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과의 대화
이시형.박상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이시형 박사의 강의를 

오랜만에 TV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항상 유쾌한 미소를 잃지 않는 타고난 

스마일러 같았던 그 분의 얼굴이 

전과는 달리 약간 무표정스러워졌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분도 세월의 무게에서는 많이 비껴갈 순

없었구나란 짧은 아쉬움이 내 뇌리를 스쳤다.

노화는 살아있는 모든 삶들에게 주어지지만

왠지 비껴갈 거 같은 사람도 있지 않겠나 했는데 말이다.

여하튼 오랜만에 본 이 책의 저자가 전해주는

여러 말들과 철학들을 TV로 접해볼 수 있던 간만의 시간이었다.

이 책은 공저이긴 하지만,

분량면이나 비중면에선 이시형 박사의 부분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굳이 이 책의 가치를 좀더 찾아본다면

의미치료와 관련해 공저자 2인이 나눈 대화인

마지막 80여 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묻고 답하는 형식이라, 활자로 된 질문과 답변의 모습일지라도,

진행자의 입장인 박상미 심리상담가의 개인적 경험과 견해들

답변자로써의 분량이 많은 이시형 박사의 깔끔한 얘기들은

이미 여러각도로 풍성함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인 이시형 박사가 건내는 사유와

심리학자인 박상미 씨가 전하는 사유는

각각 자신의 몫을 가지고 서로 얽혀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힘이 분명 있었다.

약간 다른 에피소드이긴 하나

빅터 프랭클의 얘기를 소개하는 한 부분에선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는게 유머인지 실수인지 

지금도 궁금한 부분도 있었는데 패스.

전반적으로 의미치료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기에 가장 와닿았던 부분들을 논해보자.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듯 빅터 프랭클은 

독일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력을 지녔다.

그런 그의 이력은 그를 모르더라도 

기존 독일과 수용소 얘기를 아는 독자들의 

상상력과 일치되는 부분도 물론 있겠으나,

지금 소개하고 싶은 이런 사실도 있었다는 것 또한 

많이 알려지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귀환 그리고 승화. 

이 메인 스토리들 중 하나일텐데,

빅터 프랭클은 패전국 독일을 비난하는 일이 아닌

감싸주는 역할을 자처했었다고 책은 전한다.

용서와 사랑, 그저 그것을 실천한 것으로 보아도 되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도 느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빅터에게 왜 패전국민 독일인들을 변호해주느냐 묻자

그는 자신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 한다며 반문한다.

독일인 스스로가 해명이라 말하면 결국 변명으로만 들릴 뿐이지만

같은 얘기도 자신같은 피해자로써의 입장이 얘기해주면 

그것은 설명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변명과 설명 또는 해명이랄까.

이 대화에서 의미치료 창시자의 삶이 

결코 학문에서만 머물지 않았음을 난 느껴볼 수 있었다.

이론을 만든 학자로써가 아닌 실천한 학자로써 더 위대해 보였다.

독일이 전쟁 중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지만

그 분노를 발판으로 독일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는 그의 행동은 이성적이라 느껴진다.

수용소에서 자신과 주변 동료들을 너무 잘 돌보아줬던 

한 독일인 소장에 대해 고마움을 밝히기도 하면서,

원망과 증오만을 가진 대다수의 피해자에게

피할 수 없는 지탄을 받기도 했던 그.

이런 빅터 프랭클과 그의 이론들을

이시형 박사의 적절한 해설과 가이드로 

독자들에게 소개되고 있는 책이다.

또한 공저자 박상미씨의 24살 언저리의 

경험들과 그 이후의 삶은 한국형 의미치료의 실사례로써

대표적 관련학자가 몸소 자신의 사례로써 

실례를 보여줬다는 사실에 책의 가치가 더 느껴지기도 했다.

부디 본인들이 읽어왔던 비슷한 책일거라 상상하지 말길 바란다.

저자들은 이 책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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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평을 그만두기로 했다 - 내 삶이 즐거워지는 21일 프로젝트
크리스틴 르위키 지음, 조민영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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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자기 책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진 세상이다.

