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 재활용 시스템의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
미카엘라 르 뫼르 지음, 구영옥 옮김 / 풀빛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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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을 열고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까지

무거운 마음은 해결되지 않는다.

평소, 환경문제에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가는데

혼자만의 특별한 이유란 있을 수 없다.

많은 쓰레기들이 단순 소비로 탄생한다기 보단

모두가 너무 많은 종류의 플라스틱 소재가

직간접 적으로 소비됨으로써,

생활 쓰레기를 자동 생산하는 양산자 역할을 

모두가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개인들 그리고 모든 가정들이 어떤 식으로던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일 배출한다.

이런 현상을 각자가 벌이는

쓰레기의 생산으로 비유한다면,

얼마나 많은 양의 쓰레기를 각자 만들어내는

공장 역할을 각자 하고 있는 것일까 자문해 본다.


일상적으로 이런 종류의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많은 생활 속 장면들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감자튀김 하나를 먹더라도

캐찹 하나를 플라스틱 포장지에서 짜내 먹고 버리며,

수많은 음식들 또한 비닐 용기들에 담겨져 팔리고 소비된다.

그걸 먹고 비워진 오염된 봉지들은 최종 

쓰레기 봉투라 불리는 또다른 비닐봉투에

재포장되어 이 플라스틱 세상에서 돌고 돈다.


이 책은 사실 내가 원했던 

생활속 쓰레기 자체의 양산과정에 관한 

환경문제를 다룬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쓰레기와 관련된 현 사회구조 비판과

쓰레기 처리를 담당하는 독점처리하는

특정 지역 자체의 환경문제 등에 

더 집중한 글들이 주제라 보여지는게 많다.

순수한 환경 자체의 문제를 다룬다기 보단

사회 계급적 문제로 쓰레기 문제를 해석해보며

지역적 문제를 더 다뤘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저자의 전공 또한 처리관련 공학자가 아닌

인류학 전공의 학자란 점도 그걸 뒷받침한다.


책에 등장하는 주된 무대는 

베트남의 재활용 플라스틱 집하장이 된 한 마을이다.

큰 낫으로 물고기의 배를 가르듯

압축된 쓰레기 봉투들을 작업자들이 뜯으면,

세척을 거쳐 탄소 알갱이들을 추가해

재활용되는 과정을 거치는 플라스틱들 재활용.

어디쯤에선 순수한 자원활용적인 환경문제로

이야기가 조금 집중되기도 하지만

그런 식의 분량자체는 많지 않다.


활용이란 이름으로

재활용 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들마저

모두가 바라는 선순환으로 처리되긴 어렵고,

완벽하지 않은 처리절차를 거쳐

결국 쓰레기가 쓰레기로 재탄생 되는 식이었다.

줄어들기 보단 어쩌면 모습을 달리해

점차 증가되는 좋지못한 구조를 지녔단 얘기고.

재활용 가능한 전체 플라스틱 비중도

50%를 밑도는 수준이란 점도 언급된다.


재활용 되는 과정들도 잘 들여다보면,

그냥 좀더 복잡한 공정만 추가해 

결국 다른 형태의 플라스틱으로 재탄생 됐다가

더 오도가도 못하는 새로운 형태로 

최종 쓰레기화 돼 남게되는 운명도 다뤄본다.

결국, 재활용이란 게 진정한 재활용으로써가 아닌

오히려 더 처리 곤란하게 혼합되고 

변형된 플라스틱 단계로 변모될 수 있다는 얘기.


전체적으로 책에선 이런 내용들보다는,

선진국에 해당하는 국가들에서

생산재로써 포장재로써 사용된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베트남 고구마 마을 같은 곳으로 모여들고

그 마을 사람들의 의식주에 악영향을 미치는 

그 모습에 더 관심을 갖은 구조로 되어있고,

최종적으로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는 짊어지고 있는

영원불멸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모이는 

최종집하장 역할을 우려하는 부분들이 많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할 것 같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게 자신의 상식은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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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타인 - 가족 치료의 대가 이남옥 교수의 중국 가족 심리 상담
이남옥 지음 / 북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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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일컫는 타인은 가족 속 구성원들이다.


가족.


누군가에겐 살아가는 이유요,

누구에겐 멀리하고 싶은 존재다.


저자는 2020년까지의 상담경험을 책에 담았다.

