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참전(WW1 and United States)

('국민 의무에 대한 호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 입대를 강요하던 대표적인 포스터다.)

 

19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통하여 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유럽의 열강들은 시장확보라는 명분하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와 같은 나라에 식민지들을 건설했다. 이 당시 세계 열강으로 거듭났던 국가는 당연히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였고, 이들은 수많은 국가들을 식민지화했다. 따라서 나중에서야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독일과 같은 나라들은 이에 적잖은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1870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가 독일을 통일하면서, 독일 제국도 서구 열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같은 나라들이 점차 세력을 확대하면서 20세기 초 유럽은 상호 경쟁하는 두 개의 거대한 동맹으로 조직되었다. 하나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맺은 삼국협상(Triple Entente)고 다른 하나는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이탈리아가 맺은 삼국동맹(Triple Alliance)다. 이런 체제는 사실상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위협을 시초부터 가지고 있었다.

(사라예보 사건, 1914년 6월 28일에 일어난 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Franz Ferdinand)이 한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 청년에게 암살당했는데, 이 암살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자 세르비아의 동맹국 러시아 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이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했으며, 심지어 오스만 제국과 아시아의 일본까지 상대편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하게 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지도)

(독일의 슐리펜 계획)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시기 독일은 이른바 ‘슐리펜 계획(Schlieffen-Plan)’을 세워 영국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연합국을 단기간에 굴복시키고자 하였다. 독일 제국이 벨기에를 침공하여 프랑스로 진군을 하긴 하였으나, 생각보다 준비를 철저히 했던 프랑스군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사이 동부전선에서는 러시아 제국군이 독일군을 압박했고, 영국이 프랑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으로 변모해갔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널리 사용된 기관총)

(탱크, 탱크는 제1차 세계대전때 최초로 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그전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전쟁보다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전쟁이었다. 4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대략 1000만 명 이상이 죽었고, 2000만 명이 부상당했다. 위에서 상술한 산업혁명은 비단 경제적 발전과 자본주의의 발달만 두고 왔던 것이 아니었다. 산업혁명으로 발달된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량살상을 위한 무기 또한 마찬가지로 대량생산했다. 특히나 전투를 대학살극으로 만든 무기는 바로 기관총(Machine Gun)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분당 몇백 발을 발사하는 기관총은 참호에 배치되어 돌격해오는 보병들을 향해 발사되었고, 기존의 구식전술에 머물러 있던 전략가들은 상대편 진영을 접수하기 위해 기관총이 배치된 전선에 돌격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독일, 영국, 프랑스 할 거 없이 재앙에 가까운 전사자들이 수많은 전투에서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1916년 7월에서 11월까지 전개되어 양측 모두 수십만의 병사를 죽게 만든 ‘솜 전투(Battle of the Somme)’가 그러했다. 그런 참호화된 전선을 뚫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바로 장갑으로 덮인 탱크(Tank)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양측 모두 사용되었던 독가스도 대량의 인명 살상의 원인이었다. 그 외에도 비행기, 잠수함, 기계화된 대형 군함 등과 같은 무기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되었다.

(솜 전투, 1916년에 있던 솜 전투는 양측 모두 극심한 사상자를 만들어 냈다.)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을 묘사한 그림)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당시 미국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표면적으로 중립을 내세웠다. 당시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내세웠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었다. 중립국 미국은 영국 프랑스와 같은 연합국 측에 많은 물자를 팔았다. 이런 행동은 독일 제국 입장에선 당연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독일은 잠수함 작전을 개시하여 적국과 교역하는 배들을 침몰시켰다. 그 결과 1915년 5월 7일 독일의 유보트(U-Boat)가 1200명의 승객을 수장시킨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Sinking of the RMS Lusitania)’이 일어나기도 했다. 루시타니아호가 침몰되어 128명의 미국인이 사망하자, 미국내에선 참전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었다. 어쨌든 중립을 표방하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독일에게 그런 불법 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러나 전쟁을 지속하던 독일의 잠수함 부대는 지속적으로 미국의 상선을 공격했고, 미국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치머만 전보,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을 참전시키도록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했다.)

