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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2년 12월
평점 :
파스칼 메르시어와 충만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본명은 페터 비에라. 소설을 집필할 때는 두 명의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과 루이 세바스티앙 메르시에의 이름을 조합한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고 했다. 나는 파스칼 메르시어로 기억할 것같다.페터 비에라보다 더 울림이 좋다. 고등학교 시절 라틴어,그리스어, 히브리어를 배웠고, 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언어의 무게>라는 소설을 써냈다는 것이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2007년 한국 최초 출간, <언어의 무게>는 2020년 현지 출간, 우리나라에서는 2023년 출간되었다. 내가 읽은 순서는 반대였다. <언어의 무게>를 먼저 읽고, 이 작가 너무 좋은데라는 생각에 <리스본행 야간열차>까지 읽었다. 왜 이 두 소설에 이렇듯 빠져들었을까? 차분하게 울려오는 문체가 너무 좋았다. 내가 이런 분위기의 글을 좋아했었구나. 눈에 보이는 뭔가가 아니라 내면을 파고드는 글들이 읽는 내내 너는 어때? 라고 나에게 질문을 던져오는듯했다.
소설 속에 또 하나의 소설. 두 사람의 인생. 글과 언어가 가지는 힘. 수 많은 철학적 사유를 품고 있는 글들. 그 문장들이 전혀 따분하지도, 고루하지도 않았고, 내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묶어두는 것이 신기했다. 사실, 머릿속이 정리가 되기보다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들어와서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그 느낌조차도 싫지 않은 특별한 경험. 나랑은 궁합이 딱 맞았다고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반드시 다시 읽어보게 될 책.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 멜로디를 주는 경험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 관찰의 대상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고, 말은 경험한 것에서 미끄러져 결국 종이 위에는 모순만 가득하게 남는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단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익숙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경험들을 이해하기 위한 왕도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이상하고 묘하게 들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서야 깨어있다는 느낌, 정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p 30~31
그레고리우스는 서점 주인이 읽어 주는 이 서문을 듣고 "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이 서문을 읽고,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