원래 가계도 정리와 가족세우기란 2가지 스킬로 

다양하게 엉킨 가족관계를 재정립 해보고

관계회복을 도와왔던 상담전문가다.

하지만, 현재는 코로나 상황으로 중단중이라 하니

여러 가족들에게 좋은 계기가 되어줬을 

오프라인 활동들이 피치 못하게 중단된 건

독자로써도 못내 아쉬운 일이다.


보통, 상담사례 속 등장이름들은 가명이다.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라고 과언은 아니고.

헌데, 이 책은 여기에 하나 더 특이한 게 있는데

저자에게 중국 활동을 주선한 

지인의 이름마저 익명처리 돼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밝히는 그 이유는, 

혹시나 주선자 이름을 통해 상담받은 이들이 

추정될까 염려됐다는 부연설명을 해놨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례집 형식이다.

그것도 중국내 가족상담 사례들로만.

그렇다면, 중국 가정이니 

조금은 한국과 동떨어지게 느껴질까

아님 같은 동양권이고 가족이니 그 공통점으로 

공유될만한 가족내 일처럼 느껴지는 사연들일까.

만일 저자가 굳이 중국내 사연이라 언급 안했다면

100% 한국내 사연들이라 보여질 수도 있을 얘기 같았다.

다만, 몇대를 걸친 사연들이 상당수라

윗세대의 생활상에선 중국만의 모습이 많기도 하지만,

이는 어느정도 감안하면 될 문제같다.


하지만, 굉장히 놀라웠던 건 사실 다른데 있다.

얼핏봐도 책엔 27개의 가족사례가 실렸고

그 사례들마다 공통적으로 3대 정도를 

역산해 추적조사해 봤다고 가정했을 때,

실제 사례 조사수는 3배수 정도 더 늘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읽고 또 읽어나가다 보면

나같은 착각이 들지 모른다 생각이 드는데,

모든 이야기들이 마치 한 가족내의 얘기인냥

돌고 도는 비슷한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가족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당연 다르고

겪은 각자의 사연들도 다 다른데 말이다.

같은 이야기가 맴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서로의 이야기는 너무 닮아 있었다.


사연들마다 공통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문제가 있는 가정들 속 매커니즘들이

비슷하게 닮아있어 보여지는 데쟈뷰였다.

굳이 일반화하려다 느껴진 부분이 아니라

많은 사연들을 접하며 느꼈던 묘한 느낌이었다.


그리 많지 않은 페이지지만

27개 정도의 가족 사연들이라면 적지 않은 양.

어떤 가족들은 고민으로 살았고

어떤 가족들은 고민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

그 시간들의 총합을 고려해 봤을때,

이 책이 담고있는 가정들 속 구성원 마다의

고된 시간들은 실로 가늠하기 어렵다.

이걸 단순 페이지 수가 아닌 

지나쳐온 그 시절들로써 상상해 본다면

참 아련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기억남는 한구절.

보통은 책임감 있는 자녀로 불리는

든든한 맏이와 효자 효녀들.

그런 자식들을 보며

걔들은 그런 성향의 아이로 

태어났다고 봐왔던 부모들.

책에서 짧게 언급 정도로 넘어간 부분이지만

이는, 부모상을 정립하지 못해 벌어졌을 가능성과

어떤 아이의 처지가 부자연스럽게 리더로써 발휘돼

과한 주도권을 행사하는 역할로 성장했다는 분석이 실렸다.

어찌됐건 주도권을 가졌다는 그 말이

좋아 보인다거나 권력다툼 속 우위를 점한 

가족구성원을 떠오른다면 그건 좀 모순이다.

이 주도권이란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꿔 

'책임감'이란 단어로 써보면 그 느낌은 일순 바뀐다.

누군가 주도권을 가졌다가

누군가 책임감을 과하게 부여받은 것으로,

누군가 다른 가족보다 더 주도권을 가졌다를

누군가는 다른 가족보다 더 책임감을 

가져야했던 상황으로 표현해 본다면

그 사람의 주도권 상황이 부러울까?