 

1917년 4월 6일 마침내 미국은 독일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했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표면적으로 중립주의를 내세우던 미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독일이 비밀리에 멕시코에 보냈던 ‘치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에 있었다. 그 치머만 전보는 독일이 멕시코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해 보낸 전보였다. 그 전보를 영국이 해독하여 미국에게 알렸는데, 거기에는 미국이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내용이 있었다. 그 전보를 보면 “미국에 대항하여 멕시코와 독일이 손을 잡자는 제안과 19세기 당시 멕시코가 미국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게 해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거기다 그 시기부터 미국은 멕시코와 국경분쟁을 치르고 있었기에 그 전보는 자국의 팽창을 원하는 미국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 참전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는 유보트의 상선 침몰보다 치머만 전보에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병대 포스터)

미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던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환점이 될 일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편에 서서 독일과 전쟁을 치르던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터졌고, 8개월 뒤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이 주도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탄생한 사회주의 러시아는 제국주의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에서 빠지고자 했고, 1918년 3월 독일과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Treaty of Brest-Litovsk)’을 맺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빠졌다. 이 과정에서 독일군은 영국과 프랑스 연합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동부전선에 있던 군대를 서부전선에 투입시켜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퍼레이드)

 

1917년의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를 지원해줄만큼의 병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징병법을 통해 대략 200만에 달하는 병력을 확보했지만, 1918년 봄까지 미군 상당수는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래도 적잖은 미군이 1918년에 유럽전선에 투입되었고, 1918년 6월 초 부터는 프랑스군을 도와 파리 근처의 샤토 티에리에서 독일군의 격렬한 공격을 격퇴시키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군은 프랑스의 랭스 지역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냈고, 1918년 9월 26일 아르곤 숲 전투에선 100만 명이 넘는 미군이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 아무튼 1918년 중순부터 미군의 지원으로 영국 프랑스 측 연합국은 독일군을 몰아낼 수 있었고, 1918년 11월 11일 결국 독일은 연합국에게 항복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귀국한 병사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독일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자국민에 대한 탄압도 같이 했다. 이는 특히 전쟁에 반대했던 사회주의자들이나 아나키스트들 그리고 독일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1917년 6월 미국의 윌슨 정부는 ‘방첩법(Espionage Act)’ 통과시켜 “미국이 전쟁을 수행하는 와중에 의도적인 불복종에 항명, 미국 육군이나 해군에서 복무 거부를 야기 또는 시도하거나 미국의 신병모집이나 입대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자”는 누구든지 최고 20년 징역형에 처하도록 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 방첩법 조항에는 “이 절의 어떤 내용도 정부의 행위나 정책에 대한 논의, 논평, 비판을 제한하거나 한정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까지 있었다.

 

이 법이 통과되고 나서 필라델피아에서 찰스 셴크(Charles Schenck)라는 사회주의자가 징병볍과 전쟁에 반대하는 전단을 배포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미국 사회주의자의 아버지 유진 뎁스(Eugene Debs)도 방첩법 위반 죄로 체포됐다. 그 시기 미국에선 “반정부적인 길거리 연설을 막는다”는 목적을 가지고 미국자경순찰대(American Vigilante Patrol)이 생겨 소위 간첩과 정치범들을 만들어 내고, 신고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간첩 혹은 폭도들로 간주받아야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렇다면 당시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의견은 옳지 않은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이 그 전쟁에 반대한 것은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당시 혁명가 레닌이 그 전쟁을 ‘제국주의자들 간의 전쟁’으로 간주했듯이 미국의 사회주의자들도 그리 인식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을 반대했던 혁명가들도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했다. 따라서 그들이 반대했던 것은 사회주의자로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저항의 목소리였다.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그는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운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엄청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백인우월주의자였으며 제국주의자였다. 또한 친미제국주의자 이승만의 지도교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미국과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의 참전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것 혹은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를 안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며 터무니없는 말들을 했다. 다음과 같은 윌슨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럽에 국한된 것이었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와 같은 나라들과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의 식민지에는 해당사항이 전혀 없는 얘기였다. 거기다 미국은 1918년 혁명 러시아에서 백군 반혁명 세력들이 전쟁을 일으키자 사회주의 러시아를 없애기 위해 침략을 자행했고, 기존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는 제국주의 국가의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제1차 세계대전은 미국으로 하여금 제국주의 국가로 부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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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베레 - 베트남 전쟁과 그린베레의 전설 KODEF 안보총서 11
로빈 무어 지음, 양욱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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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국주의자가 미화한 역사 소설 그린베레(The Green Beret)

베트남 전쟁(Vietnam War)은 미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이었다. 19648월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을 조작한 미제국주의자들은 본격적으로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대략 8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수백만이나 되는 동남아시아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그러나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기 전에도 미국은 남베트남 문제에 개입하고 있었는데, 이는 바로 미군사고문단 이라는 형식으로 남베트남 정권을 돕는 방법이었다.

 

미국의 존F케네디 정권때부터 베트콩에 맞서 남베트남에서 군사활동을 전개했던 미군사고문단은 1963년이 되어 대략 11000명 이상으로 증가했고, 이들은 남베트남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물적, 인적 지원을 아낌없이 했다. 미국의 존F케네디가 남베트남에 미군사고문단 형식으로 지원했던 부대들 중에는 특수부대가 존재했는데, 그 부대가 바로 초록색 베레모로 상징되는 그린베레(The Green Beret)’.

