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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식사 - 2012년 제27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이재무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8월
평점 :
2012년 27회 소월시문학상을 받은 작품집이다.
예전에는 소월시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냈었는데, 이 27회 수장작부터는 후보작들을 제외하고, 수장작과 수상시인의 자선 시들을 모으고, 그의 자서전, 그리고 그에 대한 비평들을 실어 책으로 엮기로 했다고 한다.
그 첫 책인데... 이재무의 시집은 예전에 [시간의 그물]만 읽었다. 시가 참 좋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음을 울리는 시들도 많았고, 시어들이 추상적이지 않고 직설적이어서 이해하기도 쉬웠다.
직설적인 언어지만 상징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직설적인 언어 속에 너무도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시들, 그리고 삶을 생각하게 하는 시들이었다.
이번 수상작 모음도 너무 좋았다. 시들 하나하나가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어느 시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2012년까지 발간된 이재무의 시집 중에서 시인이 선택한 시들을 시간의 역순으로 엮어냈는데... 이 중에 두 시가 내 머리 속에 계속 남아 있다.
땡감
여름 땡볕
옳게 이기는 놈일수록
떫다
떫은 놈일수록
가을 햇살 푸짐한 날에
단맛 그득 품을 수 있다
떫은 놈일수록
벌레에 강하다
비바람 이길 수 있다
덜 떫은 놈일수록
홍시로
가지 못한다
아, 둘러보아도 둘러보아도
이 여름 땡볕 세월에
땡감처럼 단단한 놈들이 없다
떫은 놈들이 없다
2012 제 27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인 시선집, 이재무 길 위의 식사, 2012년. 164쪽.
1990년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에 실려 있는 시다. 이 시집이 그의 두 번째 시집이니 초기시라고 할 수 있다.
길 위의 식사
사발에 담긴 둥글로 따뜻한 밥 아니라
비닐 속에 든 각진 찬밥이다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 아니라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
고수레도 아닌데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며 먹는 밥이다
반찬 없이 국물 없이 목메게 먹는 밥이다
울컥, 몸 안쪽에서 비릿한 설움 치밀어 올라오는 밥이다
피가 도는 밥이 아니라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밥이다
2012 제 27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인 시선집, 이재무 길 위의 식사, 2012년.17쪽.
이 시가 바로 소월시문학상 수상작이다. 그의 최근작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시에서 시인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세상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때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땡감'에 잘 나타나 있다.
떫어야 단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자신에 맞추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옳음을 견지하고, 그 옳음이 관철되게 노력하는 삶.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 세상이 바로 설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말했다. '이 여름 땡볕 세월에 / 땡감처럼 단단한 놈들이 없다 / 떫은 놈들이 없다'고.
그 결과가 무엇인가? 바로 '길 위의 식사'다. 이 시에는 주어가 없다. 주어가 없다는 것은 '밥'에 해당하는 것을 우리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밥'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가? 함께 웃으며 또는 슬퍼하며 서로 위로하고 기뻐하는 삶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모른체 하는, 나만이 홀로 살아가는, 그것도 여유를 갖고 살아가지 못하고, 허겁지겁 그냥 세상을 살아내는 그런 삶이 바로 지금의 '밥'이란 얘기다.
'땡감'처럼 살지 못했기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길 위의 식사'처럼 되고 만 것은 아닌지... 시인의 초기시와 최근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시인의 시가 초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발전해 간다고 그래서 초기시는 의미없다고 우리가 말해서는 안된다. 시는 시간을 불문하고 진실을 품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진실은 바로 이재무의 초기시 '땡감'에 있다. 그런게 '떫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길 위의 식사'를 벗어나 그가 말한 '둥그런 식사'('멍석'의 마지막 구절에서)를 할 수 있다.
시도 좋고, 자서전도 읽을 만하고, 작가론, 작품론, 비평문 모두 읽을 만하다. 이재무의 시세계에 대해서 적어도 2012년까지는 잘 정리해 놓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