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연필 선생님 신나는 책읽기 13
김리리 지음, 한상언 그림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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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딸은 보름달만 보면 소원을 빌곤 한다.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고 물어보면 비밀이란다. 하지만 난 우리 아이의 소원 중 두 가지는 알고 있다. 하나는 아토피가 다 나아서 슈퍼마켓에 가득한 과자를 엄마 눈치 안 보고 사 먹는  일이다. 또 하나는 이건 진짜 우리 가족 외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인데 우리딸도 가끔 수민이처럼 밤에 실례를 하곤 한다. 2학년이나 되었고, 동생도 있는데 그런 날은 누나 체면이 말이 아닐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부터 늘 있어 왔던 일이라 대부분은 엄마가 감쪽같이 뒤처리를 해주니 본인도 오줌 싼 일을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다. 수민이 엄마랑 비교하면 난 정말 훌륭한 엄마인 것 같다.

<이불 속에서 크르륵>에서는 오줌을 싸는 집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수민이는 3학년이다. 3학년에 동생이 둘이나 있는데 오줌을 쌌으니 그 마음이 어땠을까? 그런 아이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 엄마의 꾸중이 야속하기만 하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싸고 싶어서 이불에 오줌을 싸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한심한 마음에 눈물이 줄줄이다. 아마도 동생들이 둘이나 있다 보니 엄마에게도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수민이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이불 도깨비의 출현은 정말 구세주였을 것이다.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는 도깨비 덕분에 엄마도 수민이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도깨비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가족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고, 덤으로 가족간의 따뜻한 사랑까지 선물한다. 지난 토요일 학교 가려고 현관을 나서던 아이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던 아빠를 향해 던진 말이 생각난다. "오늘같이 쉬는 날은 아빠가 설거지도 하고 그러세요. 잠만 자지 말고." 휴일에 늦잠도 자고 아빠가 집안일도 도와주는 게 소원이라던 수민이 엄마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검정 연필 선생님>을 읽으며 생각했다. 아이들의 적은 엄마가 틀림없다고. 아이들에게 진짜로 중요한 게 뭔지 잘 모르는 엄마들을 통해 요즘 세태를 살짝 꼬집고 있다. 가격이 비싸도 점수가 팍팍 오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바름이 엄마는 검정 연필 선생님을 모셔온다. 엄마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 바름이에게 내린 아주 특별한 처방은 컴퓨터 칩이 들어 있어서 정답만 쓰게 해주는 검정 연필이다. 다행스럽게도 바름이는 두 번의 시험을 치른 후 올바르지 않은 방법임을 깨닫는다. 청출어람, 엄마보다 백 배 나은 아들이다. 바름이의 생각처럼 백 점 맞을 때까지, 성적이 팍팍 오를 때까지 엄마들은 지치지도 않고 아이들을 들볶을 것이다. 기말 고사 보는 딸아이에게 은근히 좋은 점수 받기를 기대하며 요즘 며칠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러니 우리딸도 '검정 연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

요즘은 딸 하나만 낳고 마는 집도 많다. 그럴 때 가장 불만이 많은 사람은 시어머니이다. 그래서 <할머니를 훔쳐 간 고양이>에 나오는 할머니의 아들 타령과 옛날 타령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친정엄마도 사랑이의 할머니를 많이 닮아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곤 한다. 이럴 때 가장 괴로운 사람은 아이들의 엄마다. 엄마가 할머니로부터 늘 공격을 당하니 딸이 나설 수밖에.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등장하는 것은 사랑이가 밥을 주던 도둑 고양이다. 결국 고양이가 할머니의 옛 기억들을 조금씩 훔쳐가는 바람에 할머니는 아들 타령을 안 하게 된다. 뭔가 갈등이 있는 집마다 소원을 들어주는 고양이가 한 마리쯤  찾아와 준다면 좋을 것 같다.

저학년 아이들도 나름의 고민도 있고 소원도 있다. 이 책에서는 현실 속에서는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 고민이나 소원을 도깨비, 검정 연필, 고양이를 등장시켜 시원하게 해결해줌으로써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집에서도 엄마와 딸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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