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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다녀왔다. 목욕을 시켜드리고 얘기를 나누다가 왔다. 치매가 점점 심해져가고 있다. 답답하고도 서글픈 마음이 이어지는 날들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블로그 친구가 보내 준 책을 펼쳤는데,엄마를 떠올리고 말았다.


형이 전화에 대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더 견디기 힘드실 것 같다고. 나는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아침 일찍 차를 몰았는데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어머니와 나 사이가 아득하게 느껴져서 가는 내내 서러웠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누워서 눈을 깜박거렸다. 어머니의 손을 만지자 물기 없는 피부에서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어머니 등 뒤로 조심스럽게 팔을 넣어 끌어안았다. 마지막으로 엄마 품에 안겨보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어리광을 피워보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사는 일의 고달픔을 일러바치고 싶었는데, 한없이 가벼워진 어머니를 가만히 껴안아 주는 것으로 그 모든 희망을 갈음했다. 병원 앞 화단에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하늘하늘 피어서 무심히 흔들리는 무렵이었다.-p 25


나를 잊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고모 이름으로 부를 때가 있다. 다행히, 엄마가 좋아하는 시누이로 생각해줘서 다행이다 하면서 위로를 한다. 금방 나를 알아보긴 하지만, 언젠가 완전히 잊어버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시는 모습에 화를 내고는 금방 후회한다.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순간들의 기억이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나중에 더 많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지금 최선을 다하려하지만 여전히 내 생활을 앞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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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04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이 march 님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만나고 바로는 다른 사람으로 본다 해도, 곧 march 님인지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희선

2025-01-04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함박웃음이 아니라 은근한 미소.

맘이 편안해지고 행복한 기운이 가득 차는 느낌이다. 그런 모네의 수련과 함께한 가을이었다.

10월에 친구들이랑 도쿄로 여행(10.21~10.24)을 다녀왔다. 

테마를 미술관 투어로 잡고 도쿄 미술관을 집중적으로 가보기로 했다.

가보고 싶은 미술관은 많았지만 숙소가 있는 긴자 주변의 미술관으로 범위를 좁히고,

몇 년 전에 들렀던 국립 서양 미술관은 다시 들러보고 싶어서 포함시켰다.

네즈 미술관,롯폰기 힐즈 모리 미술관, 국립신미술관, 산토리 미술관, 21_21 디자인 사이트,국립 서양 미술관.

가고 싶은 곳만 정했을 뿐 정확한 정보는 찾아보지도 않았다.

이런! 네즈 미술관은 우리가 도착했던 21일부터 11월 1일까지 휴관이었다.

과감하게 포기.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런데, 큰 행운도 있었다.

알고 일정을 잡았던 것도 아닌데(6월에 여행 예약을 해두었다), 모리 미술관에서는 루이즈 부르주아 전시(2024.9.25~2025.1.19)가, 국립 서양 미술관에서는 모네의 수련 전시(2024.10.5~ 2025.2.11)가 열리고 있었다.

포스팅 제목이 <모네의 수련과 함께한 가을>이니 수련 이야기만 하는 걸로.


1. 도쿄 국립 서양 미술관


모네 전시의 인기가 대단했다. 전시관마다 사람이 가득했으니까.

3개의 전시관에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 중 1개 전시관과 전시관 입구에 있는 작품들만 촬영이 가능했다.

집에 와서 도록을 살펴보니 수련을 포함하여 총 65작품이 전시되었다.

국내에서도 모네의 전시를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수련과 함께 모네의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처음이었던 것같다.

스탕달 신드롬까지는 아니지만 벅차오르는 느낌이 있었다.

그 전날 국립신미술관에서 봤던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느낌.

모네 티켓으로 상설관까지 관람할 수 있어서 상설관의 좋은 작품들도 많이 만나고 왔다.