 

미국의 특수부대 그린베레의 기원을 따지자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많은 활약을 했던 미국의 첩보기관인 전략 사무국(OSS)은 미군 비정규전 전문가들을 추축국 후방에 침투시켜 저항세력을 양성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태평양 전쟁 시기 중경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와 협력했던 미국의 기관이 바로 OSS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OSS는 해체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미군은 또 다시 비정규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미군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북한 침투를 위한 특수부대를 만들기도 했었다.

 

1952년 미국에서 창설된 제10 특수전단은 미 육군 특수 부대의 시대를 열었다. 이 특수전단은 주로 공수부대나 전직 전략사무국 파견요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특수부대는 서독에서도 활동했었고, 그 외의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배치되었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 존F케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특수부대는 급속도로 규모가 커졌고,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베레모 착용이 허용되면서 그 특수부대는 그린베레가 되었다.

 

케네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창설된 미국의 그린베레는 냉전 시기 여러 곳에 배치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베트남이었다. 남베트남에 군사고문단 형식으로 배치되었던 그린베레는 응오딘지엠 정권을 지키기 위해 부패하기 짝이 없는 남베트남군을 물적, 인적으로 지원했고, 라오스와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 들어가 소수민족들을 가지고 군대를 조직했다. 라오스에서는 반공산주의 감정이 심했던 몽족(Hmong)을 이용했고,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선 몽타냐르족(Montagnard)으로 대표되는 브루족(Bru)이나 에데족(Ede) 같은 산악소수민족들을 이용했다. 그들이 바로 그린비레가 계획한 CIDG 군대(비정규 민병대라고도 함)로 거듭났다. 물론 이 군대는 제국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할대로 이용당하다가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버려진다. 아무튼 그린베레는 베트남 전쟁 시기 남베트남군을 지원했던 미국의 특수부대였다.

 

베트남 전쟁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미국의 작가 로빈 무어(Robin Moore)가 집필한 그린베레를 읽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몇 달 전 인종차별주의자인 존 웨인(John Wayne)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반공영화 그린베레(The Green Beret Film)를 감상하였기에 이 책의 내용이 어떨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읽는 내내 반공주의자들의 저급함과 수준 낮은 역사관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그린베레의 무용담 뿐만 아니라 전쟁의 비극을 다룬 책이며, 베트남 전쟁 반전론자들이 책도 제대로 안 읽고 미화물이라 비판한다고 말하며 반전주의자들을 비웃었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필자가 한마디 하자면, 반전주의자들이 이 책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책의 내용이 시작부터 끝까지 제국주의 침략자인 그린베레의 미화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남베트남에서 자생적으로 창설된 베트콩들이 왜 세계최강의 미국 군대에 맞서 싸웠는지는 생각지 못하는 역사적 몰이해를 보여준다. 저자는 자국의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해방 전사들을 마치 아무런 민간인들이나 마구잡이로 학살하고 다니는 존재로 묘사하는데, 영화 그린베레가 보여줬던 베트콩 악마화랑 다를 게 없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남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이 무슨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처럼 나오는데, 역사 왜곡의 극치다. 저자 로빈 무어는 그린베레의 필요성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그린베레 부대원과 베트남 여성의 러브 스토리, 그린베레 부대원과 몽족 여성의 러브 스토리 그리고 그린베레 부대원과 몽타냐르족 여성의 러브 스토리 따위를 넣는데, 이런 가상의 러브 스토리는 단순히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의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선동일 뿐이다.

 

가장 기가 막혔던 파트는 어떤 가톨릭 여성인 린의 스토리인데, 이 파트는 베트콩과 북베트남에 대한 심각한 악마화로 얼룩져 있다. 그 파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베트콩에게 가족을 잃은 가톨릭 신자인 린이 베트콩 장교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그린베레를 본 사람은 이 내용이 영화에서도 나온다는 걸 알 것이다. 저자 로빈 무어는 소설에서 무슨 베트콩을 마을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존재로 묘사했는데. 진실을 말하자면 실제 전쟁에서 그런 짓을 했던 것은 게릴라를 토벌했던 연합군 측의 모습이 그러했다.

 

저자 로빈 무어는 자신이 이 책에서 남베트남의 부정부패를 거리낌 없이 고발했다고 서문에 밝혔다. 물론 책에서도 남베트남군의 부패상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로빈 무어는 그것만큼 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정통성 문제와 분단 원인이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즉 로빈 무어는 남베트남군이 왜 부패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뿌리가 누구인지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들이 프랑스군에 있었던 사실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으며, 베트남 인민들이 왜 호치민과 공산당을 지지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우리는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베트남에서 열심히 싸웠다.”와 같은 무용담만 읊었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에서 왜 베트콩들이 그린베레와 같은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맞서 싸웠는지를 가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듯 로빈 무어의 역사 소설 그린베레는 미군에 대한 무한한 미화와 베트콩에 대한 악마화로 가득차 있다. 쉽게 말해 반공주의자가 저지르는 역사 왜곡의 전형적인 사례다. 책의 마지막을 보면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공산군을 압박해야 한다. 이제 공산군은 하노이 주변에 A팀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 것이고, 호치민은 새로운 평화 협정을 요구해올 거다. 우리는 힘으로만 대화할 거다. 지금 우리가 싸우는 것은 새루운 형태의 전쟁이다. 승리와 패배 같은 건 없다. 협상이 시작되면 어느 쪽이 상대를 굴복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라는 대사로 끝을 맺는데, 전형적인 반공주의자의 생각을 반영해준다.

