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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역사학자 - 그림에 깃든 역사의 숨결을 만나다
이석우 지음 / 문예춘추사 / 2025년 1월
평점 :
역사를 미술로 배웠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나로서는 '머리말'의 미술이란 역사의 자서전이란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학창시절 어렵고도 지루하게 느껴졌던 역사였는데 미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다양한 지식과 안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미술사를 안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유구한 역사에서 태평성대가 있는 반면, 암흑의 시대도 있듯이 미술 작품들도 아름다움과 추함, 단순함과 난해함, 균형과 부조리 등 다양한 형태로써 인간의 마음을 건드리고 있는 것같다. 아름다운 작품들만 존재할 수 없는 이유를 왠지 알것같기도 하다.
역사 속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저자의 글들은 어수선한 시국으로 자꾸 시선을 돌리게 했다. 과거의 일이라고만 치부하고, 애써 고개를 돌리고 싶었던 많은 사건들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많았다. 역사에 대해, 정치에 대해 요즘만큼 깊이 생각하던 때가 있었을까? 대중을 선동한다는 것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 지 느끼고 있는 시점이어서인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등 그의 작품들이 크게 다가왔다. 예술가가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작품은 창조되고, 적게든 많게든 보는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에 새삼 예술이 가지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비드를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그는 나름대로 예술의 성취에 헌신했고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증언자로서 충실하려 했으니 그 자세를 생각한다면 평가에 크게 인색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p192
그래도, 작품에 대한 책임감은 느끼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가 아닐까 싶었다. 책을 읽는 타이밍이 정말 중요한 것같다. 최근 우리 나라가 너무 어수선하다보니 어두운 그림들, 작가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역사적 사건들에 시선이 많이 쏠렸다. 역사에서 인간은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야하는데 왜 나쁜 일들은 반복되고 후퇴하는 일이 비일비재한지. 제 1,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수 많은 예술 작품들은 전쟁의 폐해에 대해서 말했지만, 지금도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어리석다고 해야할까? 콜비츠의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1905년) 질병이나 영양실조, 아니면 누군가에게 살해된 아들을 가슴에 안은 어머니의 처절한 슬픔과 한을 동판화에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 콜비츠의 아들은 제 1차 대전에서 전사했고, 이후 반전주의자가 되어 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보다 앞선 이 그림에서 나는 콜비츠의 아들 잃은 슬픔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이런 아픔들을 간직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지금도 진행 중일 것인데, 앞으로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참 마음이 무거웠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 그 끝이 있을까?
인간은 스스로의 욕망으로 때로는 자신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다가올 전쟁만 해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들어 간 것이지 정말 자신들이 선택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모르고 하는 일이 너무나 많고, 또 하고 있는 일조차 잘 모르고 있다.-p236
이 책은 2002년에 출간된 [그림, 역사가 쓴 자서전]의 개정판이었다. 기원 전 15000년~기원 전 1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라스코 동굴벽화를 시작으로 중세, 르네상스, 근대를 거쳐 현대 미술까지 다루면서 그와 궤를 함께하는 인류의 굵직굵직한 역사적인 장면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림이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특히, 더 그 사실에 집중하면서 읽었던 것같다. 앞으로의 미술은 우리의 역사를 어떤 모습으로 담아내고, 후세에 어떻게 전해질지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