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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ㅣ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5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근삼 옮김 / 빛소굴 / 2025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남자의 초상화가 있다. 세월이 흘러도 실제 인물은 늙지 않고, 초상화는 이 사람이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담아 추하게 변해간다. 그런 줄거리로 알고 있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이제서야 읽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심오한 책이어서 놀랐다.
초상화를 그린 화가 바질, 그의 친구 헨리 경, 초상화의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 세 명이 주요 인물이었다. 바질은 아름다운 도리언 그레이를 숭배했고, 그 마음을 초상화에 그대로 담았다. 초상화가 완성되던 날 함께 있던 헨리 경은 도리언 그레이에게 아름다운 외모, 청춘, 젊음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다.
아! 젊음을 지니고 있는 동안에 당신의 청춘을 자각하세요. 당신의 황금시대를 낭비하지 말고요. 지겨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가망 없는 실패를 만회해 보려 하거나 무식한 사람, 평범한 사람, 저속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인생을 내맡기지 말라고요.(중략) 언제나 새로운 감각을 찾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요. 새로운 향락주의, 그것이 곧 우리 세기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p 43
그 말은 도리언 그레이에게 젊음을 잃고 싶지 않은 욕망을 불러 일으켰고,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게 자신이고, 대신 초상화가 늙어가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내놓을 거라고 말했다.아름다운 초상화를 질투하는 모습은 에밀졸라의 <작품>속 크리스틴을 떠올리게 했다. 남편 클로드가 그리는 그림을 한없이 질투했던 크리스틴을. 헨리 경은 달변가이면서 선동가였다. 도리언 그레이가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헨리 경의 세속적인 가치관에 영향을 받은 도리언 그레이는 쾌락적인 삶에 빠지고 방탕한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외모는 젊고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은 설마라고 생각한다. 영혼이 아닌 외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속아넘어가는 것인지. 인간의 진실된 모습을 알아본다는 것은 이렇듯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초상화로 말해지는 예술은 인간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도구라도 된다는 것일까? 오스카 와일드가 그런 생각을 담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리언 그레이는 변해가는 초상화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영혼이 타락해간다는 것을 느끼고 몇 번 정신을 차리는듯했지만 결국, 자신이 살아온 날들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완벽하게는 인정하지 못했던 것같다. 그림만 사라지면 자신은 자유로워질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떤 인생을 살아왔느냐는 얼굴에 드러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말도 무색할 정도로 과학의 힘은 강력해졌다. 19세기였기에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