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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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이 소설을 소개할 필요는 없다. 세계문학전집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명작이라고 할 필요도 없다. 이 소설은 그야말로 통속소설이다. 옛날 말로 하면 통속잡지에나 실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 그런 소설. 한마디로 싸구려 소설.

 

이렇게 혹평을 하면? 글쎄... 읽히지도 않는 명작과 잘 읽히는 통속소설, 어느 것이 더 좋을까? 작가에게, 아님 독자에게?

 

명작과 통속을 어떻게 구분하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통속이라는 말이 너무 저속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이를 대중이라는 말로 바꾸자고 할 수 있다. 이젠 통속소설이 아니라 대중소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는 소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다보니 자꾸 사람들 입에 회자된다. 회자되면서 작품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들을 하게 된다. 이 말들이 살을 붙여 작품이 점점 심오해진다. 대중소설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계속 읽힌다. 명작을 쓰는 작가라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이 소설에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도 나온다. 이제는 대중소설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명작의 반열에 오른다.

 

세계문학전집에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아, 좋은 소설이겠구나 하고 또 읽는다. 읽기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렇게 소설은 통속, 대중, 명작, 고전을 떠나 자기 자리를 확고하게 만든다.

 

이 소설이 그렇다. 읽으면서 어떤 깊은 의미를 찾으려 할 필요가 없다. 신문 사건사고란에서 볼 수 있는 일이 소설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부랑자가 어느 곳에서 어떤 여인을 만난다. 그 남편이 권하는 대로 그곳에 머무르고, 그 여인과 밀회를 즐긴다. 밀회를 즐기다 보니 남편이 거슬린다. 죽여버려야 한다. 한번에 성공하지 못한다. 이들은 어설프기 때문이다. 이 어설픔이 남들 눈에 다 보이는데, 자기들은 진지하다. 두번째 성공한다. 그리고 이들은 함께 산다.

 

함께 살지만 부랑자는 방랑벽이 있다. 떠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여자는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살인에 공모한 두 사람, 비밀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어긋나지만 이들은 서로를 떠나지 않는다. 이것이 사랑으로 묶여 있든, 아니면 배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묶여 있든.

 

결국 우연이든 의도이든 부랑자는 여자를 죽게 만든다. 자동차 사고다. 그리고 그는 이전 범행까지 밝혀져 감옥에 있다. 감옥에서 교수형을 받을지 집행유예를 받을지, 감면될지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는 상태에서 회고록을 쓴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많이 들어본 줄거리 아닌가. 그런데 제목이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소설 내용에는 우체부(포스트맨을 우편배달부라 번역할 수 있다)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설을 읽어보면 제목을 붙이기 위해 작가와 출판사가 여러 고민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두번 벨을 울리거나 문을 두드리는 우편배달부를 떠올리고, 이것을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두번 벨을 울린다. 여기에 착안을 하자. 소설에서 사건은 두 번 일어난다.

 

우선 그리스인 남편을 살해하는 행동이 두 번 일어난다. 그리고 부랑자인 '나' 역시 두 여자를 만난다. 또 검사에게 '나'가 여자를 배신하고, 여자 또한 '나'를 배신한다. '나'는 여자를 두 번 떠났다가 돌아온다. 같은 검사 앞에 두 번 서게 된다. 보험사가 두 번 등장한다. 경찰도 역시 두 번 등장한다.

 

두 번...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것,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두 번 하다보면 결국 파멸로 향하게 된다. '나'가 감옥에서 교수형을 기다리고 있듯이.  두 번째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소설은 사건의 완결을 향해 두 번 비슷한 사건을 등장시킨다.

 

부랑자인 프랭크와 그를 사랑했던 코라. 이들은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온전히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주는 사랑이 아니다. 여자는 머무르려 하고, 남자는 떠나려 한다. 여기에 살인이 끼어들게 되고... 처음 살인을 저지르려 할 때는 고양이가 등장하더니, 여자를 죽게 만들 때는 고양이과인 '퓨마'가 등장한다.

 

두 번, 두 번은 소설을 비극으로 이끌어간다. 치정살인극이라고 할 수도 있는 내용에 그래도 힘을 주는 것은 이런 제목에 따른 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냥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영화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빠른 사건 전개, 인물들의 단순한 성격 등... 이것이면 된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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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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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1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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