그리 큰 비중의 내용은 아니지만

저자의 이런 묘사가 전문가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유는,

그냥 책임감이라 표현됐어도 비슷하게 읽혔을 문장을

과주도하는 성향이라 표현해 봄으로써,

단순할 수 있던 내용이 보충되는 효과도 있었고 

이로인한 부작용과 안타까움도 더 잘 이해해 볼 수 있는

색다른 해석 역할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실, 일반적으로 복잡한 심리학 이론을 

불특정 사람들이 깊게 알아갈 필요가 있을까 

여러 책들을 보다보면 자주 든다.

오히려 이런 사례집 유형이 본인에게 적절하다면

이론보다는 사례 자체로써 뭔가를 느껴보는데

더 유익할 수도 있다고도 보여진다.

이 세계적인 환란을 지나,

저자가 더 많은 가정에게 2020년 이전처럼 

필요한 혜안을 선사할 수 있는 때가 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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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성격 상담소 -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인생이 힘든 당신에게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생각의날개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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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미 이치로의 책 중 3번째로 읽어 봤다.

저자 이름 자체로 기억하는 사람은 적더라도

그가 히트시킨 '미움받을 용기'란 심리학 책은

좀더 많이들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몇번 저자의 책들을 만나봤었지만 그 인연에서는 

생각보다 큰 감흥을 받지 못했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 아들러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메가 히트작이었던 미움받을 용기같은 전작에 비해

다른 후속작들은 그다지 큰 주목은 못 받았었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섞였던

부모 봉양에 관한 책도 그러했던거 같고.


이렇게 저렇게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한 저자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잊혀져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랜만에 그의 이번 책을 읽게 되면서

기시미 이치로란 작가나 아들러 이론에 대해

매우 흥미롭게 접해 볼 기회를 얻어 행복했다.

이 책에선, 아들러의 성격이론을 소개하면서 

살짝씩 저자의 의견 정도만 덧붙이는거 같아도,

내용을 살피다 보면 아들러 원전 자체보다

기시미 이치로의 시각에서 보강된 문장들 속에서

더 풍부함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오래된 이론을 소개하고 정리함에 있어서

이렇게 현실과 잘 매칭될 수 있는 건,

원전의 힘도 물론 있겠지만

정말 저자의 힘이 큰 거 같았다.


책은 비슷한 키워드로 4개의 파트 정도로 나뉘는데, 

허영, 질투, 미움이 한 파트,

소극적 성격, 쉽게 불안해지는 성격, 겁많은 성격도 한 파트, 

쾌활, 미숙, 완고, 비굴, 오만, 기분파, 비관이 한 파트,

화, 슬픔, 불안, 기쁨, 동정, 수치심이 한 파트,

이렇게 크게 4개의 파트로 나뉘어

스토리를 가지고 각 파트마다 진행된다.  


과거엔 추리크초겐하이트라 명명 됐지만

현대적으론 은둔형 외톨이라 불리는 유형을 보자면,

왠지 왕따 등의 사유 때문에 박해의 표적이 되어

어딘가에 틀어박혀 사는 삶을 말하는 듯 싶지만

책에선 이는 사실상 잘못된 신경증이라 지적한다.

작은 방에서 외톨이로 살게 된데는, 

외부로부터 벌어진 사건 때문만은 아닌

밖에선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단

경우의 수에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좁은 방에서 나오게 된다면 

결국 자신이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란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니까.

이는 방에서만 가능한 자신을 위한 세상의 중심은

현실에선 지속될 순 없단걸 뜻하도 하다.


또하나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의 비유.

신화 속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로

사람을 침대에 눕혀놓고

모자르면 늘리고

넘치면면 잘랐다는 얘긴데

융통성 없는 원칙적 심리를

쉽게 이해해 보는데 차용해 사용했다.

즉, 자신의 기존사고로써 살아가고자

세상을 자신의 생각 안에서 재단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보다보면 건강한 정신을 소유한다는 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모두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는데

그것을 되돌아보는 능력은 어차피 자신의 능력이다.

즉, 자신이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본다는 게

왠만해서는 쉽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타인이 아닌 자신의 사고능력이 

문제 없을 때 전제되는 방향성이다.


이 책을 기시미 이치로의 책 중

가장 좋은 책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게 된다.

어쩌면 내용자체만으로는 

미움받을 용기보다 훨씬 좋다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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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 감정을 다스리는 심리 수업
황양밍.장린린 지음, 권소현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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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한 책은 넘쳐난다.

이런 현상을 보면 다들 어떤 생각부터 먼저 들까?

아마도 거부감일 것 같다.

