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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존재하기 -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경험으로서의 달리기
조지 쉬언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20년 4월
평점 :

책속 한 구절은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그냥 기억나는 대로 써보려고 했으나,
워낙 원문의 글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좋고
특별한 가공을 가할 필요없는 느낌도 전달하면서
저자 특유의 성격마저 느껴볼 수 있을 매트한 글이라
그대로 적어보는게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음은 페이지 390에 나와있는 글이다.
'원죄란 우리가 지닌 잠재력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삶에 해답이 있다면 그건 더 많이 사는 일이 아니다.
삶의 한계가 어딘지 직접 부딪쳐 본 뒤,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죄책감은 제대로 삶을 살아가지 않을 때 생겨난다.'
신기하게도 이 다음 글은 달리기 본연에 대한
찬사적인 글이 바로 이어지는데,
그 글까지 인용한다면, 앞선 인용글의
탁월함을 다소 떨어뜨리는 듯하여
일부러 여기까지만 적어 보았다.
책 전체가 이런 류의 문장구성은 아니지만
정신과 육체 그리고 그 매개점인 마라톤을 다루고 있기에
어느정도 한사람이 쓴 글로써의 느낌들로써는
동일성들이 많이 느껴지고 있다.
난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껴보게 됐던 건,
책의 생명력은 시간의 흐름과 결코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마의 산 같은 책이나, 데미안,
까뮈, 데일 카네기, 아가사 크리스티 등등,
이들의 비슷한 점은 소설류라던가
책의 저자라던지 그런 것들만은 아닌거 같다.
이 나열한 이름들은 이미 한세대 또는 몇세대 전의
베스트셀러와 인물들이란 점도 공통점이고,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지만,
이미 후생가외의 삶처럼
비슷한 소재의 다른 책과 다른 인물들이
앞선 이들의 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속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굳이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적어본 것은
독창적으로 인정받는 것들의 상당 부분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은 테크놀러지 같은 분야에서만
이전에도 앞으로도 그런듯 싶고,
인간의 사유나 기타 전반적인 인문학적 요소들은
이미 기존의 좋은 것들이 차고 넘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정말 탁월한 면이 많다.
게다가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측면에서
나와 비슷한 면도 많이 느껴
묘한 느낌을 공유하며 읽는 즐거움도 주었다.
헌데, 이 책의 저자가 세상을 뜬 시기는 1993년이다.
거기에 한국에 나온 이 책의 초판 시기는 2003년.
이 한명의 저자와의 만남도 우연이지만
책의 내용만으로 놓고 본다면,
이 책의 내용도 모르고 살았던 어떤 독자의 시절속에서도
이 책은 이미 존재해 왔던 사실을
한번쯤 생각해 봄도 매우 중요해 보인다.
새로운 것을 찾아해매고 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고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를 인정받으려 애쓰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조금 넓게 보면 비슷한 누군가가 이미 존재하며
현재의 독보적이고 유일할 것만 같은 많은 고민들은
이미 다른 듯 비슷한 모습으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있어 왔던거 같다.
이 책의 내용도 탁월하지만,
70년대 80년대 90년대도 느껴볼 수 있는 한 러너의 삶을 읽어보면서
인간의 어떤 면이 그렇게 바뀌었고 어떤 건 구식이 되었는지 난 알수없었다.
도리어 그 시절 그의 얘기들 속에서 더 명징한 사유의 흔적들만을 느낄 뿐.
이 책은 분명 달리면서 얻은 수많은 장점들과 경험을 소개한 책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분명한 철학책이다.
표현이 어렵거나 우월성을 느끼는 자전적인 경험 일부의 확산에 기대지 않고
진실로 퓨어한 무언가를 계속 펌프질하는 부분이 강한 책이다.
달리기를 운동으로만 경험하고자 한다면
이를 대체할 종목은 많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멀티적인 삶의 충만성을 위해서는
달리기의 경험은 유일무일할 듯 하다.
창피한 얘기지만 달리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공기는 나빠지고 트레드 밀 위에서 일정하게 달리는 시간은
길어야 30분을 넘지 못해왔다.
비유하자면 사우나실에서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시계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느낌이 나의 트레드밀 위의 마음같다.
그런 스스로를 다잡을 겸 저자의 인정받았다는 그 철학도 읽어보려
이 책을 선택했다가 너무 많은 경험을 하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쉽게도 저자는 노화로 죽은게 아닌 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건강전도사로써의 삶처럼 이 책을 읽으려 한 사람들에겐
이미 이 사실이 하나의 좋은 전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건강의 도구로써만 읽으려 말고 마음으로 읽어보라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생활이란 어떤 것인지
너무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해줄 책이다, Gr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