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론 : 성공을 위한 내려놓기
다카모리 유키 지음, 원선미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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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발상을 다양한 소재로 많이 다룬 책이다.

그리고 독특한 그 발상들은 내용면에선 다소 짧다.

설명의 가짓수는 많고 그 설명의 양은 간소.

 

여러 이야기중 

승인의 양과 관여의 양이 비례한다는 

주장이 담긴 챕터부터 소개해 본다.

승인과 관여.

얼핏보면 일종의 법률 용어처럼도 첨엔 느껴졌다.

하지만, 읽어보니 그랬던 느낌과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단어적 느낌은 조금 달랐는데,

상대를 승인해 줄 수 있다면

점점 상대의 관여를 끌어낼 수 있어 좋다는 논리였다.

여기서 상대를 향한 승인이란 일에 자율성을 준 것이고

상대의 관여란 승인을 허함으로써

점차 승인받은 이가 스스로의 자발적 움직이므로

관여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더 쉽게는 풀어 설명해 보자면,

상대를 향한 믿음이 그로 하여금 

타인을 위한 일을 하도록 만든다는 것.

저자는 정말 우수한 사람일수록 지는 척을 잘 한다며,

이게 시합에서는 졌지만 승부에선 이기는 전략이고

이렇게 룰 전체를 지배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이해한 사람이기에 

진짜 졌다기 보다는 진 척을 한 셈이 된 것으로 

상대가 이긴 느낌을 받게 함으로써 생긴 결과는 

둘 모두에게 영향을 끼칠 좋은 상황이 될 거고 

긍정적으로 이런 움직임은 결국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이런 식의 많은 내용이 담겨있어서 

어느 부분에서 읽는 사람들마다 

각자의 울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역발상이라 느껴지는 느낌들이 많아

일상이고 습관이던 본인의 많은 것들을

되집어보는 과정을 마주하게 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얻게 된 깨달음들이라면

마음에 들 부분은 분명 발견하리라 생각한다.


책제목으로 쓰인 항복론이란 뜻도 한번 집어봐야 좋은데,

이는 내려놓으란 뜻의 통칭이라 느끼면 좋겠다.

많은 얘기 자체를 들려주기 보다는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자신의 지난 상황을 보여주며

거기에 비추어 이야기 해나가는데,

그럼으로써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자신이 그 정도 밖에 안된다는 

불완전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부분이 핵심.

하면 된다. 노력하면 된다.

열심히 해라. 믿어라로써는

결코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며,

가급적 빨리 한계를 설정짓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객관적 자기보기를 

성찰해 실시하는 제시라면 제시.


성공하는 방법이나 결과를 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나 교육이 지천인 세상에서

결과를 내는 사람이 소수라는 건

그 얘기들에 맹점이 있다는 소리라 설명하는데,

열심히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란 

어쩌면 환상이고 그 속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고 일깨운다.

6년간 안타를 1개 밖에 치지 못했다던 본인의 야구선수 시절.

오래해 왔지만 선수로써의 능력치를 인정하기 보다는

구력으로 들인 노력으로 자신을 보려했기에 버리지 못했다는 과거.

결국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컨설턴트란 업무로 전환한 후에서야 비로써 

자신의 한계 인정이 준 새로운 길이 열였다고 들려주는 그의 사연.


환상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늘 새로운 희망에 부풀게 만들어 주지만,

그 허망한 반복 속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이제 어떤 것은 그만 내려놓으라고 명명하는 그.

현재의 나로써는 영원히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는 그 점에

스스로 항복할 수 있을 때라야 아이러니하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고 열린다고 덤덤히 말해준다.

다만 희망적이라면 희망의 빛이

자신에겐 '단숨에' 보였었다는 경험이 덧붙여 지면서


자기계발서는 분명하지만 

용기보다는 성찰을 이끄는 책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내려놓기 보단

이 책 저자가 말하는 내려놓기가 더 와닿는 걸 보면 

난 좀더 세속적인 기준이 맞는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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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받는 것은 모욕이다 - 깊은 내면의 ‘나’를 만나는 게슈탈트 심리상담 EBS CLASS ⓔ
김정규 지음 / EBS BOOKS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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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탈트 이론이 주장하는 

생각이 만들어지는 속성이자 착각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객관적 자기 것이 아닌

어릴 적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창조한 결과물이라고 본다.