하지만, 다들 서로 나도 그래를 외치기 보단

이 책이 말하는대로 다른 관점으로써

불안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관점이 바뀐다면,

불안에 대한 그간의 고정관념이 바뀌게 됨으로써

어떤 면에서 큰 멍에를 벗을수 있을테니

이는 너무 큰 축복일 거 같다.


과연, 불안은 필요없는 감정인가?

이 자체는 고민할 화두일 필요없이

단번에 당연하단 생각을 갖는다면

이는 매우 드문 케이스 같고,

반대로 너무 혐오하는 감정만 느낀다면

불안에 대한 극도의 트라우마가

인생 중 1번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대다수는 정도의 차이지

난 불안한게 좋아요라고 답할 이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책에서 불안은 

너무도 필요한 감정임을 강조하고 이해시킨다.

하이데거가 남긴 짧은 문장 속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두 불안해야 한다는 

이 명제같은 그 단순한 철학은,

삶 전체에서 불안이란 감정 자체는 

필요한 시그널임을 인지한 철학자의 사유였다.

불안이 불편한 건 너무나 맞다.

하지만, 불안 자체를 욕한다면,

도둑이 집 담을 넘어 들어오고 있는데

낮선 이의 침입에 미친 듯 짖어대는 자신의 개에게

너 때문에 시끄러워 못살겠다는 원망과 뭐가 다를까?

즉, 원망은 하나의 방어시스템처럼 작동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배척당해야 하는 

징그러운 존재로  취급대서는 안 될 

고마운 존재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도 맹점은 있다.

뇌 속에 이미 빨간 불이 켜져있는 사람은

모든 상황이 빨간 불이 윙윙 대는 상황일텐데,

구분없이 켜지는 모든 불안의 시그널마저 

옳다고 봐줄 순 없다는 예외는 있다.


불안으로 시작된 이 책은

결국 자신을 안정시키는 건,

최종 종착역을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내면의 평화로 귀결시킴으로써

불안으로 시작된 주제를 자연스레 이쪽으로 옮겨간다.

타인에게 잘하는 것 보다

자신에게 잘하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는

너무 슬픈 모순은, 결국 자신을 향한

자신의 애착도에 달린 듯 하단 생각도 해본다.

스스로에게 매몰찬 나머지

자신에게 필요한 애정을 타인에게만 의지하고자 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는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매우 서글픈 일이다.

타인이 그 에너지를 결국엔 채워줄지 아닐지 모르는데

실상 자신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손놓고 있는 꼴이라니 매우 슬픈 일 같다.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은 불안하다.

불안해서 자기 확신이 없을 수 있지만,

확신이 없기에 불안을 반복하는 것이다.

밖에서 구하려 들수록

내면은 고갈될 우려도 크다.

하지만, 모든 양비론 느낌의 이론들처럼

지금 당장은 이 이야기에만 집중되지만,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던지

사람은 사람에게서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면,

스스로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희미해져버리고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북돋는게 또 맞아 보일 수 있겠다.


만약 둘이 너무 대조되는 느낌이라면

나라면 일단은 스스로 자신에게 힘이 되야한다는

자조의 이야기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왜냐면, 가능만 하다면 이 접근법이

더 정확하고 가까운 방식이 될테니까.

매우 잘 정리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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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느린 아이들
김영훈 지음 / 시공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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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그냥 늦된 아이들을 위한

긍정적 내용일 주를 이룰거라 

추측하며 읽기 시작했던거 같다.

즉, 대기만성형의 경우를 다룬다 상상한 것이다.

Late bloomer란 영단어로 보면 

더 확 와닿을 대기만성의 해피엔딩식 방향성.

하지만, 그런 의미로 나아간 부분도 있긴 하지만

결국 학습적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체질개선이 목표지

어떤 결말에 뜻을 두고 있진 않았다.

다양한 원인으로 각자의 학습에서 부진한 아이들을 

원리적으로 이해시키고 서포트하기 위한 

어른의 역할론에 집중된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아이가 직접 읽어야 할 내용은 당연히 아닌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어른들의 

능력 향상을 위한 책이라고 보는게 더 맞았다.


배움이 느리다면 대게 무슨 문제에서 기인된걸까?

책으로 접하지 않는다면 막연한 문제이면서 

어느 가족에겐 절박한 문제일 수 있다.

