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다"라는 문장으로 이번 호를 시작한다. 이번 호에서는 민주주의 특집이다. 도대체 민주주의가 무얼까?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제대로 답변을 못하게 된다.
그냥 막연하게 민주주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치열하게 또 치밀하게 민주주의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또는 형식적 평등을 민주주의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거나, 선거 때가 되면 동등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행위를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어려운 문제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에도 너무도 다양한 편차가 있다. 극우에서 주장하는 민주주의와 극좌에서 주장하는 민주주의, 그리고 중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민주주의, 중도라고 해도 다시 중도 좌파와 우파가 주장하는 민주주의에도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식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나 싶다. 특히 형식적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에는 본질은 쏙 빼버려도 형식만 갖추면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깃들어 있지는 않은지 의심하게 된다.
수차례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형식적 민주주의는 달성했다고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폭과 깊이에서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가?
민주주의의 정의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뜻을 백날 정의해도 실천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아닌가.
이번 호에서 '민주주의가 유일한 대안이다'라는 좌담에서는 그래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다룬 글들이 실려 있는데...
이 중에 서로 상충되는, 그래서 서로 보충해야 하는 글들도 있다. 즉, 비례대표 연동제와 추첨민주주의... 언뜻 보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비례대표제는 대의제를 대표하는 정치 체제이고, 추첨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정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비례대표제가 그나마 제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위성정당 논란이 있듯이 비례대표제가 왜곡되어 실현되었다. 그러니 비례대표제로 가자는 주장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니콜라스 코코마가 쓴 '추첨제 민주주의의 귀환'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재의 정치제도의 많은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고, 또 단지 정치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영역에까지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것을 꿈꾼다. 그럼에도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그들의 도구는 여전히 과두제 방식(선거, 정당, 정치인)이다. (79쪽)
비례대표제도 문제가 많은데,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대의제를 택해서 선거날 투표 한 번으로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이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와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전문적인 집단(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 교육 수준으로는 대졸 이상, 사회에서 통용되는 직업 종류에서 중간 이상 등등)에게 넘겨주고 마는 현상이니...
정치적, 경제적 사안에 대해서 참여할 수가 없는 구조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되, 정책 입안에서는 소외되어 있는 현실. 그러므로 기껏 정책에 참여하는 길은 시위를 통한 압력 밖에 없다. 반영이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그러한 방법으로 제도권 밖에서 행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니. 지금 정치권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입법 과정을 보라. 그리고 정치권에서 벌이는 정책들을 보라. 여기에 민중의 참여가 어디에 있는지...
그러니 많은 부분에서 민주주의에 어긋난 결정들이 나와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를 겪어도 정부에서 주도하는 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고, 이 사태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 어떠한 참여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와 민주주의(박승옥), 기술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이광석), 자기절제와 민주주의(야보르 타린스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가(야니스 바루파키스) 등의 논의를 통해 민주주의의 정의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 사회가 될 수 있는가?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인류세를 극복할 수 있을까(인류세에 인간을 다시 생각하며-노면 위즈바)를 생각해야 한다.
결국 교육이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학습하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정현이)'은 생각해 볼 만하다. 여기에 다른 논의들도 민주주의가 우리의 삶에 필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에 산적해 있는 수많은 난제들, 소수의 전문가들이 해결할 수 없다. 또 그들에게만 해결을 맡겨서도 안된다. 민주주의...바로 주권자들의 참여로 실현할 수 있다. 좀 더디더라도 그것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라는 인식을 지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참여민주주의가 가능한 분야에서부터 시도해 보아야 한다.
이번 호는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