그 표현에서 주목되는 단어는

적극적과 능동적이란 말들이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주관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니,

인위적 변화도 얼마든지 가능하단

그 발상에 핵심이 있겠다.

따라서, 저마다의 생각은 정답이 없다.

그저 듣는 이의 인내심과 통찰력이 필요할 뿐이지,

불가역적인 인지오류로 접근할 필요도 없고

그럴 듯 하더라도 냉철하게

실제 존재하는 현실을 정확히 

묘사했다고 공감하는 것도 보류해야 한다.

묻는 이와 듣는 이 모두에게

정확한 상황파악이 가장 중요했다.


누군가는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창조해 낸

가상현실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측면이 있으니,

누군가의 자기 설명이 됐건

그들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해 들어줄 필요가 있고

속단 보다는 시간과 복기의 강약도 필요한데,

저자는 어떤 생각이던 충분한 지지가

상담 중 큰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는 측면도 있었다.


읽다보면 이게 게슈탈트 이론인지

저자가 다른 이론과 융합했다는 것들 중

불교적 색채의 콜라보인지 헛갈리는 것도 다수 있었지만,

이질적이지 않고 음미해 볼 결과물이라 느껴졌다.

예를 들어, 많이들 이야기하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논의로써,

현재를 잘 사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를

어떤 책보다 와닿게 설명한 부분이라 느꼈다.

  

요약해 보자면, 무언가 추구만 하는 삶을 산다면

결코 현재를 맛보는 삶은 없다는 게 핵심.

현재가 부정당하고 미래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삶...

그런 현재가 부정적이고

미래 또한 밝지 못한 것은 궁극적으로,

그렇게 그려지는 미래란

결국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세계란다.

내가 이해한 이 말의 뜻은

현재는 없고 다가올 미래만을 기다린다는 말 같았다.

언젠가 다른 서평에서도 인용한 거 같은데,

홍수로 물에 잠긴 집을 탈출하고자 

지붕 위에 올라가 구조를 기다리면서

고무보트로 구조하러 온 구조대를 보내고

하늘에서 내려올 구원의 헬기나 신의 손길을 기대하는

간절한 바램과 비슷하진 않나를 떠올리게 됐다.


저자는 말한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 절대로 올 수가 없다.'


시간이 존재하는데 물리적으론 옳은 말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추론해 볼 땐 맞을만한 논리다.


노력하면, 

언젠가 때가 오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미래의 그 시점에 난

행복해 질거야라는 믿음...


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미래는 현재 실제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지금 뿐.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다.

그 다가올 미래는 언젠가 현재가 될거니까.


행복은 지금 이 순간과 접촉하여

삶과 연결될 때 느껴져야 하는 

살아있다는 스스로의 느낌이어야 한다.

평생, 현재를 그냥 보내고

미래의 어떤 순간 어떤 포인트를 행복으로 기대하며

먼훗날로 자신의 기대치를 미루고만 산다면, 

어느 날 성공이 현재로 찾아왔을 때 행복해질까?


행복이 미래의 꿈이라면

그날이 오더라도,

자신이 찾는 행복은

다시 미래로 연기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라는 해석.

무서운 말이다. 

결국은 미래는 현재가 되고

다시 미래만을 바라보며 늙어가는 구조니까.


저자는 말한다.

이런 생각구조를 갖고 사는 이유는,

지금 그대로 사는 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더불어 또하나의 매우 세속적인 고민거리 하나를 다룬다.

그건 '오해를 받는 것'.

살면서 이런저런 힘든 일을 많이 겪는 것들 중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던지며,

인간관계에서 받는 오해가 가장 큰 일이라 평했다.

한 말 또는 진의가 곡해 돼 발생했거나

누군가의 악의적 의도로 발생됐을 수도 있었을텐데,

만일 오해받는 입장이라면 이는 정말 괴로운 일이라 말한다.

자신의 존재가 부정 당하는 결과를 줄 수 있고

무엇보다 이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

수많은 내담자들을 봤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해받고 수용받고 싶은 간절한 욕구가 만족되기는 커녕

진심이 닿지 않는 억울한 상황...

좌절이 마음속에 쌓이는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고

병이 되어가는 안타까운 상황들을 

게슈탈트 전문가로써 해법도 제시해 준다.

해법이 상황자체를 해결하는 쪽은 아니지만 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구절이 이 책의 제목이다. 


'이해받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이해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모욕이다.'


