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에서 발견한 글.


배경은 청 왕조가 망한 신해혁명으로부터 중국에 대한 패권을 차지하려는 열강들의 다툼과 실권을 장악하기 위한 권력투쟁, 공산당과 국민당의 사상 대립이 낳은 역사의 혼란기이다. 왕조의 질서는 무너진 지 오래되었고, 아편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경제, 전통, 문화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탈은 황가의 몰락으로 상징된다. 그저 땅과 하늘만 믿고 살아가는 농부 왕룽이 일가를 이루는 이야기와 그의 아들과 3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1권은 1부 대지와 2부아들들로 이루어져 있다.


1<대지>의 시작은 왕룽의 혼인 아침이다. 격변의 소문과 징후는 아직 이곳까지 미치지 못했다. 아니 농사와 땅밖에 모르는 왕룽에게는 소문이 들려와도 관심 밖에 일이랄까? 나라가 바뀌고 다른 왕조가 세워져도, 난리 한 가운데 있지 않는 한, 민초들에게는 한해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가가 모든 관심이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부끄러운 듯 혼인을 준비하는 왕룽의 모습과 무심한 듯 내뱉지만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희망 섞인 떨림을 감지한다. 황가의 집에서 여종을 신부로 데려오는 장면은 혹시 몰락해가는 황가의 옥토(good earth 대지)와 재산이 그의 것이 될 것에 대한 실마리인지도 모르겠다.


왕룽에게 땅은 일생동안 힘을 쏟는 대상이고 힘을 주는 존재이고 혼인하고 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근원이다. 땅은 하늘과 이어져 있고 비가 오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의 숭배의 대상은 땅이지 그들이 절하는 우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오히려 돌보아야 할 존재이고 자신을 질투할 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왕룽은 땅을 사들이고 아들들을 낳는다. 펄 벅은 왕룽의 부인인 오란을 통해 중국의 여인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전족을 하지 않아서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 가족들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 노비로 팔려갔던 여인, 해산하고 바로 나와 고된 노동을 하는 여인,딸 낳는 것을 불운에 대한 암시로 받아들이는 여인,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 함께 살아도 서운함을 말할 수 없는 여인...

 

2<아들들>은 셋째 왕후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왕후는 지방의 군벌로서 권력을 잡으려 군인이 되어 부하들을 모으고 한 지역을 장악하게 된다. 그는 때로는 배신한 아내를 죽이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분노와 연약함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여 진다. 이야기는 1부에서처럼 개인적이고 가족사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고향을 떠나 전쟁을 치르고 한 지방을 장악해 가는 과정은 이제 혼란을 통과해가고 있는 역사의 물결이 왕룽의 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분열된 집안>에서는 왕후의 바램과 달리 아들인 옌이 군벌에 대항하는 군인이 되어 나타난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사상의 대립은 젊은 지식인인 옌과 사촌인 셍과 맹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옌은 결국 고국을 떠나게 되고 낯선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게 된다.

 

왕룽과 아들들 그리고 3대 옌에게 땅은 그리고 흙집은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존재이다. 거기서 일가를 이루고, 사랑을 하고, 생명을 얻고, 회복을 경험한다. 그들은 떠났다가 돌아온다. 땅위를 걷고 흙집에 머무르고 흙과 같은 사람들과 말을 하며 생기를 얻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펄 벅은 이 3부작으로 193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중국 농부의 생활을 풍부하게, 서사시적으로 묘사한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라는 내용이 선정위원회의 평가였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가 많은 문학작품이나 영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그리 생경하지도 이국적이지도 않지만, 당시 미국이나 유럽인들에게는 중국의 농촌과 도시들의 풍경과 생활상들에 대한 표현들이 경이로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심리, 암시들이 저자의 서사시적인 뛰어난 표현들과 함께 어우러져 대륙에 대한 환상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도 3<분열된 집안>에서 왕후의 아들 옌이 미국으로 가서 만난 메리의 중국에 대한 생각과도 같을 것이다.