 

베트남 전쟁을 지극히 미국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책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중에 이 책의 저자 로빈 무어에 대해 좀 찾아보았다. 그는 하버드 대학 출신에 아버지 밑에서 호텔 경영을 했던 전형적인 미국 부르주아였다. 1960년대 그가 쓴 피델 카스트로 관련 책이 있는데, 그 책 제목이 바로 대가를 치러야 할 악마(The Devil To Pay)’. 정말이지 반공주의가 극에 달한 인물이다. 이런 뒤틀린 역사관을 소유한 인물이니 미국의 침략전쟁인 베트남 전쟁을 미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베트남 전쟁을 공부해본 필자로선 로빈 무어의 저급한 역사관이 한심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그린베레에 대해 얘기하겠다. 로빈 무어 책에서 나온 그린베레는 매우 정의로운 존재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베트남 전쟁 시기 그린베레는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을 벌였는데, 그게 바로 피닉스 작전(Phoenix Program)’이다. 피닉스 작전을 통하여 그린베레를 비롯한 미국 특수부대는 무고한 민간인 27000명을 아무런 증거도 없이 베트콩으로 몰아 학살했다. 따라서 그린베레는 베트남 전쟁에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제국주의 침략자들이었다. 이런 그린베레의 침략은 베트남에서 멈추지 않았다. 저자 로빈 무어는 맺음말에서 우리는 인류가 대참사를 당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아프리카의 폭군이든 발칸의 독재자든 중국의 인권 침해자든 누구를 상대하든 간에 단호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루돌프 럼멜과 같은 네오콘들이 가진 극단적인 제국주의 사상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관점이다. 그린베레가 참전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엄연한 미제국의 침략전쟁이다. 그런 침략전쟁은 벌인 미국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책 저자 무어가 미화한 베트남 전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가 베트남 전쟁을 통해 알아야할 것은 제국주의 침략자 그린베레의 무용담이 아닌, 그들에 맞서 투쟁했던 베트콩과 같은 민족해방투사들의 이야기와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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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 스토리북 미포함
앤드류 스탠튼 감독 / 월트디즈니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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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 이 리뷰는 영화 Wall-E에 대한 스포일러를 아주 가득히 담고 있습니다.)

 

1. 들어가며

(영화 Wall-E)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8년 필자는 아주 재밌는 영화 하나를 봤다. 그 영화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만화로, 지금으로부터 800년 뒤인 미래를 다룬 영화였고, 필자는 아주 감명 깊게 보았다. 그 영화가 바로 Wall-E. 지난 목요일 필자는 학교에서 그 영화를 보게 되었고, 그 영화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은 필자가 보고 해석한 Wall-E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2. Wall-E의 스토리

(지금으로 부터 800년 뒤인 지구는 인류가 남긴 쓰레기들로 덮여 황폐해졌다.)  

  

영화 Wall-E는 지금으로부터 800년 뒤인 지구에서 인간이 남기고 떠난 버린 쓰레기들을 정리하며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살고있는 한 로봇의 일생을 다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인 22세기 인류는 지구의 대기오염과 넘처나는 쓰레기를 해결하기 만든 쓰레기 정리용 기계를 대량생산 하고 우주로 떠났다. 주인공인 Wall-E도 그 로봇들 중 하나였고,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대략 700년간 지구에 남은 쓰레기들을 정리해가며 살아갔다. 우주로 떠나기 전 인간은 지구를 완벽히 망가뜨려 놓았다고 볼 수 있는데, 정말이지 식물이라곤 하나도 안보일 정도로 지구는 황폐해져 있었다. 그런 환경속에서 주인공인 Wall-E는 애완용인 바퀴벌레 1마리랑 쓰레기를 치워가며 살고 있었다

(그런 지구에서 쓰레기를 수거하여 탑을 쌓고 있는 월-E)   

 

그러던 어느날 Wall-E가 청소를 하던 중 우주 탐사선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우주선 안에는 여자 로봇인 이브(eve)가 타고 있었다. 지구를 탐사하러 온 이브는 이곳저곳을 탐색하며 무엇인가를 찾아 나선다. E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 이브는 처음에는 대량 파괴력을 소유한 총을 쏘며 월E를 경계했지만, 자신을 짝사랑하게 된 월E에게 점차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E의 집으로 가게 된 이브는 월E가 가지고 있던 식물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브는 월E가 가지고 있던 식물을 자신의 몸속으로 넣고 깊이 잠들어 버린다.