이걸 저자는 타성에 의해 

개인의 고유성과 정체성이 훼손될 수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 문구라고 봤는데,

난 다음 정리해 본 내담자의 해석에 좀더 동의가 됐다.

즉, 이 학술적 해석이 아닌

자신의 변화를 만들어 준 계기가 된 

누군가의 자의적 해석에서.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무의식적인 반복들에서

상처를 입거나 상처를 주기도 한 내담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를 옭아매 왔었다.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 결국 안되는 것인가?'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것 자체가 문제인가?'

'나는 이해받을 수 없는 사람인가?'


그러다 들은 이 니체의 말에서 그녀는,

아무도 당신의 심정을 이해 못한다고 느끼는게

자신의 모순이 아니라고 느꼈던 듯 했다.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나의 잘못만은 아니다'

'상대의 한계이며 나아가 인간의 한계다'


그대로 온전한 존재일 수 있는데

편견, 욕심, 미해결 과제, 언어소통의 한계 등으로 인해

그럴 수 있는 상황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고

그로인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니

그런 작위적 해석이 위로와 안심이 돼 줬다는 결론.


니체가 말한 '이해'는 

어쩌면 여러 단어로 쓰일 수 있을거 같다.


소통, 공감, 연민, 동정, 교류...


일방일수도 쌍방일 수도 있는

타인이 타인에 대한 감정의 흐름들.

이해가 소통을 유도하고,

이해가 공감을 만들고,

이해가 연민이나 동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이해가 간당간당 교류를 이끌어 낼 수도 있으니. 

이는 너무 확장된 해석일까?


고요하고 차분한 강의같은 내용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실제 저자가 한 EBS강의도 있는 걸로 아는데

한번 찾아서 들어봐야겠다. 

책의 분량으로 봤을 땐

강의보다 책이 더 많은 것을 담았을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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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 : 간신학 간신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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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들의 고사와 사례들을 읽어나다 보면,

직관적으로 바로 와닿는 이야기들도 많지만

일부 이야기들에서는 좀더 음미도 해야하고,

실제 제시된 상황에서의 

속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로써의 

상반된 입장차도 구분해 가보며 

여러 방향으로 이해해 보는게 쉽진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작업은 필요한 책으로 보인다.


책이 주는 가장 큰 전제라면,

누가 속고 싶어서 속겠느냐는 

상식적인 생각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꼭 중국의 옛날 이야기 속이 아니더라도

거짓임을 알거나 이해 안가는 선택임을

알고서도 받아들이고 즐기는 사람도

실제 적지 않음도 사실은 사실이니까,

간신들이나 했을 교묘한 술수나 술책과 함께

속임을 당해도 행복해하는 

특별한 소비주체가 있음도 

한편으론 떠올려 보게 된다.


이 책은 '사기'연구와 책들로 유명했던

김영수 저자의 간신 3부작 중 하나인데,

3부작 중 유독 이 '간신학'에 만큼은 

더 흥미가 생겨 이 시리즈의 순서 무시하고

읽어보고 싶은 생각에 선택했다.

아마, 다른 간신이야기에선 사례들이 주를 이뤘다면

이 책은 그 '수법'들을 다뤘다는 측면에서

정리된 학설같은 걸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같은 주제에 관해

이해가 엇갈리는 듯한 부분도 자주 발견된다.

깨어있는 지성이라면 가차없이 간신의 접근을

멀리하고 단죄하는게 맞고,

본능적으로 간신의 정체도 알아보는게 필요하며

당연 멀리해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지만,

책의 다른 요지에선,

간신이 적이라면 그 적을 이해하고 

내가 가진 요소가 없는 적을 이기기 위해

더럽다고 멀리만 할게 아니라 

이들의 술수를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려는 적극성도 가져보고 

어느 순간엔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니까.


물론 여기에 담긴 함의는 충분히 이해 가능하겠다.

하지만, 멀리하는 것과 배우는 것

상반되는 2가지 모두를 멀티로 받아들이는 건

좀더 분별력, 능숙함, 절제미를 요구하는 듯 한 부분이었다.

이게 만일 싸움으로 비유하자면

공격이냐 수비냐의 일도양단적인 결정은 아니라

공수를 겸할 수 있는 능력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니

엇갈리는 듯해도 접점이 생겨야 할 부분을 언급한 것이고, 

인간관계 속 사회성이나 적응능력을 뜻하는 바도 크니

이해 못할 부분까지는 아니겠지만,

지금 이걸 정리하는 이 순간에도

상반된 2가지 경향성을 한몸에 장착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책엔 여러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해봤던

하나의 고사를 소개해 본다.


