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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
강지은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평점 :

칸트는 사실 은근히 유명하고 대중적인 철학자다.
그가 살았던 동네에선 매일 일정한 시간 산책하던
칸트가 만들어 놓은 매일의 루틴이 동네 주민들에겐
정각을 가늠하는 시계추 같은 역할을 했었단 얘기는
한편의 우화처럼 너무도 유명한 소설스토리 같은 팩트다.
이 이야기가 설령 칸트의 일화인지도 몰랐거나
그가 철학자로써의 남긴 업적 또한 모르더라도,
산책하는 칸트와 그 동네 사람들간의 이 이야기 정도는
한번쯤 들어봤던 기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테니까.
이 책의 내용은 어려운 칸트의 철학얘기가 아닌
칸트를 전공한 한국의 한 철학자가
그가 소개해 보고 싶은 방향으로
일반인들이 소화한 쉬운 언어로
이 시대에 맞는 칸트 철학 일부를
대화의 소재처럼 말해주려는 책이라 할 수 있는데,
편안한 에세이를 읽는 듯한 흐름 안에
칸트의 일상이 주는 긍정성을 소개하기에
칸트란 유명한 철학가의 메세지를 담고 있는 내용이라고는
의식하지 않는다면 크게 의식하지 못할 내용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시대의 화두를 어쩌면 불안이라고 보는듯 하다.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위버맨쉬(초인)란 철학 등도
결국 서로 대치하는 보여도 자신의 이론들 안에서
불안의 대처법을 각자 언급했던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저자 강지은은 이들의 이런 직접적인 철학적 메세지란게
현실에선 괴리감이 있음을 은연중에 칸트를 부각시킴으로써
대중에게 부드럽게 이해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칸트는 이들이 주지 못한 무엇을 말한단 말인가?
정확히 구분해 놓은 답은 아쉽지만 없다.
하지만 정답 대신
칸트철학의 정수를 전공자로써 정밀하게 보여주는 대신
칸트의 삶 자체를 같이 짚어 봄으로써
그가 살아간 자신만의 방식이 뭐였는지 관찰자가 되어 본다.
칸트가 보여준 일상이 철학이 될 수 있고
철학자 칸트 자체를 하나의 모범사례로
쉽게 알려주고 싶었다는 느낌을 주는 책.
이 책 전에 쇼펜하우어, 니체를 읽었고
그 바로 전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읽은 건
그냥 우연이라기엔 책들간 묘한 연결성을 느꼈다.
최소한 철학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써 살아간 이들의 모습 속엔
그 자체로 정반합 논리의 예시가 되어주는 듯 하다.
이사람의 모습이 저사람의 모습과
합쳐지거나 또는 나뉘기도 하면서.
저자는 칸트의 삶을 굉장히 모범적으로 소개하는데
죽는 순간조차 평소의 루틴대로
좋아했던 와인을 물에 묽게 희석해 마시고는
좋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떠난 칸트.
신체적으로 장애에 가까운 체형을 가진 그였음에도
의학이 지금보다 뒤떨어졌던 그 시절에
왠만한 건장한 남성보다 훨씬 장수한 삶은
모든 면에서 칸트를 이 시대에 소개할 만한
사례로 봄은 계속 느껴지고.
불안을 루틴으로 이겨낸 칸트의 실천적 삶을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견주어 보여줬다면,
한 사람의 인생면에선 애덤 스미스와 비교해봐도 좋겠다.
11명이 넘는 형제 중 4째였던 칸트는
건강상의 문제와 더불어 집안적으로 넉넉지 못했다.
다만 운이 좋았던 건 그가 공부를 계속 할 수 있게
일찍부터 도움이나 환경은 주어졌다는 점.
저자는 칸트를 흙수저라고 칭하였지만
이런 면에서 그는 결코 흙수저라고 볼 수 없겠다.
40대가 넘어서야 정식 교수가 되었고
그 전까지는 개인과외나 강사로 생업을 이어간 것이
한가로운 삶이라 보기 분명 어렵겠지만
흙수저라고 확정짓거나 낮춰 부르기엔
어느정도 격이 유지됐던 삶이었기에...
앞서 저자는 철학자에 대한 한가지 오해로
생각이 많으면 생업은 소홀히 할 수 있을거 같으니
많은 철학자들이 굉장히 어렵게 살았으려니 싶겠지만
삶이 의외로 풍족했던 철학자들이 많았고,
반대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단 걸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리 살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는 반로일 수 있고
이미 생업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만한
그런 사람들이 아닐 수 있었다는 반증으로 이해해 본다면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는 부분들이라 말은 건내기도 하는데,
칸트가 그 정도의 여유를 누렸던 철학자는 아니였을지라도
흙수저로 뭉뚱그려 그 삶 자체를 설명하기엔
평균 이상의 삶이라 보여진다.
애덤 스미스를 칸트와 비교하고 싶었던 것은
크게 살아온 자신의 루틴을 가졌다는 면에서 비슷했고
죽을 때까지 그리 살다간 모습 자체도 비슷하지만
세세한 면에선 분명 구분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죽을 때까지 독신이었으면서
어머니와 살다 간 남자가 아닌 아들의 삶이었다.
교수였고 철학과 경제학에 큰 족적을 남긴 스승이 됐지만
개인으로써는 아이었고 철저히 외로웠다고 봐야한다.
헌데 칸트는 요즘말로 해석하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이 분명했던 남자이라서
그냥 간략한 삶의 겉모습이 루틴화란 면에서
애덤 스미스와 매우 유사하지만 다른 느낌이니까.
그렇기에 이 두 철학자 간의 유사성 비교는
저자가 말하는 루틴의 중요성을 따져보는데 유의미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큰 차이를 가져서 나름 중요해 보인다.
불안을 누를 철학으로 루틴을 가진 삶이라...
그리 살아간 칸트 자체가 평생 실천한 그런 모습과 더불어
그만의 루틴은 자신만의 호불호가 덧대진
일상성이었기에 의미있다고 봐야하진 않았까?
불안은 해법으로 다룰 수 없음을 단언하면서
저자는 해결이 아닌 일상의 루틴화로
많은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독자를 설득하는 책같다.
같은 하루를 비슷하게 매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그 자체 하나로 보통의 사람들에겐
불안이 아닌 자신감과 건강을 허락한다는 논리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