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자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자기가 말할 때가 아니라 녹음해서 들리는 자기 목소리를.
참 낯설다. 저것이 내 목소리라니... 아닌데... 내가 말하면서 듣는 목소리와 다른 매체에 녹음되었다가 들려오는 소리는 다르다. 내가 모르던 소리다.
그렇다면 내가 막말을 하고, 그 소리를 녹음해서 듣는다면, 내가 막말을 할 때 듣는 소리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녹음 한 소리를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막막할 때와 같은 마음을 지닐 수 있을까? 이것이 내 목소리라는 것을 모르고 들을 때 나는 그 막말을 하는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느낄까?
궁금하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온갖 막말들을 내뱉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자기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김경주의 시집, '고래와 수증기'를 읽다가 '비어들'이란 시를 발견하고, 지옥으로 초대하는 말을 떠올리게 됐다.
비어들
거울 앞에서 입을 벌린다
입안은 저승이다
저승은 거울 속에 있다
입을 벌리고
우두커니 거울 앞에 서 있는 그는
잠시 저승을 엿본다
오직 그의 한 눈만이
입안의 저승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한 눈은 아직 이쪽에 있으므로
저승의 언어는 입안에 있다
입을 닫으면
저승은 닫힌다
지금 저승은 저곳의 세계가 아니라
이곳의 언어다
거울은 우리에게 저승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물성이다
우리의 눈은
거울 속 입으로 걸어가는
이승의 언어다
언어가 피해갈 수 없는 저승은
그 사람의 입안에 있다
침묵처럼
김경주, 고래와 수증기, 문학과지성사. 2014년. 72-73쪽.
'들'이란 말이 붙었으니 어떤 대상을 나타내는 말일 테고,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비어'에 해당할 수 있는 말이 이 정도일 거라고 추측했다. 날치를 뜻하는 말인 비어(飛魚)는 아닐 것이고, 시의 내용으로 말과 관련된 낱말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 한자어를 같이 쓰지 않았기 때문에 추측을 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는 세 낱말이 모두 해당될 듯하다.
비어 01(卑語/鄙語):「1」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 ≒비언02(鄙言).
「2」대상을 낮추거나 낮잡는 뜻으로 이르는 말.
비어03 (飛語/蜚語): 근거 없이 떠도는 말
비어04 (祕語): 비밀스러운 말. 범죄자들이나 비밀 단체 요원이 남몰래 자신들만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쓴다.
이 풀이를 참조해서 시를 읽어보면 입안이 지옥이라는 말은 우리가 뱉은 말들이 지옥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입안에 있는 컴컴해서 보이지 않는 심연, 그곳이 지옥일 수 있다는 것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순간, 그것도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순간, 지옥의 문이 열린다는 것.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지옥을 보지 못한다. 지옥을 보기 위해서는 거울이 필요하다. 다른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자기가 뱉은 말을 그 자리에서 듣는 것으로는 지옥을 볼 수 없다. 그 말을 뱉은 순간을 다른 존재들을 통하여 다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옥을 볼 수 있다. 눈 앞에 보이지 않던 지옥이 눈 앞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지옥은 부정하기 쉽다. 한 눈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한 눈으로만 본다는 것, 지옥을 부정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지옥을 닫을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니 지옥을 보아야 한다. 나 자신에게 지옥이 있음을, 그 지옥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은 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지옥 문을 활짝 열고 온갖 비어들로 지옥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자기 몸 속에 난 엄청난 지옥을, 그 지옥으로 초대하는 온갖 말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정치가들... 자기 생각에 갇힌 사람들...
이들은 자신의 입안에서 나온 비어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지옥으로 초대하는 말임을 알까? 그런 생각을 할까? 그래서 거울이 필요하다. 자신의 반대편에서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실제 생활에서 거울을 볼 수 없다면, 굳이 그것이 거울이라는 물체여야 할까? 거울은 도처에 있지 않은가. 바로 자신 곁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거울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거울을 보지 않게 아예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이 눈을 뜨고 거울을 볼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막말들, 갑질들-여기엔 비어들이 한몫 한다-이 지옥으로 초대하는 말임을, 김경주 시 '비어들'을 읽으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