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와 왕국 알베르 카뮈 전집 8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의 제목을 단 작품을 찾으면 없다. 이 제목은 이 소설집의 전체적인 주제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니까 각각 다른 제목을 달고 독립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을 하나의 주제로 꿰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제목이다. 그러니 제목에 해당하는 소설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말 것.

 

또다시 카뮈다. 무언가 몽롱한 환상상태로 나를 빠뜨린다. 무어라 딱 정리할 수 없는, 그러나 자꾸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소설들. 이야기들. 카뮈의 이번 소설을 읽으며 자꾸만 카프카의 소설들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도대체 이 몽환적인 분위기는 뭐지.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이런 분위기로 소설이 전개되고 있는데, 카프카 소설에서 느끼는 그런, 어두움 속에서 헤매게 하는 그런 분위기를 또 느끼고 있으니...

 

그래도 이 작품집에는 내용이 명확한 것도 있다. 그냥 어둠 속에서 꿈속을 헤매듯 두손을 허우적 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소설, 그러나 읽고 난 뒤 뭔가 생각하려면 또다시 헤매야 하는 그런 소설들.

 

제목에서 이 점을 너무도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적지와 왕국" 번역자가 지금으로부터는 조금 먼 과거에 활약했던 분이라서 제목이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적지'는 적의 영토가 아니라 유배지, 추방지 정도라고 하면 될 듯하다.

 

즉, 자신이 살고는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장소는 아닌 곳, 그곳이 바로 '적지'다. 그렇다면 '왕국'은? 바로 '적지'의 상대어다. 자신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살고 싶은 곳, 이상향, 유토피아 정도가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왕국'이다.

 

그렇다면 제목인 '적지와 왕국'은 비루한 현실에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이상 세계를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뜻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서문에 이런 뜻이 잘 나와 있다. 서문을 직접 보자.

 

  이 단편집은 다음과 같은 6편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간부>, <배교자>, <말없는 사람들>, <손님>, <요나>, <자라나는 돌>이 그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주제, 즉 '적지'의 문제가 내적독백에서부터 사실주의적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여섯 가지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사실 이 여섯 개의 이야기들은 비록 나중에 따로따로 다시 손질하고 다듬긴 했지만 원래는 단숨에 연이어 쓴 것들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또한 문제시되고 있는 '왕국'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들이 마침내 새로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되찾아야 할 자유롭고 벌거벗은 삶 같은 것과 일치한다. '적지'는 그것 나름대로 우리들에게 그런 삶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물론 우리가 그 '적지'에서 예속과 동시에 소유를 거부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서문에서. 9-10쪽)    

 

'적지'에 대해서 절절히 느낄 수 있는 소설로는 아마도 첫번째 소설인 <간부>가 될 것 같고, 간부라고 해서 불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과연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자신의 평범한 결혼생활이 '왕국'이 아니고 '적지'임을 생각하게 하는, 사막 한 복판에서 깨닫게 되는 그런 내용... 물론 명확이 내용이 잡히지는 않지만.

 

여기에 비하면 적지와 왕국이 함께 나오지만 결국 적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을 표현한 소설이 <손님>이 아닐까 싶은데...

 

인종차별을 거부하는 모습에서, 또 권력에 종속되어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모습에서 '적지'에서 '왕국'을 추구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지만, 그가 놓아준 사람이 결국 사람들이 정한 길로 가는 것을 보고서는 '적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닫게 하는 그런 소설. 마찬가지로 <요나>도 그렇다. 세속적인 성공? 이것이 바로 '적지' 아닐까 하게 하는, 카뮈 소설치고는 참 쉽게 읽히는 그런 소설.

 

이 중에서 내 마음에 가장 아프게 들어온 소설은 <말없는 사람들>이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생각 차이, 입장 차이가 얼마나 큰지, 그들에게 과연 소통이 있는지... 왜 노동자들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생각하게 하는. 우리의 지금 현실과 비교해도 결코 달라지지 않은, 그런 노동자들의 현실. 그러나 여기서 노동자들은 말없이 자본가에게 대항이라도 했지, 지금은 그도 불가능한 상태 아닌가 하는, 그런.

 

이런저런 이유로 여섯 편의 단편이 '지금-여기'의 삶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리라'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카뮈의 말처럼 그냥 현실에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무언가 "찍"소리라도 내야 한다.

 

밟았는데 꿈틀거리지도 않는 지렁이는 너무 세게 밟혀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그 고통을 당연스레 받아들이는 자기 의지가 없는 지렁이일 뿐이다. 꿈틀거려야 한다. 그래야 '적지'에서 '왕국'을 꿈꿀 수가 있고, '왕국'을 '적지'로 가져올 수가 있다.

 

그 점을 생각하게 한 소설들이다. 카뮈, 읽을수록 잘 모르겠지만, 읽을수록 왠지 매력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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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9-08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책 저도 처음이네요! 저장해둬야겠어요~^^

kinye91 2016-09-08 08:27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 책세상에서 나온 김화영 번역의 카뮈 전집을 읽고 있어서 읽게 됐어요. 카뮈 작품으로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인데, 저는 좋게 읽었어요.

[그장소] 2016-09-08 09:08   좋아요 0 | URL
책세상 에서 나온 카뮈는 대부분 다 본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