2. 구라시키 오하라 미술관


정말 가보고 싶은 미술관이었다. 평소 내가 하는 말을 잘 기억하고 있었는지 남편이 오하라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는 여행 상품을 덜컥 예약을 하는 바람에 열흘 만에 또 일본에 가게 되었다(11.4~11.7). 오하라 미술관에는 르느와르, 피카소, 엘그레코,고갱등 유명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있는데, 모네의 수련도 한 점 있었다. 작품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작품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본관 작품들만 보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하라 미술관에서는 특별한 모네를 만날 수 있었는데, 바로 진짜 수련이었다. 모네의 수련 연못이 있었다. 오하라 미술관의 수련은 코지마토라지로가 1920년 가을에 지베르니를 방문해 모네로부터 직접 구입했고, 그 연을 계기로 오하라 미술관 개관 70주년을 맞은 2000년에 지베르니의 정원에 있는 수련을 받아왔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그림에 그려져있는 수련의 손자일거라는 말이 재미있었다. 







3. 나오시마 지중미술관 (地中美術館)


안도타다오가 설계한 지중 미술관에는 세 예술가의 작품만 전시되어 있었다.클로드 모네,월트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 당연히 전시관 내부는 촬영 불가. 미술관 들어가는 입구만 촬영이 가능했다. 지중미술관으로 가는 길엔 모네의 집 수련 정원도 재현해두고, 꽃길을 만들어 두었다.지베르니는 아니지만 느낌을 살려본듯했다.  

네 개의 벽면에 다섯 점의 수련이 있었는데, 남편이 한 작품을 가리키며 우리 집에 있으면 참 좋겠다고 했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이번 가을엔 모네의 수련을 원없이 만났다. 


 궂즈샵에서 구입한 엽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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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1-19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들과 미술관을 주제로 일본에 다녀오셨군요 멋지네요 한곳은 쉬었지만, 그래도 여러 곳에서 여러 그림을 만나셨겠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분하고 다른 미술관에 가셨군요 모네의 수련을 많이 만나셔서 그것도 좋으셨겠습니다 언젠가 가고 싶다 했는데, 그게 바로 올해였군요


희선

march 2024-11-30 23:00   좋아요 0 | URL
올 가을은 어쩌다보니 미술관 여행이 되었어요. 오하라 미술관은 책에서 보고는 너무 너무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의 추진력 덕분에 생각보다 더 빨리 다녀오게 되었어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10월(10.21~10.24), 11월(11.4~11.7) 2번의 일본 여행에서 사가지고 온 일본 원서들이다.
우에노에 있는 국립 서양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네의 수련 전시회를 보고 산 도록.
무거웠지만 일본어 공부도 할겸 데리고 왔다.







좋아하는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가 이세영과 함께 한 드라마 소식을 들었다.
일본 남자, 한국 여자의 사랑이야기.
쿠팡 플레이에서 하고 있어서 드라마를 볼 수는 없어서 책을 샀다.
남자의 이야기는 츠지 히토나리가, 여자의 이야기는 공지영 작가가 썼다고 했는데,
츠지 히토나리의 책만 구입.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라는 예쁜 표지의 책을 발견했는데,
그 책은 얼마 전에 읽었던  <あの繪>のまえで의 작가 하라다 마하의 책이었다.
그래서, 이것도 원서로 읽어보기로.

10월 도쿄 여행에서 세 군데의 서점에 들렀는데 한강 작가의 책은 구할 수가 없었다.
다 팔리고 그 다음주쯤 입고 될거라고 미안하다는 말만 들었다.
없다는 말에 아쉬움보다는 왠지 뿌듯한 맘이 들었다. 
11월 여행에서 또 서점엘 들렀는데, 그곳은 약간 소도시여서인지 책이 있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어보고 싶었는데, 그 책은 없어서 <흰>을 골랐다.
우리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한 책은 처음인데 어떻게 표현했을지 정말 궁금하다.
이건 단지 궁금증에서 구입한 것일 뿐, 
노벨상 수상 작가의 책을 번역이 아닌 우리 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뭔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일본 서점에서는 책을 사면 이렇게 포장을 해준다.




