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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평점 :
함부로 요약하지 마라. 함부로 지껄이지 마. 그 빌어먹을 사랑으로 떨리는 입술을 닥쳐.
작가는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탤릭체는 기억과 생각이다. 정체(正體)는 드러나 있는 사실이다. 진실은 곧 사라질 것 같은 이탤릭체-죽은 자의 말과 산 자의 마음-에 있다. 정체로 다시 써야 할 엄연한 진실이 있다. 그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산 자의 일이다.
촉망받던 화가 인주의 죽음 이후 그를 후원했던 강석원은 「미술정신」에 ‘서인주 추모 특집’을 싣는다. 함께 올려진 작품 사진들을 통해 그가 인주의 유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희는 가슴에 불이 당겨지는 것 같았다. ‘서인주 추모 특집’을 읽은 이정희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여류 화가가 자라온 가난하고 어두운 환경-유복자로 태어나 모친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을 소개하는 글은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어둠의 진앙, 피안의 주술‘이라 제목 붙여진 그림들은 ”죽음의 경도에서 나왔다는 것을 상정하고(13p)“ 있었다.
정희는 “인주는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정희는 인주의 유품을 찾고 강석원이 출판하게 될 ‘서인주 평전’의 내용을 바로 잡기위해 그를 만난다. 그는 재능 뿐 아니라 “젊은 나이, 아름다움, 압도하는 그림, 불행한 개인사, 자동차 자살이라는 극적인 최후까지(136p)” 신화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춘 서인주를 불멸하게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강석원의 말과 태도, 서인주를 ‘신화화’하는 데서 분노를 느낀다.‘여성의 신화화’ 혹은 숭배를 이끌어내는 기저에 폭력성이 존재함을 본다. 여성을 소유하고 힘으로 제압하는 것은 폭력적 야만의 다른 형태가 아닐까? 누군가에게 힘을 행사하는 것이 때로 산 자 보다 죽은 자에게가 더 쉬울 때가 있다. 그것이 타인의 삶을 요약하고 신화화하는 행위일 경우.
“함부로 요약하지 마라. 함부로 지껄이지 마. 그 빌어먹을 사랑으로 떨리는 입술을 닥쳐.(41p)”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정희는 진실을 밝혀내고, 강석원의 평전 작업에 맞서 인주의 삶을 책으로 쓰고자 한다. 주변 인물들을 만나, 소식을 끊고 살았던 죽기 직전 인주의 행적을 탐문해간다.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며 거기에는 오랜 시간 속 여러 사람의 죽음과 고통이 지층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로스코의 도록에서 시작된 회상은 인주의 흉터, 인주의 외삼촌, 어머니에 대한 단서들이 이어지고,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서 인주와 정희의 가정사, 결혼 등 대물림과 사건의 지층이 드러난다. 강석원 식으로 말하면 ‘달의 뒷면’이다. 참 근사하고 상징적인 단어이긴 하지만 타인의 보이지 않는 삶을 유추해서 함부로 말하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하게 된다.
“내가 아픈 곳은 달의 뒷면 같은 데예요. 피 흘리는 곳도, 아무는 곳도, 짓무르고 덧나는 곳, 썩어가는 곳도 거기예요,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아요.(219p)”
강석원이 특집 기사에 썼던 ‘달의 뒷면’은 인주의 달력에서 본 것이다. 하지만 그 글은 이 정희가 쓴 희곡의 대사였다. 강석원은 알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누락했다. 희곡의 제목은 “닥쳐”이다. 무대에 올린 정희의 첫 번째 희곡이다. 심리치료의 임상 사례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 희곡에 등장하는 ‘닥쳐’ 게임이 인상적이다. 두 사람 중 한사람이 이야기하면 거기에 ‘닥쳐’라는 말로 응수하는 것이 규칙이다.
“이리 와. 내가 사랑해줄게
닥쳐.(조그만 목소리로, 겁먹은 듯이)
내가 돌봐줄게, 부드럽고 아늑하게.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돼
닥쳐.
너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닥쳐.
너는 인형이야.
닥쳐.
……
나에게 너무하는 구나.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겠다.
닥쳐
……
너 같은 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닥쳐!“
247p
“닥쳐”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떤 고통과 상처를 갖고 있는지 또 다른 사람이 어떤 가해를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화들이어서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런데 무대 바닥에 엎드려 있던 여자가 어두운 객석을 향해 천천히 돌아앉으며 “혹시, 이것으로 내가 아픈 데를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내가 아픈 데는 달의 뒷면 같은 데예요.“ ”누구에게도, 당신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여자에게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며 관객은 자신의 고통을 들여다보게 되지 않을까? 나에게 있는 달의 뒷면을 생각한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요약하고 ‘달의 뒷면’과 같은 상징어를 함부로 인용하는 폭력성에 대해서도!
인주는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53p)”
라고 말했다.
그렇게 회상과 추적과 탐문을 해가며 정희가 도착한 인주의 고통의 근원은 미시령이 있었다. 그곳에 오래전 인주 어머니의 소외와 아픔,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있었다. 그녀와 연루된 한 남자의 오랜 고통의 시간이 연결되어 있었다. 여전히 자유롭지 않은 채.
강석원의 구타와 방화로 인해 구급차에 실려 인공호흡기를 쓰고 정신을 잃어가던 정희는 “산소 호흡기 속에서 쒜엑쒜엑 숨을 몰아쉬던 인주의 부은 얼굴(67p,384p)”을 떠올린다. 두 사람이 호흡기를 쓰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숨을 쉬고 있는 장면이 전하는 메시지는 삶은 폭력을과 단절될 수 없음이다. ‘호흡기’는 삶에 드리워진 폭력의 극단적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쒜엑, 쒜엑 소리가 인주의 얼굴에서 터져 나왔다. ……마침내 의사가 나에게 빠르게 말했다.
환자가 갑자기 스스로 숨을 쉰 겁니다.
그게 인공호흡기가 넣어주는 숨과 부딪친 겁니다.
일단 호흡억제제를 투여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부딪치면 호흡기를 뗍니다.(384p)”
세계는 나를 때려눕힐 주먹을 갖고 있다. 어떤 존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실체적이고 관념적인 모든 폭력에 노출된 삶을 산다. 특히 가난이나 질병과 같은 불행을 대물림하는 경우 그것은 노골적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우리의 삶에서 폭력을 없앨 수는 없다. 친절을 가장하고 완곡한 어법으로 다가오더라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도에 의해 우리는 피를 흘린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 삶을 거부할 수는 없다. 살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인주에게도 정희에게도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연설문 <빛과 실> 중, 2024.12.7.
작가는 다음 작업을 위해 이 질문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