어떤 위치에 서야 꼭 책을 낼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들이 쓴 글도 결국, 각자 내면을 끌어내 만들어진 외적 결과물이기에

그 가치가 보증될 만하거나 그런 근거가 좀더 보여진다면

독자는 선택이나 책을 읽고 받아들이는 믿음 측면에서

좀더 자유로워짐이 있다고 보는게 맞다.

예로, 심리를 다루는 책을 많이 보는 독자로써

이 분야에서도 정규과정과 특화된 경력을 거치지 않은

그냥 일반인이 자신의 생각을 쓴 에세이류의 책들도 많이 접하는데,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쓴 심리학 책들과

일반인들이 자기 생각을 쓴 책들 중 

어느 책에 더 믿음이 가느냐고 묻는다면 

단연 후자가 될수밖에 없을것 같다.

단순히 공신력의 힘이라기 보다는 

그냥 아무 이유없이 남의 생각을 읽어나간다는 건 

어쩌면 그냥 사유의 확장같다.

그러나, 저자의 경력이 어느정도 공적검증이 가능하다면

받아들지는 과정의 거부감도 줄어든다고 본다.

이 책은 이런 면에서 내가 읽던 방식의 책이 아니다.

내가 위에서 그리 호응하지 않았던 

일반인의 심리학적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책이다.

그런데 이 책만은 인정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게,

불평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도 그렇고

단순히 자기 생각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까지 성공해 낸 책이기에,

전문가가 쓴 책들보다 절대 폄하될 만한 구석이 없다.

내용 또한 박학다식을 넘어,

자기가 쓰고자 하는 부분들에 대해

논조의 일관성과 체계를 갖춘 특이한 일반인으로 보여진다.

책에 등장하는 불평에 대한 예들을 들여다보자.

그 중 하나인 불평의 이유들을 꼽아볼 때

타인의 도움을 얻고자 불평을 도구로 삼는다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사람들의 문제로,

불평을 그만둬야 한다거나,

확인 안 된 독단적인 불평일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지 않다.

저자가 말하는 이런 류의 문제점은

자신의 불평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그 부분이 

결국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나 힘든데 알아달라, 그리고 도와줘가

불평으로 표현되고 그 불평은 되려

도움을 요청하는 자의 발목을 잡을 족쇄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좋은 책은 저자의 독자를 향한 강조의 반복이나

강요같은 설득에 의해서가 아닌 상식에 기초한 공감에서 기인한다.

자기 생각과 같은 책을 찾아 읽고 위안을 삼는 식이 아닌

생각해보지 못했거나 애매했던 자신의 사고체계가

한권의 책을 읽으며 다른 사고와의 부딪힘이 있더라도

맞는 말을 읽으며 보고 있기에 동조하는 시스템, 그것이 진리같다.

이 책은 그런 진리의 과정을 여러부분들에서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어렵지 않고 간편화 된 메세지가 책을 더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해준다.

21일 프로젝트로 행동변화로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 것도 좋겠고

불평에 대해 이렇게 다각도로 접근한 방식을 공유해 봄으로써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경험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불평은 나쁜게 아니다, 그런 불평이 나오게 된 과정을 이해하고

적어도 더이상 깊게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고 인지해 변화를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다면.

많이 좋은 책이다, 또한 공신력있는 책들에서

주로 많은 걸 경험했던 내 경험도 신선한 환기의 순간도 맞이해 봤기에

개인적 만족도가 매우 높은 책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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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속의 중국 문화대혁명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바바 기미히코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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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어느정도 

안다고 자부하며 살게 될 

역사적 요소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왜곡이나 역사 바로알기 등의 시점이 아니다.

그냥 잘못된 지식도 굳어지면 상식이 될 수 있고,

좁은 폭의 관점도 굳어지면 그게 상식이 될 수도 있단 생각이

이 책을 보면서 많이 들었다.

일단 저자를 살펴보면 일본인 역사가다.

이 책의 장점이라고 저자 스스로 밝힌 부분들이 중요할거 같다.

첫째, 여지껏 조망의 관점에서 쓴 책은 별로 없었다.

책에선 부감이란 표현을 쓰는데 조망이란 표현도 비슷한 표현이라

나름 편한 용어로 써 보았다. 굳이 설명하자면

나무만 보지 않고 숲을 보고자 했다는 표현 정도라 이해하면 될거 같다.

중국의 정치적 격변을 그 나라에서의 틀에서만 아닌

아시아 전체에 미친 영향을 따져본다는 것. 

