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일정이 확정되었다. 불의의 일로 대선이 앞당겨져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인수 기간도 없이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인수인계없는 정치. 단절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 단절이 새로운 우리나라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인수라는 것은 잘한 것을 받아들여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뜻인데... 도대체 무엇을 잘했는지 알 수 없으니, 차라리 이런 절차 없이 바닥에서 시작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앞으로 두 달도 안 남은 기간 동안, 엄청난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들의 정책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면 나올수록 우리들이 판단할 것이 많으니 더 좋다.
문제는 정책들이 아니다. 정책 경쟁보다는 쓸모없는 말들이 더 난무할 것이다. 상대방을 비방하는 말, 근거 없는 추측들이 누구의 입에서인지 모르게 나오고, 아님 말고 식의 폭록전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 말들의 홍수 속에서 정확한 정보를 짚어내주어야 할 언론도 자기들 입맛에 맞는 말들만 내보낼 것이고, 우리들은 어느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헷갈려 할 것이다.
그래서 각자 믿을 만한 언론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만의 통로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려 할 것이고, 자기들의 구미에 맞는 말들만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가짜 뉴스'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는데, 자기들 멋대로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일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현실이니, 뒤로 돌아다니는 온갖 말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진실은 감추어서는 안 된다. 흑색선전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투명한 정보공개에서 나온다.
자기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공개해야 할 것은 공개하는, 그래서 누구나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그런 말들이 이제는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진실을 감추는 말 속에서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너무도 힘든 길을 가야 한다.
꼭 정치권이 아니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생활, 투명한 생활을 하면 이런 더러운 말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혹 나타나더라도 금세 사라지고 만다. 더이상 속이거나 왜곡할 것이 없으니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데... 이병일의 시집 "옆구리의 발견"을 읽다가 이런 시를 발견했다. 제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나는 정신분열증의 탈을 쓴 귀신이죠. 아가리만 날카로운 귀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니기를 좋아하죠. 팔도 다리도 없는데, 잘도 뛰어다니죠. 장벽처럼 격조 높은 성북동 여편네들의 엉덩이나 입꼬리에 자주 붙어 다녔죠.
나는 어둠 속에 있기를 더 좋아했으나 햇빛도 두려워하지 않죠. 떼지어 다니거나 혼자 다녀도 움츠리는 법 없이 캄캄한 지구 위를 바람보다 더 빨리 달리죠. 나는 복사기의 빛처럼 서로에게 이방인으로 읽히죠.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 꼬리를 셀 수도 없이 흘리고 다녔죠.
나는 형형색색의 찌라시, 창밖을 서성거리며 호시탐탐 적을 노렸죠. 총알 파편으로 퍼지는 권태가 되기도 했죠. 간밤 내내 나는 외롭지 않았죠. 바리움을 과다 복용한 우울氏를 저승으로 보냈으니까요.
지금도 호사가들의 입방아들은 나를 툭툭 털어내지 못했쬬. 나는 복고풍 유행으로 번져가는 리트머스, 아무도 증명할 수 없는 영험한 귀신, 그러나 나는 신출귀몰의 사생아, 호들갑 떠는 애증의 치부, 수없이 얼굴을 바꾸며 쏟아지고 지워지는 맛있는 입술이 되었죠. 이제 침 뱉듯 나를 음부에 숨은 꽃잎마냥 까발려볼까요?
이병일, 옆구리의 발견, 창비, 2012년. 108-109쪽.
우리들이 경계해야 할 것, 그것이 바로 제목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것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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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바로 '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