(지구에 도착한 이브의 탐사선)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된 월-E와 이브) 

 

이브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이브를 사랑한 월E는 이브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이브를 보살피던 어느날 새로운 우주선이 도착하여 이브를 대려갔고, 이브를 걱정한 월E는 그 우주선에 탑승하여 우주로 날아갔다. 우주로 날아가게 된 월E는 대형 우주선인 액시엄(Axiom)에 탑승했고, 그 액시엄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인간들은 의자에 앉아서 길을 다니고, 과거에 인간이 하던 일들은 월E와 같은 로봇이 대신하고 있었다. 이브가 향하는 방향대로 따라가게 된 월E는 액시엄의 선장실에 들리게 되었고, 자신의 임무를 선장에게 보고하는 이브를 목격하게 된다. 사실 이브는 액시엄의 선장이 지구에 과연 생명이 사는지 확인하기 위해보낸 로봇이었고, 식물을 발견하게 된 이브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대형 우주선 액시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액시엄 선장) 

 

사실 대형 우주선인 액시엄도 지구를 청소하는 동안 인류를 우주에서 보내게 하기 위해 만든 대형 우주선이었고, 이것을 만든 미국 대통령은 지구에서 살아남은 식물이 발견되면, 지구로 돌아가도 된다고 액시엄 선장에게 얘기했었다. 식물을 가지고 온 줄 알고 있던 이브의 몸속에는 안타깝게도 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그 식물은 쓰레기장으로 버려졌는데, 그 이유는 액시엄 선실을 통제하고 있던 로봇이 일부러 식물을 쓰레기장에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월E와 이브를 통해 알게 된 선장은 선실 조종대에게 왜 버렸냐고 묻고, 선실 조종대는 극비 기밀을 선장에게 알려준다. 극비 기밀에 따르면 인류가 계획했던 지구 대청소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고, 결국 액시엄에서 살기로 미국 대통령이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렇게 프로그램이 입력된 선실 조종대 로봇은 이브가 발견한 식물을 버렸던 것이고, 이를 알아채지 못하게 선장을 속였던 것이었다.

(선실을 자기 멋대로 통제하던 액시엄 조종대)

  

이를 알게 된 선장은 식물이 발견되었으니 돌아가야 한다고 선실 조종대에게 항의했고,“자신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실 조종대는 선장을 선실 근처에 잡아 가둬버린다. E와 이브의 활약으로 선장은 선실 조종대를 속이는 데 성공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선실 조종대의 자동화 프로그램을 종료시켰으며, 액시엄은 선장의 의지에 따라 결국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 지구로 돌아온 인류는 다시 지구에서 새 삶의 시작을 얘기하며 영화는 끝이난다.

 

3. E에서 나오는 환경파괴 문제와 4차 산업혁명

(700년 만에 지구로 귀환한 액시엄)

 

위에서 상술했듯이 픽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만화영화 월E2008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오기 7년 전에 제작된 것이지만, 현재 인류가 걱정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문제점을 아주 정확히 파악했고, 환경 문제도 아주 잘 비판했다.

 

우선 환경파괴 문제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환경파괴문제는 제1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시작된 환경파괴는 20세기 중후반과 21세기 와서 더욱 극심해졌고,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으로 남았다. 대표적으로 북극해 빙하의 증발 현상과 인류가 만든 플라스틱과 같은 환경파괴의 주요 원인인 물건들은 현재도 처리되지 못한 채 태평양과 대서양을 돌고 있는 현상을 얘로 들 수 있다. 특히나 플라스틱 생산과 같은 환경 파괴의 주요원인이 되는 생산품들은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통해 지속해서 과잉생산되고 있다.

 

