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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 : 간신학 ㅣ 간신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4년 2월
평점 :

간신들의 고사와 사례들을 읽어나다 보면,
직관적으로 바로 와닿는 이야기들도 많지만
일부 이야기들에서는 좀더 음미도 해야하고,
실제 제시된 상황에서의
속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로써의
상반된 입장차도 구분해 가보며
여러 방향으로 이해해 보는게 쉽진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작업은 필요한 책으로 보인다.
책이 주는 가장 큰 전제라면,
누가 속고 싶어서 속겠느냐는
상식적인 생각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꼭 중국의 옛날 이야기 속이 아니더라도
거짓임을 알거나 이해 안가는 선택임을
알고서도 받아들이고 즐기는 사람도
실제 적지 않음도 사실은 사실이니까,
간신들이나 했을 교묘한 술수나 술책과 함께
속임을 당해도 행복해하는
특별한 소비주체가 있음도
한편으론 떠올려 보게 된다.
이 책은 '사기'연구와 책들로 유명했던
김영수 저자의 간신 3부작 중 하나인데,
3부작 중 유독 이 '간신학'에 만큼은
더 흥미가 생겨 이 시리즈의 순서 무시하고
읽어보고 싶은 생각에 선택했다.
아마, 다른 간신이야기에선 사례들이 주를 이뤘다면
이 책은 그 '수법'들을 다뤘다는 측면에서
정리된 학설같은 걸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같은 주제에 관해
이해가 엇갈리는 듯한 부분도 자주 발견된다.
깨어있는 지성이라면 가차없이 간신의 접근을
멀리하고 단죄하는게 맞고,
본능적으로 간신의 정체도 알아보는게 필요하며
당연 멀리해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지만,
책의 다른 요지에선,
간신이 적이라면 그 적을 이해하고
내가 가진 요소가 없는 적을 이기기 위해
더럽다고 멀리만 할게 아니라
이들의 술수를 자신의 것으로 이해하려는 적극성도 가져보고
어느 순간엔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니까.
물론 여기에 담긴 함의는 충분히 이해 가능하겠다.
하지만, 멀리하는 것과 배우는 것
상반되는 2가지 모두를 멀티로 받아들이는 건
좀더 분별력, 능숙함, 절제미를 요구하는 듯 한 부분이었다.
이게 만일 싸움으로 비유하자면
공격이냐 수비냐의 일도양단적인 결정은 아니라
공수를 겸할 수 있는 능력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니
엇갈리는 듯해도 접점이 생겨야 할 부분을 언급한 것이고,
인간관계 속 사회성이나 적응능력을 뜻하는 바도 크니
이해 못할 부분까지는 아니겠지만,
지금 이걸 정리하는 이 순간에도
상반된 2가지 경향성을 한몸에 장착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책엔 여러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해봤던
하나의 고사를 소개해 본다.
요언공명(謠言共鳴).
유언비어가 공감을 얻는다는 뜻으로
헛소문을 퍼뜨림으로써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작용을 설명한 파트다.
흔한 수법의 하나로 설명되는데
여기서는 이 뜻 자체보다
뜻을 이해시키기 위해 등장한
하나의 사례가 더 마음을 움직인다.
'사기'에 등장한 고사로
이름난 효자 증삼(曽參)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 증삼은 공자의 효경을 지은 저자라고도 언급된다.
어느 날, 동명이인인 다른 증삼이
살인을 벌인 사건이 동네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그 증삼이 이 증삼이라 생각해 전하기 시작.
이 얘기를 듣고 효자 증삼의 이야기인 줄 안 누군가는
가장 먼저 증삼의 어머니에게 찾아와
아들사건이라며 급하게 알려준다.
'당신 아들이 사람을 죽였소!'
베를 짜고 있던 증삼의 어머니는 전혀 믿지 않는다.
그런데 잠시 후, 또다른 사람이 찾아와 재차 알린다.
'당신 아들이 사람을 죽였소!'
이또한 어머니는 믿지 않았고 하던 일만 계속한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전하는 상황...
'당신 아들이 사람을 죽였소!!'
이번엔 그의 어머니는
문도 아닌 담장을 뛰어넘어 아들을 찾으러 달려 나간다.
'사기' 속 이 이야기에 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 글귀를 실었다.
'증삼도 어질고,
그의 어머니 또한 자식을 믿었지만,
3명이 의심하고 전하자
그 어머니도 결국은 두려워 하였다'
살면서 보여온 행동이 있고
다름아닌 지척에서 그런 자식을 보아왔을 어머니였지만,
3명이 똑같은 사실을 알려오자
결국은 안 믿을 수 없었다는 것.
사실, 이이야기가 '유언비어'라는
많이 알려진 고사성어와
간신의 흔한 술수의 예로 소개됐지만,
독자로써는 다른 방향의 생각꺼리도 갖게 되었다.
현대적 시각으로 사건을 조금 변형해 보면
흡사 보이스피싱을 겪는 상황과도 유사했다.
꼭 거짓에 속은 상황이나
믿기 어려운 상황에 타인으로 의해 노출돼,
주입 되버리듯 믿어버리게 되는 상황으로써
국한짓기 애매한 부분도 보였고.
책 속 다른 이야기들 중에
간신의 술수를 피할 수 있게 해 줄 태도로
크로스체크 즉, 교차검증을 언급한 사례가 있는데,
위 증삼과 그 어머니의 이야기도
단순히 유언비어의 사례로써만 아니라
교차검증이 필요한 상황 속에 빠진 경우일 수 있겠고,
현명한 판단이나 생각만으로
믿음이 있다 없다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결정을 내리긴 어려운 경우라 보여졌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찌 흘렀던
2번이나 믿지 않던 어머니였음에도
진짜 대문도 아닌 담을 넘어 뛰쳐나갔을 정도로
이성을 잃은 3번째 모습이 결론이 됐다면,
아마도 1번째 2번째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베짜는 일을 손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본인 정신은 잃고 있었다고 보는게 맞겠다 싶었고,
그런 판단이 단순 속임을 당한게 아닌
모르는 상황파악과 걱정에 만들어 낸
상식적인 대응일 수도 있다고 본다면
더욱 생각할 꺼리는 많아지겠다.
하지만, 책의 의도대로만 우선 보고
누군가 믿지 않을 수 없게
3번의 거짓을 전해온다면,
굳건한 믿음도 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사이기에
책이 전하는 의미가 분명한 이야기이긴 하다.
책은 간신의 여러 술책을 논한다.
직접적으로 이 책 내용이 더 와닿으려면
이젠 존재하지 않는 왕과 신하의 시대이지만
국가적인 업무와 관련된 직업의 사람들이거나
관직에서 결정을 내리는 위치의 사람이어야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주는 귀감은 결국,
간신 그 자체가 아닌
간신과 같은 사람이 가진 본성과
간신과 같은 사람과 엮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지점에서
일반인들에게 또한 효용이 있을 내용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나 스스로도 그런 마음으로 읽기를 원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상황을 안 만나고
이런 인물들과 안 만나는 인생이 최적이겠지만,
아쉽게도 타인 뿐만이 아닌
가족 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고 본다.
다만, 그것이 이 책 속 이야기들처럼
충언을 올리는 신하는 내몰리고
교언영색하는 간신같은 이들만이
살아남게 되는 상황이라면,
그 당사자들 중 간신만을 제외하고는
어떤 스탠스를 갖춰야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지
관찰자로써 드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어쨌든 좋은 책내용에서 받은 영감으로
어두운 환경에 매몰되지 않을
자구책을 모색할 줄 아는 삶이어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