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또 다른 나를 마주할 결심
스즈키 유스케 지음, 명다인 옮김 / 밀리언서재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이나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트라우마를 다룬 책 중에 제일 좋은 내용을 담은거 같다.
대학원생들 전용이나 전문 상담가용도 접해봤던 경험에 비춰
이 책이 그런 책들보다 오히려 더 나은 점들도 많다고 보는데,
좋은 책이 될 조건은 흐름을 써내려가는
저자마다의 전개방식에 있을 때도 많은데
저자 본인이 아닌 제3자의 정서나 지식을
은연중에 고려하면서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아서나
어떤 이유가 있어서 좋게 와닿고 아니고를 말함은 아니다.
특히 심리서 장르에서는 더더욱.
이런 간단하 판단기준 하에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 쳤을 때,
이 책만이 가진 흐름이 독자의 정서와 지식수준의 여러 변수에
불특정 다수에게 먹힐 그 믹스가 조화로워
무생물인 책 한권에 담긴 저자의 지식은
단순 활자가 아닌 필요한 부분들을 알아서 보충해가며
개인과외하듯 흐른다면 특히나 좋은 진행이라고 느낀다.
용어풀이라던지 볼드체를 쓰는 등의 가독성이 아닌
진짜 가독성이 흐름을 타고 있을 때 좋은 책.
이제 내용을 들어가 보면
트라우마를 본론으로 다루기 앞서
각자의 트라우마가 왜 다를 수 밖에 없는지
그 기준부터 부드럽게 터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 터치가 슬프게 다가오는 건
트라우마 자체를 건드리기 보다는
인간 존재 그 자체가 지닌 실존과 고독을
예상못하게 건드린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밖에 살아보지 않으니까'...
맞는 이 짧은 말은 굉장히 많은 걸 내포한다.
경험도 유일하고 해석도 유일한 각자의 삶.
정답은 있을수도 있지만 모두 그냥 머금고 살기에
공유되는 정답은 없고 뭐를 따라하기도
애매한 삶이란 독창성과 고유성.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밖에 살아보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의 부모로밖에 살아보지 못했다.
나는 누구의 배우자로밖에 살아보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의 형제자매로 밖에 살아보지 못했다'
이 비슷한 듯 다른 문장은 사실 너무도 다른 현실을 담았다.
'나는 자식이지만 너의 자식이 아니며
나는 부모이지만 너의 부모는 아니며
나는 배우자이지만 너의 배우자는 아니며
나는 형제지만 너의 형제자매가 아니란 그것'
이것은 완전 다른 시각을 인지해야만
그 진실을 이해할 수 있는 특수성을 가진 문제다.
각자의 삶이 다르기에 트라우마 또한
다를 수 밖에 없음을 내포하겠지만,
언제나 분노하고 언제나 슬프고 언제나 우울하며
어딘가 공감을 얻고 띠론 호소하고 싶을지라도,
그 사연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누군가란
사실 이 세상엔 공유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진다.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라는 말은 이해하면서
나를 나만큼 이해할 타인이 존재할 수 있음을
기대하고 믿는다는 건 넌센스란 출발은
트라우마를 이해하는데도 필요할 요소일지 모른다.
트라우마는 2가지로 나뉜다, 큰 것과 작은 것.
큰 것은 자연재해나 불가항력 등 외력에 의한 것이 많고
작은 것은 일상생활에서 벌어진 그밖의 것들을 뜻한다.
트라우마는 흡사 우울증과 유사하지만
책이 말하는 가장 이 둘의 큰 차이점은
트라우마는 자기분열을 남긴다는 점이다.
이 분열이 정신착란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분열이라 명명하는 것은,
자신안에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존재하는
자신도 알기 어려운 경계와 공간이 존재하는 듯한
모호한 느낌의 불편함이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에겐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의 존재이유는
자신이 경험한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활용되는
해리란 방어기재와 유사하다고도 보인다.
해리도 3가지로 나뉘는데
1차와 2차까지는 거의 분열과 가깝고
3차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하나의 몸에 여러 인격이 존재하는
그런 경우를 말하며
해리 중 매우 흔치않은 단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우울증이라 명명하지만
어쩌면 트라우마 증세일 수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그건, 원인이 바뀌면 접근법과 치유단계도
달라진다는 당연한 논리 때문이고.
트라우마 자체에 관심이 있어서건
아님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이건
이 책의 내용들은 분명 어떤 방향이던
상당한 만족을 줄 통찰을 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