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창간호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벌써 99호다. 곧 100호가 된다. 꾸준히 나왔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우리나라 교육에 아직도 이런 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교육이 좋아진다고 해도 책은 필요하다. 교육에 관한 책은 현실을 넘어 다른 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늘 현실의 교육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00호가 되면 무언가 느낌이 다를까?
"민들레"는 꼭 그럴 것 같지 않다. 지금의 교육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교육을 향해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들레"는 각 호 하나하나가 다 교육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민들레" 과월호가 계속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겠다.
이번 호의 특집은 "놀이와 놀이터"이다. 참 중요한 문젠데, 그냥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는데, 민들레에서 다뤄주고 있다.
아이들이 놀 줄 모른다고 한탄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아이들은 놀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놀 시간이 없는 것이다.
놀 시간이 없기에 놀아본 경험이 없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빼앗아 놓고도 어른들은 아이들 탓만 한다.
여기에 대형사고들은 가진 자들이 일으키고 책임은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지운다.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한다.
조금만 위험해 보여도 아이들의 접근을 막는다. 도대체 아이들이 모험을 할 수가 없다. 모험을 하지 않은 아이들... 어떤 어른이 될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어른이 아니라, 나이 먹어서도 누군가가 지시해주기를 기다리는 그런 어른, 몸만 어른이고 정신은 아이인... 아니 이런 식으로 가면 아이만도 못한 어른이 되기 십상이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보라. 아이들에게 시간만 주어진다면 아이들은 무한한 놀이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시간을 빼앗으면 아이들은 놀지도 못한다. 놀라고 공간을 만들어 주어도 놀 수가 없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아이들 놀이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의 문제다. 아이들에게 심심할 시간을 주어야만 한다. 심심해서 무언가를 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정말 심심할 시간... 그런 시간을 주어야 한다.
여기에 어른들은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어른들은 그냥 아이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요인들만 제거해주면 된다. 위험요인들을 제거해야지 모든 위험을 제거해서는 안된다.
(이런 내용은 이번 호에 실린 편해문이 쓴 '위험한 놀이터에서 삶을 배운다'에 잘 나와 있다. 영어 단어로 Hazard와 Risk를 구분해서 어른들은 Hazard를 살피고, 아이들은 Risk를 만나야 한다는 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렇다. 아이들을 놀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교육'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이다.
하다못해 청소년들에게 멍때릴 시간을 확보해주는 일부터라도 해야 한다. 교육이라고 해서 꼭 학교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민들레"는 이렇게 교육에 대한 생각을 확장한다. 그리고 교육학자들이 말하는 교육에서 배움으로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배움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앞으로도 계속 "민들레"는 이렇게 배움에 대해서 고민하고, 더 나은 배움을 이룰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민들레 99호"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