요언공명(謠言共鳴).

유언비어가 공감을 얻는다는 뜻으로

헛소문을 퍼뜨림으로써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작용을 설명한 파트다.

흔한 수법의 하나로 설명되는데

여기서는 이 뜻 자체보다

뜻을 이해시키기 위해 등장한 

하나의 사례가 더 마음을 움직인다.


'사기'에 등장한 고사로

이름난 효자 증삼(曽參)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 증삼은 공자의 효경을 지은 저자라고도 언급된다.


어느 날, 동명이인인 다른 증삼이

살인을 벌인 사건이 동네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그 증삼이 이 증삼이라 생각해 전하기 시작.

이 얘기를 듣고 효자 증삼의 이야기인 줄 안 누군가는

가장 먼저 증삼의 어머니에게 찾아와 

아들사건이라며 급하게 알려준다.


'당신 아들이 사람을 죽였소!'


베를 짜고 있던 증삼의 어머니는 전혀 믿지 않는다.

그런데 잠시 후, 또다른 사람이 찾아와 재차 알린다.


'당신 아들이 사람을 죽였소!'


이또한 어머니는 믿지 않았고 하던 일만 계속한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전하는 상황...


'당신 아들이 사람을 죽였소!!'


이번엔 그의 어머니는

문도 아닌 담장을 뛰어넘어 아들을 찾으러 달려 나간다.


'사기' 속 이 이야기에 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 글귀를 실었다.


'증삼도 어질고,

그의 어머니 또한 자식을 믿었지만,

3명이 의심하고 전하자 

그 어머니도 결국은 두려워 하였다'


살면서 보여온 행동이 있고

다름아닌 지척에서 그런 자식을 보아왔을 어머니였지만,

3명이 똑같은 사실을 알려오자 

결국은 안 믿을 수 없었다는 것.


사실, 이이야기가 '유언비어'라는 

많이 알려진 고사성어와 

간신의 흔한 술수의 예로 소개됐지만,

독자로써는 다른 방향의 생각꺼리도 갖게 되었다.


현대적 시각으로 사건을 조금 변형해 보면

흡사 보이스피싱을 겪는 상황과도 유사했다.

꼭 거짓에 속은 상황이나

믿기 어려운 상황에 타인으로 의해 노출돼,

주입 되버리듯 믿어버리게 되는 상황으로써 

국한짓기 애매한 부분도 보였고.


책 속 다른 이야기들 중에

간신의 술수를 피할 수 있게 해 줄 태도로

크로스체크 즉, 교차검증을 언급한 사례가 있는데,

위 증삼과 그 어머니의 이야기도

단순히 유언비어의 사례로써만 아니라

교차검증이 필요한 상황 속에 빠진 경우일 수 있겠고,

현명한 판단이나 생각만으로 

믿음이 있다 없다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결정을 내리긴 어려운 경우라 보여졌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찌 흘렀던

2번이나 믿지 않던 어머니였음에도 

진짜 대문도 아닌 담을 넘어 뛰쳐나갔을 정도로

이성을 잃은 3번째 모습이 결론이 됐다면,

아마도 1번째 2번째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베짜는 일을 손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본인 정신은 잃고 있었다고 보는게 맞겠다 싶었고,

그런 판단이 단순 속임을 당한게 아닌

모르는 상황파악과 걱정에 만들어 낸

상식적인 대응일 수도 있다고 본다면

더욱 생각할 꺼리는 많아지겠다.


하지만, 책의 의도대로만 우선 보고 

누군가 믿지 않을 수 없게

3번의 거짓을 전해온다면, 

굳건한 믿음도 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사이기에

책이 전하는 의미가 분명한 이야기이긴 하다.


책은 간신의 여러 술책을 논한다.

직접적으로 이 책 내용이 더 와닿으려면

이젠 존재하지 않는 왕과 신하의 시대이지만

국가적인 업무와 관련된 직업의 사람들이거나

관직에서 결정을 내리는 위치의 사람이어야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주는 귀감은 결국,

간신 그 자체가 아닌

간신과 같은 사람이 가진 본성과 

간신과 같은 사람과 엮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지점에서

일반인들에게 또한 효용이 있을 내용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나 스스로도 그런 마음으로 읽기를 원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상황을 안 만나고

이런 인물들과 안 만나는 인생이 최적이겠지만,

아쉽게도 타인 뿐만이 아닌

가족 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고 본다.

