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만 읽어도 된다 - 50에 꿈을 찾고 이루는 습관 ㅣ 좋은 습관 시리즈 23
조혜경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2년 10월
평점 :
며칠 동안 노트북만 쳐다볼 뿐 글 쓰는 것이 막막하기만 하다. 어이없고 황당한 죽음들 때문에 비현실감 속에 살고 있다. 생각을 정리해보려 했지만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은 가라앉지가 않는다. 어느새 책을 펼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마치 밥을 먹어야 살아가듯이 글자를 담아야 할 것처럼. 책은 나의 어지러운 생각을 흡혈하고, 나는 텍스트 안에서 숨을 쉰다.
읽은 지 일주일이 넘어서야 이 책을 리뷰하기 위해 다시 펼쳐들게 되었다. 막상 글을 쓰려했을 때, 책을 통해 받았던 긍정적 메시지가 지금 상황과 너무 배치(背馳)되어서 조금 뜸을 들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격하고 즐거운 공감들과 기억들을 불러오기 위해, 손가락은 키보드를 더듬고 있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모임을 하고,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해봤을 경험들을 담고 있어서, 반갑고 감정의 고조를 느꼈다. 작가 자신의 경험담이 나와 일치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한 가지 차별되는 정말 존경할 만한 점이 있다면 독서를 통한 성취도가 높다는 것이다. 그저 즐기는 독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 공부로,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번역가로,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책을 출간하게 되기까지 공적인 글쓰기로 목표를 정하고 성취하는 작가의 모습이 부러웠다. 목표를 정하고 계획하고 실천해나가는 성실함이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또한 각 장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 조언을 하는 마무리에서 작가의 이런 성품이 돋보인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읽고 좋으면 어느새 나는 전작읽기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가 역시 그런 경험들을 「전작주의자가 되는 법」이란 장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더구나 작가가 나쓰메 소세키를 예로 들어서 2021년에 나쓰메 소세키 전작읽기를 마친 나는 이 부분을 폭식하듯 읽었다. 일어로 읽었다는 작가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나름 비평서까지 읽었던 차라 너무 반가웠다. 작가가 인용한 『풀베개』의 도입부는 새롭게 다가온다. 인용 역시 적재적소라는 게 있고 해석에 따라 빛이 날 수 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28p)
이 부분을 나는 어떻게 읽었을까? 삶의 관조에 공감하긴 했지만, 고집을 신념으로 이해하고, 나는 외롭더라도 신념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강상중 교수의 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가 다녀왔다는 산시로의 연못이 상상 속에서 그려진다.
읽다가 포기한 작품을 다시 읽게 된 경험도 백퍼센트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전혀 들어오지 않던 책이 문학에서 인용되고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소개되면, 다시 찾아 들게 되고 이전에는 전혀 이해되지 않던 내용들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경우다. 작가는 『나와 디턴』에서 소개된 롤랑 바르트였다고 한다.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는 땔감이 되는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이 책에서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을 뽑아드는 동기와 읽어갈 수 있는 에너지를 받았다.
글쓰기와 관련된 작가의 경험들을 읽으며, 이쯤 되면 내 경험을 누군가 대신 써주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블로그를 개설하기까지 주저하던 마음들, 그리고 알라딘 서재에 첫 번째 리뷰를 올리던 때를 기억했다. 리뷰를 쓰게 되면서 책 읽는 시간을 뺏기는 것 같은 조급함을 느꼈다. 지금도 사실 읽을 책을 쌓아 두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첫머리를 써놓고 생각이 진전되지 않아서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슬쩍 다른 책을 집어들기도 한다. 주방이나 화장실에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잃어버릴까봐 얼른 책상으로 뛰어가 메모를 한다. 왜 항상 생각이 막 떠오를 때는 밥 할 시간인지!^^
5년 쯤 전부터 고전읽기 동아리를 만들어서 함께 읽어오고 있다. 작가의 「고전을 읽는 법」 역시 나에게 격한 공감을 하게 한다. 옆에 두고 시간 날 때 마다 틈틈이 읽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시경』이 그렇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법』,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독서법』 이거야 말로 독서가들의 경지 아닐까? 책상 위에 쌓아둔 책 더미를 보며 아이들이 “엄마 이 책들 다 읽는 거야?”라는 질문을 한다. 가끔 파묻혀서 잊혀지는 책이 있긴 하지만, 이런 독서를 한지 오래 되었다. 나의 조급함때문일까? 이것도 지나친 욕심때문일까? 반문해보지만, 나 말고도 이렇게 하는 독서가들이 많은 것을 알고 나서는 즐기고 있다.
이런 독서법이나 책들이 겹치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고 책을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작가의 말에 끄덕이고 ‘나도 그래요’라는 속말을 하게 된다. 처음 책 제목을 보고 “책만 읽어도 된다”라는 무한 긍정에, 책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나도 약간은 갸우뚱 했다. 어차피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을 다하고 살 수 없으니, 내가 즐거워하는 것이 책이라면, 책만 읽어도 된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작가가 읽는 책의 폭이라든가, 작가의 활동을 생각해보면 책은 삶을 꽉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독서 치료사 과정을 듣고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는 활동을 하며, 가끔 이 사람에게 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그런데 기대보다 더 좋은 반응이 올 때를 경험할 때가 있다. 그들은 내가 권하는 책에서 내가 보지 못한 보화를 캐낸다. 작가가 인용한 몽테스키외의 문장을 보며 독서의 치유 효과를 새삼 다시 확인했다.
“한 시간 동안 책을 읽고 난 다음에도 사라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슬픔을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179p)
좁은 골목길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을 보며, 공포와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감정 때문에 힘이 들었다. 그런 나와 누군가를 위해 태그해 놓은 프루스트의 문장을 옮겨본다.
“독서는 적어도 마음에서 우러나온 우정이고 그 대상이 죽은 자, 사라진 자라는 점은 사심 없음을 증명하며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하다.”(184p)
사람들이 책처럼 사심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있으므로 그럴 수 없겠지!
나는 작가가 들고 있는 캐치프레이즈의 한쪽 모서리를 잡고 동참하려 한다.
『책만 읽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