, 너무 아름다워요.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까요! 이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는 이곳이 제가 전에 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장소 같은 기분이 자꾸 들어요. 제게는 이런 풍경에 대한 이상한 동경이 있는 모양이에요. 당신의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임이 틀림없어요.” -3부 <분열된 집안 중>


이것은 중국의 자연을 그린 풍경화를 보고 메리가 감탄하는 말이다. 여행자의 저서나 강연, 미국 말로 번역된 소설이나 이야기, 그리고 시,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 그녀가 본 중국은 나무랄 데 없는 아름다운 나라, 남자도 여자도 정의와 평화 속에 살고, 성현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세워진 건전한 질서가 주어진 사회에 살고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옌에게 중국은 아버지와 같은 군벌들에 의해 고통 받는 농민들의 나라였고, 공산당과 국민당의 대립과 혼란 속에서 사상 때문에 조국을 떠나와야 했던 젊은이들의 나라였다. 선교사의 선교보고회에서 조국의 비참함에 대해 들었을 때 나타낸 분노는 정말 몰랐다기보다는 기억 속에서 의도적으로 지워버리고 메리처럼 조국을 받아들이려 했던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아닐까? 이런 옌의 심적 갈등을 통해 우리는 펄 벅이 말하려고 하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 인간은 당대 서양인들의 중국에 대한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펄 벅 여사의 <대지> 3부작은 그녀 역시 중국인이 아니므로 한계를 가지고 있겠지만 당시의 오리엔탈리즘은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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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4-24 21: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란이 전족 못한 발을 부끄러워하던게 생각나요. 대지 영화가 있다해서 봤더니 헉! 백인배우들이 주인공을 하고 있어서 좀 ㅠㅠ 펄벅재단 등 중국 우리나라 등에 애정이 많으신것 같아요. 저도 대지 참 재미있게 봤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편한 밤 보내세요 *^^*

그레이스 2021-04-24 21:57   좋아요 5 | URL
저도 영화보고 같은 느낌이었어요^^
펄벅의 <살아있는 갈대>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일가를 그리고 있는 소설인데, 이 책을 통해 펄 벅 여사가 한국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재미있기도 하구요^^
미니님도 평안한 밤 되세요~~

바람돌이 2021-04-24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3부작이라는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전 1부만 읽었고 당연히 1부가 다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레이스 2021-04-24 22:58   좋아요 0 | URL
동서문화사에서는 2권에 3부작을 담았구요
다른 출판사에서는 3권으로 펴냈어요. 더 오래 전에 장영희 장왕록 번역을 읽었었는데요
어투가 많이 예스러워서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동서문화사가 더 편했다는...!

라로 2021-04-25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영희 장왕록 번역으로 읽었는데,,, 기억이 거의 안 나네요.ㅠㅠ (제가 장영희 샘 좋아해서 그건 기억함요, 부녀 번역!! 쫌 멋지잖아요. ^^;;)

그레이스 2021-04-25 23:10   좋아요 1 | URL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분들 번역으로 유명한게 많더라구요.
최초번역도 많고...
대표적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요.
장영희 교수님 책도 좋아해요.^^

scott 2021-05-07 15: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王🥇

그레이스 2021-05-07 16: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이제 봤어요^^
잔치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1-05-07 16:19   좋아요 3 | URL
자 얼른 포스터 책 사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5-07 16:24   좋아요 3 | URL
2관왕 완전 축하드려요~!!★★

미미 2021-05-07 17:58   좋아요 3 | URL
와우~~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드립니다!!!엄지엄지(pc라서ㅋㅋ)♡

초딩 2021-05-08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 완전 축하요 ㅎㅎㅎ 진짜 2관왕!!! 펠퍼스! ㅎㅎㅎㅎ

그레이스 2021-05-08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5-08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05-08 23:1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책담은 편지 매일 잘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