둘째, 본인은 기술하는 역사들의 실제 체험자는 아니다.

즉, 전쟁으로 따지면 군인도 종군기자도 아닌

외신이나 자료들로 대부분 접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의 분석이 미흡하다고 말하고자 함은 아니고

책 전체를 읽어본다면 좋은 내용을 위해 다양한 노력이 느껴지는 바

당연히 겸손의 표현정도라고 독자는 이해하면 좋을거 같다.

책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이 이외에도

큰 틀의 저술 바운더리는 보이지만 위의 2가지 정도가

가장 크게 와닿았던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이라 독자도 느낀 점들이다.

대부분이 완전 이질적인 타국의 사건들일지라도

그리 부담감 있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 개인적으론 놀라웠다.

그만큼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배움이나 간접적 경험이

한국인으로써 결코 적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배우면서 말은 잘 못하더라도 귀는 좀더 트이듯이 말이다.

저자의 역사적 표현 중에 크게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당시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세계적으로 거의 차별화 되지 못해서 벌어진 다양한 사건들의

분석이라 보여지는 부분이었다.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중국을 화(和)라 표현할 수 있을 화교,

그리고 공(供)이라 표현되는 중국 공산당.

이 둘이 당시에는 구분없이 공으로만 쓰였다는 점을 일례로 든다.

그로인해 난교라 불리는 화교난민들이 발생하고

마치 구분없이 모두 공으로써만 취급받게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시아 곳곳에 있었다는 얘기가 들어있다.

그리고, 중국이 아닌 타이완이 적극적으로

난교들을 위해 결코 불구경하듯 빠져있지 않았다는 점도

외국인인 독자의 시점에선 의아함도 있었다.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중국과 타이완이 같은 민족으로써 

공통되는 느낌으로 상황을 타결하려 했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이렇게 읽다보면 전혀 다른 나라의 얘기같지만

조금은 다르게 몰랐던 여러가지를 볼 기회가 되고

저자의 서술능력에도 공감하는 바가 많아지는 바가 많았다.

일단, 이 책은 일본인이 썼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에 대한 애정이 깔린 바가 있었다.

어떤 특정한 느낌이 아닌, 책에서 본인 언급한 바도 있지만 

중국을 하나의 아시아문명의 선배국가로써 바라보며

그냥 하나의 큰 사건을 본인의 역량대로 

평가해보려 한 노력이 책 전체에 묻어있다.

문화대혁명이 끼친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관련된 

저자만의 얘기들은 이 책이 거의 이런 느낌의 기록으로서는

거의 첫 책이 아닐까 생각해도 될 듯 했다.

어느 분야보다 역사는 정확한 진단이 중요한 분야같다.

그런데 조망적 관점의 책들은 일단 읽어도 잘못될 일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독자에게 많은 것을 제3자로써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결정권을 많이 넘겨주니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을 보고 영감을 받았으면 또다른 책도 

더 읽어봐야 좋은 노력이 남을 뿐.

어렵지 않게 읽혀지는 흔치않은 내용의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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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개의 시간
카예 블레그바드 지음, 위서현 옮김 / 콤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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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책을 읽는 도중엔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관해 

되도록 아님 절대 미리 알아선 

안된다고 생각하며 읽게 된다면 매우 좋고,

다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이해를 위해서 

책의 집필의도를 알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

바로 가장 큰 특징이다.

이 특징이란 건 사실 궁극적으로, 

그림책으로써 그림 위주의 짧은 글에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블랙독과 사람간의 

반려동물식의 유대관계식으로 설명해 나가지만,

실은 우울증의 병리적 특징을 이해시키는 책이란 것이다.

헌데 왜 굳이 이 이유를 

읽기 전에 알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또한, 책의 마지막엔 친절힌 해설이 첨부되어 있다.

그냥 보통의 그림책처럼 읽기를 마치고

마지막에 들어있는 몇페이지 정도의 해설자 설명을 

읽게 되는 순간부터 최종적으로 가장 

이 책을 잘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닌 책.

블랙독이란 개념은 이 책이 처음 선보인 건 아니다.

이미 블랙독이란 주제로 우울증을 다룬

다룬 책들이 나온 케이스가 있다.

