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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하인리히 뵐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4월
평점 :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는 범죄하고 죄의식 때문에 숨어있던 아담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질문이지만 최초 인류에게 죄를 선언한 선고문이다. 작가는 이 제목을 통해, 전쟁을 일으킨 자들, 거기에 가담한 자들, 집단 광기의 범죄자들, 그것을 목격하거나 방관한 자들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그때 어디에 있었느냐고. 그 범죄와 당신은 무관하냐고.
실패만 거듭한 사람만이 갖는 생기 없고 엷은 입술, 누렇고 쓸쓸한 듯한 얼굴로 사열하는 장군을 보는 1000명의 병사들은 비통, 연민, 불안, 불안과 같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다음 장면은 “피로와 허기와 또 이 저주스러운 전쟁에 울화통이 터져 못 견딜 지경이지만 조용히 서 있는”(7p) 333명의 병사들 앞을 지나가는 창백하며 무서운 눈, 악문 입술, 긴 코를 한 대령의 순종(純種) 얼굴이다. 그리고 다음, 105명뿐인 병사들은 먼지를 뒤집어 쓴 상처투성이의 발과 땀이 밴 얼굴을 한 채 지친 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그 1000명 중 오직 혼자 남은 파인할스는 상사 앞에 서있다.
과정을 생략하고 시간을 건너뛴 장면의 변화는 패색이 짙어가는 전쟁이 막바지에 왔음을 암시한다. 이 소설은 전장으로부터 퇴각해서 고향으로 향하는 독일군인 파인할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병사들은 어둠 속에서 행군을 계속했다. 파인할스는 낙오할 생각이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앞으로 걸어갔다. 전투 장면과 소리는 다시 후송되는 차량으로 옮겨진다. 파인할스는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으로 옮겨진다. 병상에 누운 마비상태로 누워있는 브레센의 기억과 생각이 조명된다. 계속해서 파인할스가 고향을 향해 가면서 만나는 군인들이나 점령지의 사람들을 조명한다.
전쟁은 부조리극이다.
군복을 팔러 나온 그레크는 많은 군인들은 무엇이든지 팔아먹고 있고 자신은 이제야 그 대열에 합류했을 뿐이라고 마음속으로 항변한다. 군복을 판 돈으로 사먹은 살구 때문에 그레크는 복통을 앓는다. 폭격이 쏟아지는 한 가운데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것은 적이 아닌 육체의 반란이다.
독일군 파인할스가 사랑하게 된 헝가리 유태 여인 일로너―그녀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게토로 갔다―를 기다리며, 선술집에서 고향을 생각하는 장면은 아이러니의 극치다. 상관의 명령을 받고 전선을 넘어 포도주를 구해 가던 중 폭격으로 죽음을 당하는 핑크, 독일군과 이별한 점령지 여인의 통곡 역시 마찬가지다. 종전에 대한 희망은 수용소 사람들의 죽음을 더욱 앞당긴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학살을 지휘한 소장 필스카이트의 합창에 대한 사랑은 기괴한 느낌을 준다. 지휘자에 의해 화음을 맞추는 합창이라는 특성이 필스카이트의 광기와 오버랩되며 전율하게 한다.
수용소로 끌려간 일로너는 도착 당일 필스카이트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광기에 가득한 필스카이트가 그녀를 죽였지만 그 학살의 장소를 세운 것은 독일이고 파인할스는 그 독일을 위해 싸웠던 군인이다. 일로너의 죽음과 관련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연인 일로너의 죽음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조리의 절정이다. 그에게 그녀가 죽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그녀의 죽음에 당신의 군복과 훈장과 무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고향에 가까이 간 파인할스는 미군들이 점령한 이웃마을에서 자신의 집 쪽을 바라다보며 안식을 꿈꾼다. 농부 복장을 하고 집을 향해 걸어가는 파인할스는 눈에 들어오는 동네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이 좁은 골목을 지나 왼쪽으로 큰길을 조금만 내려가면 된다. 호이저의 집도 나무 곁에 흰 목책을 해 놓고 있었다. 그는 웃었다.”(249p)
그때 폭탄이 떨어지고, 그는 유탄에 맞고 집 쪽으로 기어간다. 그는 생각한다. “바보 같은 짓이다”라고. 문 앞까지 굴러간 그의 몸 위로 흰 깃발이 떨어진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걸려있던 그 깃발은 미군에 대한 항복의 표시였을 것이다. 울부짓는 파인할스의 위에 떨어진 흰 깃발은 인류의 범죄에 대한 항복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의 제목이 던지는 메시지를 오랜 시간 생각해봤다. 그 질문은 하인리히 뵐 자신에게도 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류조작과 탈영 등 전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참전했던 독일 군인으로서 양심에 계속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생전의 사회 참여와 평화를 위한 저항 활동에 주목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을 통해 항상 우리가 배우는 것은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교훈을 잊은듯 전쟁은 반복된다. 욕심과 증오가 그치지 않는다면 계속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알고 있어도 막지 못하는 인류의 상황은 모두가 그 원죄에 가담하고 있고 그 책임을 묻는 질문에서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함께 했던 전장에서 죽어간 핑크가 고향의 이웃마을에 살았고,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국가가 만든 참혹한 수용소에서 죽어간 것처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모두가 작게든 크게든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전쟁이 지속되는 한 어두운 내일을 전망할 수밖에 없다.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는 내게 이렇게 읽힌다.
그 전쟁의 영향 아래 있는 우리는 그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가?
나는 작가 하인리히 뵐의 책 두 권을 또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