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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이름을 보기 전 그림을 먼저 봤을 때 '조지아 오키프'를 떠올렸다. 그들에게는 잠시 교집합이 있었다. 


1895년,열네 살의 펠턴은 프랫 인스티튜트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모더니즘 미술교육의 기틀을 닦은 아서 외슬리 다우를 만났다. (중략) 훗날 조지아 오키프도 다웅에게 배웠다. 둘 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둘 다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어떤 힘을 포착하려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생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p 58


조지아 오키프는 많이 만났지만 '애그니스 펠턴'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이 책에서는 낯선 화가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익숙하지 않은 낯섬에서 오는 매력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애그니스 펠턴,<별을 보는 사람>,1929




 <피날레>를 함께 읽고 있는데, 

 조지아 오키프가 등장을 한다.

 예전에 읽으려고 사뒀던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클리츠>가 눈 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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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름을 만났다.

조반니 세간티니.

[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에서 처음 들었던 이름이고, 그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그림에 대한 간단한 설명만 들었을뿐인데,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에서 그에 대해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게되었다.


태어나고 몇 달 후,형이 갑작스럽게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심각한 우울증에 겪게 된 엄마는 세간티니를 방치해버렸다.

그런 어머니마저도 일곱 살 무렵 잃었고. 다음 해에는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이복누나의 실수로 무국적자로 살게 되었고, 사람들을 피해 더 깊은 알프스 스위스의 엥가딘 계곡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마침내 이탈리아 분할주의 대표화가로 자리하게 되었다. 


[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에서 봤던 <사악한 엄마>라는 그림의 탄생비화를 들을 수 있었다.


어릴 적 겪은 심리적 트라우마로 인해 화가는 어머니의 존재를 '모성의 책임을 거부하고 자식을 버린 부정적인 이미지'로 내면화하는데, 이는 훗날 나무에 매달아 징벌하는 <나쁜 어머니들> 연작이 탄생한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p 43



하지만, <사악한 엄마>에서처럼 나무 위에 엄마와 아이가 앉아있는 비슷한 구도의 <생명의 천사>라는 그림을 마주했을때, 

어머니를 증오하면서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온화한 어머니의 표정, 엄마의 가슴을 파고드는 아이. 혹시, 세월이 흘러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일까 했는데 1894년 같은 해에 그려진 그림인 것을 보니 그런 것은 아닌듯했다. 






빛의 분할이라는 미술 기법, 생명의 순환이라는 철학적 주제등으로 그림을 설명하고 있지만,

내 시선은 그림 속 엄마와 아이에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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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룩소르, 피렌체, 파리,도쿄, 빈, 뉴욕. 7개 도시의 미술관 여행이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도쿄였다. 


도쿄 미술관 투어 콘셉트는 '도쿄에서 만나는 파리'입니다. '도쿄에서 웬 파리?' 하고 의아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보다보면 '이게 왜 여기서 나와?' 하고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p208


2012년 아무런 정보 없이 들렀던 국립 서양 미술관에서 내가 딱 저 생각을 했다.

일본에 왜 이렇게 유명한 작품들이 많은거야? 도대체 왜?

그 이후 일본 미술관들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가보고 싶은 미술관들이 많았다. 


2024년 10월에 여행 테마를 미술관으로 잡고 친구들이랑 도쿄에 다녀왔다. 

국립서양미술관, 모리 미술관, 도쿄 국립 신미술관, 21_21 디자인 사이트에 들렀다.

당시 국립 서양 미술관에서는 '모네 수련 전시회'를 하고 있어서 모네의 아름다운 수련을 실컷 볼 수 있었다.

모리 미술관에서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책에 있는 국립 서양 미술관 작품들 중에 기억나는 작품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인간의 기억이란 한계가 있어 수많은 작품을 봤는데도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도록이 필요하다. 


하코네 폴라 미술관, 조각의 숲 미술관,아티존 미술관, 고흐의 해바라기가 있는 솜포 미술관, 

하필 휴관이라 들르지 못했던 네즈 미술관까기 들러볼 수 있는 도쿄 미술관 투어 일정을 다시 잡아봐야겠다. 

국립 서양 미술관은 당연히 포함해서.