그 덕분에 인류는 과잉된 상품을 원하는 시간에 소비할 수 있고, 과거에 비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혜택을 누리지만, 그 대가를 지구가 대신 치르고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영화 월E에선 앞으로 100년 후의 인류가 이런식으로 지구를 망쳐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영화 월E에서 나온 미국의 모습은 그저 맑은 하늘은 존재하지도 않고, 쓰레기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높이 만큼이나 여러군데 쌓여있으며, 생명이라곤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800년이 지나서의 지구 모습은 더 처참하여 주인공인 월E 혼자 쓰레기를 치우고 있을 정도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영화에 따르면 22세기 인류가 시도했던 지구 대청소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영화 초반부에 보면 어느 미국 대통령이 지구는 이 쓰레기 청소용 로봇에게 맡기고, 초호화 우주선 액시엄으로 놀러가세요라고 선전하는 영상이 나온다. 이는 말그대로 선전이었다. 22세기 인류가 제작한 월E와 같은 쓰레기 청소용 로봇은 쓰레기들을 수거하여 정육면체로 만들어 쌓아두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극중에선 22세기의 발달된 과학 기술을 가지고도 이를 해결치 못했다. 심지어 액시엄에서 만들어지는 쓰레기도 월E와 비슷하게 생긴 로봇들이 한꺼번에 수거하여 우주 밖으로 버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생각이지만 영화의 이 장면이 시사해주는 것은 그만큼 인류가 창조해낸 환경파괴가 재앙적이다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영화 월E의 또 다른 특징이자 큰 장점은 현재 가속 중인(혹은 가속 중인지 알 수 없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문제점을 아주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E가 들어와서 보게 된 액시엄에서의 인간 생활상은 말 그대로 기계에 의한 돼지사육이나 다를게 없었다. 대형 우주선 액시엄에선 과거 인간이 했던 경찰, 보육, 교육, 운전, 출산, 식량 확보, 쓰레기 수거, 행정, 활동 등을 인간이 아닌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즉 과거에는 인간의 일자리였을지도 모르는 직종이나 활동들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고, 오히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액시엄에 사는 인간들은 의자에 않아 그저 기계가 주는 음식맛 나는 음료수를 마신다. 인간들은 그 음료수 음식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환경파괴의 주범중 하나인 빨대를 통해 음식을 흡입한다. 인간들은 그저 기계가 얘기해주는 유행 트렌드를 아무런 비판의식없이 따라하고, 기계가 말하고 추천하는 대로 소비한다. 쉽게 말해 주체적인 자아의식을 잃은 것이다.

 

액시엄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보육을 담당한 기계에게 가르침을 받는데, 참으로 소름끼치고 무서운 것은 그 기계들은 알파벳을 가르칠 때, 인간에 대해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들끼리 오락을 즐기는 것도 온라인에서 회상을 통해 하지 오프라인을 통해 하지는 않는다. 만난다고 하더라도 얼굴을 보고서 만나는 것이 아닌, 기계가 비추어 주는 회상을 통해서만 얘기할 뿐이다.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며 놓쳤을지는 모르겠지만, 액시엄 선장이 과거의 액시엄 선장들의 이력을 보는 장면에서 그들의 재임기간이 어느정도였는지가 밝혀졌다. 대부분 최소 100년 이상은 했다. 이걸 보았을 때, 비록 의자에 앉아 살더라도 과학기술에 힘입어 사람들이 오래살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오래 산다는 것이 진정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닌 기계로부터 통제받는 삶이니 말이다. 즉 선장이 나는 인간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 것은 괜히 그런게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월E에서 보여준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문제점은 감정을 가진 기계들 중에 인간을 완벽히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고 하는 장면들이다. 영화상에서 월E와 이브가 선장실 조종대로부터 유해한 로봇으로 판정되었을 때, 로봇 경찰들이 출동하는데 이 때 의자에 앉아서 갈 길 가던 한 남성을 치고 그냥 가버린다. 솔직히 필자는 이 장면에서 아 기계가 사람을 무시하고 있그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기계가 자신들이 통제하는 인간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장면들이 꽤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들자면, 액시엄의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선장을 선실 조종대가 통제하고, 구금하는 장면이었다. 이를 통해 영화 월E4차 산업 혁명이 가속화된 사회는 기계가 인간을 통제하는 사회일 수도 있다는 섬뜩한 사실을 알려줬다.

 

따라서 이런 여러 가지 맥락을 보았을 때 영화 월E4차 산업혁명의 가지고 올 결과를 비판적으로 보여주었다 할 수 있다. 현재 많은 부분에서 전산화와 기계화가 되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살다 보니 영화의 이런 장면들이 매우 눈에 들어왔고, 4차 산업혁명이 걱정되기 까지 했다.

 

4. 영화가 내리는 나름 신선한 결론

(영화 월E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 풀들)

 

영화 월E가 그냥 훌륭한 영화가 아닌 것은 그 영화가 보여주는 마지막 결론에 있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지구로 돌아온 인간들은 폐허가 된 땅에서 식물을 심는 장면과 그 이후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는 땅을 보여준다. 이 마지막 장면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필자가 더 의미를 둔 장면은 마지막 장면 보단 영화가 끝난 이후에 나오는 엔딩 크레딧이다.

 

E의 엔딩 크레딧에선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온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그림을 통해 아주 상세히 보여준다. 사람들은 다시 원래 상태의 몸으로 돌아가게 되고, 지구로 돌아온 인간들은 기계와 함께 자연환경을 보존해가며 살아간다. 이점이야 말로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즉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며 서로 돕고 지구와 자연을 보호해가며 살아가는 그런 삶 말이다. 그 점이야말로 영화가 진정으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월E 엔딩 크레딧에서 나온 장면. 결국 인간은 다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된다.)  