서점에 있던 한강 작가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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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1-14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츠지 히토나리와 공지영 소설 읽기는 했어요 그걸 드라마로 만들다니... 냉정과 열정 사이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써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일본에 두번이나 다녀 오셨군요 요새 무슨 일이라도 있나 했습니다 일본에 다녀 오신 거였군요 즐거운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한강 작가 책이 다 팔려서 없다고 하다니 한국 사람은 그 말 기쁘게 여기겠습니다


희선

march 2024-11-15 20:39   좋아요 1 | URL
저는 드라마 소식 듣고 알게 되었는데 오래 전에 나온 책이었네요. 츠지 히토나리는 같은 방식으로 한 번 더 소설을 썼네요. 어쩌다보니 열흘 간격으로 . . .여행은 여행대로, 집에 있는 것은 또 그대로 좋네요.^^ 맞아요. 괜히 뿌듯했어요. ㅎㅎ
 

















지난 주 일본 오하라 (大原)미술관에 다녀왔다. 

일본 최초의 사립  서양 미술관이다.
작품을 보다가 파블로 피카소의 <새장>을 발견하고는 너무 좋았다.
읽었던 책에서 만났던 그림이어서.
소장처가 오하라 미술관이라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시실은 촬영불가라 굿즈샵에서 그림 엽서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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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1-14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보면서 피카소 그림 <새장>이 어떤 걸까 하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았는데, 엽서로 보는군요 하라다 마하 책 《낙원의 캔버스》에도 오하라 미술관이나 새장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머릿속에 그려보던 그림이 아닌... 피카소인데, 대체 어떤 걸 상상한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낙원의 캔버스’는 참 오래 걸려 읽었습니다 앙리 루소 그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 보려는 사람이 나옵니다


희선

march 2024-11-15 20:40   좋아요 1 | URL
다음엔 낙원의 캔버스도 읽어봐야겠어요. 그림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으니까요. <여행을 대신해드립니다>는 읽어보셨어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미술관에서 본 그림들은 모두 캔버스 표면에 그려진 그럴듯한 가짜다.'


거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거울을 깨뜨린 것과 같은 행위였다. 폰타나가 캔버스에 세로로 칼질을 하자 드러난 서양 미술의 진실이었다. 이것이 폰타나가 1947년에 주창한 '공간주의 미술 Spatialism' ( 색과 소리, 공간과 움직임, 시간을 새로운 유형의 예술로 결합할 것을 제안)이다. 이런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연작이 <공간 개념 Concetto spaziale>인데, 캔버스에 칼질을 하는 '컷'시리즈가 대표적이다.- p112


루초 폰타나 (1899~1968) 의 작품을 오하라 (大原)미술관에서 만났다. 붉은 바탕에 검은 줄 3개. 처음에는 눈속임 그림인줄 알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칼로 자른 것이었다. 그 앞에서 한참을 머물다 왔는데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책에서 루초 폰타나를 만나다니. 이 화가는 확실히 기억될 것같다. 검색을 해보니 오하라 미술관에서 만났던 그림은 <공간 개념-기대>라는 작품이었다.<공간 개념: 신의 종말>이란 작품은 2008년 경매에서 2,005만 1,466달러 (약 260억 원)에 팔렸고, 15년 후에 다시 경매에 나와서 2,055만 6,900달러 (약 270억 원)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캔버스를 찢고, 구멍을 뚫는 단순한 행위로 미술사에 충격을 준 루초 폰타나. 모든 위대한 발명이 그러하듯, 그것은 아주 작은 차이였으나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통찰이 깃든 행동이었다. 늘 그렇지만, 새로운 미술을 하려면 전적으로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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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1-14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초 폰타나 그림은 구병모 작가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표지에 쓰이기도 했어요


희선

march 2024-11-15 20:42   좋아요 1 | URL
책 찾아봤어요. 맞네요. 노란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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