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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쇼 선생님께 ㅣ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평점 :
초등 학교 때는 아니지만 난 늘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들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곤 했다. 그 중엔 학교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수녀님이나 스님도 있다. 심지어 남편과도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은 끝에 결혼을 했다. 서로 다른 도시에 살다 보니 만난 횟수보다 편지를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탓에 만나서는 할 수 없는 말들을 편지는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더 세심한 내 감정들을 내보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아줌마가 된 지금은 편지보다 손쉽게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들이 많아져서인지 아니면 그때보다 부끄러움을 덜 타서인지 편지는 거의 쓰지 않는다.
요즘은 편지를 주고 받는 아이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 친구의 3학년짜리 아들이 편지를 받아 왔다는데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같은 반 여자 아이 둘이 번갈아가며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3학년 수준의 연애 편지... 한 통을 읽어 보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그 속엔 교실에서 나눌 수 없는 남자 친구를 좋아하는 여자 아이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어찌나 글을 간결하게 잘 썼는지 그 여자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헨쇼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리 보츠는 정말 사랑스런 아이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학교에서 맛있는 도시락을 도둑 맞는 일이 자꾸 생겨 학교도 친구도 쉽사리 정이 들지 않는다. 학교 숙제로 동화 작가에게 편지 쓰기를 하면서 알게 된 헨쇼 선생님은 리 보츠에겐 탈출구다.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외로울 때 엄마 아빠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도 헨쇼 선생님께는 편지로 혹은 일기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 속에서 글을 잘 쓰게 된 리 보츠는 <아빠 트럭을 탄 날>이라는 글을 써서 상을 받고 좋은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리 보츠는 외로운 아이다.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인해 지금은 엄마랑 살고 있기 때문이다. 헨쇼 선생님께 쓰는 편지와 일기 속에 헤어져 사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난다. 어렸을 때부터 키웠던 개 산적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아빠가 산적을 잃어버렸다고 했을 땐 정말 안타까웠다. 다행히 나중엔 산적이 돌아와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엄마도 아빠와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을 이해시켜려 한다.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겪는 한 아이의 심리적인 갈등을 정말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에겐 정말 큰 상처다.
아빠는 리 보츠에게 말한다. "넌 정말 훌륭한 아이야.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너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게." 이런 말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떨어져 살아서 엄마와 아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다시 돌아와 리에게 사랑을 보여준다. 비록 지금은 떨어져 살지만 언젠가는 아빠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리의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책을 읽는 내내 리가 편지를 쓴 헨쇼 선생님이 궁금했다. <개를 재미있게 해주는 방법>이라는 책이 정말 있는지도 한번 찾아보고 싶어졌다. 리가 편지의 말미에 쓰는 헨쇼 선생님과 자신의 관계를 드러내는 말들의 변화가 재미있다. 처음에 꼬마 친구에서 선생님의 friend, 선생님의 으뜸 독자, 선생님을 좋아하는 독자, 선생님을 존경하는 일등 팬, 충성스런 독자, 마음 상한 독자, 녹초가 된 독자, 투덜대는 리 보츠, 어째야 좋을지 헤갈리는 리 보츠, 고마워하는 독자, 선생님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독자 등 이 문구만 보아도 편지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맨 마지막 편지에서는 '선생님의 친구'라고 함으로써 '진짜 친구'가 되었음을 인정한다.
편지와 일기 속에서 바르게 성장해가는 리 보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성숙한 초등 3학년부터 편지와 일기 쓰기를 즐기는 모든 이들, 혹은 이혼을 생각하는 부모들에게도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