  

필자도 이 엔딩크레딧을 통해 앞으로의 사회는 그런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에는 인간과 기계가 어떻게 공존하며 지구의 자연환경을 어떻게 보호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영화 월E는 필자에게 많은 점을 알려주었고,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영화를 안보고 이 리뷰를 읽게 된 분은 이 영화를 엔딩 크레딧까지 꼭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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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 실천론.모순론 레볼루션 시리즈 1
마오쩌둥 지음, 슬라보예 지젝 서문, 노승영 옮김 / 프레시안북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20세기 봉건제 국가였던 중국에서 혁명을 주도했던 대륙의 혁명가가 있었다. 그는 1949년 10월 1일 수도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고,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그가 바로 현대 중국의 아버지 마오쩌둥(Mao Ze Dong)이다.

프레시안북에서 출판한 이 책은 일제의 침략으로 중일전쟁이 시작되던 1937년 그가 연안에서 집필했던 ‘실천론‘과 ‘모순론‘ 그리고 그외에 1930년부터 1964년까지 마오쩌둥이 집필하거나 연설한 글들을 모아놓았다.

마오쩌둥이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실천론과 모순론은 사실 1937년 그가 연안의 항일군정대학 철학수업에서 강연했던 내용이다. 마오쩌둥의 얘기한 모순론이란 혁명가 레닌이 얘기한 ‘대립물 통일 법칙‘이라는 변증법적 관점을 ‘모순‘이라는 이론으로 체계화 시킨 것이었다.

혁명가 마오쩌둥은 모순론을 통하여 중국 내에서 문제시 되었던 소위 ‘교조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타파하고, 중국내 사회주의자들을 철학적으로 각성시키며, 중국 인민 대중을 일제 침략자들에게 저항하도록 하고자 했다. 즉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의 철학적 이론을 실천론과 모순론을 통해 정리했고, 교조주의를 비판하며 더 나아가 일제 침략에 맞서 저항했다. 그가 쓴 모순론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거기서 요약해서 발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물의 모순 법칙, 즉 대립물의 통일 법칙은 자연과 사회의 근본적인 법칙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유의 근본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가 연구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요점을 정말로 이해했다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원칙에 위배되고 우리의 혁명 과업을 저해하는 교조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경험을 쌓은 동지들은 스스로의 경험을 정리하고 이를 원칙으로 만들어 경험주의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마오쩌둥 실천론, 모순론 p.137~138 내용을 일부 발췌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집중적으로 생각해 본 것은 소위 교조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마오쩌둥이 쓴 글이나 연설에는 교조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온다. 1930년 그가 린뱌오에게 쓴 편지에도 당시 중국 공산당 내의 노동자주의로 대표되던 노선을 교조주의로 간주하며 이에대한 비판이 나오는데, 마오가 그런 비판을 했던 것은 아무래도 중국이라는 특수한 현실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필자가 이 책에서 또 재밌게 읽었던 파트는 ‘소련 사회주의 경제 문제에 대하여‘, ‘스탈린의 소련 사회주의 경제 문제 비판‘ 그리고 ‘미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은 토지개혁을 실행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경제재건에 나섰다. 그러나 스탈린 사망 이후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을 시작으로 과거 스탈린식 경제 개발의 문제를 보완할 프로그램을 하고자 했는데, 그 점에서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생각하게 된 것이 대약진 운동이었다.

이것은 1930년대 스탈린의 경제개발에서 보인 만성적인 소비재의 부족과 농업 생산 해결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아쉽게도 대약진 운동의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극심한 생산력 저하로 이어졌다. 물론 중국 공산당 정부의 정책적 실책도 있었으나, 스탈린 격하 운동으로 중소갈등이 격해지면서 소련의 지원이 전면적으로 끊겼던 것도 생산력 증진과 경제 재건 실패의 한 요인이었다.

결과가 어찌됐든 당시 마오쩌둥이 썻던 글들을 보니 비록 스탈린의 공업화 보단 절대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상당부분 현실적인 것도 나름 반영되었던 것 같다. 필자가 그 파트를 읽으면서 알 수 있었던 건 분명 마오는 소련보다 더 나은 경제정책을 목적으로 대약진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그 시도는 대실패로 끝났지만 말이다.

책에서 다룬 ‘미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1950년대 마오쩌둥이 라틴아메리카의 인사 두 명과 나눈 대화다. 그 대화에서 마오쩌둥은 ˝미제국주의가 반공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른 나라들을 수도없이 침략하고 있고, 수많은 인민들이 미국을 싫어하며, 그러한 제국주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으며, 전 세계 인민 또한 제국주의를 원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당시 마오가 라틴아메리카 인사에게 말한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타당했고, 합리적이었다고 본다. 자유라는 이름아래 미국이 치른 전쟁의 대다수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이었고, 그런 미제국의 침략전쟁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오의 견해는 매우 타당하다.