아쉽게도 난 그 책을 자세히 읽어보진 못했고

궁금하여 대강 접해볼 기회정도는 있었다.

그러나, 만약 우울증을 블랙독으로 설명한 책으로써

어떤 책이 더 좋은가 묻는다면 

난 활자로 채워진 책보단 우선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영국의 처칠 수상이 자신의 우울증을

블랙독으로 비유한 것을 탁월한 비유로 받아들여

이것을 소재로 쓴 심리학 책이 등장했다고 보면 좋을거 같은데,

그렇다고 처칠이 어떤 심오한 이론을 만든 그런 분야는 아니다.

그저 우울증을 블랙독으로 비유한 그 지적사유가

오늘날에도 훌륭한 언어유희처럼 이용된다고 보면 좋겠다.

그런 블랙독의 메타포로 시작된 이 책의 내용은

과연 어떨지 독자로써 조금은 전달할 필요가 있을듯 한데,

우울증에 관한 궁금증으로 목적을 두고 읽게 됐던

아님, 그냥 독특한 성인용 그림책처럼 받아들여 읽게됐던 간에

이 책은 분명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소지가 매우 많다.

뭐야 하며 읽은 사람에게나,

과연 뭔가 어떻게 얘기해놨을까 읽었던 사람들 모두에게.

먼저 읽은 사람으로써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기록을 남겨본다.

책은 거의 한 반려견과 그 주인과의 만남과 동행

그리고 그 끝을 모른 마지막까지 전부를 보여주듯 다룬다.

헌데 그 블랙독은 주인과 항상 대치중이다.

그래서 그 주인은 물리거나 거리를 두거나 조심한다.

그리고, 그 개는 주인에게 운이 좋다면 어떤 예술적 영감을 주기도 했고

반대로 생활속 작업들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다 또다른 블랙독을 가진 주인을 만나게 되면 

마치 비슷한 처지의 사람으로써 배우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블랙독을 다스리기 위해

150달러를 내고 방법을 배우기도 하는데

그 시간들은 매우 소중하다고 느끼기도 하다.

이런 식의 내용들만 놓고 보면 이 책은 딱 반려견 일지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나와있는 우울증과 블랙독의 비유를

정확히 인지하고 책을 보게 되면 모든 건 

우화적 스토리에서 심리와 인지적 테스트 문구처럼 전환된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우울증 인자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우울증 인자가 예술적 소양으로써 발휘되기도 하며,

심하거나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게 됐을 때

심리학자나 의사 등을 통해 관리를 받게 될 경우도 있을 것이고,

자신만 있는 증상처럼 느끼던 우울증이

다른 누군가에게서도 느끼게 된다면

그 관조적 상황이 동병상련의 동질감과

치료적 효과까지도 나타낼 수 있다는 식의 

구구절절한 설명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그림 한장과 은유적 설명엔

이와 같은 깊은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난 가끔 시집을 읽는다.

좋아하지 않지만 그 함축성에 끌린다.

그리고 가끔 내가 시를 아주 좋아하지 않음에 

시인이란 직업과 그 창작물들에 미안함이 생긴다.

매번 가까이 두진 않지만 그 위대한 함축성에 말이다.

열마디 백마디 말보다 이런 그림책에서 느끼는게 많을 수 있다.

우울증에 관해 목적을 두고 읽는 책이 아닌

좋은 시집을 읽는 마음으로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한권을 다 읽는데 얼마간의 시간이면 충분하니

이 또한 얼마나 경제적이라 생각하며 행복해질 수 있으니.

아나운서였던 위서현 씨가 이 책의 해설을 담당했다.

그 이름을 기억하는데 심리학자란 새로운 이직직업으로써 

정신적 성숙을 이루며 제2의 인생을 살고있을

그녀의 선택과 과정도 느껴볼 수 있었던 건

이 책에서 얻은 또다른 기쁨이었다. 좋은 책과 좋은 해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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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존재하기 -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경험으로서의 달리기
조지 쉬언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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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 한 구절은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그냥 기억나는 대로 써보려고 했으나,

워낙 원문의 글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좋고

특별한 가공을 가할 필요없는 느낌도 전달하면서

저자 특유의 성격마저 느껴볼 수 있을 매트한 글이라

그대로 적어보는게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음은 페이지 390에 나와있는 글이다.

