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포트킨이 생각났다. 상호부조론. 쉽게 말하면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의미.

 

  우리는 서로 얽혀 있다. 연관되어 있다.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은, 나는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것. 내가 유일한 존재가 될 때 다른 존재 역시 유일한 존재라는 것.

 

  우리는 유일한 존재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런 세상이 따스한 세상이다. 적자생존이라든지, 약육강식이라든지 하는 말들이 세상을 규정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말들보다 앞서 있는 것이 바로 상호부조다.

 

우리는 서로 돕고 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서로 돕고 살지는 못하더라도 따뜻한 외면을 할 수 있다. 외면은 본래 따뜻한 것이 아니라 차가운 것인데, 상대를 돕기 위해 외면할 때 그때는 따뜻한 외면이 된다.

 

남들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 상대를 위하는 것일테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외면해줄 때 상대를 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복효근이 쓴 이 시집을 보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러한 시들이 많다. 그 중에 시집의 제목이 된 '따뜻한 외면'을 보자.

 

  따뜻한 외면

 

비를 그으려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가

나뭇잎 뒤에 매달려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

나비 쪽을 외면하는

늦은 오후

 

복효근, 따뜻한 외면, 실천문학사. 2013년. 43쪽.

 

따스하다. 관심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관심을 주어야 하고, 외면하는 것이 좋을 때는 외면할 수도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내 관점에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능력, 감수성을 지닌 것이다.

 

이런 감수성이 더욱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한다. 오로지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한 가지 기준으로 사람들을 줄 세우는 그런 사회보다는, 공정성이 획일적이지 않게 각 사람에 맞는, 또는 각 존재에 맞는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니는 것.

 

그런 세상에 대한 꿈을 꾼다. 시를 읽으며.

 

이와 비슷하게 시집에서 '장작 패는 법'이라는 시에서 한 구절을 마음에 새긴다. 이 역시 '따뜻한 외면'이리라.

 

           (생략)

 

제 몸의 상처를 감싸고 돌처럼 굳어진 옹이엔

도끼날을 들이대지 않아야 하네

옹이는 나무의 사리이므로

상처를 사리로 만드는 기나긴 나무의 생에 대한 예의이므로

온몸에 불을 붙이고 제 갈 길 제가 밝히고 가는 장작,

장작에 대한 예의이므로

 

복효근, 따뜻한 외면, 실천문학사. 2013년. '장작 패는 법'에서.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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