다만, 그것이 이 책 속 이야기들처럼

충언을 올리는 신하는 내몰리고

교언영색하는 간신같은 이들만이 

살아남게 되는 상황이라면,

그 당사자들 중 간신만을 제외하고는

어떤 스탠스를 갖춰야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지

관찰자로써 드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어쨌든 좋은 책내용에서 받은 영감으로

어두운 환경에 매몰되지 않을 

자구책을 모색할 줄 아는 삶이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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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한 해설과 그림이 있는 천로역정
존 버니언 지음, 릴랜드 라이큰 글, 오현미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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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읽기 전에,

글의 형식으로써 설명되고 강조된

이 책의 컨셉 '우화'에 대해

먼저 알 필요가 있어 보였다.


[우화]

:동물이나 무생물을 의인화 해서

그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풍자와 교훈을 줄 목적하에 만들어진 

짧은 이야기들


짧은 이야기들이 주로 우화의 형식이라면

천로역정은 긴 스토리니 좀 다른건가 싶었다.

하지만, 하나씩 여행기처럼 읽어가니

결국 하나의 여정 안에 여러 만남과 스토리가 

우화형식으로 들어있다 보니 결국은 

짧은 우화들이 긴 우화로 연결된 

결합의 우화로 봐도 될 거 같았다.


어릴 때 읽었던 이솝우화도

그냥 이야기였지 형식으로 느꼈던 바는 없었다.

이렇게 우화의 정의를 일부러 찾다보니 

왜 이솝이 만든 그 이야기도 

왜 우화라고 불렸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여우가 말을 하고 자기 상황을 변명하고,

강에 비친 개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짖다가 뼈를 놓치고.

결국, 의인화 된 동물들이였지만

모두 현실성 있는 우화 형식의 캐릭터들였다는 것도

이제서야 어른의 감성으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천로역정의 이야기 중, 낙심의 늪과 절망거인도 

결국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깨달음을 주기 위한 

우화적 장치들이었는데 그 둘을 돌아보고자 한다.


주인공인 크리스천은 묻는다.

가라고 해서 간 길이었고

통과할 문을 가리키기에 

그냥 향해 걸어갔을 뿐인데,

자신은 이 늪에 빠지고 말았노라고.

그 질문을 받은 도움이란 인물은

크리스천에게 왜 디딤판을 안 밟았냐고 묻자 

크리스천은 엉뚱한 답을 해온다.

두려워서 피해 걸으려다 보니 

늪에 빠지게 됐노라고.

늪에 빠진 크리스천...

그는 도음을 만났을 때,

단숨에 끌어 올려지길 우선적으로 요청하지 않는다.

왜 먼저 나간 후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가?

빠져있는 상태에서 왜 빠져 있는지부터 먼저 설명하려 하고

그게 일장연설이 끝난 후에서야

다 들은 도움이 손을 잡았으며

그 늪 속에서 타의적으로 끌어올려진 건가?

빠진 자가, 구해줄 수 있는 자를 만났는데

끌어 올려지기 전에 자신의 푸념부터 토해 놓았다.

늪에 빠져있었다면 점점 더 빠져들어 위험한데

사정얘기가 그에겐 구출보다 먼저인 그 모습...


해설에서 이 낙심의 늪은,

어리석어 빠진 함정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늪이 만들어진 원리는 

오물처리장 같은 더러운 것들의 종착지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신의 거룩함과 자신의 죄를 인식함으로 인한

좌절같은 기운들이 모여

낙심의 늪이 만들어진거라 그려졌다.

밟지 않았느냐 물었던 그 디딤판은

죄의 사함을 의미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찬은 그 디딤판을 밟지 않고

오히려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요행을 바란 그. 

디딤판 없이도 늪을 밟지 않을 수 있다 믿었고

눈에 보이는 발밑을 보며 자신의 인지를 따라

늪을 피해 통과할 수 있으리라 믿은 그다.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그보단 자신을 믿었고

결국 그러다 빠진 늪 안에서도

자신의 처지부터 열심히 설명하는게 먼저였던 그.