이번에 읽은 책을 통해 마오쩌둥의 사상을 공부할 수 있었다. 사실 필자가 마오쩌둥이 집필한 책을 읽어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책을 통해 마오쩌둥에 대해 필자가 내린 결론은 그는 중국 현실에 맞게 혁명을 실천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다. 물론 어디까지나 중국 현실에 맞게 실행했기에 민족해방투쟁에 가까웠던 점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이론을 절대 버리지 않았으며, 실천론과 모순론을 통해 기존의 교조주의하고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마오쩌둥은 봉건제 중국에서 혁명을 성공시킨 위대한 혁명가고, 마르크스-레닌주의자다. 오랜만에 마오쩌둥의 사상을 공부할 수 있었다. 많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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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두 발의 권총소리는 초저녁 궁정동의 적막을 깼다. 간발의 차이를 두고 십수 발의 총성이 콩 볶듯이 뒤를 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2분, 박정희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총탄에 맥없이 쓰러졌다. 박정희의 절대통치 18년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형님, 각하를 좀 똑바로 모십시오”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올바로 되겠습니까.”

“차지철이 이놈”

“탕!”

 

김계원 비서실장과 박정희 대통령에게 마지막 ‘건의’를 올린 김재규는 곧바로 차지철을 향해 권총을 뽑아들었다. 순간 연회석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차지철은 권총을 낚아 채려고 오른팔을 내밀었고 동시에 김재규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은 차지철의 오른손 팔목을 꿰뚫었다.

 

“김 부장, 왜 이래, 왜 이래.”

“이거 무슨 짓들이야!”

“탕!”

 

차지철과 박 대통령의 고함소리는 곧이어 처진 또 한 발의 총성에 묻혀버렸다. 김재규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쏜 총탄은 박 대통령의 오른쪽 가슴 윗부분을 뚫고 들어가 등 아래 쪽 중앙부위를 관통했다.

 

이렇게 해서 18년 5개월 10일 동안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군림해 온 박정희는 자신의 심복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으로 사망했고, 동시에 1인독재의 막이 내렸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부정행위를 일삼았다. ‘동백림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인혁당 사건’같은 무시무시한 일도 일어났고, 그의 정권에 반대하여 부마항쟁과 같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역사에선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지만, 그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술파티를 하던 박정희는 부마항쟁을 걱정하며 얘기하는 김재규의 발언을 질책하며, “앞으로 서울에서 4.19 같은 데모가 일어난다면 대통령인 내가 발포 명령을 하겠다”고 호언했다. 그러자 경호실장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정도 죽어도 까닥 없었는데 데모대원 100만~200만 정도 죽어도 걱정 없다”는 말을 하며 박정희를 부추겼다. 당시 박정희와 차지철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만약 박정희가 안죽고 살아있었다면 경상남도의 부산과 마산은 제2의 광주 학살이 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랬기에 김재규가 그를 권총으로 쏴죽인 것이다.

유신독재자 박정희가 죽은지 40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의 잔재는 대한민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다. 아직도 국내에서는 박정희를 찬양해대는 책들이 시중에 돌고 있고, 그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기념 도서관까지 만들어 샤머니즘적으로 숭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친일 독재 세력의 결집력은 어버이 연합이나 엄마 부대와 같은 관제 데모에서 잘 드러난다. 이제는 박정희라는 신화적 인물을 걷어내야 한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에 맞서 ‘박정희 평전’을 집필했던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씨는 평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는데, 그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다.

 

“넘어야 하는 질곡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한국자본주의 괴물이다. 박근혜의 몰락은 한 비리 정치인의 몰락에 그치지 않고 56년 망령처럼 우리 주위를 떠돌던 박정희 개발 독재 신화의 확실한 종언이 되어야 한다. 개발독재로 얼마간의 번영을 누렸지만, 그것이 뒤틀린 산업화의 결과일 수 없다는 반박논리는 접어둔다 해도 결과적으로 공짜는 없었다. 산업화의 과실은 왜곡된 분배구조를 통해 불평등심화를 초래하고, 중산층을 붕괴시켰다. 세계화에 특화된 재벌기업과 자본은 부를 무한 축적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지속적 임금삭감과 자산하락으로 고통받아왔다. 더욱이 승자들의 패자들에 대한 손실전가 행위는 날로 더 심해지고 있으며, 최대의 희생자 중 하나는 나라의 미래인 청년서대다. 불평등과 갑질천국의 헬조선을 만든 한강의 기적은 던져버리고, 이제 대한민국은 광화문의 기적 위에 우뚝 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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