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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리커버 에디션)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4년 3월
평점 :
한국경제신문 문화부에서 미술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주 1회 연재했던 글을 모았다. 그림을 작가의 삶과 연관 지어 설명함으로써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작품에는 화가의 삶이 담겨있기 마련이라 화가의 삶을 알고, 이해하면 그림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다양한 주제로 미술 에세이는 쓰여지고, 화가의 삶을 다루는 책은 많은데, 저자의 관점에 따라 새로운 것들을 만날 수 있어서 항상 기대가 되는 분야다.
이 책에서는 27명의 화가들의 삶과 작품을 다루고 있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지원을 받으면서 예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화가가 있는 반면, 가난한 살림에 그림이 그리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힘든 과정을 견뎌낸 화가도 있었다. 당대에 인정받고 행복한 일생을 살았지만 서서히 잊혀진 화가가 있었던가 하면,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후세에 이름을 떨치는 화가도 있었다.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았지만 그들에게서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술에 진심이었다는 것. 진심을 담은 작품들은 작품을 만나는 이들에게 크고 작은 감동을 주기도 하고, 때론 어떤 이에게는 삶의 의미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처음 만난 화가는 프레데릭 레이턴이었다. 읽어나가다보니 정리가 하고싶어져서 화가별로 포스팅을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서 네 명의 화가를 끝으로 포스팅은 하지 않고, 리뷰로 대신하기로 했다.
미술 에세이를 많이 읽다보니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화가들의 이름은 낯설지가 않다. 유일하게 모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덴마크 화가인 페데르 뫼르크 묀스테드(1859~1941)였다. 화가는 뛰어난 재능으로 유명해졌고, 많은 돈을 벌었으며 평생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는데, 죽은 뒤에 그 이름은 잊혔다고 한다. 책에 있는 그의 그림들을 보는 순간, 이건 사진인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인 그림이었다. 사진이 발명된 이후 사실적인 그림들의 인기가 시들해진 부분도 분명 있었겠지만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를 해낸 화가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굴곡없는 삶, 너무 큰 인기때문에 더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은거라는 평도 있지만,저자의 말처럼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에 마음의 평화를 얻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 후세에 잊혀졌다고 해도 그의 작품이 가치를 잃지는 않을 것같다.
아름다운 그림만으로 기억되는 르느와르. 가난때문에 입양을 보냈던 딸을 끝까지 책임졌고, 마흔일곱 이른 나이에 찾아온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고통을 받았고,아끼고 의존했던 사람과의 이별등 조금 더 자세히 르느와르의 삶을 알게 되었다. 굳어버린 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우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르느와르를 떠올려봤다. 몸은 아프고, 절망적인 일들을 겪으면서도 그림엔 행복을 담았던 르느와르가 새삼 위대하게 느껴졌다. 그의 삶을 알지 못했다면 예쁘다, 행복해 보이네라는 단순하고 가벼운 감상만을 가졌을 뿐일텐데, 인간이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선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밀레에 대한 글이 기억에 남았다. 밀레는 어렵게 살아가는 농부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거기서 위대함을 발견해서 단지 그들의 모습을 그릴뿐이었는데, 세상은 밀레의 그림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우파는 그를 매도하고, 좌파는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정치적 작품이라는 낙인이 찍혀 그림 살 사람은 드물었고. 예술을 비롯해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하는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듯해 씁쓸했다.
제임스 앙소르의 가면을 쓴 인물들의 그림을 봤을 때의 첫 느낌은 기괴함이었다. 그런 독특한 그림들은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길을 가던 그에게 성공은 찾아왔다. 타인의 평가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던 그의 성공에 나도 뿌듯했는데, 이런 예술가들의 모습은 조금 힘들면 포기해버리는 연약한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을까싶다.
"세속적인 것에 고결한 의미를,일상에 신비를, 알고 있는 것에 진기한 특징을, 유한에는 무한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가 정의한 낭만주의는 이렇게 그림을 통해 우리네 삶과 만납니다.-p189
저자는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를 이야기하면서 노발리스의 이 말을 인용했는데,낭만주의를 비롯해 다른 사조의 예술에도 통용되는 말이 아닐까싶었다. 페데르 뫼르크 묀스테드를 제외하고는 자주 만났던 화가였지만 저자 덕분에 새로운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런 지식과 함께 저자의 관점으로 화가와 작품을 보면서 새로운 시각도 가지게 되었다. 다양한 미술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는 한뼘 자람을 느낀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엘렌 테리 (선택)> (표지 그림), 붉어서 강렬한 표지의 양장본, 다수의 작품과 눈에 쏙 들어오는 편집. 내용도 외양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자꾸 자꾸 쳐다보게 되는 사랑스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