손을 먼저 내밀어 건져지지도

자신의 급한 사정을 호소하며 도움부터 청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그 늪에서 나온 크리스천은

늪 속에서 해대던 질문과는 다른 질문을 시작한다.

왜 자기같은 사람들의 통과를 위해

늪을 안전하게 건널 조치를 

미리 더 확실하게 해놓지 않았느냐고.

그러자, 도움은 아무리 개선한 들

늪을 뒤덮는 찌꺼기들은 어떤 디딤판이라도

덮여 버리고 만다고 설명해줬고, 

그대신 어떻게든 이 늪을 건너

안내받은 좁은 문에 다다르면

그 곳은 디딤판이 필요없는 

단단한 땅의 시작이라 얘기해준다.


이 우화에선 건너기까지의 위험함만이 주제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빠지고 말 늪의 개선을 꿈꾸지 말고

건너서 발디딜 곳이 충분한 땅이 있는

좁은 문에 도착함이 나을거란 얘기를 우선 해주는 것.

그런데 그 좁은 문...

그 좁은이 의미하는 바도 분명 있어보인다...


또 하나의 이야기, 절망거인.

의심하는 성의 주인 절망거인은 

주인공 크리스천과 소망을 만나자 가두고 구타한다.

마지막엔 스스로 자살하라 강권하기도 하고.

그런 고난 속에 소망은 크리스천을 독려해 주지만

절망거인은 매일 찾아와 이들을 괴롭힌다.

그러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빠져나갈 열쇠가 있음을 알고

의심하는 성을 빠져나와 다시 길 위에 나선다.

그리고 자신 뒤에 올 누군가를 위해

절망거인의 구역으로 가지 말라는 

경고메세지를 남겨둔다.


처음 이 거인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을 땐

잭과 콩나무의 거인처럼 종국엔 

잭이 이겨 없어지는 거인역할인가 상상하며 읽어갔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거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거인의 마지막은 없었고

계속 고통받다 탈출하는 주인공과

그 벗어남으로 거인과의 인연이 끝났음만 그려진다.

주인공도 살고 거인도 살아있는 결론.

이 이야기를 마무리 해주는 장치로는

다른 이의 발길은 이 성안으로 닿지 않도록

선경험자인 크리스천이 경고하는게 다였다.


천로역정은 여정 속 어떤 고난이던 사라지지 않았다.

모두 경험했고 지나가는게 다다.

그리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거나

경험한 이가 후에 올 누군가를 위해 

조심하란 경고 정도를 해주게 다다.

모두의 경험은 각자 새롭겠지만 

결국 그 길 위에선 하나고 반복을 만들어내는 여정.


그 상상력과 각자에게 맡겨진 해석 때문에

이 책이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본다.

달라지는 해석들로 저마다

여러번 읽게 되는 책이라 칭해진 거 같고.


우화인 줄 알고 읽었지만

현대적인 우화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신의 섭리를 주제로 했기 때문일까?

깊고 경건해지는 바가 분명 존재한다.

인간으로써의 외소함을 일깨워주는 울림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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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 세계적 가족 심리학자 버지니아 사티어의 15가지 양육 법칙
버지니아 사티어 지음, 강유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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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먼저 목차를 보며

궁금해 하던 단어가 있었다. 그건 '솥'.


목차 속 문맥만으로 대강 느낌은 왔지만

외국인이 쓴 가족관계이론 안에 서

왜 솥이란 단어가 등장해야만 하는지

그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선, 책은 솥이란 단어부터 

알아서 설명해주며 시작하고 있는데,

'솥'은 '자존감'을 의미하며,

이 솥이란 단어 자체가 

하나의 정의로써 사용된다기 보다

솥 안에 어떤 자존감이 들어있느냐가 핵심으로 표현된다.

솥이란 자존감 안에 들어있는게 

긍정적 가치인지 부정적 가치인지 보면서.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도 중요하지만

그게 솥안에 어느 정도의 양으로 들어있는지도 살펴볼 요소다.


많은 책, 많은 저자들의 이야기들 속에

자존감은 여러 형태로 설명된 걸 봤었다.

이 책 이전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자존감의 정의는

너새니얼 브랜든의 책에서 정갈하게 정리된 내용들이었다.

굉장히 세련되게 정리돼 있고 

자존감이 연구되어 온 역사도 느껴볼 수 있는 

그런 류의 좋은 책이다.

