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 씨는 우리 고향을 다 못 봤을 겝니다."

나는 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을 왜 다 못 봤을라고, 그러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보기는 보았겠지만 통영을 어느 위치에서 어느 시각에 보면 제일 아름다운가를 말입니다."

"하긴 그렇군요." 나는 비로소 K씨 말씀을 시인해버렸다." p62~63


5월 중순에 엄마, 아빠 모시고 동생들이랑 1박 2일로 통영엘 다녀왔다. 집에서 1시간 거리라 1년에 한 번 정도는 가는데, 그러다보니 이제 익숙해져서 새로운 느낌은 그다지 없었다. 그런데, 숙소가 한 몫했다. 미륵도에 있는 금호통영마리나리조트는 통영에선 유명한 리조트이지만 거기에 묵을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당일치기가 가능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1994년에 지어져서 세련된 느낌은 없지만 위치가 너무 좋아서 바다멍, 배멍 하기에 정말 좋았다. 항구에서 나가고 들어가는 어선들, 다도해의 섬들을 오가는 여객선, 관광객들을 위한 유람선, 요트까지, 수없이 오가는 배들. 1년동안 통영에 살 기회가 있었을때, 매물도에 간 적이 있었지만 한산도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한산도를 오가는 배를 보고 있자니 가보고 싶어졌다. 


이번 여행 후에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내가 보지 못한 풍경이 아직 많이 남아있구나. 통영에 또 이런 멋이 있었구나. 어느 곳을 보느냐에 따라 정말 새로운 느낌이 드는구나. 이 문장을 봤을 때 그 순간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났다. 익숙한 장소를 다른 곳에서 다른 시간에 바라보기.


푸르다 못해 검은 이파리, 부푼 핏빛같이 붉고 중량 있는 꽃. 그리고 그는 굳은 씨앗을 배태한다. 남국에 피는 동백꽃이다. 촌부같이 앳되고 건설적인 나무, 그것은 정력의 결실이다. 결코 향취와 자태를 자랑하는 꽃은 아니다.-p 79~80 


처음 통영에 갔을 때가 2월. 도로를 따라 피어있는 동백꽃을 보면서 처음으로 동백꽃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있어 통영의 꽃은 동백꽃이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통영엘 한 번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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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는 세월 박경리 산문선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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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읽기 전과 토지를 읽은 후 박경리 작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꼈다. 대학 시절 <김약국의 딸들>을 읽었을 때도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왜, 박경리 박경리 하는걸까?' 라는 건방진 생각도 했었지만, 그래도 토지는 궁금해서 사두긴 했다. 10년을 푹 묵힌 후 마침내 꺼내 읽은 토지는 상상이상이었다. 어떻게 이런 책을 써낼 수 있었을까? 25년에 걸쳐 원고지 4만장 분량이라는 대작을. 토지 마지막 권을 꺼내,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어봤다.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하동, 작가의 무덤이 있는 통영, 토지를 탈고했던 원주에 다녀왔다. 하지만, 토지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너무나 강해서인지 인간 박경리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그래서, 이 산문집이 나에겐 작가를 조금이나마 알게되는 계기가 되어서 의미가 있다.


작가로 등단한 이후 1970년대 말까지 써내려간 에세이들이어서 내 기억 속에 있는 할머니가 아닌, 30대~50대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동리 작가를 만남으로써 작가로 등단하게 된 이야기, 문학계 지인들과의 교류, 글 한자 쓸 수 없어 힘들었던 시간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등으로 문학가로서의 작가를 만났다면, 채마밭이나 꽃밭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 아이를 잃었던 여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마음, 딸과 어머니와의 소소한 에피소드 등으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작가를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글을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 추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싶다. 박경리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던 걸까? 


언젠가 어느 모임 장소에서 말한 적이있지만 나는 슬프고 괴롭기때문에 문학을 했다고 말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위대한 문학자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이렇게 문학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시 지금도 나 자신이 슬프고 괴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슬픔이나 괴로움이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만인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 생활에 있어서 문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인 속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받지 않으면 안되었던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억울함이 나로 하여금 무엇인지 모르게 고발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그러한 정신적 절박속으로 몰아 쫓았던 것이다.-p284


 <토지>,<김약국의 딸들>, <표류도>. 이 세 작품만 읽었을 뿐이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작품들이 밝기 보다는 응축된 아픔, 슬픔이 느껴졌던 것이 이런 이유에서였을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어디선가 작가는 고향 통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글을 읽었던 것같은데 잘못된 기억이었을까? 책에서 작가는 통영에 대한 애정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었다. 1년을 사는 동안 너무나 좋았던 기억을 갖고 있는 통영이라 격하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1926년생이라 올해가 탄생 100주년. 이 뜻깊은 해에 산문집으로 작가를 만나게 되어 의미있는 책으로 남을 것같다. 알고보니 총 6권의 산문집이 출간되어 있었다. 작가를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될것같다.

외모 치레에 바쁘고 책 한 권을 손에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틈을 이용하여 독서라도 하는 사람과는 완연히 층이 진다는 말씀에 책을 만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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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는 세월 박경리 산문선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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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만 만났지 작가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산문이란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세하진 않지만 그녀의 가족, 생활인으로서의 작가, 무엇보다도 문학에 대해, 문학가로서의 세상을 향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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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빛, 숲 그리고 코트다쥐르 - 오직 남프랑스에서 마주하는 예술적인 풍경
김종진 외 지음 / 효형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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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의 빛과 어우러지는 건축,예술의 세계.찬란한 햇살과 함께 하는 해변이 아니라 삶의 깊이를 떠올리게 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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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3 07: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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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을유세계문학전집 148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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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투르게네프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알았을때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처음 읽은 투르게네프. 첫 만남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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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9 17: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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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2 2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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