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하면 얼굴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을 머금게 될까?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찡그린 얼굴이 될까? 과연 아이들은 학교에 오고 싶어할까?
학교란 공간은 학생들에게는 자유를 상실한 공간, 자신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교사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그런 공간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하는 말들이 '해라'와 '하지 마라'는 명령형으로 끝나는 말들이 대부분일텐데, 그런 공간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학생들의 말에 귀기울여 주는 교사들이 있고, 학생들이 원하는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무엇보다도 격의 없이 교사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학교라면 그 학교에 가고 싶을 수도 있겠다.
이 시집을 낸 최은숙 시인은 교사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시로 표현했다. 이 시집은 청소년시집이고, 청소년들이 읽으면 '와, 우리 이야기네.' 할 수 있는 그런 시들이 많이 실렸다.
학생을 이해해주는 교사의 모습은 완벽한 교사가 아니다. 허점이 있는 교사다. 학생들에게 배울 수 있는 교사다. 그런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딱이다. 이 시들은 그런 교사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배시시 웃음이 배어나온다. (선생님은 우리한테 딱이다, 비밀, 깜빡하기, 무서운 상민이, 선생님께 하는 부탁, 핵인싸각 등등)
또한 마을 사람들과 정겹게 지내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고,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과 지내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다. 그러니 이 시집을 읽으면 웃음이 있는 학교를 떠올리게 된다. 학교가 이렇게 웃음으로 충만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학생이 졸업을 한 뒤에도 자기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그런 학교. (우린 운이 좋다 언제나)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행동하는, 마을과 학교가 동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하는 모습, 그야말로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그런 시가 있다.
정말 이런 학교, 이런 마을, 이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이 세상에서, 학교가 담장을 굳게 치고, 교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인 통제를 하며, 심지어 학생들도 한번 등교하면 하교할 때까지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단절된 공간이 아닌, 열린 학교, 함께 하는 학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시를 읽으면서 그 정경이 눈에 그려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랬으면 좋겠다. 우리들이 학교를, 학생을 대하는 모습이.
알고 보니
올봄에도 아이들이 쑥 뜯으러 나올 거라고
동네 어른들은 둑길에 제초제를 뿌리지 않았습니다
쑥 뜯는 동안 자동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은 것은
다들 뒷길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공부 안 하고 놀러 나온 게 좋아서
장난치고 도망가고 야단법석
그래도 쑥이 모자라지 않았던 것은
방앗간 사장님이 뜯어 놓았던 쑥을
한 소쿠리 보태 주셨기 때문이에요
학교 앞 솔로몬문방구랑 스마일분식, 독립상회까지
떡을 돌리고도 전교생이 실컷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엄마들이 쌀을 듬뿍듬뿍 퍼 주셨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선생도 자라고
마을은 깊어 갑니다
최은숙, 지금이 딱이야. 창비. 2021년. 87쪽.
참 아름다운 정경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 그렇다고 아이들이 어른들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느냐 하면 아니다. 아이들은 공부 안 하고 나와서 논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들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애늙은이처럼 어른들이 우리를 배려하고 있으니, 우리 최선을 다해서 쑥을 뜯자가 아니다.
그냥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즐겁게 논다. 즐겁게 놀아도 된다. 이 놀이가 언젠가는 그들의 마음에서 서서히 자라리라. 그들도 남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굳이 지금 그렇게 하라고 도덕적인 말로 훈계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채우지 못한 쑥은 마을 사람들이 채우면 된다. 아이들과 함께 쑥떡을 먹는 그런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우리가 공동체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이런 어른들의 마음을 자라면서 알게 되리라. 시 제목이 '알고 보니'다.
왜 아이들이 이렇듯 편안하게 쑥을 뜯을 수 있었는가, 마음 놓고 놀 수 있었는가 하니,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을 배려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공동체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학교와 마을의 관계다.
이 시집에 실린 시 한편 한편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청소년들이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될 언어들로 시가 쓰였고, 또 자신들의 이야기가 표현되었으니, 시를 가까이하는 청소년들이 이런 시집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