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편지 -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카프카 전집 9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세훈 외 옮김 / 솔출판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독한 사랑이구나, 이런 사랑은 집착이지 않을까,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사랑을 하는구나,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이런 사랑.

 

카프카가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든 사랑에 대한 개념이다. 어쩌면 광적이지 않을까, 정신병적이라는 말이 들어맞는 그런 편지들이다.

 

사랑한다고? 단 한 번을 만나보고서? 무슨 운명적인 사랑? 작가적 감수성으로, 자신의 인생에 느닷없이 들어와버린 펠리체란 여인에게 카프카는 열정적으로 편지를 보낸다.

 

첫편지 이후, 그는 거의 매일 여러 통의 편지를 쓴다. 그리고 매일 편지를, 하다못해 그냥 서명이 든 엽서라도 보내 줄 것을 펠리체에게 요구한다. 편지가 오지 않으면 왜 편지를 하지 않았냐고 징징거리는 편지를 보낸 카프카.

 

그의 작품에 나오는 분열적인 모습, 광적인 모습, 자신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화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과는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고 있는 모습을 그의 편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나 할까.

 

이렇듯 열정적으로 펠리체의 사랑을 갈구하던 그는, 어쩌면 펠리체라는 살아있는 육체를 지닌 여인이 아니라,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이상적인 여인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남보다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루어질 수 없고, 이루어져서도 안되는 그런 사랑이 되어버리고 만다.

 

신은 멀리 있어야 한다. 인간의 세계에 내려온 신은 이미 신이 아니다. 그는 박해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인간과 함께 했기에 신성을 잃고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화된 신은 카프카에게는 견딜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러니, 자꾸, 멀어질 수밖에...

 

자신에게 필요한 공간은 지하실이라고 하는 사람, 그런 자신에게 식사를 제공해줄 사람만을 필요로 하는 사람, 그에게는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이 카프카와 펠리체 만남의 비극이다.

 

이년 동안은 격정적으로, 그리고 두 번의 파혼으로 그들의 관계는 끝나고 만다.

 

약혼을 하고 함께 살 준비를 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편지로 주고받던 이상적인 세계와는 다르게 현실의 세계는 그들을 부딪히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함 부딪힘 속에서도 관계를 이어나가던 그들은 한 번의 파혼, 그 다음 간신히 이어져 나가던 관계를 현실에서 이룰 수 없음을 안 카프카에 의해서 두 번째 파혼이자, 영원한 이별로 이어진다.

 

카프카는 두 번째 이별의 근거로 자신의 폐병을 들고 있지만, 사실 폐병이 아니더라도 이들의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리라. 이상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사랑과 현실의 세계는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편지들은 소중하다. 카프카의 내면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문학에 목숨을 걸고 있었는가를 편지들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이 그를 지금도 우리에게 읽히는 작가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에게는 몇 년 동안 펠리체는 살아있는 육체를 지닌 사람이라기보다는 문학으로 존재했다고 해야하니까. 펠리체로 인해서 그는 문학을 살 수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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