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파티마가 죽고 얼마 안 됐을 때부터였어요. '내부의 마비를 막기 위한 싸움이다.'오빠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러고 몇 주 후에는 '왜 좀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 글을 쓰지 않으면 사람은 결코 깨어 있다고 할 수 없어.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 자기가 어떤 사람이 아닌지는 더욱 알지 못하고.' 이런 말도 했어요. - p 151~152



친구랑 기록의 힘, 읽기의 마무리는 쓰기 등 글쓰기에 대한 얘기를 한 후였는데 이 글을 만났다. 여기에서 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말한 글쓰기와는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사람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을까? 그것이 창작이든, 독후감이든, 일기든, 편지든말이다.


<언어의 무게>에서 주인공 레이랜드는 아내가 갑자기 죽은 후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레이랜드는 그 편지를 쓰게 만든 감정에 대해 뭔가에 대항하여 언어로 스스로를 방어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감정이었다고 말했다. 정당방위로서의 글쓰기라고.



누군가 일주일 전 베른의 집에서 학생들의 라틴어 숙제를 교정하고 있는 그에게, 죽은 지 이미 30년이 넘는 포르투칼 의사이자 시인이었던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 일주일 후 리스본에서 배를 타고, 새 양복애 새 안경을 쓰고 살라자르의 독재 치하에서 고문을 당한 희생자를 만나러 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더라면, 그는 아마 그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베른에 눈송이만 조금 날려도 겁을 내던, 시력이 나쁜 책벌레, 그는 지금도 여전히 바로 그 문두스인가? -p156


이전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를 가끔씩 꿈꾸기도 한다. 그레고리우스의 이 행동을 무엇이라고 불러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의 이런 행보가 부러운 것은 왜일까? 바람만 조금 불어도 겁을 내는 내가 그런 기회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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