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무더위에 긴 책을 읽다가는 더위뿐만이 아니라 책에도 눌려 몸이 견뎌내질 못할 것 같다.

 

  책을 고른다. 짧은 책. 그러나 결코 짧지 않은 책.

 

  시집이다. 시를 읽으며 더위를 잠시 잊기로 한다.

 

  제목이 재밌다. "나는 맛있다" 사람을 맛으로 표현하다니. 하긴 사람을 냄새로 표현하기도 하니, 맛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제목이 된 이 시를 본다. 근데 맛이 없다. '생각 속에 물고기들이 산다'로 시작한다.

 

  생각 속의 물고기. 먹을 수가 없다. 그래도 생각 속, 머리 속의 물고기를 생각하니 조금 시원해진다. '물고기들은 날마다 싱싱해진다. / 물고기들은 자지 않고 헤엄친다.'고 한다.

 

생각 속의 물고기를 생각한다. 물고기가 눈 앞에서 헤엄을 친다. 싱싱한 물고기가 생생하게 물을 헤치며 나아간다. 다가온다. 물의 이미지. 그래, 더위 앞에서 물은 어느 정도 더위를 식혀 주지. 조금 안심이 된다.

 

시집을 계속 넘긴다. 때로는 어떤 시에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숲을 오르다 쉼터에서 숨을 고르듯 어떤 시는 나에게 조금 쉬어가라고 한다. 이땐 쉬어야 한다. 쉬지 않고 계속 가다간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진다.

 

그러다 한 시를 만난다. 뭐야 이 시?

 

'레이싱 마을의 전력 질주'란 시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력 질주를 해오지 않았던가. 그렇게 해왔기에 허덕거리며 끝도 모를 종착지를 향해 달리기만 하지 않았는가.

 

경주마처럼 앞 옆을 가리고 오로지 앞만 보며 달리기만 강요당한 삶을 살지 않았는가. 지금까지이 우리 사회는 이런 '레이싱 마을'이 아니었던가.

 

얼마나 심한 '레이싱 마을'이었으면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를 다 쓰겠다는 말에 사람들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겠는가. 물론 대통령이 낸 휴가가 진정한 휴가라고 하기엔 좀 그랬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자신해서 휴가를 내고, 전력 질주를 멈추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시가 참... 각종 마을 구성원이 나오는데... 이게 참... 어떤 비유라고 해도 좋고, 아니라도 좋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연상시키는 것만은 확실하다.

 

레이싱 마을의 전력 질주

 

내가 피리를 불며 달린다.

영희가 인형놀이를 하며 달린다.

베르테르가 권총을 들고 달린다.

 

잠깐, 베르테르가 소리친다.

내가 당신들과 함께 달린다는 건 전혀 낭만적이지 못하오.

 

베르테르가 총알을 맞고 즐겁게 달린다.

 

달리기는 계속된다.

 

무대가 기타를 치며 달린다.

재떨이가 담배를 피우며 달린다.

가위가 이발을 하며 달린다.

출발점이 결승점을 들고 달린다.

 

잠깐, 가위가 소리친다.

대머리가 되는 건 전혀 우아하지

말을 막으며 그들이 소리친다.

입 닥치고 달리기나 해.

 

가위가 하여간 달린다.

 

달리기는 계속된다.

 

철수가 팽이를 돌리며 달린다.

팽이가 연필을 깎으며 달린다.

연필이 칼을 갈며 달린다.

칼이 지우개를 지우며 달린다.

 

잠깐, 지우개가 소리친다.

이렇게 사라지는 건 전혀

입 닥치고 달리기나 해.

 

지우개가 막무가내로 달린다.

 

박장호, 나는 맛있다. 랜덤하우스, 2008년 초판 2쇄. 89-91쪽. 

 

 

이제는 달리기만 하지 말자고 한다. 걷기도 하자고, 쉬어도 가자고.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고, 아예 그 자리에 멈추기도 하자고. 굳이 앞으로만 앞으로만 쉬지 않고 달리지는 말자고.

 

그런 세상이 이제는 되었다고. 쉬어야 오히려 달릴 수 있다고. 쉼이 달림보다 더 중요하다고. 그런데도 아직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입 닥치고 달리기나 해.'

 

하지만 우린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쳐야 한다. '너나 입 닥치고 그만 멈취.' 

 

그렇다. 지금은 멈춰야 할 때다. 쉬어야 할 때다. 무턱대고 앞으로만 달리는 시대는 지났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앞으로만 달리라고, 전력 질주 하라고 했다. 종착점은 없다.

 

대학이 종착점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0인 출발선에만 서도 좋겠다고 한다. 이미 이들은 종착점이라고 도달한 곳이 출발점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출발점이 결승점을 들고 달린다'는 표현처럼 지내왔다.

 

이젠, 아니다. 이 시 읽어보자.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왜 달려야 하는가. 꼭 달릴 필요가 있는가.

 

누가 우리에게 '입 닥치고 달리기나 해.'라고 하는가. 그 사람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입 닥치고 멈춰.'라고.

 

무더위. 쉴 때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시, 읽으며 정말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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