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 감정을 다스리는 심리 수업
황양밍.장린린 지음, 권소현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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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한 책은 넘쳐난다.

이런 현상을 보면 다들 어떤 생각부터 먼저 들까?

아마도 거부감일 것 같다.

하지만, 다들 서로 나도 그래를 외치기 보단

이 책이 말하는대로 다른 관점으로써

불안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관점이 바뀐다면,

불안에 대한 그간의 고정관념이 바뀌게 됨으로써

어떤 면에서 큰 멍에를 벗을수 있을테니

이는 너무 큰 축복일 거 같다.


과연, 불안은 필요없는 감정인가?

이 자체는 고민할 화두일 필요없이

단번에 당연하단 생각을 갖는다면

이는 매우 드문 케이스 같고,

반대로 너무 혐오하는 감정만 느낀다면

불안에 대한 극도의 트라우마가

인생 중 1번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대다수는 정도의 차이지

난 불안한게 좋아요라고 답할 이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책에서 불안은 

너무도 필요한 감정임을 강조하고 이해시킨다.

하이데거가 남긴 짧은 문장 속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두 불안해야 한다는 

이 명제같은 그 단순한 철학은,

삶 전체에서 불안이란 감정 자체는 

필요한 시그널임을 인지한 철학자의 사유였다.

불안이 불편한 건 너무나 맞다.

하지만, 불안 자체를 욕한다면,

도둑이 집 담을 넘어 들어오고 있는데

낮선 이의 침입에 미친 듯 짖어대는 자신의 개에게

너 때문에 시끄러워 못살겠다는 원망과 뭐가 다를까?

즉, 원망은 하나의 방어시스템처럼 작동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배척당해야 하는 

징그러운 존재로  취급대서는 안 될 

고마운 존재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도 맹점은 있다.

뇌 속에 이미 빨간 불이 켜져있는 사람은

모든 상황이 빨간 불이 윙윙 대는 상황일텐데,

구분없이 켜지는 모든 불안의 시그널마저 

옳다고 봐줄 순 없다는 예외는 있다.


불안으로 시작된 이 책은

결국 자신을 안정시키는 건,

최종 종착역을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내면의 평화로 귀결시킴으로써

불안으로 시작된 주제를 자연스레 이쪽으로 옮겨간다.

타인에게 잘하는 것 보다

자신에게 잘하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는

너무 슬픈 모순은, 결국 자신을 향한

자신의 애착도에 달린 듯 하단 생각도 해본다.

스스로에게 매몰찬 나머지

자신에게 필요한 애정을 타인에게만 의지하고자 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는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매우 서글픈 일이다.

타인이 그 에너지를 결국엔 채워줄지 아닐지 모르는데

실상 자신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손놓고 있는 꼴이라니 매우 슬픈 일 같다.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은 불안하다.

불안해서 자기 확신이 없을 수 있지만,

확신이 없기에 불안을 반복하는 것이다.

밖에서 구하려 들수록

내면은 고갈될 우려도 크다.

하지만, 모든 양비론 느낌의 이론들처럼

지금 당장은 이 이야기에만 집중되지만,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던지

사람은 사람에게서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면,

스스로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희미해져버리고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북돋는게 또 맞아 보일 수 있겠다.


만약 둘이 너무 대조되는 느낌이라면

나라면 일단은 스스로 자신에게 힘이 되야한다는

자조의 이야기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왜냐면, 가능만 하다면 이 접근법이

더 정확하고 가까운 방식이 될테니까.

매우 잘 정리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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