다. 뒤에 해설을 한 사람을 본다. 시 해설을 한 사람이 평소에도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이면 그 시집을 망설이지 않고 산다. 왜냐 이미 검증되었다고 믿으니까. 적어도 이 시집에 해설을 쓴 정과리라면 문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다고 믿을 만한 사람이니, 이 시집은 시로써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다고 믿을 만하다.

 

이도저도 아니면 정치인은 당을 본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정치인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하겠지 하는 믿음이 있으니까. 시집도 그렇다. 출판사를 본다. 평소에 좋아하던 출판사에서 낸 시집이면 어느 정도는 믿음이 간다. 최소한 실패는 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집을 골라들게 된다.

 

'문학과지성사'. 한 때 '창작과비평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문학계를 양분했던 문학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출판사 아니던가. 출판사의 명예를 걸고 시집을 편찬할테니... 믿을 조건은 갖춘 셈이다. '창비시선'이나 '문지시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갖고 있다. 믿음을 주고 있으니.

 

그 다음에 이러한 믿음들이 별로였을 때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정치인의 다음 공약을 기대하고 그가 새롭게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시집은 신작시집을 기대한다. 그런데... 신작시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정치인이 기대에 또 어긋났을 때 이 때는 영영 이별이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보고 싶지 않다. 정치인은 믿음 속에서 사라져 표를 얻을 수가 없고, 시인은 더이상 시집을 팔 수 없게 된다.  

 

백학기의 신작시집은 사지 못했다. 그동안 시에서 멀어져 온 삶도 있겠고, 그의 시집을 억지로 다시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딱히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마음을 그리 움직이지도 않으니...

 

공통점이라는 것이 이렇듯 많이도 있는데... 이 시집을 읽으며 마음이 별로 편하지는 않았다. 우선 제목이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는 것에서부터...

 

조국으로 간다는 말은 내가 조국을 떠나 있단 말인데... 이 시집의 내용은 모두 조국에서 살고 있는 화자들이 전개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조국으로 가야겠다는 다짐은 내가 원하는 조국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내가 원하는 조국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러므로 이 시에 나오는 조국은 상처받은 조국, 아직도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조국이다. 이미 30년 전 시집인데... 그 때는 그래도 되었겠지... 해방이 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고(해방이 된 지 30-40년 뒤를 이렇게 얘기해도 된다면), 조국은 막 건설되기 시작했을 때일테니...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이유는 이 시가 쓰여지고 난 시점에서 또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엄청난 공약(空約-공수표들)들에 휩싸여 살았음을 이 시집을 읽으며 계속 깨달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하고 당하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집을 바꾸는 것보다도 더 힘들게 정치인을 바꾸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에고...하여 시인은 '시란 언제나 가난한 아버지 곁에 함께 하며/고스란히 물려받은 귀한 아버지의 무명옷처럼/질기고 확실한 유산이어야 함을/... /아버지의 눈꺼풀 위에 내려앉는 잠만큼이나/달콤해야 함을/(백학기 '불꺼진 용서의 간이역에서 떨고 있는 나의 시는'의 부분: 101쪽)'이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이 시를 읽으며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런 세상이 와야하겠는데... 그것이 바로 시인이 바라는 조국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조국으로 나도 가고 싶다.

 

짧은시... 오늘 한겨레 신문에서 본 어느 주장이 떠오르는 시.

 

밥을 위하여

 

내 밥에 눈물꽃 피네

목에 걸려 또한 타흐르는 밥알들이여

정든 산하 정든 이들이 기운 밥덩어리

 

백학기,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 문학과지성사. 1989년 초판 2쇄. 108쪽

 

그 주장은 "농민들에게 월급을 주자"였다. 밥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들. 그 밥을 위하여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 그러나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빚만 늘어나는 사람들. 그들에게 우리는 생계를 빚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생계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기본소득과 연계하여, 우리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 "월급"을 주는 방안. 이 시를 보자. 그들이 생산한 밥에는 이러한 것들이 들어있는데... 그 밥이 그냥 편하게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시집. 정치인. 그리고 아직도 진행형인 "조국". 그러한 조국으로 가야겠다는 시인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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