 

책에선 우선, 아래 7가지의 경우 중 

어딘가엔 원인이 속해있으리라 본다.

다만, 마지막 7번째의 경우는 

앞선 6가지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원인이다.


기본 학습력이 부족한 아이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

느긋한 성격의 아이

공부습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

의욕이 없는 아이

재촉하는 부모의 아이

학습장애를 가진 아이


학습측면에서 느리다면 

공부머리와 공부정서 모두를 봐야하는데

이는 각각 결과와 과정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다.  


여러 사례들이 실려있지만

가장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수용성이 높은 아이를 다룬 부분이었다.

일단, 수용성이란 말 자체가 

학습에 있어 매우 장점이 될 성향 같았는데,

이 파트를 계속 읽다보면 수용성만큼 

학습에 장애가 될 요인은 많지 않을 듯 

매우 큰 문제점처럼 다가왔다.

내가 느낀 바대로 요약하자면

아이의 세상을 향한 선한 관심은

스스로 산만해 질 수 있게 만들고

결국 여러방면으로 손이 많이가는 아이이면서

보살핌과 관심이 극도로 요구되는 이유 같았다.


수용성으로 인해 타인의 의견을 중요시하고,

필요이상으로 재미있는 것에 집착하며,

공부를 멀리하는 경향 또한 심해질 수 있다.

주위가 산만하다 보니 다른 활동에 빠져들기 쉽상이요

되묻거나 반복설명을 요구함으로써 

어른의 인내심과 가이드를 더 필요로 한다.

섬세함과 격렬함을 동시에 소유한 걸로 봐야하기에

어리더라도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인생의 과정 중에

이게 왜 도움이 되는지 이해시켜 주면서 이끌어줘야 한다.

칭찬을 좋아하는 것도 이용하면서 

혼낼때 마저도 칭찬을 먼저 해 가면서 훈육해야 한다.

시작하는 습관을 들여줘야 뭐든 일단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될거고 

그런 다음에야 더 나아갈 수도 있다.

확인은 부모 몫인것은 당연한 귀결.

얼핏보면 손많이 가는 아이양육의

모든 것을 갖췄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다.

한편으론 아이들이면 모두 해당될 이야기 같아도,

수용성이란 성향하에 정리된 내용들이다.

이는, 느린 학습 성향을 가진 아이들의 

극히 일부분이자 한 종류로 실려있다.


다른 내용 중엔, 

시설좋은 고아원과 아닌 고아원의 비유도 있는데,

열악한 고아원생이 시설좋은 곳 원생보다 

더 건강할 수도 있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다.

그게 가능할 수 있는 이유로 든 것은 

열악하다는 이유로 좀더 잦은 이웃들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경우란 역설을 전제로 한다.

이에 반해, 너무 붙어지는 경우의 양육도 예를 들면서

이는 자발적인 움직임을 제한하는 효과를 낳아

스스로 이뤄가는 창의성 발달면에서 

지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실었다.

아이의 발달에서 한 요소만 진리거나 옳을순 없단 

복합적이고 중첩적인 사례들로 보였다.


자기 주도성과 자아형성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다룬 부분도 

매우 간결하고 쉽게 와닿는데

일단 저지르게 하고

경계는 허물어 줌으로써 

경험하게 해주라는 것.

즉, 나아갈 방향의 옳고 그름이 아닌

용기와 관계된 주도성 경험을 

최우선으로 길러주란 조언 같다. 


배움이 느린 아이들의 여러 이유들 중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가장 관심있게 보였던 부분은

디지털매체와 관련된 챕터였다.

아이를 스마트폰과 뽀로로에 맡겨두는게 당연히 된 시대에서

이런 매체들의 장기적 영향력은 

어찌보면 기존 이론 너머에 있는 듯 해서.


저자는 자극적이고 과도한 자극이 될

디지털 매체로 인한 아이들의 학습이란 이름하의 노출은

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게임방식이 주인 디지털 매체 속 컨텐츠들은

눈과 손가락만 움직이는 식이라

두뇌발달에 한계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어쨌거나, 여러 방향과 여러 결론 중

가장 간단하면서 핵심인 부분은

영구적인 바른 독서습관 같았다.

스스로 학습이 가능케 하는 

읽기능력의 바른 습득이 결국 결론은 아닐지.

결국 모든게 읽기 능력에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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