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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 짧은 시, 긴 여운, 감동은 하루를 살게 한다.
중, 고등학교 때 가장 시를 많이 읽었다. 시인들이 속삭이는 언어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의 풍경이 떠오른다. 시어에 울고, 웃고, 분노하고, 아파했다. 통찰력 있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상의 풍경을, 시인은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 했었다. 가장 짧은 언어로 세상의 풍경을 이야기하는 시가 좋다.
최영미 시인을 책으로 처음 만난 건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아니였다. 『시대의 우울』에서 렘브란트를 찾아 헤매는 여정 속에 드러난, 시인의 솔직하고 독특한 감수성이 그이와의 첫 만남이였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에 끌렸다. 시인의 감수성을 키우기까지, 저자가 만난 55편의 시가 모였다. 시를 쓰지는 않더라도 인생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향유하기를 바라는 글에는, 시가 많이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세월이 지나도 다시 낭송했을 때, 처음 만났을 때의 여운과 감동이 그대로 살아있는 시가 좋은 시라 생각한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모든 이를 만족하는 좋은 시보다는, 각 개인에게 더 절실하게 와 닿는 시가 있다 생각한다. 다양한 시들을 접하다보니, 영감을 주는 시에 눈길이 간다.
# 차와 함께 시인과 담소를 나누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시 한 편을 읽는다. 생각에 잠긴 후, 시인의 글이 주는 여운에 대해 글을 쓴다. 시를 바라보는 저자의 글을 읽고, 남은 마음의 흔적을 글로 담는다. 저자와 한 테이블에서 찻잔을 마주하지 않지만, 글의 흔적들을 통해, 담소를 나누는 기분이다.
진짜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거짓말이라 표현한 「불행한 우연한 일치」에는 웃음이, 「여행 길에 병드니」라는 하이쿠에는 애절함이 남아있다. 김수영 시인의 「눈」에서는 천진함을 느꼈고, 마음이 맑아졌다. 사랑을 잃고, 더듬더듬 빈집에 갇혀버린 애련한 상실의 마음이 담긴 「빈 집」에서는, 생각을 마쳤을 때, 차가 식어있었다.
낭송했을 때, 울림을 주는 시가 좋은 시라 생각한다. 읽자마자, 풍경이 그려지고, 생각이 달라진다. 감정이 움직였던 시와는 즐거운 데이트를 한 기분이다. 저자가 따로 남긴 글을 읽어서야 시어가 그려진 풍경과 의도가 느껴지는 저자의 글과의 만남은 시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만나 좋았다. 적어도 시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세상이 삭막하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를 쓰는 시인과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작은 촛불처럼,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다 믿는다.
시인과 함께 시를 읽는 일은 즐거웠다. 한 호흡에, 읽기보다는, 일주일에 한 번, 마음의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 한동안 서가에 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