헌데, 가족이론의 대가인 사티어의 책 속 자존감은

색다르게 설명되고 있다고 느낌을 받는다.

분명 자존감이란 용어엔 일맥상통하는 바가 없을 순 없지만

사티어의 설명 안엔 마치 모성이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사티어는 자존감을,

자아를 높게 평가하며

품위와 애정을 기반으로 현실감 있게 

자신을 선보일 줄 아는 능력으로 묘사했다.


자아, 품위, 애정, 현실감...


그리고 그 모든 걸 아우르는 

단 하나의 귀결점은 '능력'.

그렇다, 사티어의 자존감은

한 사람의 '능력치'로 귀결된다.

어떤 밥을 지어낼 수 있는 솥인가

그 솥이 어떤 자존감이기에

각자 발휘하는 바가 다른가는

저마다가 가진 솥이란 자존감의 능력치였다.

그렇기에 대인관계에서 보여지는 바탕이 되는 것이고.

사티어 스스로 이런 정의에 대해 보충설명 하길

교육, 치료, 커리어, 사적 경험이 어우려져

자신에게 확립시켜 준 개념이라 했다.

뭣보다 가장 중요했던 

자존감으로 벌어지는 긍정적인 세부묘사들,


▶완벽함 

▶정직함

▶책임감

▶열정

▶사랑

▶경쟁력


이것들이 샘솟듯 우러나오게 하는게 자존감인 거라고.

자신을 믿기에

남에게 의지할 수도 있고,

결정은 스스로 내릴 수 있다고 판단내릴 수 있는 그 중심.


스스로를 자신의 정보원이라고 여길 수 있다는 표현은,

스스로에게 의지 하냐 안하냐란 구체적인 설명보다

자신이 자신을 전천후로 믿고 의지한다는 개념설명을

가장 축약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구라 생각 들었다.


그런 사람이어야만 신뢰와 희망을 주변에 나눌 수 있고

감정에 솔직하기에 모든 감정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즉, 감정을 선택할 자유가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다.


지성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힘.

자존감이란 솥이 차 있는 사람이라면

솥이 바닥을 드러낼 위기가 느껴지더라도,

순간의 위기로만 여기고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다.


반대로, 자존감이란 솥이 없다면 생명력이 없는 것이기에

항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속일까 전전 긍긍하고

자길 속이고 억누르고 무시할까 걱정한다.

자신을 방어하려만 하기에 뒤에 숨는 것이고

외로움과 고립감에 힘겨워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나아지는 건 없다.

왜냐면 본래 그리 길러져서 나온 태도니까.

명료한 생각은 갈수록 어려워질거고

동시에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깎아내리려 든다.

계속 그러면 어떻게 될까?

숨어서 자신이 이렇다는 걸 부인까지 해야 하기에

스스로 방어하듯 합리화에 몰두한다.


자존감이 바닥이라는 건,

원치 않은 상황과 감정이 느껴지면

그런걸 마주칠 힘이 없으니,

아예 그런 상황 자체가 없는 것처럼 군다는 뜻이다.

자존감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어야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누구나 기분이 다운될 순 있다.

하지만, 자존감이 채워져 있는 솥을 가진 사람만이

책임을 전가하지도 피하지도 않을 수 있다.

자존감은 결국 한 사람의 태도를 결정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이 바로 서야하고

그 가정을 구성하는 성인들이 

올바른 자존감으로 후세의 틀을

갖춰줘야 한다고 가르치는 책.

너무 옳은 방향을 얘기하고 있으나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와는 세상이

이젠 많은게 변해있음도 느끼게 만드는 순수한 이론들...


사티어는 자존감 발달을

진정한 자아라고 확정짓지 않는다.

다만, 이것을 길이라고 '믿는다'고 표현한다.

아주 어릴 때 올바른 환경에서 

적시에 길러졌다면 좋았을 자존감 형성이지만,

후천적으로 늦게 보완될 기회를 얻더라도

부정적 측면이 완화되고 회복되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는 그녀.


대신, 몸에 밴 습성이 나아지기까진

인내심이 필요하며

대담한 용기도 필요할거라고

동기부여 같은 격려도 잊지 않는다.


대가의 책이니 읽는 거 자체에 가치를 둬도 좋고,

두껍지 않은 두께에 핵심만 느껴지는 문체들에

무게를 두고 읽어도 남을 게 많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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