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흐름에 휩쓸렸을 때는 자신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격랑 속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칠 뿐이다.

  

  그렇게 강물에 떠다니던 나날들이 지나고, 과거를 생각해 보면 그 때 무엇을 했던가 하는 후회에 잠기게 된다.


  역사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들 대부분의 삶이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발톱이 있다. 비록 필요없다고, 지저분하다고 깎아버리기 일쑤지만 발톱이 빠진 상태를 생각해 보라. 걷기에도 힘들다. 발톱이나 손톱은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고, 또 다른 존재들을 움켜쥐게 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발톱을 스스로 깎는다? 저항하기를 포기한다고 읽히는데... 장경린의 이 시를 보면 역사의 격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삶이 혁명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 드러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강물 위에서 발길질을 하는 물오리도 되지 못하고, 그냥 흐름에 맡겨 이리저리 떠다니는 신세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움켜쥘 발톱, 손톱을 스스로 깎아버린 존재.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를 돌아보면서 발톱이 미미하지만 그래도 자신을 지켜주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는데...


오래 전에 쓰인 이 시를 읽으면서 최근 우리도 발톱을 스스로 깎아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아가겠다고, 더 이상 저항은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손톱, 발톱을 깎아버렸다는 생각. 시 한 편... 읽으면서, 내게 아직도 발톱과 손톱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발톱


발톱을 깎았다

깎은 발톱은 버렸다


불통인 가정과 미친 척 통화했다

어머니는 백발의틀니의꾸부정의신경질의 생존자

아버지는 경제적무능력꿈의무중력아무튼무책임한 과식주의자

가정의 발톱을 깎아주고

구둣솔로 먼지를 털다가

물오리처럼 떠다닌 그들의 일대기가 혁명이었음을

5·16 군사혁명 언저리에서 나를 구겨 신고 태어난

내가 물오리였음을 발견한다


예비역 병장인 나의 한국은행 예비군 대대의

예비역 병장인 나의 혁명은

근로자 증권저축 속에서

탁상일기 속에서

손톱깎이 이빨 사이에서

잘려져 나간다


돌이켜 보면 어제가 나의 혁명이었다

돌이켜 보면 작년이 나의 혁명이었다

흘러가 버린 날들이

좀 긴 듯한 나의 발톱이 혁명이었다


장경린, 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 민음사. 2007년. 개정판 1쇄. 94-95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05-10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발톱을 깎다...발톱으로 이런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다니 역시 시인은, 시는 놀라운 세계네요

kinye91 2022-05-10 14:21   좋아요 2 | URL
같은 존재를 다르게 보는 눈을 지닌 사람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를 읽다보면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많거든요.

그레이스 2022-05-11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톱에 비유하다니 탁월합니다.
잘려나가는 존재!

kinye91 2022-05-11 22:00   좋아요 1 | URL
비유를 통해 진실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