'원죄란 우리가 지닌 잠재력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삶에 해답이 있다면 그건 더 많이 사는 일이 아니다.

삶의 한계가 어딘지 직접 부딪쳐 본 뒤,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죄책감은 제대로 삶을 살아가지 않을 때 생겨난다.'

신기하게도 이 다음 글은 달리기 본연에 대한

찬사적인 글이 바로 이어지는데,

그 글까지 인용한다면, 앞선 인용글의 

탁월함을 다소 떨어뜨리는 듯하여

일부러 여기까지만 적어 보았다.

책 전체가 이런 류의 문장구성은 아니지만

정신과 육체 그리고 그 매개점인 마라톤을 다루고 있기에

어느정도 한사람이 쓴 글로써의 느낌들로써는 

동일성들이 많이 느껴지고 있다.

난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껴보게 됐던 건,

책의 생명력은 시간의 흐름과 결코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마의 산 같은 책이나, 데미안, 

까뮈, 데일 카네기, 아가사 크리스티 등등,

이들의 비슷한 점은 소설류라던가 

책의 저자라던지 그런 것들만은 아닌거 같다.

이 나열한 이름들은 이미 한세대 또는 몇세대 전의 

베스트셀러와 인물들이란 점도 공통점이고,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지만,

이미 후생가외의 삶처럼 

비슷한 소재의 다른 책과 다른 인물들이 

앞선 이들의 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속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굳이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적어본 것은

독창적으로 인정받는 것들의 상당 부분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은 테크놀러지 같은 분야에서만 

이전에도 앞으로도 그런듯 싶고,

인간의 사유나 기타 전반적인 인문학적 요소들은

이미 기존의 좋은 것들이 차고 넘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정말 탁월한 면이 많다.

게다가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측면에서 

나와 비슷한 면도 많이 느껴

묘한 느낌을 공유하며 읽는 즐거움도 주었다.

헌데, 이 책의 저자가 세상을 뜬 시기는 1993년이다.

거기에 한국에 나온 이 책의 초판 시기는 2003년.

이 한명의 저자와의 만남도 우연이지만

책의 내용만으로 놓고 본다면,

이 책의 내용도 모르고 살았던 어떤 독자의 시절속에서도

이 책은 이미 존재해 왔던 사실을 

한번쯤 생각해 봄도 매우 중요해 보인다.

새로운 것을 찾아해매고 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고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를 인정받으려 애쓰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조금 넓게 보면 비슷한 누군가가 이미 존재하며

현재의 독보적이고 유일할 것만 같은 많은 고민들은

이미 다른 듯 비슷한 모습으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있어 왔던거 같다.

이 책의 내용도 탁월하지만,

70년대 80년대 90년대도 느껴볼 수 있는 한 러너의 삶을 읽어보면서

인간의 어떤 면이 그렇게 바뀌었고 어떤 건 구식이 되었는지 난 알수없었다.

도리어 그 시절 그의 얘기들 속에서 더 명징한 사유의 흔적들만을 느낄 뿐.

이 책은 분명 달리면서 얻은 수많은 장점들과 경험을 소개한 책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분명한 철학책이다.

표현이 어렵거나 우월성을 느끼는 자전적인 경험 일부의 확산에 기대지 않고

진실로 퓨어한 무언가를 계속 펌프질하는 부분이 강한 책이다.

달리기를 운동으로만 경험하고자 한다면

이를 대체할 종목은 많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멀티적인 삶의 충만성을 위해서는

달리기의 경험은 유일무일할 듯 하다.

창피한 얘기지만 달리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공기는 나빠지고 트레드 밀 위에서 일정하게 달리는 시간은

길어야 30분을 넘지 못해왔다.

비유하자면 사우나실에서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시계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느낌이 나의 트레드밀 위의 마음같다.

그런 스스로를 다잡을 겸 저자의 인정받았다는 그 철학도 읽어보려

이 책을 선택했다가 너무 많은 경험을 하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쉽게도 저자는 노화로 죽은게 아닌 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건강전도사로써의 삶처럼 이 책을 읽으려 한 사람들에겐

이미 이 사실이 하나의 좋은 전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건강의 도구로써만 읽으려 말고 마음으로 읽어보라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생활이란 어떤 것인지

너무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해줄 책이다,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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