2024년 11월에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와 구라시키의 오하라 미술관도 갔었는데,

2025년 5월에 나오시마에 신미술관이 개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오시마도 다시 한 번 가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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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본미술 순례 1 - 일본 근대미술의 이단자들 ㅣ 나의 일본미술 순례 1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연립서가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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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 외에는 알고 있는 일본미술 작품은 제로에 가까웠다.예술가들의 열정은 크게 다르지않았다. 근대화가들을 다루고 있기어 식민지배하의 우리나라의 상황,예술에 대해서 생각하며 멈추는 시간들이 많았다.생소한 일본 작품들이라 작가님의 친절한 안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미술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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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8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08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에키 유조, 세키네 소지, 아이미쓰


읽으면 읽을수록 생소한 화가들과의 만남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서경식님의 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화가들이다. 그러고보니, 일본 미술을 소개한 책은 처음이고, 미술에 관한 책에서도 일본 우키요에 아니고서는 접할 일이 없었다. 얼마나 서양미술에 치우쳐져 있었는지 실감이 난다. 


특히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근대미술은 우리가 일본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 시점이라 일본 미술을 보고 있으면서도 우리 화가들의 그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수혜로 파리등으로 가서 서양미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우리 화가들은 일본을 통해서 서양미술을 맛보고 있었다. 

파리에서 풍경화를 주로 그렸던 사에키 유조의 작품은 아무런 정보없이 보면 일본화가의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림들이었다. 전쟁화를 주로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화가들에 비하면 정말 순수하게 그림에 미친 사람이었다고 해야할듯하다. 예술은 시대를 담는다고 했지만, 순수하게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는 자신에게 중요한 모티프, 예컨대 파리의 광고판이나 벽에 온통 마음을 사로잡혔던, 말 그대로 그림에 '미친'자였다. p73


아이미쓰의 그림을 다룬 장에서는 1989년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쇼와 시대의 미술>전시에 등장한 전쟁화의 공개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매우 인상적이어서 질지만 인용해둔다. 


그때까지 전쟁화가 본격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전쟁 피해자인 아시아 여러 민족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전후 가까스로 제어돠어 온 우파와 국가주의자가 전쟁기록화의 '해금'을 하나의 신호로 여겨 다시 활성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스스로 '평화국가'를 자임해 온 전후 일본의 미술계. 교육계, 매스컴 등이 전쟁 프로파간다 회화가 왕성히 제작된 꺼림칙한 과거를 직시하고 싶지 않았던 의식도 가로놓여 있지는 않았을까? 당사자인 미술가 중에서도 패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는 연합국에게 전범으로 추궁받을까 걱정하며 침묵했다.(후지타 쓰구하루는 대표적인 예외로 하더라도) 자신의 전쟁화 제작 이력에 대해 입을 다물거나, 군부의 압력 속에 어쩔 수 없이 그렸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변명을 늘어놓는 사례도 많았다. 한마디로 전쟁기록화는 "없었던 일"로 치고 숨겨 두고 싶은 역사 자료였던 셈이다. 하지만 1989년 당시 덴노 히로히토가 죽자 '쇼와'라는 연호로 묶였던 시다(1926~1989)의 종언과 발맞춰 "온전히 미술적인 관점에서 ("정치적 관점이 아닌 "이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으리라)"라고 신경질적이라 할 정도의 이유를 붙여가며 전쟁화의 대표작 일곱점을 공개했다. 봉인보다는 공개가 바람직하다는 점에는 나 역시 이견이 없지만, 염려했던대로 '정치적 이유'로 봉인해 온 미술의 '명작'이 드디어 해금되었다고 파악하는, 참으로 '이데올로기적'반응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반응을 "미술적 관점에서" 작가나 작품을 진지하게 검토한 결과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p112


일본인이 쓴 일본 그림에 관한 글이었다면 내가 관심을 가졌을까?  재일조선인으로서 보는 것은 아마도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본 근대미술에 대한 글은 생소하지만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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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12-0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도 화가가 있겠지요 일제 강점기 때 화가를 보면 한국 화가가 생각나기도 하겠습니다 정치와 상관없이 그림만 그린 사람도 없지 않았겠지요 전쟁 때는 예술을 이용하기도 하는군요


희선

march 2025-12-07 23:15   좋아요 1 | URL
일본 미술은 전혀 모르는 분야였어요. 나름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네요. 예술을 시대와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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