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주문했다. 내일이면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 어떤 책을 읽어볼까 생각하다가
마틴 게이퍼드의 <예술과 풍경>을 꺼냈다. 앞에 몇 꼭지만 읽은 상태였다.
목차를 훑어보다가 우연과 필연이라는 문장을 만났다.
17. 게르하르트 리히터 : 우연은 나보다 낫다
이 장을 읽어보기로 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에마(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라는 작품으로 각인되어 있는 화가일뿐 그다지 자세하게 알지는 못했다. 마틴 게이퍼드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에 대해 조금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2017년 사진에서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쾰른 대성당에 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디자인에 기초한 스테인드 글라스도 만났다.
사실 대부분의 삶과 예술은 우연 속의 행복을 다룬다. 선사 시대 화가가 동굴 옆면의 자국을 들소 같다고 보고, 레오나르도가 오래된 얼룩진 벽을 보고 전쟁과 풍경을 떠올린 것처럼, 인간은 주변의 혼란 속에서 형체와 형태를 발견한다. "우연은 나보다 나아요." 리히터가 겸손하게 설명했지만 이내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무작위성이 이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조건을 갖춰 둬야 하죠." 여기에 또 다른 역설이 있었다. 리히터는 우연의 미천한 하인인 동시에 연구소의 과학자처럼 캔버스 위에서 무작위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하는 주인이었다. - p291
우연이 일어난 모든 순간들은 어느새 중요한 삶의 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리히터의 이 물 긁개 추상화는 마치 모네의 지베르니 연못에 있는 백합처럼 빛으로 가득했다. 모네의 작품을 보면 물 위의 빛, 표면 반사, 물 밑의 어두운 깊이를 생각하게 된다. 리히터는 우리에게 일렁이는 희미한 아름다움의 환상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그저 물감을 이리저리 문질러서 되는 대로 만든 흔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혼돈, 무에 관한 회화인 셈이다.-p291
첫 장이 모네에 관한 글이라 펼쳐 들었다. 지난 9월 30일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 전시실에 걸려있던 클로드 모네의 '수련' 한 점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괜히 혼자 감동 받았고,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도쿄 국립 서양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을 보고 왜 우리 나라에는 없을까했는데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고 있었던 거였다. 서울에 가면 할 일이 또 하나 생겼군.
<수련>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가 더 크게 다가오는 그림이다.-p15
왠지 이 문장의 의미를 알 것같았다.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겠지만 지금까지 수련이라는 제목에 포인트를 두고 좁은 시각으로만 그림을 보았던 것은 아닌가싶었다.
모네의 수련은 계속 쭉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1950년대부터 현대미술의 새로운 수도가 된 뉴욕에서 모네의 후기작품들, 그중에서도 <수련>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대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인 엘프리드 바는 "<수련>대작에서 모네는 추상적인 인상주의에 가까워졌다. (중략) 최근 몇 년 동안 모네의 후기 작품은 20세기 중반의 젊은 추상화가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했다." 고 설명했다는데, 모네와 추상이라는 말을 연결시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낯설었다.
모더니즘 회화를 혁명적으로 이끌었던 인상주의 화풍이 철 지난 것으로 여겨져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을 때,인상파라는 말을 탄생시키며 전통에 혁신을 불어넣었던 모네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추상미술로 이어지는 다리가 되었다. -p34
화가들의 정원(p198~221)과 예술의 정원(p378~381)에서
모네의 정원을 찾아 다시 읽었다.
예술의 정원에서 '세월이 흐르면서 모네의 그림에서 형태의 윤곽은 점차 사라지고 순수한 색채만 남아 추상 표현으로 발전했다.'는 문장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한 번은 꼭 찾아가보고 싶은 지베르니다.
꽃의 정원, 물의 정원을 언젠가는 만날 수 있기를.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수련 연작을 조용히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가질 수 있기를.
p90~124.
8월에 구입했는데 완독은 하지 못하고,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제목처럼 '광기에 더 가까운 사랑'을 만나는 순간들이 힘겨워서 숨고르기가 필요했다.
진정한 사랑에는 황금기가 아닌 시대였다. 에리히 캐스트너가 지은, 이 시대를 대변하는 시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즉물적 로맨스'의 시대였다. 우선 잠자리를 함께 하고, 그러고 나면 "둘 사이에 사랑은 사라진다. 마치 지팡이나 모자가 사라지듯이." - p123
나는 가끔 그대에게 충고했네,나와 헤어지라고
그리고 그대에게 감사하네, 지금까지 내 곁에 있어주어서.
그대는 나를 알면서도 알지 못했네.
나는 그대가 무서웠네, 그대가 나를 사랑하기에.
이것이 바로 1930년 무렵 사랑의 모습이었다.-p124
책에 있는 사람들은 예술가들이다. 그러니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사랑의 모습들도 있구나해야지.
아침 독서 마지막은 읽고 리뷰도 썼던 <하루 하나 클래식 100>중 1,2일차.
클래식이 듣고 싶어져서 이 책에 있는 곡들을 한 곡씩 들어보기로 했다.
책도 다시 읽어보면서.
하이든의 첼로곡과 소프라노 박혜상의 <아베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